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 녹둔도 영유권

 

제목 : 고려인 3세 나타샤의 '코리안 드림'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09-06-16 조회수 : 830
 조선일보 원문 기사전송 2009-06-16 03:32


"7월에 석사논문이 통과되면 고향인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강의할 계획입니다. 고향을 떠난 지 꼭 10년 만에 '교수'로 돌아가게 됐네요."

지난 11일 연세대 중앙도서관 앞에서 만난 나타샤 리(여·28·연세대 국어국문학 석사과정)씨는 들떠 있었다. 그는 고려인 3세다. 카자흐스탄 남동쪽 타라스주(州)의 시골 마을 메르케에서 태어났다. 그는 "우리 반에 고려인 아이는 단 둘뿐이었다"며 "동네 애들한테 '개고기를 먹는 누런 인간'이라고 놀림받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18세 때 무작정 고향을 떠났다. 가난 때문에 대학 갈 형편이 안 되자, 학비가 싼 이웃나라 키르기스스탄으로 떠난 것이다.

리씨는 5년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어렵게 비슈케크 대학 한국어 과정을 마쳤다. 5살 때 한국을 떠나 우여곡절 끝에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할머니 나제스타 박(2000년 사망)씨는 경제 성장을 이룬 모국을 자랑스러워 했고, 손녀가 한국어를 전공하는 것을 기뻐했다.


리씨는 2004년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세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2007년 1월 논문자격시험을 앞두고 고비가 찾아왔다.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두 다리가 퉁퉁 부어 올라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된 것이다. 그녀는 결국 2007년 6월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갔다. 이미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은 끊긴 상태였다.

리씨는 건강을 추스른 다음 2008년 7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석사과정을 어떻게든 끝내고 싶어서, 시청 인턴·관광 가이드·외국인 노동자 상담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고 했다.

리씨의 석사 논문 주제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이 쓰는 한국어가 어떻게 변해왔는가 하는 것이다. 논문이 최종 통과되면, 오는 7월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 알마티 외국어대에서 한국어 교수로 일할 계획이다. 리씨는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한국어를 못하는 고려인 3~4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저는 대학에서 난생처음 '가나다'를 배웠어요. 제가 그랬듯, 대부분의 고려인이 한국어를 모릅니다. 고향 사람들에게 우리말과 역사를 꼭 알리고 싶어요. 우리가 왜 중앙아시아에 왔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할머니가 말하던 '뿌리'가 뭔지 알 것 같아요."




목록  
총 방문자수 : 5,728,914 명
오늘 방문자수 : 667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