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지역 영유권

 

제목 : 서양의 시선으로 본 우리나라 ②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2-05-08 조회수 : 869


 


























대륙의 관문 간도



 



 



[문화저널21 - 혜정박물관 공동기획] 서양의 시선으로 본 우리나라 ②




 
















▲ 파리외방선교회의 「우리나라 교구도」 (1924) 이 지도는 프랑스의 외방선교회에서 발행한 지도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우리나라 교구영역을 표시하였다. 1831년 교황이 우리나라(조선) 교구의 설립을 허락한 후, 세력이 커지자 1911년에는 서울과 대구교구로 분리하였다. 이후 1920년에는 서울교구에서 함경도와 북간도 지방을 분리하여 원산교구를 설립하였다. 이 지도에는 북간도가 원산교구 소속으로 그려졌다.






[문화저널21·이슈포커스·이코노미컬쳐] 간도는 지리적으로 서간도(압록강 지역)와 동·북간도(두만강 지역)로 구분한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는 옌볜(延邊)자치주를 중심지역으로 자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간도 지역은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다. 그러나 중국에서 청나라가 건국되자 이곳에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되었다. 우리나라는 1712년 청나라에서 파견한 목극동과 협의하여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정계비에는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은 “서쪽으로 압록강과 동쪽으로 토문강 이북과 개간지에 조선인의 거주를 승인한다”라 하였다.



정계비를 세운 이후 국경선 회담은 두 차례(1885, 1887년)에 걸쳐 이뤄졌지만 명확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이에 조선에서는 간도 관리사를 파견해 우리 민족을 보호했다. 일본은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1905년)을 계기로 간도 지역에 통감부 파출소를 설립(1907년)했다. 이후 일본은 러·일전쟁으로 러시아의 이권을 이어받아 간도 지역에 대한 침략을 더욱 노골화하였다. 1909년 7개의 '간도에 관한 청․일협약(간도협약)'을 맺어 간도 지역의 영토권과 4대 이권을 청나라에 넘겨줬다. 당시 간도에는 9만 여명의 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는 간도가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가 계승되고 있었던 지역임을 말해준다.



위의 사실에서 볼 때, 간도 지역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이 함께 얽혀 있는 곳이다. 우리는 우선 국내외의 문헌사료와 자료를 발굴하고 이를 연구할 수 있는 전문가의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무엇보다 서양에서 제작된 고지도를 통한 당시의 국경선 문제를 연구하는 학술 세미나와 이를 바탕으로 한 고지도 전시회를 개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영토의 역사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과 국민적 의식을 고취하고 국외 공관과 관련 기관을 통한 교육적 홍보가 필요하다. 또한, 다가올 통일시대를 대비한 남북한 및 동북아 국가 간의 공조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국가 위상이 강화되고 주변 국가에 대한 우리 역사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예전에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영국이 홍콩에 대한 식민통치 기간을 연장하려 하자 영국과 직접 담판하면서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청나라가 아니다. 홍콩은 불평등한 조약으로 점령됐다. 따라서 불평등한 조약은 당연히 무효'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의 말대로라면 우리의 국권이 박탈되고 체결됐던 간도협약은 당연히 무효다.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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