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義(안의) 사람 사는 이야기

 

제목 : 황석산과 거망산 종주산행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09-11-29 조회수 : 1599


정유재란, 애국충절과 지조,절개를 생각하며-------
 




 황석산은

  정상 안부에서 바라본 황석산 


 

백두대간 남덕유에서 동남방향으로 분기한 일맥이 남령, 월봉산(1,279.2m), 큰목재를 지나면서 다시 두 줄기로 분기하는데 왼편으로는 수망령을 거쳐 금원산(1352.5m), 기백산(1330.8m)을 솟구치고 바래기재, 춘전재를 지나 남강 진양호에 그 끝 맥을 담구는 진양기맥이고,

 

오른편 줄기는 은신치를 지나 거망산(1184m), 황석산(1190m)을 거쳐 농월정 앞 남강 상류 화림동 계곡에 그 맥을 끝내는 줄기로서 황석산은 산림청에서 선정한 우리나라 100대명산 중 하나이다.
 

끝자락의 황석산은 범상치 않은 두개의 봉우리가 마치 송곳처럼 뾰쪽하게 솟은 바위산으로 진양기맥 기백산과 사이에는 함양의 자랑인 유명한 용추계곡이 있고,

 

백두대간과의 사이에는 남덕유산 남강 발원지에서 흘러내리는 남강 상류로서 농월정(지금은 불타고 없지만), 동호정 거연정, 군자정 등 우리나라 정자문화의 대표지역이라 할 수 있는 화림동 계곡이다. 
 

황석산성

 

또한 황석산은 安義사람들의 애국충절과 절개․지조를 상징하고 있다. 황석산에는 정유재란 때 안의현감과 관군, 의병은 물론 남여노소 백성들이 비장한 각오로 왜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격전을 벌이다 순국한 황석산성이 있으며,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되자 남아있던 수많은 부녀자들이 왜놈들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며 천길 절벽에 뛰어 내린 바위는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하여 지금도 인근사람들은 이 바위를 피바위라 부른다.

 

나라에서는 황석산성에서 순절한 분들을 위하여 산자락에 황암사라는 祠堂을 짓고 위령제를 재내 오던 중 왜정시대에 사당이 헐리고 추모행사도 중지되었던바, 몇 년 전 지역민들이 정성을 모아 호국의총과 사당을 복원, 위패를 모시고 매년 위령제를 올리며 호국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황석산은 황석산→거망산(4.7㎞)→수망령(7.0㎞)→금원산(2.5㎞)→기백산(4.0㎞) 또는 반대로 기백산→금원산→수망령→거망산→황석산까지 주릉 18.2㎞,  오르고 내리는 길 8.7㎞로 모두 27㎞. 1일 종주산행을 즐기기엔 그 장쾌함이 그만이다. 황석산 들머리는 황암사, 서하 우전마을, 안의 유동마을, 탁현마을이 있으며, 기백산까지 종주산행을 위하여 09:05경 유동마을에서 산을 오른다. 
 
마을 앞 이정표는 정상까지 4.5㎞, 연촌마을을 지나 2.5㎞구간은 비탈면을 따라 조망이 없는 급한 오르막길이며, 광주에서 온 단체산행객을 만나고, 정상 1.9㎞를 표시하는 이정목부터는 능선길로 조망이 트인다. 11:00, 황암사 갈림길 이정목에서 정상은 0.6㎞를 표시하고 있으며, 정상의 바위봉이 웅장하게 올려다 보인다. 
 
 ▽  유동마을 들머리 이정표 
 

11:25, 황석산(1,190m)

 

천천히 두어시간 걸어 황석산성 성문에 들어선 후 로프를 잡고 100여m쯤 바위를 기어올라 11:25에 정상석이 있는 황석산 정상에 오른다. 가스 때문에 멀리 보이는 산들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사방의 조망이 막힘  없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맑은 날은 지리산과 덕유산군들이 한눈에 조망될텐데.... 몇몇 산행객이 정상에 오르고, 산정은 집나온 흑염소들의 놀이터인지 까만 염소 똥과 악취가 심하다. 그래도 한동안 사방을 둘러보며 조망을 즐긴 후 광주에서 온 산행객에게 부탁하여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정상을 내려와서 북봉을 향한다. 바라 본 북봉엔 거북바위가 장관이다. 
 

  올려다 본 황석산 정상 


  황석산 정상석


  정상에서 내려다 본 황석산성(북문)


  유동마을에서 올라 온 산등성이

 

 황석산 북봉과 거망산

 

 정상을 오르는 산행객들

 

거망산 가는 길

 

11:45, 탁현마을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 거망산을 향한다. 거망산까지는 능선 길 4.7㎞, 로프가 메어져 있는 제법 험한 길도 있다. 1시간쯤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걸어서 장자벌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난다.

 

능선길의 조망은 가스로 조금 아쉽다. 더워서 긴 옷 벗어버린 후 반팔과 반바지 입고 가다보니 군데군데 싸리나무와 키작은 잡목들이 팔과 다리를 사정없이 할퀸다. 
 

 뒤 돌아 본 황석산 정상


   북봉의 거북바위


  가까이서 바라 본 거북바위와 뒤의 황석산


 
 북봉에서 바라 본 황석산


 

 탁현마을 갈림길 이정목


   두 봉우리(황석산과 북봉)


 

13:20, 거망샘

 

거망산 직전 안부의 거망샘 이정목 앞에 도착하지만 지고 온 물이 넉넉하여 샘 위치를 확인하지 않고 제법 너른 억새밭을 지나 거망산을 오른다. 오른편 아래 지장골 길은 용추폭포로 내려가는 길이다.

 

용추계곡의 심진동은 황석산 너머 화림동, 기백산 너머 원학동과 함께 예로부터 안의 삼동으로 불리는 절경이다. 함양군에서 세운 이정목은 근래 새로 세운 곳도 있지만 몇몇 이정목은 썩거나 흐릿하게 색이 바랬다. 
 
  거망샘 이점목(지장골 갈림길)  13:25, 거망산(1,184m)
 


  거망산 억새밭


 

용추계곡 건너로 기백산과 마주하는 거망산은 가을철 억새밭이 장관이고, 지리산 천왕봉과 주릉, 남덕유산이 선명하게 조망되는 산이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지고 온 떡과 방울토마토 몇 알로 요기를 한다. 배낭엔 주먹밥도 있지만 수망령 가서 먹기로 하고.... 한동안 쉬고 은신치를 향한다 
 
  거망산 정상석  은신치(은신암)

거망산에서 은신치까지 4.1㎞, 14:45경 오른편 아래 은신암이 있는 은신치에 도착한다. 은신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총애를 받던 무학대사가 한양에 도성 터를 잡아준 후 이곳에 내려와 창건한 암자로 6.25 전란때 붙타고 없어진 후 지금은 작은 함석집으로 지어져 있다.
 

 

  거망산 정상에서 바라 본 금원산과 기백산


  월봉산 너머로 남덕유와 서봉도 희미하게 조망된다.


    날씨가 맑으면 천왕봉과 반야봉도 뚜렷할텐데...




 

무학대사가 정도전과의 권력다툼(?)에 지고 몸을 피하기 위하여 경치 아름다운 심진동 계곡을 올라가다가 매바위가 있는 것을 보고 찾은 꿩이 알을 품고 숨어 있는 듯한 지형의 꿩설에 작은 암자를 짓고 숨어 살다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전설이 있다.

 

산등성이에서 내려다 본 초록빛 짙은 수림 속 집터는 무지한 속인의 눈으로는 꿩이 알을 품었는지 봉황이 알 낳는 지형인지 통 모르겠다. 
 
  은신치 이정목 

16:00, 큰목재 갈림길

 

남덕유산에서 월봉산을 거쳐 큰목재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솟구친 산등성이는 북쪽으로 수망령, 금원산, 기백산의 진양기맥과 남쪽으로 거망산, 황석산으로 이어지는 두 가닥 능선으로 갈라진다. 두 능선 사이에는 비경의 용추계곡.... 
 
 

 큰목재 가기 전 이정목


   큰목재 건너 월봉산이 우람하다.


  금원산


 
 금원산에서 기백산까지


 

수망령

 

16:25에 수망령에 내려선다. 고갯마루 공터엔 자동차 두 대와 유람삼아 나물 캐러 온 듯한 세 사람이 날머리 나무계단에 점심을 먹는 듯 하고....

 

 갈등이 생긴다.
 

 수망령(왼편 거망산, 오른편 금원산 들머리)


 

 수망령 이정목



 


 

늦었지만 지고 온 주먹밥 먹고 금원산 올라 기백산까지 갈까? 그냥 계곡길 따라 내려갈까? 1352m 금원산까지 420여m만 오르면 산등성이 길이나 계곡 신작로 길이나 비슷할 텐데....  결국 편한 길을 택하고 만다.

 

이유인즉 7시간 이상 산행으로 지쳤고, 시간이 늦었으며, 금원산까지 오르막길, 기백산에서 내려오는 길, 저녁에 문상 가는 일로 친구들로부터 몇 통의 전화를 받았고....

남은 물 한 모금 마시고 터덜터덜 신작로를 걸어서 내려온다. 지나가는 차량도 없어 히치도 불가하니 버스 정류장 있는 용추사 앞 까지는 걷는 수밖에.... 
 
 

 용추계곡의 호젓한 신작로


   한참을 걸어 내려오니 승용차가 한대 올라 간다.


 

용추계곡

 

한낮에도 햇빛을 볼 수 없는 울창한 원시림과 맑은 계곡이 흐르는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 이라 하여 '심진동'이라 불리기도 한다.
 

숲 속 오솔길을 걸어서 ‘용추자연휴양림’ 앞 상사평마을 길가 가게집 평상에 앉아 잠시 쉬고 있자니 휴양관 마당과 인근 야영장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군침 돌게 한다.

 

 

 용추계곡 내려오다 보이는 황석산(뾰쪽봉)


 

 용추계곡 끝 지점의 민가(승용차는 물론 굴삭기도 있다)


 

출처 ; http://blog.daum.net/tnddlsekd/11779087


  울울창창 용추계곡(은신암 입구)

 
 

 용추 자영휴양림의 통나무 집도 지나고,
 


 
 

 함박꽃도 보면서,
 

 
 

 알탕이나 하고 갈까?
 


 
 

 산삼농원도 지난다.
 

 

용추사와 용추폭포
 

절 앞에서 들리는 우뢰와 같은 폭포소리를 들으며 용추사에 들린다. 신라 소지왕때 각연대사가 창건한 장수사의 부속 암자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로 해인사의 말사. 장수사와 함께 6.25동란때 소실되었다가 옛터에 복원하였다 한다.
 
 

 용추유양림 앞 사방댐
 


 

 용추자연휴양림
 


 
 

  빈터의 돌탑 3개, 뭔 뜻으로 누가 세웠을까?
 

 
 

용추계곡 깊은 골짜기마다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서 너른 암반위를 흐르다가 절벽에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용호로 승천하는 용이 몸부림치듯 떨어지는 용추폭포, 과히 절경이다. 소의 깊이를 어른들은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간다던가? 폭포아래 들어서니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용추사
 


 

 용추사 앞 용추폭포
 


 

 

장수사 일주문, 용소, 매바위
 

‘덕유산장수사조계문’이란 현판을 달고 장수사 너른 빈터 앞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일주문은 기둥이 싸리나무와 칡(?)이란 말이 있지만.... 일주문이란 기둥이 하나인 문인 줄 알았는데, 설명서를 읽어보니 절 입구 좌우 하나씩의 기둥으로 지붕을 받쳐 세운 문으로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라 한다. 장수사가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주차장 앞 맑은 물에 알탕(?) 하며 땀과 피로를 씻는다.
 


 


 

 장수사 공터 앞에 일주문만 덩그러니 서 있다
 

 

 중국까지 다스리는 큰 인물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조정에서 용의 머리를 치고 웅덩이를 팠다고 한다.
 


 
 

 무학대사가 보고 은신암 터를 찾았다는 매바위
 


 


 

 용추계곡 입구 물레방아 공원(연암 박지원선생께서 처음으로  물레방아를 실용화 한 곳이라 한다) 
 


 


 
 

 심원정의 물레방아 테마공원 입구 나무다리
 


 


 

 심원정의 기백산 군립공원 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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