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지역 영유권

 

제목 : 20세기초 간도 조선인은 40-50대 농민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2-05-02 조회수 : 672


 




임학성 교수 '대한제국 간도 호적' 분석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40-50대 농민이 아내와 1, 2명의 미혼 자식과 함께 세 칸이 안 되는 초가집에서 살았다."



20세기 초 간도 지역에 산 조선인 가정의 대략적인 모습이다.



임학성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교수는 최근 대한제국 시절 작성된 간도 지역 호적인 '평안북도초산강북(楚山江北)호적' 6책을 분석한 연구 논문 '20세기 초 서간도(西間島) 거주 조선인의 생활 양태'를 발표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서간도 거주 조선인 호주(戶主)의 연령 분포는 40대 후반(45-49세)이 19.2%로 가장 많고 50대 전반(50-54세) 16.4%, 40대 전반 14.7%로, 50대 후반 10.3% 순이었다. 40-50대 호주 비율이 60%에 달한 셈이다.



 



 



 


 



호주 직업은 대부분(97.2%) 농업이다.



임 교수는 6일 "조선인들이 간도로 건너간 주된 이유는 새로운 농토를 개간하고 생계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면서 "간도 지역에 논농사를 처음 전파한 것도 조선인들"이라고 말했다.



가족 유형은 2인 가족 39.2%, 3인 가족 28.8%, 4인 가족 19.2% 등의 순으로 '부부와 1,2명의 미혼자녀'로 구성된 가족 형태가 절반에 이르렀다.



또 1호당 평균 사람 수 역시 2.93명으로 과소하게 나타난다. 이는 딸을 호적에 거의 등재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가옥은 모두 초가였으며 1호당 평균 칸 수는 2.47칸으로 조사됐다.



임 교수는 "간도 지역 조선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았다"면서 "오랫동안 정착했다면 가족 구성원도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제국은 광무 연간인 1897년부터 1907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한반도 전역은 물론 간도 지역의 호구까지 조사해 이른바 '신식 호적'을 작성했다.



간도 지역 호적 가운데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평안북도초산강북호적' '변계(邊界)호적안' 등 총 17책으로,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이들 자료는 현재까지 발견된 서간도 거주 조선인에 대한 유일한 호적으로, 광무 6년(1902년) 3월부터 광무 7년(1903년) 6월까지 1년3개월간 작성됐다.



자료에 등장하는 초산강북(楚山江北)은 평안북도 초산의 강 북쪽을 뜻하며, 이때 강은 압록강을 가리킨다. 따라서 초산강북은 압록강 너머 북쪽 지역을 뜻한다.



변계(邊界)는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 지역'을 일컫는 말로, 19세기 후반 간도 지역을 가리키던 명칭 중 하나였다.



임 교수는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들 자료의 명칭 변화"라면서 "1902년 3월 당시는 '강북'이라 표기했다가 1902년 12월 이후로는 줄곧 '변계'로 표기했는데 이는 당시 대한제국 정부의 서간도 지역에 대한 주체적 영토 의식의 발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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