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적 100년 자료실

 

제목 : 역사의 돌발점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04-01-06 조회수 : 794


검사가 현실의 법정에서 증거와 씨름을 한다면 역사가는 역사의 법정에서사료와 씨름을 한다. 사료와 숨바꼭질

을 해야 하는 역사가로서 사료를 고문해서라도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말한 랑케의 심정이 때로는 이해가 된다.

자료가 충분히 남아 있는데 상충하는 내용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그나마 행복한고민이다. 그 경우에는 

자료 비판이나 방증 자료를 활용해어느 자료가 진실을 말하는지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의 발목을 잡는 것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료가 없거나 결정적 부분만 빠져 있는 부작위의 공간이 너무 많

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증거 인멸과사실의 은폐, 왜곡이 일어나기도 하고, 아예 애초부터 기록 자체를 남기지않

는 경우도 있다. 

삼남민란으로 불리는 1862년의 농민항쟁은 조선왕조의 명운을 재촉한 중요한 사건이었고, 그것은 삼정문란과 탐

관오리의 착취가 발단이 되어 일어났다. 삼정(三政)은 18ㆍ19세기 조선에서 재정의 뼈대를 이룬 전정(田政)ㆍ군

정(軍政)ㆍ환정(還政)을 통칭하는데 삼정문란은 그 경영의 파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전세(田稅)의 부과 징수를 근간으로 하는 전정의 성패는 토지대장의 정확한 작성, 농사의 풍흉을 조

사 결정하는 연분(年分)에 달려 있었지만, 지방 수령과 아전의 부정부패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정부의 재정 고갈과 민란으로 나타났다. 당시 토호와 관리의 탐오는 극에 달해서 실제 경작지를 토지대장에서 누

락시키고 그 땅에서 나오는 세금을 착복하는 은결(隱結), 세금을 법정액 이상으로 받아 초과분을 착복하는도결

(都結)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정부패가 자행됐다.물론 이 모든 일은 조세대장, 토지대장 등 기록을 체계적으

로 누락, 은닉, 왜곡함으로써 가능했다. 현재의 상황에 빗대어 얘기한다면 정치권의 불법 대선자금 모금이 기업

의 분식회계를 가져오고, 그 부담이 투자자와 일반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는 식이다. 

이태 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성노예, 강제노동 등 일본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제학술회의’에서 

한 일본인 학자가 일본군 군대위안부 제도 운영과 일본 기업의 관련성을 한 콘돔 생산기업의 사례를 통해밝힌 것

을 보았다. 

이 논문은 일본 정부의 콘돔 배급체계를 통해 군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개입 여부를 분석함으로써 

군대 위안부 문제의 중요한 쟁점의하나를 해명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 논문이 가능했던 것은 기업활동

의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데, 어쨌든 일본 사회는 기록을 통해 최소한 반성의 근거를 남기고 있고, 그런 사회

는 과거로부터 배울 여지가 있는셈이다. 

새해다. 모든 사람이 희망을 얘기한다. 하지만 희망은 그것을 가꾸려고 노력하는 사회와개인만이 보듬을 자격이 

있을 것이다. 대선자금을 둘러싼검찰과 정치권의 숨바꼭질을 보건대 이제 정치헌금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도록 규

정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차떼기로 정치자금을 전달하고 전달 받는 사람들에게 정당기록관과 기업기록관을 

바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아니겠는가./정용욱ㆍ서울대 국사학과 교수(한국현대사) 



한국일보



 2004년 01월 04일 (일)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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