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 녹둔도 영유권

 

제목 : 두만강 하구는 인종의 용광로가 될 수 있을까?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4-08-21 조회수 : 575


 










두만강 하구는 인종의 용광로가 될 수 있을까?






등록 : 2014.05.16 10:01 수정 : 2014.05.16 10:01







[한겨레 창간 26년 특집, 떠오르는 환동해]

중국 전문가 기고2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원장(제주대 석좌교수)

인종의 용광로, 두만항하구의 동해안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



1. 동해로 가는 길 


 


방천 가는 길은 자못 살벌하다. 카메라 꺼내드는 데도 눈치를 본다. 전망대에서 러시아 하산시와 조러철교가 들어온다. 중국,러시아,북한 갈림길에서 나그네는 잠시 숨을 멈춘다. 경계란 언제나 미묘하고 이중적이다. 그래서 국경의 도시는 어디서든 무언의 불안감 같은 것을 뿜어내기 마련이다.


 


오늘의 중국 동북3성 입장에서 땅을 치고 한탄할 일이 아마도 1860년 베이징조약이리라. 러시아에게 연해주를 양도하여 오늘의 국경을 확정지었기 때문이다. 동에서 동으로 동진을 거듭하여 하바로프스키에 당도하고, 아무르강을 따라 블라디보스토크 동해안에 도착한 러시아에게 연해주 국경획정은 대단히 중요했다. 환동해로 나아가는 출구를 확보한 것이다. 중국입장에서는 환동해 출구가 봉쇄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한 측면이 많다. 1712년 청은 정복전쟁을 거듭하여 서남쪽으로 백두산경계비를 세운다. 천지에서 압록강과 토문강 발원지를 경계로 삼는다고 하였다. 토문강은 본디 청인들이 송화강 상류로 보았으므로 두만강과는 엄히 구분된다. 이 경계구분을 따른다면 간도는 우리땅이다. 1909년 남만철도와 푸순탄광 등의 개발권을 일제가 쥐는 댓가로 간도는 적당히 중국땅이 된다. 중일 간의 간도신협약이 그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의 중국이 바다를 잃었다고 한탄할 일도 못된다.


 


 


 


2. 대륙굴기에서 해양굴기로


 


멀리 동해가 바라보이는 방천 쯤에서 중국 경계는 멈추었다. 과거의 중국해양력이 그 정도 선에서 멈춘 것이다. 그러나 서구 해양세력에게 당하여 아편전쟁 이래로 제해권을 상실하였던 중국은 해양력 회복에 국가적 총력을 쏟는다. 중국에게 동해는 중국지방정부의 출구에 그치지않는다. 동해로 가는 길을 확보함으로써 러시아, 북한, 남한, 일본, 나아가서 미래의 북극항로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두만강이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입구쪽에 위치하며 좌우로 두만강 철교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러시아 하산역과 북한의 두만강역이 내려다 보이는 팡천(방천)쪽에서 러시아국경 하산과의 철책이 길게 뻗어있다.



동북3성,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랴오닝성을 제외한 지린성과 헤이륭장성의 동해 진출은 보다 절대적이다. 지금이야 물류를 다롄, 단둥 등 발해만으로 빼내지만, 나진을 통한 환동해 진출은 보다 새로운 미래를 선사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북한 나선지역의 지정학적 위치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두만강하구는 천년의 세월을 두고 퇴적되어 오늘의 해안선이 완성되었다. 두만강 끝자락에 한반도 최북단 항구인 서수라가 있다. 북빙이 녹을 때면 서수라 해안으로 유빙이 밀려오고 어부들은 두만강 하구에서 명태와 대구, 연어 등을 잡아들였다. 서수라 아래에 웅기항이 오늘의 선봉이 되었고 나진선봉지구가되었다. 연변시장에서 남한에서는 사라진 북한산 명태를 반갑게 마주할수 있음은 이곳이 북방의 바다임을 잘 말해준다.


 


불안정한 퇴적섬 녹둔도가 존재했다. 세종의 6진 개척(1430년대)으로 400여년간 조선의 영토였던 녹둔도는 이순신 장군도 한때 근무하던 국경 중의 국경이었다. 그만 18세기에 퇴적작용으로 연해주와 붙어버렸다. 여의도 1.5배에 불과한 섬이지만 기름진 삼각주에서 벼와 옥수수,조,보리 등을 농사지었다. 1884년 기준, 113가구 822명의 순전한 조선인 촌이었다.


 


오늘날 서수라 북방의 옛 녹둔도에는 러시아 군인들이 주둔하며, 녹둔도 바로 위가 피터대제 만이다. 그 만에 포세트와 크라노스키 항구가 있다.


 















녹둔도와 서수라가 명기된 옛 지도 네모 점선내 왼쪽 아래가 녹둔도 오른쪽 위가 서수라다. 출처: 두만강하구 녹둔도연구,서울대 출판문화원



조선후기 유랑의 무리를 이루어 두만강 넘어 연해주로 몰려갔다. 국민국가의 국경선으로 본다면 여권,비자 등으로 웅변되는 엄혹한 경계이지만, 손쉽게 넘어갈 수 있는 두만강의 좁은 폭을 생각한다면 그저 강건너마을일 뿐이다.


 


피터대제만의 크라노스키가 옛발해의 염주성이다. 명칭으로 보아 동해에서 소금을 구었던 곳이다. 러시아 동방 고고학자들의 손으로 발해성 발굴이 이루어졌다. 연해주의 지방 원주민으로 발해를 끌어올리려는 그네들의 필요에 의한 발굴이었으리라. 성에서 다듬잇돌이 나왔다. 발해사신 양태사(楊泰師)가 남긴 ‘밤에 다듬이소리를 들으며’를 연상시키는 발굴이었다.


 


 


 


3. 동해의 용광로에서 평화의 바다를


 


중국, 러시아 북한의 경계를 이루는 두만강 하구는 사실 어느 누구의 최초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종의 혼합이 이루어진 곳이다. 함경북도 온성 종성 등에 1950년대까지 집단적으로 살고 있던 재가승 마을들은 바로 여진족이다. 오늘날 북한의 이들 지방에 사는 사람의 조부모들은 상당수가 여진족 핏줄이다. 그 여진족은 두말할 것 없이 발해의 하부를 이루었고, 고구려의 백성들이기도 했으며, 한때 몽골제국의 백성이기도했다. 한동해권의 혼효된 인종지도는 오늘날도 동일하다. 동북에는 연변조선족자치구가 있다. 본래의 조선족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과 조교(북한교포)도 산다. 동북의 내륙항구로 발돋움하는 훈춘에서는 자루비노의 러시아인이 물건을 사들이고 치과에 다니기 위해 버스로 오고간다.


 


연해주에서 중국인이 상권을 장악한 지는 오래됐다. 그런데 본디부터 청나라 상인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해삼을 사들였고,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원주민인 아이누인들에게서도 해삼을 사들였다. 훈춘시장에 나가보니 함경도에서 가공한 말린 해삼이 고가로 팔리고 있었다. 러시아는 중국인들이 백인보다 월등히 많은 숫자로 러시아 땅을 넘보는 황색바람을 경계한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와 북한, 남한은 매력적인 파트너다.


 


북한과 거래가 끊긴 상태에서 연변의 조선인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해주에는 많은 남한인들도 살고있다. 만주국을 건설하여 나름 허황된 제국을 꿈꾸던 일본에게도 환동해 북부권은 중요하다. 오늘의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 항구도시가 훈춘시와 자매결연도 맺고, 강원도의 속초시와 포항시가 훈춘에 지소를 운영하는 상황은 동해의 미래를 예견하는 바둑돌이리라.


 















연길 어시장의 명태. 내륙지역인 중국 연길 훈춘 지역은 북한쪽 나진 선봉의 동해에서 잡힌 생선들의 인기가 좋다.



그 옛날 환동해권은 ‘바람의 신’에 의해 오고갔다. 겨울에 북서풍이 불어 바람만 잘 타면 한 순간에 일본에 닿았다. 물론 험한 바람을 만나면 중간에 동해의 고기밥이 되고 말았다. 발해의 염주성에서 일본 가네자와의 노토반도 후쿠라항까지 사신들이 정기적으로 오고갔다. 일본사신들도 당연히 염주성에 머물렀다. 고려시대에 이곳 동북여진족들은 동해를 가로질러 울릉도를 들이치고 오늘의 큐슈 북부 이키섬 등을 노략질한 후에 동해를 통하여 유유히 돌아갔다. 지정학적으로 이해되고 항해 가능한 동해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고 있었던 증거들이다.


 


두만강 하구는 중국인과 러시아인, 북한과 남한인, 연변 조선인, 그리고 일본인이 모여드는 인종의 용광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용광로에서 문물이 교류하고 물류를 통한 경제이동이 환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녹여낼 수 있을까. 나진항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경제적 총량의 시금석이리라.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원장(제주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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