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지역 영유권

 

제목 : '간도는 우리땅' 알랑가 모르것네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3-04-19 조회수 : 1283

간도는 한국땅임이 확실하다.


 


2013/04/12 21:58


 



복사 http://blog.naver.com/kim00626/50169316116



 


 



간도를 한국땅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대표적으로 폐쇄적 역사관을 가진 이글루스 역사밸리의 뭇 분들(초록불, 야스페르츠 등)이 있고 네이버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간도는 한국땅이며 억울하게 침탈당한 우리의 고토이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간도가 한국땅이 아니라는 소리는 개나 가져다 줘도 될 X소리다. 




 인터넷에 이러한 지도가 있었다.



  간도의 크기를 터무니없이 줄여 놓은 지도인데 이 지도는 하나로 이 지도만 놓고 보면 간도의 크기가 여태까지 과장되어 알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간도 관련 지도는 비단 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가 있으며 이것은 작은 축이다.



 이 지도에는 서간도와 동간도가 모두 이조의 땅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여러 개가 더 있다



 



 일단 이 정도로 해 두고 숙종 때 이조와 청나라 사이에 국경조약이 맺어진 바 있었다. 청나라 오라총관 목극등 등이 이조와 국경협약을 맺었다. 이 때 접반사 박권은 숙종에게 이러한 글을 올렸다.



 “총관(摠管)이 백산(白山) 산마루에 올라 살펴보았더니, 압록강의 근원이 과연 산 허리의 남변(南邊)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미 경계(境界)로 삼았으며, 토문강의 근원은 백두산 동변(東邊)의 가장 낮은 곳에 한 갈래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렀습니다. 총관이 이것을 가리켜 두만강(豆滿江)의 근원이라 하고 말하기를, ‘이 물이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서 나뉘어 두 강(江)이 되었으니 분수령(分水嶺)으로 일컫는 것이 좋겠다.’ 하고, 고개 위에 비(碑)를 세우고자 하며 말하기를, ‘경계를 정하고 비석을 세움이 황상(皇上)의 뜻이다. 도신(道臣)과 빈신(貧臣)도 또한 마땅히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겨야 한다.’고 하기에, 신 등은 이미 함께 가서 간심(看審)하지 못하고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김은 일이 성실(誠實)하지 못하다.’는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혹자는 이를 두만강=토문강의 사료로 쓰나, 이것은 청 측의 생각일 뿐 진실은 나와 있지 않다. 이 사건의 진상은 고종 때 본격적으로 드러나는데 그 때를 살펴보자. 대한제국의 내신 김규홍의 상서이다.



 “북간도(北間島)는 바로 우리나라와 청(淸) 나라의 경계 지대인데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비어 있었습니다. 수십 년 전부터 북쪽 변경의 연변의 각 고을 백성들로서 그 지역에 이주하여 경작하여 지어먹고 살고 있는 사람이 이제는 수만 호에 십 여만 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청인(淸人)들의 침어(侵漁)를 혹심하게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에 신의 부(部)에서 시찰관(視察官) 이범윤(李範允)을 파견하여 황제(皇帝)의 교화를 선포하고 호구를 조사하게 하였습니다.



이번에 해당 시찰관(視察官) 이범윤의 보고를 접하니, ‘우리 백성들에 대한 청인들의 학대가 낱낱이 진달하기 어려우니, 특별히 굽어 살펴 즉시 외부(外部)에 이조(移照)하여 청나라 공사와 담판을 해서 청나라 관원들의 학대를 막고, 또한 관청을 세우고 군사를 두어 많은 백성을 위로하여 교화에 감화되어 생을 즐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우선 호적(戶籍)을 만들어 수보(修報)한 것이 1만 3,000여 호(戶)입니다.


이 사보(査報)에 의하면, 우리나라 백성들이 이 땅에서 살아 온 것은 이미 수십 년이나 되는 오랜 세월인데 아직 관청을 설치하여 보호하지 못하였으니 허다한 백성들이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한결같이 청나라 관원들의 학대에 내맡기니 먼 곳을 편안하게 하는 도리에 있어서 소홀함을 면치 못합니다. 우선 외부(外部)에서 청나라 공사와 상판(商辦)한 후에 해당 지방 부근의 관원(官員)에게 공문을 보내어 마구 재물을 수탈하거나 법에 어긋나게 학대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나라의 경계에 대해 논하는데 이르러서는, 전에 분수령(分水嶺) 정계비 아래 토문강(土門江) 이남의 구역은 물론 우리나라 경계로 확정되었으니 결수에 따라 세를 정해야 할 것인데, 수백 년 동안 비어 두었던 땅에 갑자기 온당하게 작정하는 것은 매우 크게 벌이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선 보호할 관리를 특별히 두고 또한 해당 간도 백성들의 청원대로 시찰관(視察官) 이범윤을 그대로 관리로 특별히 차임하여 해당 간도에 주재시켜 전적으로 사무를 관장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하여 조정에서 간도 백성들을 보살펴 주는 뜻을 보여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밑줄 친 곳에 주목하라. 우선 이조에서는 백두산정계비 이래 토문강 이남이 자국 지경으로 확정되었다고 보았다. 이 때의 토문강은 응당 송화강이다. 게다가 “자국의 땅이었으나 비워 둔”땅이 바로 간도라고 하였으니, 공도(空島) 정책을 편 울릉도와 다를 바 없다. 이조가 숙종 이래 토문강(송화강) 유역 땅에 별로 신경쓰지 않은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이조 백성들이 수십 년 전, 즉 숙종 때부터 간도로 이주했다는 것 또한 주목된다. 이 때부터 이조에서는 청의 착오로 인해 간도가 자국 땅이 된 것으로 인식하고 백성들이 만주로 들어가 살게 하는 것을 윤허하였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간혹가다 이조 실학자들의 백두산정계비, 토문강=두만강 인식을 근거로 반론하는 사람들이 있다(<연려실기술>, <성호사설> 외 다수). 그런데 이것들은 볼 가치도 없다. 이들이 반론을 펼친 이유는 이것, 즉 백두산정계비가 이조에 치욕적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청나라는 봉금지역을 자국 땅으로 하려다가 제 꾀에 낚였으나 실학자들은 일단 저자세를 이유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실제로 이들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실학자들은 백두산정계비를 부정하고, 따로따로의 주장을 펼쳤는데 홍양호는 송화강이 조-청 경계가 되어야 한다고 했고, 이익은 선춘령비, 정약용은 두만강 바로 북쪽을 흐르는 분계(分界)강이 경계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실학자들이 백두산정계비를 제외하고도 당시 이조의 영토가 두만강 이북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는 근거자료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역으로 반론할 수 있다.


 


대한제국 때에야 이조는 간도를 실효지배할 수 있었는데, 이범윤을 파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미 숙종 때부터 간도는 이조 땅이었지만 비워 두었을 뿐이다. 비워 두어서 적국의 땅이 되었다면, 울릉도도 일본 땅인가?


 


그렇다면 대한제국령 간도는 확실히 우리 땅이었으며 되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1909년 간도협약은 당사자인 대한제국의 동의가 없는 등의 불법 조약이고 1945년 광복 이후 해지되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1962년 김일성의 통치 하에 있던 김씨 왕국은 중국과 협약을 맺어 두만강을 경계로 확정했다. 물론, 대한민국과는 하등 관계없는 사안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간도 운운이 없는 것으로 시비거는 무지한 자들은 또 있다. 그런데 이 헌법에서의 한반도는 단순히 압록강-두만강지대 남쪽의 땅이 아니다. 당시 제헌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지금은 우리가 실효적으로 간도를 지배하지 못하지만 일단 헌법에 우리 국토로 명시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람에 이 한반도라는 용어에는 간도가 가해지게 되었다. 즉 헌법으로 보아도 간도는 한국땅이다.


 


또한 간도가 설령 이조 땅이 아니라 쳐도 중국 땅도 아니다. 청은 중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만주족이 만주 영유권을 갖고 한민족과 다퉜는데 중국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만주를 다스리는가.


 


여하튼 여러 조건상 간도는 한국 땅이며, 반크 등을 적극 지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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