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풍죽로당

 

제목 : 안의현 사직단 신우기(安義縣社稷壇神宇記)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0-06-29 조회수 : 986

사직(社稷)을 집으로 짓지 아니하고 단(壇)으로 짓는 것은 예부터 내려온 제도이므로 군현(郡縣)의 사직은 모두 신주를 이청(吏廳)의 옆에 모셔 두었다가, 제삿날이 다가오면 기일(期日)에 앞서 신주를 받들고 단으로 나아가 거기서 제사를 지낸다. 그런데 신주를 모셔 놓은 곳이 저잣거리에 가깝고, 신주가 내왕하는 사이에 하인들이 함부로 다루며 바람과 이슬을 맞게 되니, 위대한 땅의 신에게 공경을 다하는 도리가 아니었다.전임 안의 현감 김재순(金在淳)이 고을에 부임한 지 4년이 지난 경술년(1790, 정조 14)에 사직단의 왼쪽 동남향에 터를 닦아서 신우(神宇) 두 칸을 짓고, 고을에서 모시고 있는 토지신〔社〕과 곡식신〔稷〕의 위판을 옮겨 모시고 각종 술잔과 제기를 간수하게 했다. 그리고 단의 오른쪽 담장 북쪽에 전사청(典祀廳)과 집사방(執事房)을 세우니 격식이 갖추어지고 행사에 적합하여, 해마다 풍년이 들고 안락하게 되었다.성상(聖上) 16년 임자년(1792) 겨울에 교서(敎書)를 내려 지방 고을에서 제사 의식을 제대로 닦아 거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준절히 책망하고서, 모든 고을에 신단(神壇)과 신우(神宇)에 대한 의칙(儀則)을 반포하였다. 그리하여 산기슭이나 촌락 사이에 건물을 새로 짓고 단청을 칠하려는 고을들이 모두 아전을 보내어 이 고을의 신단과 신우를 본뜨려고 하였다. 이를 통해 김 사또가 신을 섬기고 농사를 중시하는 데에 있어서도 일의 선후를 알았음을 볼 수 있다.지원(趾源)이 이 고을의 원이 되어, 전임 사또가 누락된 제사 의식을 잘 닦아 놓은 것에 힘입어 다행히 파직되어 내쫓김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한 더 할 일이 없다 하여 일상적인 직책에 태만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전과 관노를 손수 감독하여 단을 더욱 잘 꾸미고 담을 증축하였으며 네 개의 영성문(欞星門)을 고쳐 세웠다. 그리고 고을의 젊은이 중에 총명하고 준수한 자를 가려 뽑아 등록하여 집사(執事)로 삼고 단 밖의 큰 나무 아래에 제기를 임시로 늘어놓게 하여 천관(薦祼), 흥부(興俯), 진퇴(進退), 추배(趨拜) 등의 제사 절차를 익히게 하였다. 이윽고 탄식을 하면서 유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릇 예는 제사 의식보다 중한 것이 없고 제사 의식은 사직보다 중한 것이 없다. 해마다 첫 번째 신일(辛日)을 맞으면 우리 성상께서는 반드시 몸소 태사(太社 사직)에 풍년을 기원하였는데, 날씨가 아무리 추울지라도 남에게 대행케 한 적이 없었다. 내가 일찍이 뭇 집사의 뒤를 쫓아 팔음(八音)이 조화롭게 연주되는 것을 구경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제사 하루 전날에 성상께서 희생을 살피고 제기를 씻는 절차를 친히 행하시고, 야고(夜鼓)가 세 번 울리고 뜰에 횃불이 지펴지면 성상께서 면류관과 곤룡포를 입고 홀〔圭〕을 잡고 임종(林鍾)과 태주(太簇)의 제악(祭樂)으로 신주를 맞아 봉안하였는데, 백관들은 함께 참석하여 숨을 죽인 채 엎드려 감히 떠드는 자가 없고 패옥이 부딪치는 소리만 공중에서 들릴 뿐이었다. 이에 임금의 발걸음이 술잔과 제기, 층계와 섬돌 사이를 돌아다니며 오르내리심을 감히 속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온갖 신령들이 가득 내려와 흡족히 흠향하여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흠뻑 들고 돌아가매, 복을 낳고 상서를 잉태하여 지축(地軸)과 곤여(坤輿)가 만물을 더욱 무겁게 짊어지고 두텁게 실을 것이며 후토(后土)와 구룡(句龍)이 몰래 와서 도와주리니, 군왕은 만세를 누리고 온 누리는 풍년을 누리리라.

주격(奏假)의 연주를 마치고 악공이 호배(虎背)를 치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보매 별빛은 반짝이고 이슬은 두루 맺혔으니 함빡 찬 그 모습은 마치 제향에 만족하고 있음을 이처럼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성상께서는 오히려 농사를 짓는 때를 혹 어기거나 농사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할까 염려하시고, 물러나 재전(齋殿)으로 납시어 촛불을 켜고 권농(勸農)하는 윤음(綸音)을 받아쓰게 하여 팔도에 이를 반포해서 관리들을 독려하고 경계하셨으니, 만백성을 위하여 마음을 다함이 이처럼 독실하고 지극하였다.

그런데 각 지방 수령들이 백성을 위한 근심을 함께 분담하라는 성상의 거룩한 뜻을 아무도 본받지 못하고, 왕왕 맡은 고을의 제사에 있어서도 도리어 오랜 습관에 젖어 혹 몸소 제사에 참례하지 않는 일까지 있으니, 이에 영선(靈墠)신주(神廚)는 계단이 무너지고 잡초가 우거지며, 목욕재계와 제사 절차에 있어서도 예법에 맞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성상이 엄한 하교를 내리시게 되어서야 비로소 부끄러워하고 반성하여, 허둥지둥 서둘러 오직 수리하는 일이 정해진 시기보다 늦을까만을 두려워한다. 이는 그저 조정의 명령을 따르는 데 지나지 않을 뿐이요, 정성이 속에 쌓이거나 예를 평소에 익혀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고을 원으로 나온 이래 하달된 윤음을 받들어 읽은 지가 지금 2년이 되었거니와, 일찍이 북향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감격하여 눈물 흘리면서 성상의 위엄이 심히 가까이 있으며 어진 말씀이 사람들에게 깊이 사무치는 것을 탄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 수령된 자로서 어찌 감히 깊이 두려워하고 맡은 바 직책에 삼가하여 성상의 걱정하고 근심하시는 마음을 만분지일이라도 받들어 드러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유생 여러분은 먼 시골구석에서 생장하여 견문이 넓지 못하니 예의(禮儀)에 익숙하지 못한 것은 진실로 형세가 그럴 수밖에 없다. 때문에 비록 때때로 고을의 부름에 응하여 마지못해 제사 의식의 반열에 선다 하더라도, 제사를 거행할 때가 되면 예전부터 내려온 잘못을 그대로 답습하여 대충 형식만 갖추는 데 그쳐 버린다. 이렇게 해 놓고 망녕되이 신명에게 복 받기를 바란다면 그 또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제부터는 백 리 이내에 비바람이 제때에 오지 않고 추위와 더위가 절후에 맞지 않을 것 같으면 ‘태수(太守)가 제사를 정성스레 지내지 않아 그렇다.’고 말하고, 오곡이 익지 않고 논밭이 정비되지 못하면 역시 ‘태수가 농사에 밝지 못해 그렇다.’고들 말하라. 《서경》에 이르기를, ‘서직(黍稷)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명덕(明德)이 향기로운 것이다.’ 하였으니, 감히 이 구절을 들어 고을에서 집사하는 이들에게 외워 주노라.”

 

전아(典雅)하다.

 

상반부는 사실을 서술하고 하반부는 유생들에게 자상하게 타이르는 말로 단숨에 끝까지 내려갔다. 법도와 규칙이 다 갖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너그럽고도 엄격함을 갖추었으니, 질서 정연한 예악(禮樂)의 글월이다.

 

[주D-001]사직(社稷)을 …… 제도이므로 : 《예기》 교특생(郊特牲)에 “사(社)는 토지의 신을 제사하고 음기를 주관한다. …… 천자의 태사(太社)에 반드시 서리 · 이슬 · 비 · 바람을 받게 하는 것은 천지의 기운을 통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망국(亡國)의 사(社)에는 지붕을 덮어 하늘의 양기를 받지 않게 한다.”고 하였다.[주D-002]이청(吏廳) : 아전들이 집무를 보는 청사로, 길청 또는 질청이라고도 한다.[주D-003]저잣거리 : 원문은 ‘闤闠’인데 《하풍죽로당집》, 《운산만첩당집》, 《백척오동각집》 등에는 ‘閭井’으로 되어 있다.[주D-004]전사청(典祀廳)과 집사방(執事房) : 전사청은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건물이고 집사방은 집사들이 머무는 건물로서, 사직과 종묘에는 제사 전용의 전사청과 좌우의 집사방을 두었다.[주D-005]성상(聖上) …… 반포하였다 : 《정조실록》 16년 11월 10일 조에 보인다. 각 도의 사직단 · 성황단 · 여단(厲壇)의 제사 의식을 정비하여 밝히라는 명령을 가장 먼저 수행한 강원 감사에게 가자(加資)하고, 반면 이를 등한시한 전라도 등 7도의 감사들에게 삭직과 감봉의 처벌을 내렸다.[주D-006]영성문(欞星門) : 원래는 영성문(靈星門)으로, 영성(靈星)은 농사를 주관한다는 별인 천전성(天田星)이다. 문의 모양이 가는 살을 가로세로로 좁게 대어 짠 세살창과 흡사하여 영성문(欞星門)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주D-007]천관(薦祼) …… 추배(趨拜) : 천관은 제물을 올리는 것과 강신주를 따르는 것이며, 흥부(興俯)는 제사 의식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과 부복(俯伏)하는 것이며, 진퇴(進退)는 초헌(初獻) 등의 의식을 거행하는 자리에 나아가거나 물러나는 것이며, 추배는 종종걸음으로 제사에 나아가는 것과 절하는 것을 이른 것으로 모두 제사 의식을 거행할 때 행하는 절차이다.[주D-008]팔음(八音)이 …… 것 : 제사 음악이 연주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팔음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의 음계를 빼앗지 않게 하면 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룰 것이다.〔八音克諧 無相奪倫 神人以和〕” 하였다. 팔음은 여덟 가지 악기, 즉 금(金 : 종〈鍾〉), 석(石 : 경〈磬〉), 사(絲 : 현〈絃〉), 죽(竹 : 관〈管〉), 포(匏 : 생〈笙〉), 토(土 : 훈〈壎〉), 혁(革 : 고〈鼓〉), 목(木 : 축어〈柷敔〉)을 가리킨다.[주D-009]야고(夜鼓) : 밤에 시각을 알리는 북이다. 야고가 세 번 울리면 3경(更)이다.[주D-010]임종(林鍾)과 태주(太簇) : 임종은 육률(六律)의 하나이며, 태주는 육려(六呂)의 하나이다.[주D-011]지축(地軸)과 곤여(坤輿) : 모두 대지를 가리킨다. 상고에는 대지에 서로 맞물린 360개의 축(軸)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대지는 큰 수레〔大輿〕에 비유되었다.[주D-012]후토(后土)와 구룡(句龍) : 모두 땅의 신이다. 전설에서, 구룡은 공공(共工)의 아들이며 수토(水土)를 잘 다스려 땅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주D-013]주격(奏假) : 제사에서 당(堂)에 오를 때에 연주하는 음악이다. 《毛詩 商頌 那》[주D-014]호배(虎背) : 타악기인 어(敔)를 말한다. 모양이 엎드린 범의 형상이며, 등에 톱니가 있다. 견(籈)으로 범의 목덜미를 세 번 친 다음 톱니를 세 차례 긁어 곡이 끝남을 알린다.[주D-015]영선(靈墠) : 제사를 지내는 단(壇)을 이른다.[주D-016]신주(神廚) : 신주를 모셔 놓은 곳을 이른다.[주D-017]어진 …… 것 : 원문은 ‘仁言之入人深’인데,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서 “어진 말을 하는 것은 어질다는 명성이 사람들에게 깊이 사무치는 것만 못하다.〔仁言 不如仁聲之入人深也〕”고 한 데에 출처를 둔 표현이다.[주D-018]예의(禮儀) : 원문은 ‘禮儀’인데, 일부 이본들에는 ‘禮意’로 되어 있다. 그러나 ‘禮意’는 예절에 맞추어 경의를 표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어서 문맥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주D-019]서직(黍稷)이 …… 것이다 : 주(周) 나라 성왕(成王)이 군진(君陳)을 동교(東郊)의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지극한 정치의 향기는 천지신명을 감동시킨다. 제상(祭床)에 올린 서직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치는 인간의 밝은 덕이 향기로운 것이다.〔至治馨香 感于神明 黍稷非馨 明德惟馨〕”라고 하였다. 《書經 君陳》

 

연암집 제1권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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