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풍죽로당

 

제목 : 안의현 여단 신우기(安義縣厲壇神宇記)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0-06-29 조회수 : 1249

귀신과 사람의 사이는 그야말로 미묘한 것인저! 희생과 폐백을 올리고 춤과 풍악으로 그려 내고 향과 냄새를 피워 구하고 재계하고 성대한 예복으로 제사를 받들며, “신이 이곳에도 계시고 저곳에도 계신다.” 하고 “넘실거려 위에 계신 듯도 하고 좌우에 계신 듯도 하니라.” 한다.

이와 같이 한다면 백성의 의혹은 더욱 심해질 뿐이니, 무엇 때문인가?대저 ‘계신 듯하다’고 말하는 것은 모호한 데에다 뜻을 부치고 긴가민가하는 데에서 말을 빌린 것이지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정말 들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백성으로 하여금 희미하고 아득한 가운데서 꼭 믿게 하려 한다면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서직(黍稷)과 자성(粢盛),옥백(玉帛)과 종고(鐘鼓),소애(蕭艾)와 고료(膏膋),보불(黼黻)과 총황(葱璜) 등은 본래 사람들이 일상 쓰는 물건들이다. 이로써 인귀(人鬼)에게 제사하는 것은 실로 그럴 수 있지만 이것으로 천신(天神)과 지기(地祇), 일월과 성신, 풍운(風雲)과 뇌우(雷雨), 산천(山川)과 악독(嶽瀆)의 뭇 신령들에게 올린다 하면 그 제물이 너무 소략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성인께서 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 바 있으니 즉 “재주도 많고 기예도 많아 귀신을 잘 섬긴다.〔多才多藝 能事鬼神〕” 하고 “내가 제사를 지내면 복을 받는다.〔我祭則受福〕” 하였으니, 이는 대개 반드시 이와 같이 한 뒤라야 꼭 이런 이치가 있다는 것을 말함이다.그러므로 그믐밤이 지극히 아득하고 캄캄하나 차츰 날이 새어 밝게 되는 것은 하늘의 성(誠)이요, 두터운 땅이 지극히 단단하고 꽉 막혀 있지만 오래 파면 샘을 얻는 것은 인간의 꾸준한 성(誠)이다.

이로 볼 것 같으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가운데 공경을 다하여 귀신과 사람의 일에 감통하는 것이 너무도 잘 드러나지 않는가. 때문에 이르기를 “사람도 아직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未能事人 焉能事鬼〕”고 했으니, 이 어찌 사람을 섬기는 도리로써 귀신을 섬긴다는 밝은 증험이 아니겠는가.그렇다면 지금 주현(州縣)에서 여러 제사를 집행하는 수령과 유생들이 과연 모두 마음과 뜻을 극진히 하여 재계하고 성대한 예복으로 신을 대하고 있는가?

제단에 올리는 서직, 희생, 술이 과연 모두 향기롭고 풍성하고 조촐하며, 제기, 술잔, 자리, 차일 등속이 과연 비뚤어지거나 흠이 나거나 초라하거나 망가져서 심히 구차스럽지 않도록 하는가? 사직, 산천, 성황(城隍), 마조(馬祖),국상(國殤),족려(族厲),요망(燎望),단선(壇墠)에 깃든 신령들이 과연 모두 흠향하여 제사 음식을 내뱉지 않도록 힘쓰고 있는가? 진실로 그렇지 못한 것이라면, 이런 것으로는 사람에게 올려도 반드시 머뭇거리고 달갑게 여기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귀신에게 있어서랴.

더더구나 복을 구하고 재앙을 막는 일에 있어서랴.우리나라의 제도를 살펴보니 여제(厲祭)중사(中祀)에 들어 있어 일 년에 세 번 제사를 지내게 되는데, 그 지역에 역병이 유행할 경우에는 특별히 나라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삿날 하루 전일에 성황당에 고하는 것이 예이다.지금 임금 16년 임자년(1792)에 경향 각지의 제사 의식들이 경건하게 거행되지 못하고 의식에 쓰는 기물들이 훼손됨을 들어 나라 안에 영을 내려 크게 수리하도록 하였다.

안의현(安義縣)의 여단(厲壇 여제(厲祭)를 지내는 제단)은 현청(縣廳) 동쪽 시내 너머 언덕에 있어 장맛비에 부딪히고 홍수에 패여서 섬돌이 무너지고 내려앉았다. 이에 벽돌을 굽고 돌을 쌓아 제단을 새로이 고치고 담장을 증축하고 네 개의 영성문(欞星門)을 고쳐 세우고 따로 신우(神宇) 두 칸을 지어 신위와 제기들을 옮겨 모셨다.

대저 무당들이 고목이나 큰 바위에 제사를 지낼 때 탈이 생기면 머리를 조아리고 허물을 자복하면서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물며 정직한 신명에 대해서랴! 하물며 엄하고도 중한 나라의 제사 의식에 들어 있는 신에 대해서랴! 내가 성은을 입고 이 고을에 부임하게 되었으니, 이 경내의 일에 있어서는 마땅히 어느 것이고 힘을 다해야 할 터인데, 하물며 위로 조정의 영을 받들고 아래로 우리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고 재앙을 막으려 함에 있어서랴! 이에 특별히 그 일을 기록하고, 아울러 예의 근본을 논하여 수령들의 잠(箴)으로 삼고자 한다.

글의 힘이 쇠라도 구부릴 만하면서도 도끼질하고 자귀질하여 다듬은 자국이 보이지 아니하며, 성조는 골짝 물이 쏟아져 부딪는 듯하면서도 격노하는 소리가 없으니, 이는 바로 조리가 분명한 까닭이다.

 

신이 이르러 오심을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싫어해서 되랴. 지금 이 글을 읽어 보니 성(誠)을 다하면 어느 신이든 이르게 하지 못함이 없음을 알겠다. 군현의 제사 의식이 초라하고 구차하다고 한 대목은 그 표현이 뼈를 찌를 만하다. 

[주C-001]안의현 여단 신우기(安義縣厲壇神宇記) : 같은 내용의 글이 《정유각문집》 권4에 ‘여단기(厲壇記)’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제목 아래에 ‘남을 대신하여 지었다〔代人〕’고 되어 있고 본문 중에 ‘안의(安義)’ 대신에 글자를 비우고 ‘읍명(邑名)’이란 소주(小註)가 붙어 있다. 이로 미루어 이 글은 본래 박제가(朴齊家)가 연암의 부탁으로 대신 지은 글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글자가 다른 구절들이 적지 않고 20여 자가 삭제되고 150여 자가 추가되어 있어, 연암이 여기에 상당히 손질을 가했음을 알 수 있다.

[주D-001]신이 …… 계신다 : 원문은 ‘神之在此歟 在彼歟’인데, 《서집전(書集傳)》 고명(顧命) 주에서 주(周) 나라 성왕(成王)이 서거한 뒤에 창 사이와 서쪽 행랑, 동쪽 행랑뿐 아니라 서쪽 협실(夾室)에도 안석을 배치한 이유로, “장차 선왕의 고명을 전하려는데 신이 이곳에도 계시고 저곳에도 계심을 알기 때문이다.〔將傳先王顧命 知神之在此乎 在彼乎〕”라고 풀이하였다.

[주D-002]넘실거려 …… 하니라 : 《중용장구》 제 16 장에서 귀신에 대해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재계하고 성대한 의복으로 제사를 받들게 하면, 넘실거려 위에 계신 듯도 하고 좌우에 계신 듯도 하니라.〔使天下之人 齋明盛服 以承祭祀 洋洋乎 如在其上 如在其左右〕”라고 하였다.

[주D-003]서직(黍稷)과 자성(粢盛) : 서직과 자성 모두 ‘기장과 피’의 뜻으로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곡식을 가리킨다.

[주D-004]옥백(玉帛)과 종고(鐘鼓) : 옥백은 옥과 비단의 뜻으로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예물이고, 종고는 제사에 연주되는 음악을 가리킨다.

[주D-005]소애(蕭艾)와 고료(膏膋) : 소애는 ‘쑥’이란 뜻으로 제사에 올리는 나물을 가리키며, 고료는 ‘기름’이란 뜻으로 제사에 올리는 고기를 가리킨다.

[주D-006]보불(黼黻)과 총황(葱璜) : 보불은 예복에 수를 놓은 장식이고, 총황은 푸른 패옥이다. 즉 제사 지낼 때의 복식을 가리킨다.

[주D-007]악독(嶽瀆) : 금강산 · 지리산 · 묘향산 · 백두산 · 삼각산의 오악(五嶽)과 낙동강 · 한강 · 대동강 · 용흥강(龍興江)의 사독(四瀆)을 말한다.

[주D-008]재주도 …… 섬긴다 : 무왕(武王)이 병으로 눕게 되자 주공(周公)이 선왕들에게 비는 글에서, “저는 어질고 효성이 있으며, 재주도 많고 기예도 많아 귀신을 잘 섬길 수 있지만 당신들의 장손인 무왕은 저처럼 재주도 없고 기예도 없으니 귀신을 잘 섬기지 못합니다.”라고 하면서 귀신을 잘 섬기는 자신을 대신 죽게 해 달라고 하였다. 《書經 金縢》

[주D-009]내가 …… 받는다 : 《예기》 예기(禮器)에서 공자(孔子)가 옛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 ‘나는 싸움을 하면 이기고 제사를 지내면 복을 받는다.’고 했으니, 이는 아마도 그 사람이 정도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我戰則克 祭則受福 蓋得其道矣〕” 하였다.

[주D-010]귀신과 사람의 일 : 원문은 ‘幽明屈伸之故’인데, 《주역》 계사전 상에 “위로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 지리를 관찰한다. 이런 까닭에 어두움과 밝음의 일을 안다.〔仰以觀於天文 俯以察於地理 是故知幽明之故〕”고 하였고, 계사전 하에 “가는 것은 굽힘이요 오는 것은 폄이니 굽힘과 폄이 서로 감응하여 이로움이 생긴다.〔往者屈也 來者信也 屈信相感而利生焉〕”고 하였다. 어두움과 밝음〔幽明〕, 굽힘과 폄〔屈伸〕은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음과 양, 귀신과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주자학에서는 인간의 생사를 음양 이기(二氣)의 취산(聚散) 즉 굴신(屈伸)으로 설명한다. 기가 흩어지면〔屈〕 귀신이 되고, 모이면〔伸〕 사람이 된다.

[주D-011]사람도 …… 있겠느냐 :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하여 질문을 하자, “사람도 아직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라고 대답하였다. 《論語 先進》

[주D-012]마조(馬祖) : 별자리 이름으로 방성(房星)을 가리킨다. 《주례》 하관(夏官)에, 봄이 되면 마조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마조는 말의 조상이란 뜻을 담고 있다.

[주D-013]국상(國殤) :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을 말한다.

[주D-014]족려(族厲) : 대부(大夫)로서 후사가 끊긴 신령을 말한다.

[주D-015]요망(燎望) : 요제(燎祭)와 망제(望祭)이다. 요제는 나뭇더미 위에 옥백과 희생을 올려놓고 이를 태워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며, 망제는 명산, 대천, 오악 등의 산천에 대해 멀리서 바라보며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말한다.

[주D-016]단선(壇墠) : 제사를 지내는 제단(祭壇)이란 뜻으로, 흙을 모아 높게 만든 것을 단이라 하며, 흙을 제거하여 평평하게 만든 것을 선이라고 한다.

[주D-017]여제(厲祭) : 역질(疫疾)을 퍼뜨리는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이른다.

[주D-018]중사(中祀) : 국가에서 지내는 제사를 경중에 따라 대, 중, 소의 세 등급으로 나눈 가운데서 둘째 등급의 제사를 이른다.

[주D-019]잠(箴) : 한문 문학의 한 형식으로, 반성하도록 훈계하는 내용의 글을 가리킨다. 대개는 운문으로 쓴다.

[주D-020]신이 …… 되랴 : 《시경》 대아(大雅) 억(抑)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연암집 제1권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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