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비친 월천답

 

제목 : 강원일보 기사입니다.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7-11-16 조회수 : 27

 

[원주]“박권 선생 백두산 영토 수호에 큰 역할”

      




조병현 경일대 연구위원 밝혀
조선시대 사신·병조판서 지내
학계 일각 잘못된 주장에 반박


【원주】조선 후기 원주 출신으로 병조판서를 지낸 박권 선생이 백두산 정계비 건립 시 접반사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일각의 의견은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조병현 경일대학 독도·간도 교육센터 연구위원은 16일 원주문화원에서 열리는 `18세기 조·청 국경분쟁의 실상과 접반사 박권의 정치사상' 학술세미나에 앞서 배포한 자료에서 이같이 밝혔다.

조 위원은 “사료에 의하면 당시 청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확정하고 그 경계를 확인하려고 한 것은 명확하다”며 “박권은 청의 목극동과 백두산에 올라 경계를 확인하고 협상한 결과 백두산 이남의 땅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백두산 정계비 건립 때 직접 참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긴 했지만,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판서를 역임하기도 했다”며 “백두산 정계비 건립 시 직접 참여하지 않아서 접반사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거나 백두산 정계비 설치로 영토를 잃었다는 일반화 된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오히려 조선의 최초 계획보다 북쪽으로 경계표지를 세워 500리의 영토를 더 확보하는 등 접반사로서 확고한 영토 의식을 갖고 사명을 완수한 공무원의 표상”이라고 강조했다.

박권 선생은 조선 후기 숙종 때의 문신으로 한성부 우윤 시절 청나라 사신 목극동의 접반사로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웠으며, 후에 대사헌과 병조판서의 벼슬을 지냈다. 이번 학술 세미나에서는 조 위원을 비롯해 이일걸 한국간도학회장과 이돈수 한국해 연구소장이 `18세기 조·청 국경분쟁의 실상과 조선의 대응'과 `접반사 박권과 목극동을 중심으로' 등을 주제로 발표한다.

오윤석기자

2017-11-16 (목) 10면 - 오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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