한국지적 100년 자료실

 

제목 : 소유의 상징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04-01-06 조회수 : 786
권위·비밀·소유의 상징





추사의 글씨를 가지고 하는 말이 ‘추사의 글씨를 방불케 하는 것으로솜씨는 도리어 추사보다 능숙한 데가 있어 

보이나, 도장이 추사 것이 아니니 아무 가치 없는 것’이라는 말을 하더란다.”(계용묵의 ‘낙관’중에서) 여기서 도장

은 서화의 진위를 판명하는 근거로 기능하고 있다. 인장(印章)으로도 불리는 도장(圖章)이 권위와 권능, 비밀의 

상징, 합법적 소유의상징으로 쓰인 것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비슷하다. 



단군의 건국과정에 등장하는 천부인(天符印)은 하늘이 전한 도장으로 신령스러움을 상징한다. 삼국유사의 이 기

사는 도장에 관한 한국 최고(最古)의기록이다. 성서에도 신의 권능이 도장을 찍는 행위로 나타난다. 요한 묵시록

에 나오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의 구절이 좋은 예다. 기밀 유지를 위해 사

용된 도장이 봉니(封泥)다. 종이 발명 전 죽간이나 목간에 기록한 내용을 묶어 점토를 붙이고 그 위에도장을 찍

었는데 이는 바로 믿음과 기밀보전의 의미를 갖는다.삼국사기에는 신라에선 국왕이 바뀔 때 국새를 전한다는 기

사가 나온다. 

고려 성종 때 서류에 도장을 찍은 최초의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당시토지측량을 맡은 관리인 양전사(量田

使)가 병사하는 바람에 김수로왕 능묘에 소속된 전답의 토지대장에 도장이 찍히지 않았다는 기록이다. 또 인부

랑(印符郞)의 벼슬이 있어 나라의 인장을 관리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1년(1392년) 상서원(尙瑞院)을 설치, 어

보 등을 관장했다. 

도장은 기원전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원시문명사회에서 처음 사용됐다. 이를 도장의 효시로 삼는다. 중국은 

진시황이 통일국가를 세운 뒤 옥으로 도장을 만들면서 옥새라고 불렀다. 이후 일반 신민의 도장은 인으로 칭했

다. 



한국일보



2004년 01월 05일 (월)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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