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적 100년 자료실

 

제목 : 땅으로 본 한국 현대사 (2/15)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03-04-05 조회수 : 661
소련군의 기막힌 술수 



38선은 미국의 요청을 스탈린이 수용함으로써 설정된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국토의 군사적 분계선이었을 뿐 민

족의 분단선은 아니었다. 그러면 누가 국토의 분단을 민족의 분단으로 전환시켰는가. 386세대의 영웅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소련군은 북한에 진주한 직후 『중앙정부를 수립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

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중앙정부가 없었던 북한에서는 평안남도가 중앙정부를 代行했었음을 알

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착각이었다. 

1945년 8월24일, 평양에 입성한 소련군사령관 치스차코프는 『조선인들이여! 기억하시오! … 이제 모든 것이 

완전히 당신들의 세상』이라 외치며, 미군과는 달리 호호탕탕 해방군을 자처하면서 기세를 올리었다. 그리고 2

일 후인 8월26일, 북조선에서 신망이 가장 높았던 우익측의 曺晩植(조만식)·현준혁과 일본인 평남지사 고가와

를 한자리에 모아 놓고서는 『26일 오후 8시를 기하여 평안남도의 행정권을 조만식을 위원장으로 하는 평남 정

치위원회에 인계한다』(송남헌)고 선언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9월12일자 정치위원회 중앙회의에서 曺晩植은 소련군이 제시한 인민정권 수립과 토지개혁을 반대하면

서 地主制를 전제로 한 3·7제를 선포하여 소련군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자 이에 당황한 소련군사령부 정치지도원 그로차르는 9월14일자로 「인민정부 수립요강」을 발표하였으

니, 그 제1항에서 인민정권을 표방한 다음 제2항에서 「토지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므로 인구수에 비례하

여 재분배해야 한다」고 우익측을 몰아 붙였던 것이다. 그리고서는 9월 8일에 조만식의 수하 현준혁을 평양의 

백주대로에서 쳐죽이고, 평남 인민위원회로 하여금 그로차르의 「수립요강」을 수용하게 하여 각道 로 파급시

켰다. 



그리고 10월10일자로 조만식에 대체시킬 33세의 젊은 金日成을 부랴부랴 소련에서 귀국시켜 14일자 평양 군중

대회에 화려하게 데뷔시키고서는 曺晩植의 조선민주당(11. 3)에 대항하여 김일성을 북조선공산당(12. 17) 서기

로 임명했던 것이다. 결국 소련군이 평양에 입성하자마자 즉각 자치권부터 허용한 것은 조선인을 존경해서가 아

니라 실은 토지개혁으로 인민정권을 창출하기 위한 기막힌 술수였던 것이다. 



월간조선 2000년 8월, 金聖昊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고문의 글 땅으로 본 한국 현대사를 나누어 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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