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 대마도는 우리땅

 

제목 : 1906년 시마네현 시찰단 “울릉·독도는 조선판도”`죽도 또는 울릉도` 시찰보고서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6-10-27 조회수 : 318

 1906년 시마네현 시찰단 “울릉·독도는 조선판도”`죽도 또는 울릉도` 시찰보고서

김두한기자  |  kimd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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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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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06년 독도와 울릉도를 방문한 일본시찰단이 독도가 한국 땅임을 주장한 문건이 발견됐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부산외대 명예교수)은 지난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러일전쟁 직후인 지난 1906년 일본 시마네현 주민 41명이 독도와 울릉도를 시찰한 뒤 작성한 시찰보고서를 인용해 당시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四郞)의 독도 영토편입원 작성 경위를 공개했다.

김 교수가 본지에 보내온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러일 전쟁이 끝난 지난 1906년 (명치 39년) 시마네현장은 오끼도민 40명을 데리고 독도를 처음 시찰했다.  

이들은 당시 3월 22일 시마네현을 출발, 오끼섬을 거처 독도에 27일 도착했다.

하지만 독도시찰 후 파도가 너무 심해서 울릉도에 도착했으며 당시 울릉군청(현 울릉군청)앞에서 같이 간 시찰단 41명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 사진>  

이들은 울릉도를 거쳐 시마네현에 도착했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시찰단 가운데 향토사를 연구하는 소학교 교장인 오쿠하라 후쿠이치(奧原福一)는 귀국 후인 지난 1907년(명치 40년) 시찰보고문 겸 시찰담 `죽도 또는 울릉도`(竹島及鬱陵島)를 출판했다.

시찰담에는 “리앙쿠르트 섬은 자연적으로 구기(舊記)에 따라 죽도가 아닌가? 오인, 죽도는 이미 원록(元祿)년부터 조선판도라고 잘못 인식, 리앙쿠르트섬도 조선판도에 있다고 인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러·일 전쟁 전 독도에서 강치를 잡았던 나카이는 명치 37년 독도에서 너도나도 마구잡이로 강치를 포획해 씨를 말리게 되자 자신이 독점 하기 위해 어업회사 허가를 내기로 하고 리앙쿠르트 섬(독도)은 조선이 가지고 있으니 조선국에 하청을 받기로 결심하고(중략) 농산무성 수산국에 후지다간타로(藤田勘太郞)를 찾아갔다고 시찰담에 기록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번 문건책자를 볼 때 시마네 현의 1905년 2월 22일 편입은 엉터리임이 밝혀졌다” 며 “러일전쟁이 끝나자 한국 영토임을 아는 니카이가 강치를 독점하고자 지난 1906년 독도 편입을 위한 작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울릉/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사진 /김문길한일문화연구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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