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義(안의) 사람 사는 이야기

 

제목 : 遊頭流錄의 지리 동부능선 산행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09-11-29 조회수 : 1341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발길 따라)
 

 

 

1. 언  제 : 2008.11.16(일), 06:0017:55(11시간 55분)
 

2. 어디를 : 엄천 한남교에서 시작한 지리산 동부능선길
 

3. 거  리 : 22.3㎞(엄천→독바위→새봉 8.5, 새봉→천왕봉 6.0, 천왕봉→백무동 7.8)
 

4. 누구와 : 홀로산행(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을 따라)
 

5. 경  로 : 엄천 한남교(06:00) → 노장동(07:25) → 환희대(07:40) → 함양독바위(노장대, 08:15) → 안락문(08:40) → 송대 삼거리(08:46) → 벽송사삼거리(09:03) → 새봉(태극능선길, 09:55) → 진주독바위(10:25) → 청이당(11:07) → 국골사거리(11:58) → 하봉(13:00) → 헬기장(13:21) → 치밭목 삼거리(13:58)→ 중봉(14:00) → 상봉(천왕봉, 14:40) → 통천문(15:15) → 장터목(15:42) → 망바위(16:15) → 백무동(17:55)
 



 



 

경상대학교 최석기 교수의 ‘선인들의 지리산유람록’ 중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游頭流錄)의 내용은,
 


 

점필재 김종직(1431~1492)선생께서 지금부터 537년 전인 1471년 봄 함양군수로 부임한 후 관내 우뚝 솟아 있는 두류산을 바쁜 집무로 바라만 보다가,
 



 

1472년 8월 보름날 밤에 천왕봉에서 달을 감상하고, 다음날 새벽에 해 돋는 모습을 구경하고 아침에 사방을 두루 관람할 생각으로 8월 14일 조태허, 유극기, 한백원 그리고 중 해공, 법종 등과 함께 두류산 유람을 나선다.
 



 

선생의 두류산 유람길은
 

8월14일에 함양관아를 출발→엄천(嚴川)→화암(花巖)→지장사→환희대→선열암→신열암, 독녀바위를 지나 고열암에서 1박하고,
 



 

15일에 고열암을 출발→구롱(九隴, 아홉고개)→청이당(淸伊堂)→영랑재(하봉)→소년대→해유령(蟹踰嶺)→중봉→마암(馬巖, 중봉샘)→천완봉에 오른 후 성모묘(聖母廟)에서 2박,
 



 

16일, 성모사에서 → 석혈(石穴, 통천문)→향적사에서 3박
 



 

17일, 향적사→통천문→천왕봉→통천문→중산(제석봉)→증봉(甑峯, 시루봉)→세석평원→창불대→영신사에서 4박
 



 

18일, 영신사를 나서서→영신봉→한신계곡→백무동→실택리(實宅里, 실덕)→등구재(오도재)를 넘어 함양관아로 돌아오는 4박 5일간의 유람길이었다.

 
 

성리학의 대가로 영남학파의 종조로 추앙받는 점필재 김종직(1431~1492)선생께서 함양군수로 부임하였을 때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유자광의 학사루에 걸려 있던 시판을 떼어 불태워버림으로서 훗날 무오사화의 불씨가 되었으며,
 



 

유자광이 주도한 무오사화는 선생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제자 김일손이 사초에 기록한 것이 화근이 되었고, 선생께서는 이때에 부관참시를 당하고 문하생들이 참혹한 화를 입었다. 그러나 중종이 즉위하자 신원이 회복되고 영의정에 추증되면서 '문충'으로 시호가 다시 내려졌다고 한다.
 




 


 

함양의 학사루
 




 


 

엄천변의 김종직 선생 공적비 
 



 

지난 1월, 천왕봉에 올라 눈 덮인 중봉을 바라보며, 눈 녹으면 오백 몇십년 전에 점필재 선생께서 오르신 길을 따르는 산행을 꼭 해보리라 결심한바 있었고, 그 결심을 실행하기 위해 시월 열아흐레 달이 이울기 시작하는 늦은 새벽(06:00)에 엄천(嚴川)의 한남교를 건너 노장대골(운암)을 향한다.
 




 


 

 한남마을과 엄천강의 한남교 
 



 

선생께서 엄천을 지나 화암에서 쉬는데 중 법종(法宗)이 뒤따라와서 길을 인도케 하여 지장사에 이르고, 1리쯤 가서 환희대 바위가 있고, 신열암 동북쪽에 높이가 천여척이나 되는 바위를 독녀바위, 여기서 조금 서쪽 고열암에 다다르니 땅거미가 졌다고 했는데,
 



 

화암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노장대(운암)골에 지장사 터가 있고, 함양독바위(노장대)를 독녀바위라 했으니 독바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여명 무렵에 운암의 해동검도 수련원을 지나고, 큰 절집을 짓고 있는 적조암을 지나 콘크리트 포장도로 막다른 곳 개들이 컹컹거리며 짖어대는 민가를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든다.
 



 

선생께서 지장사에 이르니 갈림길이 나오고 여기서부터 말에서 내려 짚신을 신고 산을 올랐다고 했는데, 아마도 지장사 터를 지나온 듯 하다. 수백년 전부터 나 있었을 산길은 낙엽이 덮였지만 그래도 뚜렷이 이어지고 있다.
 



 

07:00에 빨치산 루트의 산죽비트에 도착, 어스름속의 빨치산 마네킹이 섬뜩하지만 배낭 벗고 쉬는데 바로 옆에서 짐승이 산죽을 헤치며 달아난다. 아마도 멧돼지가 인기척에 아침잠 설치고 달아나는가 보다.
 




 


 

어둠속 산죽비트의 빨치산 마네킹
 



 

07:25에 큰 돌배나무가 있는 노장동 옛 집터를 지나고부터는 가파른 길을 올라 07:40에 산등성이의 환희대에 오른다.
 


 


 

아래가 천길이나 되고 금대암, 홍련암, 백련암이 보인다고 했는데, 아래가 그리 높지 않고 앞쪽에는 법화산과 법화사, 견불동이 박무 속에 희미하게 보인다. 
 




 


 

노장동 옛 집터
 




 

환희대 가는길의 바위비트
 


 
 


 

환희대
 




 


 

환희대에서 바라본 법화산(견불동과 법화사가 희미하게 보인다) 
 



 

어제는 날씨가 쾌청하더니 하필이면 오늘 온 산에 박무가 자욱하다니... 선생께서 천왕봉에 올랐을 때에 성모묘에 들어가 술과 과일을 올리고 성모에게 구름과 안개를 개이게 해 달라며 제사를 올렸다고 했는데, 제사 올려 안개 개일 것도 아니고, 또 속인이 도술 부릴 줄도 모르니 오늘 산행은 조망을 즐기지 못하는 아쉬움의 산행이 되겠다.
 



 

간간이 눈이 띄는 표시는 ‘노장대’, ‘독바위’라고 하는데 어느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08:11에 선녀굴 갈림길 이정목을 만난다. 선녀굴은 오른편으로 3㎞를 표시하고 있다. 선녀가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살았을까? 그런데 아쉽게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모스크바 유학 다녀온 지리산의 인텔리 빨치산 이은조가 토벌대에 의해서 사살된 장소라는 것 뿐이다.
 




 


 


 


 

함양독바위라 하기도 하고,
 




 


 

노장대라 하기도 하고....
 




 


 

선녀굴 가는 삼거리
 



 

08:18에 독바위 앞에 오른다. 높이가 모두 천여척 되는 다섯 개의 바위를 독녀바위라 했고 ‘한 부인이 홀로 도를 연마하여 하늘로 날아 올라갔으므로 독녀암라 한다’고 설명하며,
 



 

바위에 오르자면 등과 배가 바위틈에 긁힌 뒤에야 오를 수 있고, 생명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은 오를 수 없다 했는데, 과연 그 높이가 엄청나다. 누군가 바위에 쇠못 박고 로프를 메달아 두었지만 목숨을 내 놓을 수 없어 바위에 오르지 못하고,
 



 

바위틈을 지나 뒤편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금이 굳는다. 선생께서 찾았다는 선열암이나 신열암 고열암터는 어딘지 모르겠고....
 



 

부인이 도를 연마했음직한 자리에 앉아 쉬면서 과일하나 깎아서 요기를 한다. 아침식사도 못하고 집을 나선지라 배가 고파서 주먹밥이라도 챙겨 왔으면 하고 후회를 하지만..... 배낭에는 과일 몇 알, 빵 하나, 막걸리 한 병, 물 한 병이 들어 있으니 하루쯤은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함양 독바위

 


 

 높이가 엄청나다. 
 




 


 

               △ 독바위 오르는 길
 




 


 

쇠못과 로프에 밀려난 사다리
 




 

지리산에는 독바위란 지명이 세 곳이 있는데, 함양독바위, 진주독바위, 하동독바위이다. 그런데 산청에 있는 독바위를 왜 진주독바위라 하는지 모르겠다. 진주사람들이 먼저 이름을 붙였을까? 하긴 칠선계곡의 대륙폭포도 부산 대륙산악회에서 자기들 이름을 붙여 지었다하니....
 



 

안락문을 지나간다. 통락문이라는 표시목을 지나 한사람이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바위틈새를 나오니 安樂門이라 새겨 놨다. 08:45에 송대 2.4㎞, 벽송사 5.6㎞를 표시하고 있는 삼거리길을 지나 산등성이 길을 따라 걷는다.
 

 

통락문 가는 길



 


 

 통락문
 


 


 

지나고 보니 안락문이다.
 




 


 

송대 내려가는 삼거리
 




 

09:03에 아무런 표시도 없는 삼거리길에 도착한다. 오른편은 벽송사 길이리라. 왼편 길을 따라 키 큰 산죽 속을 지나간다. 지도도 지니지 않은 초행길이지만 박무 속에 희미하게나마 먼 산봉우리가 보이니.....
 



 

암벽 중허리를 돌아 09:55 한 봉우리에 올라서는데, 그런데 마루금의 길은 아래로 깊게 떨어진다. 아마도 왕등재 내려가는 태극능선길의 새봉에 도착했나보다. 돌라선 후 왼편길을 따라 멀리 두류봉 능선을 바라보며 걷는다.
 




 


 

돌아 보니 왕산과 필봉산이 희미하다.
 




 


 

벽송사 삼거리(오른편이 벽송사 가는 길)
 




 


 

새봉에서 바라 본 두류봉(?)
 



 

선생께서는 한 언덕을 지나 구롱(九隴, 아홉고개)의 첫 번째 고개와 연달아 서너고개를 지나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는 무릉도원에도 손색이 없는 곳이 있다고 했는데, 그곳이 아무래도 쑥밭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정작 쑥밭재가 어딘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지나온 희미한 길에 비해 동부능선길은 태극종주꾼들이 많이 다닌 듯 잘 나 있다. 그런데 외통길 군데군데를 나뭇가지로 막아 놓았다. 나무토막들로 길 막아 놓은 곳이 중봉의 치밭목 내려가는 삼거리까지 수 없이 많다.
 



 

이 길 가는 사람들 중 나무토막으로 막았다고 돌아설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 걸 뻔히 알 텐데, 국공에서는 왜 쓸데없는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 길 막아 놓은 모습
 




 

수백년 전부터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니던 길을 국공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비지정로란 이름을 붙여 사람들이 못 다니게 하고, 적발될 경우 범죄자로 처벌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한심한 처사로다.
 



 

10:25에 큰 바위아래 도착한다. 진주독바위다. 독바위에는 오르지 않고 길가 선바위 앞에서 지고 온 빵 한조각과 과일, 막걸리로 허기를 달랜 후  11:05에 청이당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이곳이 쑥밭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진주 독바위 앞 선바위
 




 


 

진주독바위
 



 

제법 넓은 공터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으나 겉껍질을 벗긴 물푸레나무에 식수표시가 희미하게 있어 이곳이 선생께서 ‘판자 지붕의 청이당 앞 계곡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는 곳이리라 짐작한다. 청이당은 지리산 산신을 모시던 서낭당이었을까?
 




 

쑥밭재(?), 왼편 아래가 청이당 터
 




 


 

      △ 식수 표시(누군가 물푸레나무  겉껍질만 벗기고 표시해 두었다)  

 

이곳부터 가풀막 길을 나무뿌리를 잡고 영랑재에 오르니 한낮이 지났다고 했는데, 12:00경에 두류봉 능선에 올라선다.
 


 

이곳 또한 아무런 표시가 없지만 국골사거리(영랑재)이겠지? 오르고 넘는 방향은 마무토막으로 막았고 오른편으로는 두류봉, 왼편은 하봉으로 가는 길이다. 영랑재 봉우리(두류봉이 아닐까?) 곁에 푸른 절벽이 만 길이나 되는 소년대가 있다고 했지만 하봉을 향한다.
 



 
 


 

국골사거리(영랑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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