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월천답

 

제목 : 국회에서 벌표한 '단기 사용을 통한 남북한 동질성 회복방안'기사입니다.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8-06-10 조회수 : 92

 

북조선은 신채호 사학, 남한은 조선총독부 사학

기사승인 2018.06.08  23:46:53

   

- 분단으로 인한 남북 이질화 심각, 극복은 단군과 역사광복에서 시작된다.

 

이덕일,

남한 역사학은 서기1945.08.14. 이전에 머물러 있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이 지배하고 있다

북한은 치열한 토론 통해 식민사관 해체하고

독립투사들 역사관으로 역사학 세웠다

허성관,

고대판 조선총독부, 임나일본부 망령은 남한 역사학에 살아있다

남한 역사학계는 임나는 가야, 총독부 사관 따른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물론 식민사학을 제외한 학자들은

일관되게 일본열도에 임나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조병현,

해방 후 남한은 단군기원을 사용했으나 박정희가 없앴다

북한은 단군릉을 개건했으나, 주체연호를 쓰고 있다

통일시대에 단군기원을 부활하여 남북한 동질성 회복 초석으로 삼자

 

▲서기2018.06.07.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남북한 역사학 동질성회복전망을 주제로 학술발표 및 토론회가 있었다. 발표자들과 주요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동북아역사재단 해체, 김도형 이사장 퇴출 투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 연장 성격을 띤 학술대회가 있어 화제다. 서기2018.06.07.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회의실에서 제2차 한민족역사주제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유성엽 국회의원, 이종걸 국회의원, 김원웅 전 국회의원, 이종찬 전 국정원장 등이 환영사와 격려사를 보내 온 가운데 ‘남북한 역사학 동질성회복전망’을 주제로 열렸다.

먼저 이 행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고 있는 손윤 의암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인사말씀을 전했다. 손 이사장은 일제가 서기1894년 조선왕궁을 침탈한 것을 상기시켰다. 그는 이 침탈은 명백한 전쟁행위라고 못 박았다. 선전조칙과 국제법을 무시한 기습이라는 것이다.

이어 반상타파와 적서차별을 개선하라고 봉기한 동학농민군을 살육하고 50년간 우리 강토를 약탈한 일제 만행을 고발했다. 일제만행은 우리에게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물려준 식민사학이라는 상흔을 남겼다고 통탄했다.

이어 중국의 역사침탈을 비판했다. 익히 알려진 동북공정에서부터 이를 저지하기 위한 만주지역 답사 방해에 이르기 까지 중국이 벌이고 있는 역사공작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남북한이 먼저 역사학에서부터 동질성을 회복하여 대항하자고 역설했다.

▲손윤 의암손병희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인사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는 인사말씀을 통해서 우리 내부에서 먼저 역사를 바로잡아 역사침탈을 일삼고 있는 일본과 중국에 남북한이 함께 대응하자고 역설했다.

이날 학술발표 첫 주자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맡았다. 이 소장은 최근 서울신문 연재와 각종 단체에서 요청 들어오는 강연에서 남북한 역사학을 비교하여 우리 역사학 현주소를 짚어주고 있다.

이날 발표에서도 우리역사학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국사학사를 조명하고 북한 역사학 역시 구축되는 과정을 밝혔다. 이 소장은 일제 패망 곧 우리 해방은 우리역사를 되찾는 것이었다고 새롭게 정의 내렸다.

그는 “일제 패망이 신생독립국을 탄생시키는 것 아니라 잠시 빼앗겼던 유구한 민족사 전통을 되찾는 것이었다”고 일갈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남한은 그렇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일제는 우리 역사에서 단군을 없애버리고 이 땅으로 축소시켰다고 했다.

이것을 일제식민사관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는 ‘한국사 정체성론’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일본과 관계에서 우리는 중국 선진문물을 전해주는 중개자에 불과하다고 왜곡시켰다고 했다. 이는 우리는 외국 침략과 지배를 받아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일제는 우리역사를 이렇게 왜곡하여 식민지지배정당화 논리를 창출했다고 보았다.

그 결과 남한에서는 어떻게 역사가 만들어졌을까. 해방 후 서기1949년에 발간된 국사교범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대사를 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 무제가 위만 조선 땅을 빼앗아 그곳에 낙랑=평안남도 및 황해도 북단, 진번=황해도 대부분, 임둔=강원도 북부와 함경도 일부, 현토=압록강 통구 등 4군을 두었으나, 낙랑군은 약 4백여 년 동안 평양 일대에서 명맥을 보존하다가 고구려 미천왕 때에 멸망당했다. 이 낙랑을 중심으로 토착 문화와 한 문화가 교류하여 이른바 낙랑문화가 발달하였으며 이 문화가 우리 남북 여러 나라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았다.”

이것이 당시 우리에게 가르쳐진 우리 머리역사인 고대사라고 이 소장은 밝혔다. 이 기록은 미국군 정부시기에 나온 것인데 <국사교본>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고 했다. 진단학회에서 발간했고 이병도가 위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병도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부역한 악질 친일파로 알려져 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이다. 이날 이 소장은 남북한 고대사를 비교하고 동질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발표했다.

이러한 우리 국사교육구도는 표현만 달리 할 뿐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본지에서 강단식민사학 시민강좌를 50회 이상 취재한바 역시 그대로 반복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이화여대 오영찬 교수, 박사학위논문에서도 확인되듯이 낙랑군 관련 부분에서 거의 복사하다 시피 똑같은 논조를 유지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위 교본에서 ‘낙랑문화’라고 표현하고 있다. 오영찬 교수는 ‘낙랑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출하기도 했다.

반면에 북한은 벌써 서기1946.07.31. 북한역사학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 소장에 따르면 북한은 이해에 북조선임시위원회 김일성 위원장의 지시로 당시 남에 있었던 역사학자들과 접촉을 한다. 남한 역사학자들을 초청형식으로 북에 남도록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소장이 밝힌 이 당시 북으로 간 역사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백남운, 박시형, 김석형, 전석당, 김광진, 정진석, 김병제, 도상록, 계응상, 한흥수,려경구, 최삼령, 원홍구 등이다. 이 소장은 이들을 중심으로 북한 역사학 기초가 세워졌다고 보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서기1946.09.15.에 김일성 종학대학이 세워져 이곳에서 이 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역사편찬을 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불과 30대 초반에 역사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학자군이 갖추어지고 역사 특히 고대사 부분에서 학자들 간의 치열한 견해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중국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 위치문제로 싸웠다고 한다.

재평양설과 재요동설로 나누어져 다투었는데 익히 알려진 것처럼 김일성 교시로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이 소장은 강조했다. 김두봉이나 정렬모처럼 국어학자도 참여했다고 한다. 또 남일과 같이 정치가도 기여했다고 한다.

결국 단재 신채호 역사관으로 정리되었고 리지린이 중국 북경에 유학갔다 온 후 한사군은 재요동설로 굳혀졌다고 한다.

반면에 남한 역사학은 친일부역 역사학자, 이병도, 신석호가 장악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북한처럼 한 번도 본질적인 토론을 한적이 없이 조선총독부 사관을 그대로 정설로 이어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낙랑군이 여전히 평양에 있었다는 것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남한 역사학은 일제가 패망하기전 서기1945.08.14. 이전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조병현 박사가 단군기원 사용을 중심으로 남북한 동질성 회복방안을 발표했다. 남북정상이 판문점 선을 통해서 화해하고 번영과 통일로 가는 시기에 남과 북이 동질성을 회복하는 문제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질성 회복하는데 가장 기본이 단군기원 공동사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먼저 단군기원과 관련해서 연호를 자국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하는 나라 사례를 들었다. 일본의 경우 일왕기준으로 연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평성平成’ 이라고 했다.

대만도 중화민국을 건국한 해를 기준으로 ‘민국’ 몇 년 이라고 쓴다고 했다. 또 불교국가들은 석가모니가 입적한 해를 기준으로 ‘불기佛紀’를 사용한다고 한다. 북한도 김일성 탄생일을 기준으로 ‘주체’ 몇 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승만 정권 때 가지만 하더라도 ‘단기檀紀’ 사용했는데 박정희가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뒤 없애버리고 서력기원만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병현 박사가 단군기원을 중심으로 남북한 역사학 동질성 방안을 역설하고 있다. 단군기원을 남북한이 공동으로 쓰고 남한에는 단군을 모신 국조전을 건립하면 자연스럽게 단군을 중심으로 남과 북의 역사학이 같게 될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그러면서 단군기원 사용 역사를 조명했다. 고려시대 나온 <삼국유사>에 중국 요임금 원년에 단군조선이 개국했다고 하거나, 경인년에 즉위했다고 나온다. 또 고려사 백문보 열전에도 단군이 개국한지 몇 년째라고 나온다.

이성계 조선에 와서는 서거정 <동국통감>에 무진년에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서력으로 환산할 때 차이가 나지만 어쨌든 단군기원을 얘기한다.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로부터 일제가 떼어 낸 뒤부터는 조선개국 몇 년을 쓰다가 대한제국부터는 고종 등 임금이 등극한 해를 기준으로 연호를 썼다. 그래서 고종은 광무, 순종은 융희가 연호였다. 대일항쟁기에는 삼일혁명시기 3.1독립선언서에 조선건국 몇 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조병현 박사는 남북한 동질성 회복은 단군기원을 사용하는 것에 첫걸음을 띠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단군상을 안치한 국조전을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 북한처럼 단군릉은 못 만들더라도 취지가 같은 단군을 모시는 국조전을 건립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조전은 이미 대한민국 정부수립 초기에 계획되었었다고 밝혔다. 이승만 정권 때 건립하기로 약속했으나 어겼다고 한다. 특히 서기1960년대에는 정부차원에서 단군성상을 세우거나 단군성전 건립을 추진했다고 한다.

또 서기1966년에는 남산에 단군성상을 세운다는 계획도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 단체 등 격렬한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건립 반대측에서는 단군은 신화지 역사가 아니라면서 우상을 만들어 숭배를 한다면 민족 분열을 가져온다고 했다는 것이다.

조 박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이 구심점을 찾고 동질성을 회복하려면 역사에 바탕을 둔 단군을 공동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피력했다. 결국 우리민족 정체성은 단군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를 배제하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교육법에도 홍익인간이념을 밝히고 이를 기준으로 교육을 하자고 하고 있기 때문에 단군을 기피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 법률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허성관 미사협 상임대표가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과 강단식민사학자들의 비학자성 비판하고 있다. 그는 특히 박사학위를 취득해서 교수 노릇하고 있는 인사들이 박사학위 논문에 꼭 필요한 반대되는 선행연구를 언급, 인용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자신들 고리안에서만 '논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주제발표 마지막 발표자로 황순종 역사저술가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갑자스런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에 허성관 미사협(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 상임대표가 발표문을 중심으로 발표에 나섰다. 허 상임대표는 임나일본부설이 왜 나오게 된 것인지 배경을 먼저 밝혔다.

이어 임나일본부설이 왜 허구에 찬 것인지 설명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해서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어 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를 삼켜야 하는데 무슨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고대에 일본이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식민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임나일본부설 근거가 되는 <일본서기> 신공황후조를 해부했다. 당시 야마토 정권이 신라를 침공한다고 하는데 신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당시 신라가 침략당했다면 우리나라 기록에 당연히 나와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그런데 신라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에는 한마디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러한 허구 역사를 일본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일제는 패망했으나 그 밑에서 부역했던 일인 학자들은 오히려 임나일본부설을 더 키웠다고 한다. 쯔에마쯔야스카즈(末松保和)라는 일제학자는 패전 후 서기1949년에 <임나흥망사> 라는 책을 냈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이 책에서 일본제국주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우리 나라를 놓지 않으려고 한다고 주지시켰다.

▲ 이날 학술회의 및 토론회는 시작에 앞서 흑피옥 전시전이 있었다. 중국 내몽골 홍산문화 지역에서 주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수 많은 옥 제품이 돌아다니는데 가짜도 많다고 한다. 오래된 옥 제품이 인기를 끌고 고가에 거래 되면서 위조품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날 전시된 흑피옥은 진짜라는 증명서가 제시, 강조되었다.

이어 눈을 우리나라로 돌려 이 일본 극우파 학자들의 주장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국내 학자들이 있다고 고발했다. 국내 모 대학 학자는 처음 임나일본부설 보다 더 크게 확대해서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래 임나일본부설에 나오는 임나가 경남 김해 일대라고 했다. 그런데 이 학자는 이곳을 넘어 전라도, 충청도까지 임나라고 한다는 것이다. 일본 극우파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이덕일 소장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가 무죄판결로 패소당한 고려대학교 김현구 전 교수도 비판했다. 패소한 뒤에 그가 책을 냈는데 <식민사학의 카르텔>이라고 했다고 어이없어 했다. 이 소장이 김현구씨 책을 보고 김현구씨를 식민사학자라고 비판했는데 오히려 이 소장을 겨냥해서 식민사학자의 카르텔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임나를 일제식민사학자, 쯔에마쯔 견해에 따라 경남을 넘어 전라도, 충청도까지라고 확대 해석했다. 스스로 식민사학자임을 자청한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이를 지적한 이 소장을 염두에 두고 식민사학자라고 비꼬는 책을 냈으니 웃음이 나온다는 것이다. 또 김 씨가 야마토 왜가 아니라 백제가 임나를 정복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도 나와야 한다고 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격려사를 하고 있다. 이 전 원장은 이날 이제 통일시대에 접어들었다며 남과 북이 같은 것은 더 강고하게, 다른 것은 같게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역사학과 관련해서는 초기에 김석형과 리지린이 역사학 기초를 세웠는데 배울점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당히 내실있게 연구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식민사관 청산단계를 전혀 거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통일시대에는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면서 이날 남북한 역사학 동질성 회복 학술모임에서 이런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소되어 차이점은 좁혀지고 동질성은 높아질 것이라고 덕담했다.

그런데 그런기사 한마디도 안 나온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씨는 백제가 임나를 정복했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백제는 야마토 왜의 지배를 받았다는 식으로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야마토 왜가 백제를 통해서 임나를 정복했다는 말이되니 결국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냐며 김씨를 질타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한다고 비꼬았다.

이어 임나가 남부지방 가야가 아니고 사실은 일본 열도에 있었다고 밝힌 여러 학자들을 소개했다. 먼저 고 최재석 전 고려대 교수를 들었다. 일본 고대사 분야 전문가로 불리는 최 전 교수는 일제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밝히고 상세하게 비판한 책을 여러권 냈다. 또 이병선 부산대 교수는 언어학으로 임나위치를 추적했다고 했다.

이어 김운배, 김운길 형제 교수는 국문학,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임나가 일본 구주 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 교수는 홍익대학 사학과 김태식 교수 임나관련 논문을 조목조목 비판했다고 한다.

이어 김석형 등 북한학자 다수도 임나가 일본 나라현 지역으로 본다고 소개했다. 식민사학자들을 제외하고 제대로 연구를 한 학자들은 하나같이 임나가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 열도 어느 지역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낸다는 것이다.

허성관 상임대표는 그러면서 국내강단식민사학자들은 학위논문을 쓸 때 앞서 반대주장을 하는 학자들의 견해를 단 한줄도 인용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특히 최재석 같은 경우 식민사학자들이 논문을 쓸 때 인용할 수밖에 없는 연구를 해놓았는데도 단 한줄도 인용하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박사학위논문을 쓰려면 맨 먼저 관련 선행연구를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논문을 써야하는지 먼저 선행연구를 평가해서 논문을 써야할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반대 주장을 하는 학자들의 선행연구를 단 한줄도 인용하지 않는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저들은 학문연구 방법론 ABCD 중에서 A도 모른다며 학자가 아니라고 분노했다.

마지막으로 남과 북이 평화롭게 살려면 서로 공유하는 것이 많아야 하고 서로 의존성이 높아야 한다고 상기시켰다. 남과 북이 동질성을 갖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쉽고 아무 걱정없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역사라고 잘라 말했다.

▲이날 행사는 우은주 선생이 인도하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행사 끝자락에 문제내기와 상품당첨 뽑기 놀이도 있었다. 이날 출제자에는 조병현 박사 외에 이덕일 소장, 손윤 이사장, 박정학 한배달 이사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등이 참여했다.

이어 남과 북이 역사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시기는 서기1945년 이전 역사라고 보았다. 이 시기 전에는 지금처럼 남과 북이 분단되어 전혀 다른 정치체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방 이전의 역사는 충분히 공유하여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다며 그래서 오늘날 역사가 중요하다는 말로 마쳤다.

이날 학술발표회에서는 문제내기와 뽑기를 통해서 선물을 나눠주는 시간을 가졌다. 이전에 없던 행사라 참석한 시민들이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또 학술발표회가 다소 전문내용을 담고 있어 딱딱한 분위기 일 수밖에 없는데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경직된 분위기를 한번에 풀어버렸다.

서로 문제를 맞추려고 먼저 외치고 손을 드는 등 진풍경이 벌어졌다. 선물도 고가상품이라 경쟁심이 발동해 장내가 더욱 달아 올랐다. 답을 반만 맞추어 못 타고 뒤를 이은 방청객이 나머지를 보태서 맞추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또 문제도 맞추고 뽑기에도 당첨되어 고가 상품 두 개를 타 가는 방청객도 나와 질투어린 비명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새 상품을 출시한 기업에서 많은 협찬을 해와 이번 학술회의가 더욱 풍성했다는 평가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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