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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895년 독도에 간 김윤삼 노인의 구술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7-05-15 조회수 : 303

 독도제단 <독도로> 20호 기고

1895년 독도에 간 김윤삼 노인의 구술


독도재단 연구협력부장 김수희


조선시대 독도로 도항한 어민들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수토사 파견으로 울릉도 도항을 금지했던 수토정책이 실시된 상황에서 독도로 간 어민들의 어업 활동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에 의거해 ‘어느 누구도 선점한 적이 없는 무주지(無主地)’ 독도를 편입하였다고 주장했다.
일본 연구자들은 당시 ‘(울릉도)초기 무렵 도민의 다수는 농업을 주업으로 하고 어민은 소수에 불과했고 먼 바다로 나가지도 못했다’고 울릉도인들의 독도 인지를 부정하였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울릉도인들은 왜 독도로 갔을까?
1882년 울릉도 개척 명령을 받고 입도한 이규원(李圭遠) 검찰사는 울릉도에 도항한 조선인이 141명이라고 보고했다. 일본인 관리가 조사한 기록에는 300명이라고 했다. 검찰사 이규원에 의하면 도항자들은 대부분 전라도인으로 전체의 82%(115명)를 차지했고 전라도·거문도·초도 출신이 94명이었다.
이들은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미역따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의 울릉도 도항은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기록되었는데 1787년 5월 27일 라페루즈 함대가 “울릉도에서 불과 110㎞ 밖에 안 되는 육지에 사는 조선인 목수들이 식량을 가지고 와서 여름 동안 배를 건조한 뒤 육지에 가져다 파는 것으로 보였다”고 기록하였듯이 매년 이곳으로 건너와 배를 만들고 있었다.
당시 거문도 김해 김씨 족보에는 “1770년(영조47) 거문도에 사는 세력가 김씨가 울릉도에서 돌아오는 도중 풍랑으로 죽었다”고 기록했다.
1962년 3월 20일자 ‘민국일보’에는 ‘천석짜리 뗏목배’를 타고 독도로 갔다고 구술한 노인이 있었다.
그는 1875년 전라남도 거문도 서도리에서 태어난 김윤삼 노인이었다. 그는 천가마니를 실을 만큼 거대한 뗏목을 타고 독도를 왕래했다고 구술했다. 사실 천이라는 숫자는 아주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윤삼 노인은 함경남도 원산에서 명태를 싣고 도착한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았다. 노인은 울릉도에서 독도로 가는 항로, 거리, 도항 목적, 독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구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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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20세) 되던 여름철에 ‘천석짜리’ 무역선 5~6척이 원산을 거쳐 울릉도에 도착하여 그 울창한 나무들을 찍어 뗏목을 지었다. 날이 맑을 때면 동쪽바다 가운데 어렴풋이 섬이 보였다. 나이 많은 뱃사공에게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저것은 돌섬인데(石島 = 獨島의 별칭) 우리 삼도(거문도)에 사는 김치선(그 당시로부터 140년 전-1820년경) 할아버지 때부터 꼭 저 섬에서 많은 가제(강치 - 주)를 잡아간다고 가르쳐주었다. 일행 수십 명은 원산 등지에서 명태 등을 실은 배를 울릉도에 두고 뗏목을 저어 이틀만에 약 2백리 되는‘돌섬’에 도착했다. 섬이 온통 바위로 되어있었다는데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돌섬은 큰 섬 두 개 그리고 작은 섬이 많이 있었는데 큰 섬 사이에 뗏목을 놔두고 열흘 남짓 있으면서 가제도 잡고 미역 전복 등을 바위에서 땄다. 그리고 울릉도에 다시 들어와 원산이나 대마도로 가서 일본 사람들에게 팔았는데 가제를 퍽 좋아했다고 한다. 가제의 살은 먹고 가죽을 가지고 신발 등도 해 신었다고 한다.(「천석짜리 뗏목배로 내왕」, 『민국일보』, 1962년 3월 20일자)

1875年 출생 전라남도 거문도 서도리 출신 김윤삼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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