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 대마도는 우리땅

 

제목 : [박물관과 미술관 기행10] 나가사키 역사문화 박물관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3-12-14 조회수 : 821



대마도 간 조선 신하가 인상을 팍... 무슨 일이지?




13.12.11 10:21l최종 업데이트 13.12.11 10:2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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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통신사 특별전 안내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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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특별전에 가다



한일 역사문화교류차 일본에 간지 나흘째 되는 지난 11월 26일, 우리는 나가사키 역사문화박물관에 갔다.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세 가지다. 하나는 이곳에서 '조선통신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이뤄진 한일간 정치문화교류로 의미가 크다. 다른 하나는 이곳 나가사키에서 우리를 안내해 줄 니이 다카오(仁位孝雄) 선생의 '조선통신사 길을 따라가는 사진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이키도(壹岐島)의 역사를 찾아가는 '이키국 재발견 기획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들 기획전시 외에 상설전시장에서는 일본의 대외무역과 교류를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박물관에 도착 연구단체 리더인 오이시 가츠히사(大石一久) 선생의 안내를 받아 조선통신사 전시실로 간다. 그는 첫 만남의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자신을 '빅 스톤'(Big Stone)이라고 소개한다. 전시장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조선통신사 행렬을 닥종이로 만든 인형이 눈에 띈다. 부산문화재단의 의뢰로 문미순(文美順)씨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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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통신사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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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년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한 것으로, 정사인 조태억(趙泰億)을 중심으로 모두 346개의 인형을 만들었다. 당시 조선통신사 행렬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2100개의 인형을 만들어야 하나, 약 1/6 규모로 축소시켜 재현한 것이다. 이 인형은 당시 조선통신사 행렬을 그린 일본의 그림첩(繪卷)을 토대로 만들었다. 대열의 중심에는 왕의 교서를 실은 가마와 정사가 탄 가마가 있다. 교서 가마는 조선 군관이 메고 있고, 정사 가마는 일본 무사들이 메고 있다.



이번 특별전의 공식 명칭은 '대마번과 조선통신사'다. 그래서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대마도주 소케(宗家) 문서가 다량 전시돼 있다. 소케 문서는 모두 12만 점이나 되며, 이것을 통해 우리는 조선통신사의 역사를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나는 그중 초대 대마번주 소 요시토시(宗義智)부터 11대 번주 소 이사부로(宗猪三郞)에 이르기까지 초상과 문서들을 살펴본다. 초상은 전형적인 일본 무사 타입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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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통신사 정사 김이교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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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1811년 대마도를 방문한 조선통신사 정사 김이교(金履喬) 초상화는 관복을 입고 칼을 찬 모습이다. 눈은 치켜뜨고 입은 꽉 다물었으며, 뭔가 불만에 찬 듯한 표정이다. 조선 측 정사는 일본 측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위엄 있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고, 대마번의 화공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것 같다. 이곳에는 또한 부산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동래부사 이덕성 초상도 전시돼 있다. 이 초상은 국내에서도 봤던 것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한일교류인 만큼 부산에 있던 초량(草梁) 왜관의 모습도 재현돼 있다. 당시 나가사키가 유럽으로 가는 창구였다면, 대마도는 조선으로 가는 창구였던 셈이다. 그러므로 대마도 사람들이 주로 부산에 거주하면서 이들 무역의 중개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에는 대마번주가 입던 의장(衣裝)이 나와 있다. 의복과 삿갓 형태의 모자가 흰색과 빨간색으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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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현된 초량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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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일본은 큰 틀에서 쇄국정책을 폈지만, 나가사키와 대마도를 통해 대외교류의 창을 조금은 열어놨다. 그 결과 조선과 일본은 12회에 걸쳐 조선통신사 교류를 했고, 부산의 왜관을 통해 무역을 했다. 에도시대 일본은 조선과 문화와 경제교류를 꾸준히 해왔다. 나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한일교류에 있어 대마도가 차지하는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고, 대마번에 대해 좀 더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조선통신사 사행으로 일본에 갔던 조선학자들의 사행기를 중심으로 일본을 이해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대마도와 일본에 살던 사람들이 쓴 글을 통해 조선과 조선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기록은 항상 쓰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1719년 조선통신사 제술관으로 일본에 갔던 신유한(申維翰)과 대화를 나눈 대마번주 조선방면 보좌역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가 남긴 책에 대해서도 더 연구해봐야 할 것 같다.       



니이 다카오 선생의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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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이 다카오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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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전시관 옆에서는 니이 다카오(仁位孝雄) 선생의 사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 제목은 '조선통신사의 길'이다. 니이 선생이 서울에서 도쿄까지 조선통신사 길을 따라가면서 자연과 문화유산을 짝은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다. 니이 선생은 일한문화교류연구회 회원으로 이번 나가사키 여행에서 우리를 안내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전시회 주인의 안내를 받아 이번 전시회를 구경하는 셈이다.



사진에는 경복궁·충주·문경새재·경주·부산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조선통신사의 길을 개척한 사명대사 송운의 영정을 찾아 표충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일본 쪽 사진으로는 나고야(名古屋)성·가토오 기요마사(加藤淸正) 동상 등이 보인다. 니이 선생은 전체적으로 빛의 예술가라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좋을 때 찍기도 했지만 음영의 대비가 뚜렷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의 사진에 대해 별로 자랑하지 않는 겸손함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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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이 다카오 선생이 Facebook에 올린 우리 회원들 사진: 나가사키 Glover Garden에서 찍은 것이다.

ⓒ 니이 다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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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가 우리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나 또한 일본말을 거의 하지 못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던 아쉬움이 있다. 조선통신사전에는 오이시 선생이 대동한 한국인이 안내를 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니이 선생이 데리고 나온 한국인은 아직 역사와 문화에 대한 통역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니이 선생은 나가사키 역사문화 탐방에 끝까지 동행하면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나중에 페이스북에서 보니 그는 우리가 일본어를 못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을 표현했다.



나가사키현 이키섬의 고대문화



우리는 이제 나가사키의 고대역사를 알기 위해 '이키국(一支國)의 재발견' 특별전을 살펴본다. 이키국은 서일본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야요이(彌生)시대 취락집단이다. 이곳에서는 토기 71점, 석기 430점, 목기 114점, 골각기 46점, 청동기와 철기 등 금속제품 316점, 관옥제품 53점이 나왔다. 이 유적을 통해 야요이시대 일본의 대외교류사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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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키섬에서 발굴된 인면석(人面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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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토기에서 한반도와의 유사성이 많이 발견된다. 전시된 것 중에 삼한계(三韓系) 와질토기라고 설명이 붙은 것도 있다. 석기 중에는 구멍을 파고 양각을 줘 사람 얼굴 모양을 한 인면석(人面石)이 눈에 띈다. 일본에서 수습된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석기에는 수정과 옥으로 만든 장신구도 있다. 목기는 주로 일상생활에 쓰이던 생활용품이다. 농기구·공구류·악기류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골각기로는 어구와 가락바퀴가 눈에 띈다.



청동기로는 가장 일반적인 것이 청동 거울과 청동검이다. 특별한 것으로는 청동제 화살촉(銅鏃)과 청동제 추(錘)가 있다. 설명을 보니 저울로 사용한 추(權)라고 한다. 철기는 주로 무기와 농기구로 사용됐다. 무기로는 칼·도끼·화살촉·철퇴 등이 보인다. 관옥제품이란 옥을 가공해 만든 장신구가 대부분이다. 옥을 가공해 구멍을 뚫고 그것을 실로 연결해 만들었다. 이를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한 가공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미술과 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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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사키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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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화를 보고 나서 나는 내친 김에 미술공예관으로 간다. 이 중 미술전시실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한화(漢畵)와 유럽의 영향을 받은 남화(南畵) 등 나가사키의 회화 자료가 있다. 그리고 공예전시실에는 도자기·칠기·자개·금속공예·유리공예 등 다양한 제품이 있다.



나는 여기서 도자기·자개·유리공예품을 자세히 살펴본다. 도자기와 자개가 일본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요, 유리공예는 17세기 이후 나가사키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여덟 군데 도요지(陶窯地)에서 생산된 제품이 전시되고 있다. 가마야마·보우가사키·아키노우라·우쯔츠가야·나가요·히라도·하사미·타이슈, 이중 마지막 타이슈요가 부산의 왜관에 공급했던 도자기라고 한다. 이들 도자기의 역사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간 도공들이 일본 도자기의 비조가 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도자기가 사가현의 아리타 도자기, 가고시마의 사쓰마 도자기다. 아리타 도자기는 이삼평(李參平)에 의해 시작됐고, 사쓰마 도자기는 심당길(沈當吉)에 의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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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로 벚꽃과 대나무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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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이곳의 도자기는 일본적이기보다 한국적이다. 여기서 한국적이란 백색과 청색이 기본 톤을 이루고, 색채의 화려함이 덜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여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일본적인 요소도 나타난다. 우선 모양이 다양하다. 그리고 문양에서 일본적인 것이 나타난다. 거기다 도자기를 이용해 과감하게 다른 물건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은 응용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유리제품은 실용적이기보다는 장식적이다. 나가사키에 유리제조법이 전해진 건 1670년경이다. 이것이 18세기에는 오사카를 거쳐 에도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유리를 가지고 만든 물건은 병·장신구·새장·어항·등잔 등 생활용기가 있다. 이곳에 전시된 제품을 보니 모양의 다양성이나 색상 등에서 최고 수준은 아니다. 아마 초창기 작품으로 보인다. 유리공예는 기술축적과 장기간의 연습을 통해 수준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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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개로 만든 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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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기와 자개 제품도 볼만한 것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생활용품이다. 탁자·식탁·옷걸이 등이 눈에 띈다. 검은 칠에 자개를 박고 빛을 냈다. 정말 화려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많이 봐서 그런지 우리 것보다 수준이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그 외 자수 제품도 눈에 띈다. 이들의 경우 겉으로 돌출되게 문양을 넣었다. 호랑이와 용 같은 동물이 보인다. 아마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을 위해 만든 것 같다.



교류와 무역 이야기



나가사키 역사문화박물관에는 대외교류의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들이 많다. 중국과의 교류, 남만으로 통칭되는 동남아시아·포르투갈·네덜란드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산과 유물까지 합치면 4만 점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는 나오면서 이들 중 중요한 것만 대충대충 살펴본다. 한국과 중국과의 교류는 어느 정도 살펴보았으니 서양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 중심으로 관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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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현된 나가사키 부교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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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출현과 남만무역 코너에는 1500년대 천주교와 함께 서양문화가 전해지는 과정을 지도와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서양문화를 알기 위해 덴쇼(天正)시대 일본이 파견한 소년사절단의 모습도 표현해 놓았다. 그들이 10년 동안 공부를 하고 1591년 구텐베르크 인쇄기가 들어오는데, 그것이 천주교 전파와 일본의 개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또 네덜란드와의 교류를 상징하는 섬 데지마(出島)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들을 보고 우리는 1800년대 나가사키 부교쇼(奉行所)를 재현한 공간을 지나 밖으로 나온다. 부교쇼는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던 관리가 근무하던 장소로, 지금으로 말하면 지방청사쯤 된다. 이곳에서는 일반 행정은 물론이고, 사상범, 밀수범, 강력범에 대한 취조와 재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밖으로 나오니 들어갈 때보다 날씨가 훨씬 더 좋아졌다. 나가사키 서쪽 다테야마(立山) 언덕에 햇볕이 쏟아지고 있다. 다음 행선지 글로버 가든에서 바라보는 나가사키 항구 전망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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