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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경주팔공산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08-12-20 조회수 : 900

▲ 천하고금대총편람지도와 대청광여도로 본 경주 팔공산의 위치는 안휘성 합비 근처이다. <고구려사초.략>의 기록에 따르면 신명선제 29년(AD 101년) “신라가 월성(月城)으로 이사했다. 월성의 둘레는 1,023보가 된다고 했다.”는 중요한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신라는 천도한 적이 없이 금성(金城) 한군데에서 천년간 왕업을 이어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민사학계는 그 금성을 현 경북 경주라고 한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시조 혁거세거서간 21년 (BC 37년) 경성(京城)을 쌓고 이름을 금성(金城)이라 했다. 그런데 38년 기록에 보면, “예전에 중국 사람들 중 진(秦)나라의 난리에 시달려 동쪽으로 건너온 자가 많았는데 대개 마한의 동쪽에 자리 잡아 진한과 더불어 살았다.”고 하면서 식민사학계는 마한(백제)은 충청.전라 지역이고 신라는 경상도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진나라의 상징인 만리장성은 어디까지 왔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아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진시황의 장성은 황하를 넘지 않았으며, 위의 이론대로라면 진시황의 만리장성은 경상도까지 왔다는 말이다. 위만에게 패한 번조선왕 기준이 남하한 곳인 마한 역시 서화 동쪽임을 알 수 있다. 식민사학계의 이론대로라면 진시황의 만리장성은 경상도까지 왔다는 말인데 이걸 믿으란 말인가? ▲ 북경대학교재에 나와있는 진시황의 장성은 황하를 넘지 않았다. 따라서 신라의 수도인 금성은 진시황의 장성이 끝나는 곳에서 동쪽 마한 근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서 신라가 AD 101년 월성으로 천도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월성은 안휘성 합비 근처로 보여진다. 서울대 박창범교수의 일식기록에서 보듯이 양자강 중류가 최적관측지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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