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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명기가 만난 조선사람] 중국의 현실을 직시했던 연암 박지원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1-01-05 조회수 : 799
[중앙일보] 입력 2011.01.04 20:28 / 수정 2011.01.05 02:01
산해관(山海關)의 정문인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의 모습. 만주에서 베이징(北京)으로 이어지는 관문이자 요새였다. 명을 숭앙했던 조선의 지식인들 가운데는 18세기 중반에도 산해관을 넘어 청을 공격하는 북벌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상도 아이들은 새우젓을 모르고, 강원도 사람들은 나무 열매를 절여 간장을 대신하고, 평안도 사람들은 감과 귤을 분간하지 못하고, 바닷가 사람들은 생선 내장을 거름으로 쓴다. 어쩌다 이것들이 서울에 오면 한 움큼에 한 닢 값이니 어찌 그리 귀하게 되는 것인가? … 이 지방에서 천한 것이 저 지방에서는 귀하고, 이름은 들었는데 물건을 볼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운반해 올 힘이 없기 때문이다. 수천 리에 불과한 좁은 나라에서 백성의 생활이 이토록 가난한 것은 수레가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수레는 왜 다니지 못하는가? 그것은 선비와 벼슬아치들의 잘못이다.”

 1780년(정조 4) 청에 다녀왔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박지원은 청나라 땅을 오가며 농사용 수레, 소방용 수레, 전쟁용 수레 등 갖가지 수레를 세심히 관찰한다. 그러면서 수레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조선의 현실을 떠올린다. 당시 조선에서는 수레를 사용하자고 하면 ‘우리나라는 지형이 험해서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앵무새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연암은 수레를 사용하면 길은 저절로 뚫리기 마련이라며 치자(治者)들의 각성과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청에 항복한 지 100년이 더 지난 당시까지도 많은 조선 지식인들은 청을 오랑캐라고 얕보았다. 상대를 사람이 아닌 ‘오랑캐’로 여기니 그들의 문물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마음이 생길 리 없다. 박지원은 청을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선비들을 세 등급으로 분류했다. 상등 선비는 ‘청에는 아무 것도 볼 만한 것이 없다. 황제부터 백성들까지 모두 머리를 깎고 변발을 했으니 모두 되놈인 것이다. 되놈은 개·돼지 같은 짐승이니 그들에게 무슨 볼 만한 것이 있겠는가’라고 외친다. 중등 선비는 ‘명이 망한 뒤 중국에서는 노린내가 나고 사용하는 말과 글조차 야만인의 것이 되고 말았다. 십만 대군을 얻을 수 있다면 산해관으로 쳐들어가 중국 천지를 말끔히 씻어내고 싶다’고 호기를 부린다.

 

 하등 선비를 자처했던 연암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치자는 백성과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배워야 한다.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국의 법제를 모조리 배워 우리의 고루하고 거친 풍습부터 바꿔야 한다’. 박지원이 보기에는 청이 오랑캐가 아니었다. 청을 치자고 외치면서도 현실에서는 수레조차 변변히 사용하지 못한 채 낙후돼 있던 조선이야말로 ‘오랑캐’였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교수·한국사

 

출처 :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884234&cloc=rss|news|total_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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