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지역 영유권

 

제목 : 도문시 두만강 하류그 첫마을을 찾아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2-12-13 조회수 : 741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3일 15시30분    조회:30





두만강 하류그 첫마을을 찾아



 







유난히도 맵짠 강추위가 터진 날 도문시 량수진 경영촌으로 떠났다. 두만강을 사이두고 조선반도 최북단의 마을인 함경북도 온성군 풍서리와 이마를 맞댄 경영촌, 강바람이 매섭게 불어치고 있었다. 두만강은 여기를 경계로 하류에 속한다. 두만강은 마을 동쪽에 버티고 선 굴륭산에 부딛쳐 남쪽으로 완만한 작은 굽이를 돌아 계속 동으로 흐른다.





추위때문인지 마을에는 가끔씩 뜰에서 언뜰거리는 사람들이 보일뿐 인기척이 드물다. 경영촌은 두개의 자연툰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도문시 동쪽으로 13킬로메터 떨어져있는 이곳은 도문과 량수진사이 첫번째 마을이다.





촌주임 왕옥문과 촌민 배경숙씨가 촌민위원회 사무실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조선말로 자기 소개를 하는데 왕씨라고 했다. 알고보니 한족이였다.





“6살때부터 조선어를 배웠어요, 예전엔 조선글도 좀 썼습니다.”





이곳에서 나서 자란 촌주임 은연중 자랑을 내비친다.





소개에 의하면 1980년대 경영촌에는 약 200호가 살고있었는데 그중 한족은 10호정도밖에 안되였다. 이제는 외지에서 한족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어와 떠나간 조선족의 자리를 채우면서 270여호되는 마을에 조선족이 80%가 되나마나하단다.





일찍 광서 15년(1889년) 이곳은 나루터가 생기면서 선구라고 불렸다.





“제가 어렸을 때 이곳은 공동산이라고 했습지요.”





올해 73세에 나는 배경숙씨의 기억에 의하면 어렸을 적 이곳은 굴륭산의 이름을 따서 공동산(孔洞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오랜 세월 이 곳을 지키고 선 굴륭산에는 얽히고 섥힌 전설도 많다. 누르하치가 두만강에서 한 녀인이 이고 가는 물동이를 활로 쏘아서 구멍을 내자 리성계가 제꺽 활을 쏘아서 물동이 구멍을 막았다는 전설도 있는 굴륭산이다.





국국제방송국 김호림기자가 쓴 “까울령의 저쪽에 고려마을이 있었다”에 의하면 1920년무렵 경영촌은 “용배미”라고 불린적도 있다. 굴륭산에 뱀이 유난히 많았고 룡과 같은 큰 구렝이도 있었을터이다. 그러다가 1949년에 와서 상서롭고 번영한다는 의미의 경영촌(庆荣村)으로 고쳐불렀다.





 





비파골의 총소리





 





유명한 청산리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1920년의 봉오동전투, 우리 민족의 항쟁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이 전투가 바로 경영촌일대에서 벌어졌었다. 그때 일본군은 함경도 온성군 풍서리에서 지원부대를 파견했다고 한다. 일본군 지원부대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 경영촌을 지나 봉오골로 향했다. 특히 경영촌 비파골에서 있은 전투는 그야말로 지혜로운 승전이였다.





1920년 6월 7일 땅거미질 무렵, 봉오골에서 참패를 당한 일본군을 증원하기 위해 조선 온성군 풍서리에서 건너온 일본군지원부대는 서로 상대방을 홍범도부대로 착각하고 치렬한 싸움을 벌렸는데 숱한 사상자를 내였다.





당시 전투를 지휘했던 홍범도장군은 일본군 증원부대가 개미떼처럼 몰려오는것을 보고 항일전사들을 경영촌 비파골에 매복시켰다가 놈들이 사격권안에 들었을 때 약간의 사격을 퍼붓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떴었다. 결국은 홍범도장군의 지략에 걸려들어 일본은 큰 참패를 보았다.





봉오동전투는 계획적인 매복전을 진행하여 일본침략군을 참패시킨 항일군의 첫 전투였고 첫 승리였으며 반일무장항쟁의 첫 발단을 열어놓았다.





 





오늘의 변화





 





70년대초부터 촌부련회 주임사업을 해온 배경숙씨는 마을의 변화를 두고 그야말로 예전에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생활이라고 감개가 무량하다.





“옛날에는 꼬불꼬불하고 가파른 흙길이여서 차를 타도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그런 차도 없어서 차를 타기란 하늘의 별따기였지요. 녀성들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이고 가파로운 고개길을 얼마나 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경영촌 할머니들의 등은 그때 휘여졌고 적지 않은 잔병도 그때에 얻은것입니다.”





랬던 마을길이 지금은 포장도로가 95%이고 도문-훈춘구간 철도, 장춘-훈춘 고속도로까지 통한다. 수도물사용량 100%, 전화와 유선TV보급률도 100%이며 적령기아동 입학률도 100%이다. 마을에는 유표하게 눈에 띄이는 가로등이 있다. 높다라니 솟은 15개의 태양에너지가로등은 약 15만원을 투자해 세운것으로 촌민들의 마을길을 환히 비춰주는 등대다. 배경숙할머니는 가로등덕분에 밤이 돼도 다니는데 불편이 없다면서 촌주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가쯘한 하얀 철제울타리가 유난히 산뜻한 마을의 거리, 언제봐도 깨끗한 경영촌을 두고 손님들은 전문위생대가 있는건 아닌지 착각한다. 이는 모두 경영촌 로인협회의 덕분이다. 몇년래 마을 구석구석의 위생을 책임지고 알뜰하게 청결을 유지해나가는 등 촌지도간부들과 손잡고 활약한 덕에 경영촌은 성급록화도달촌으로 새농촌건설 우수 표병촌으로 선정됐다. 배경숙씨는 로인협회는 마을청결외에도 매달 2차 학습일을 가지고 신문잡지를 읽거나 노래시합, 문구시합 등 문체활동을 조직한다고 자랑스레 소개했다.





마을 앞을 유유히 흘러지나는 두만강, 그 젖줄기에 매달려 세세대대 여기에 뿌리박고 살아온 경영촌 사람들, 세월이 바뀌고 울타리가 바뀌는 사이 오직 두만강만이 모든것을 품고 그 자리를 시름없이 흐른다.



연변일보 리련화기자





 





출처 : http://www.zoglo.net/board/read/m_wenhua/140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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