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영토 답사기

 

제목 : 조선 온성도와 온성대교| 두만강700리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6-05-16 조회수 : 400

                 

명상 | 조회 78 |추천 0 | 2008.07.20. 23:16
   

2008년 3월 29일 도문 량수진관광


2008년 3월 29일오후 우리는 정암산성을 둘러보고 서둘러 량수진으로 돌아와 온성단교와 온성도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온성단교를 가기전 우선 구멍산을 잠간 들렀다. 구멍산은 일명 자지산이라고도 하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말그대로 흡사하여 보는 사람마다 킥하고 웃고만다.... 구멍산은 중국어로 쿠룽산이라하는데 산아래에 동굴 즉 구멍이 났다하여 그렇게 부른다. 두만강은 도문에서 흘러 이 구멍산아래에서 벼랑을 만나 원형으로 조선땅을 에돌아흐른다. 량수진은 이 산 하나로 도문과 천연적인 장벽을 만들어 부득불 구멍산을 크게 에돌아야만 도착할수가 있다. 지금은 교통이 편리해서 산을 에도는게 큰 문제가 아니였지만 예날에는 이 구멍산북쪽마을사람들과 남쪽마을사람들은 겨울이면 조선땅을 밟고 서로 왕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구멍산아래에 긴 동굴이 하나있는데 옛날에는 수레가 드나들수있는곳이였다고 한다. 지금은 그 동굴어구가 파괴되여 너무 스산하게 보였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려고 했다가 그만두었다...

 구멍산에 이르기전의 자지산전경.

 

 가까이에 와서 쳐다보니 매부리같았다.

 구멍산벼랑에 톱아올라 쳐다본 자지봉. 멋모르고 여기에 올랐다 큰 봉변을 당할뻔했다. 벼랑전체는 화산재로 이루어져 바위가 부실해 떨어지기가 십상이였다. 작은 돌덩이들이 발바닥에서 미끌어 한바트면 두만강에 빠질뻔....

 벼랑주위에 비굴기들이 떼지어 맴돌고 있었다...

 리주임이 주동적으로 사진을 요청... 정말 멋진 풍경이였다. 나도 왜서 기념사진 남기지 않았을가...ㅎㅎㅎ

구멍산아래에는 순라1호라는 국경선순라간판이 씌여져있었다. 아마 여기서부터 훈춘쪽으로 국경선 1호가 되는듯...

 

 끊어진 온성대교.  우리는 구멍산에서 언덕길을 따라 온성도를 지나 온성대교에 이르렀다.

온성대교의 력사:

온성대교는 두만강 하류로 부터 두만강에 놓인 5번째 다리라고 한다. 온성교는 량수진에서 동남쪽으로 2킬로메터쯤 떨어진 두만강에 자리잡고 있다. 온성교는 두만강에 놓인 불운의 다리중의 하나다. 온성대교는 18개의 교각과 2개의 교대로 이루어 졌다. 교각의 경간길이가 25메터, 총길이가 약 500메터,교량너비가 6메터이다. 상부구조는 강철공형보,세멘몰탈로 이루어졌고 교각의 기초는 석탄층에 세워졌다. 1945년8월8일 쏘련이 대일선전포고를 한후 쏘련군은 150만의 병력을 집결, 중쏘, 중몽, 중조 변경3.500킬로메터의 전선에서 4갈래로 진격하였다. 전세가 역전되여 황망히 패퇴하던 일본군은 쏘련군의 기병과 뛰따르는 땅크부대의 진격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8월12일 이른새벽에 온성대교의 5번째 교각에 폭약을 묻고 거대한 공형보를 교각에서 폭파해 버렸다. 출처: 세상을 바라보는 眼

 

 깨끗하게 새것 그대로 남겨진 온성대교. 만들어진지 9년만에 일본군이 철퇴하면서 끊어버려 세계에서 가장 단명한 다리라고 한다.

연변통신자료에 의하면:

끊어진 온성대교를 일명 단교(断桥)라고도 한다.

원명은 하동온성공로교(河东稳城公路桥)로서 훈춘시량수진룡호촌 남쪽 두만강에 위치하여 조선 온성과 사이두고 가로 놓여있다.

1936년, 일제는 강제로 량수린근백성들을 징집하여 온성대교를 건설하고, 이듬해부터 대규모의 일본군이 이 다리를 거쳐 중국에 진입하였다. 이때로부터 이 다리로 일제는 훈춘의 석탄 등 자원들을 조선을 거쳐 끊임없이 일본으로 략탈하여 갔다.

1945년 8월 10일, 쏘련홍군이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중국에 진입하였다. 8월 12일, 급해맞은 일제는 이 다리를 통하여 훈춘, 도문지역의 일본군을 조선경내로 철수하고 쏘련홍군과 중국군민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이 다리를 폭파하였다. 이로부터 온성대교는 단교라는 또하나의 이름을 갖게 되었고, 동시에 일제침략전쟁의 증거로 남아있게 되었다.

현재 조선경내에 위치한 다리 잔해는 거의 대부분 훼손되였고 중국쪽에 약 50m가량 남아있다. 폭파시점인 1945년 8월 12일 이전의 다리는 전체길이 478m, 너비 6.5m, 높이 7m의 철근콘크리트구조로 중압 18t 급의 교각구조물이다.

건설되여 9년만에 운명을 다 한 회색역사의 녹쓸은 온성대교, 오늘도 묵묵히 일제의 침략만행을 견증하고 있다.

강학선 통신원

연변통신 2006-07-09

 온성대교서북쪽으로는 석두하(일명청계하)가 흐르는데 두만강과 석두하사이에 섬하나가 형성되였는데 온성도라고 한다.

온성도는 100헥타르의 크기의 비옥한 토지인데 조선땅에 포함되여있다. 봄이 되면 조선사람들이 줄배를 타고와서 농사를 짓고 가을에는 실어간다고 한다. 연변의 첫 주장인 주덕해가 이 땅때문에 매국역적이라는 루명을 썻었다고 하는데 몇년전에에 여기를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기로 조선과 합의를 보았다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변동이 보이지않는다...

 

 

 비옥한 온성도.

 끊겨진 다리.

 

 온성교동쪽으로 두만강이 흘러 굽이도는 곳에 조선쪽에 흰 기념탑이 하나 보였는데 조선 로동당 제1차대표대회가 열린 곳이라고 한다. 김일성장군이 두만강을 사이두고 두 마을에서 혁명을 시작했던 곳이다.

 끊어진 온성대교에서 바라본 조선의 산야

 기념사진남겨야지...

 다리왼쪽 교두에는 한어로 온성대교라 씌여져있었다.

 오른켠돌에는 소화 12년 5월이라 씌여져있었다.

 다시보는 온성대교

 오른켠버들나무숲이 중조변경이라고 한다.

 사실 개울하나로 이어진 중조변경선.

 개울가까이에 다가서니 조선땅이 지척에 있다.

 청계하

 우리가 돌아설땐 저녁노을도 불타게 타오르고 있었다. 저 멀리 두만강넘어 높은 령이 길게 뻗었고 그 너머는 곧 도문시이다...




목록  
총 방문자수 : 5,690,151 명
오늘 방문자수 : 180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