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지역 영유권

 

제목 : 소설 북간도에 나타난 간도영유권 문제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2-07-22 조회수 : 963


안수길 작 북간도



 



이해와 감상







1959년부터 1967년까지 <사상계>에 연재된 5부작의 장편 대하(大河)소설. 1870년 조선 말기부터 1945년 광복까지, 만주 북간도로 이주했던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그린 작품으로, 4대에 걸친 북간도 이주민의 가족사를 통해 조선 농민의 수난과 끈질긴 생명력을 그리고 있다.



어느 개인의 운명을 다루었다기보다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다룬 서사시적(敍事詩的) 성격을 지니고 있다. 1870년경부터 1945년 8·15 광복까지 이한복 일가 4대가 겪는 수난과 민족 자주권 쟁취를 위한 그들의 눈물겨운 사연을 그린 대하 소설이다.



19세기 후반부터 광복될 때까지 우리의 역사를 배경으로, 간도를 개척하고 삶의 근거지를 마련했던 이주민들이 자신들을 보호해 줄 정부를 가지지 못한 탓에 망국인으로서의 겪어야 했던 통한이 처절하게 서술된다. 농토를 두고 청나라 사람들과 계속 갈등을 겪어야 했고, 일본의 세력이 간도까지 미치면서 다시 새롭게 일본과의 갈등과 충돌을 겪어야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민족의 얼'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고심 참담하는 모습이 리얼하게 전개된다. 시대적인 특수성과 백두산 정계비가 있는 간도라는 지역적 특수성, 그리고 민족사의 문제가 망국인의 문제와 결부되어 제기되고 있다.



이 소설에는 역사의 격변기에 대응하는 우리 민족의 세 가지 인물 유형이 제시되어 있다. 이한복·장치덕·최칠성, 이 세 사람은 변경 지방에서 살다가 간도에 건너가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로 만든다. 그들은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전래(傳來)의 이야기를 믿고 일을 착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청나라 정부는 그 땅이 자기네 땅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귀화할 것을 종용한다. 그렇지 않으면 토지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고 청나라 법률에 따르지 않는 한 추방하겠다고 압력을 가한다. 이때 머리 모양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이주민의 전통적 가치관으로 볼 때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삶 자체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청나라에서 변발 흑복( 髮黑服)을 강요했을 때 최칠성은 이에 응했고, 장치덕은 머리만 깎아 버렸으나 이한복은 이에 철저히 항거한다. 최칠성은 배신형, 장치덕은 적응형, 이한복은 저항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인물의 가세나 태도는 그의 후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들의 행동 양식에서 우리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온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다.

 



bitimg69.gif줄거리







월강(越江)이 금지되어 있는 두만강 건너편 비옥한 토지를 개간하여 이한복은 죽음을 무릅쓰고 북간도에서 농사를 짓는다. 어느 날 밤, 몰래 감자를 가져온 그는 아들 장손(2대) 때문에 관가에 잡혀가서 신관 사또에게 당당히 북간도의 현실을 말하다가 곤장 10대를 맞고 풀려난다.



한편, 사또는 이한복을 다시 불러 함께 백두산 정계비를 확인하기에 이르고, 이후로 정부의 협조로 북간도의 이주가 시작된다. 이런 사실을 안 청국에서는 조선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 그러나 이한복을 중심으로 한 비봉촌 사람들은 끝까지 항거한다.



어느 날, 창윤(3대)이 청국인(淸國人) 지주의 밭에서 감자를 캐다가 잡혀 머리를 깎인 채 청국인의 모습을 하고 돌아온다. 이한복은 손자의 억지 변발( 髮)을 가위로 자르다가 분함에 쓰러져 죽고 만다. 비봉촌에서 차츰 청국인 지주 동복산의 주구(走狗)로 변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결국에는 그의 송덕비를 세우기에 이른다. 그날 밤 송덕비 비각이 불타고, 창윤은 용정으로 도망가서 사포대(私砲隊)데 지원한다. 얼마 후,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살았으나, 자식 정수(4대)의 교육과 지주의 잦은 압력으로 용정으로 이사한다. 정수는 신명(新明)학교에 다니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창윤은 기와 굽는 일이 잘 되어 가는데 1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정수는 자신에게 항일 의식을 길러주던 교사 주인태와 같이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고 만세를 부르짖는다. 김좌진 장군 휘하에 있는 정수는 일본군과 교전(交戰)도 하였으나 주위의 설득과 애인 영애의 권유로 자수, 형(刑)을 살고 나온다. 옥에서 나온 정수는 우여곡절 끝에 직장을 가지나 다시 잡혀 옥에 갇힌다. 1945년 8월 15일, 정수는 영애의 마중을 받으면서 감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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