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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선의 북방 경계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20-04-21 조회수 : 85

현행 교과서에는 모두 세종 때 최윤덕과 김종서가 4군 6진을 개척해서 조선의 북방강역이 압록강~두만강까지 확장되었다고 쓰고 있다. 세종 전까지 조선의 국경선은 압록강~두만강까지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의 북방강역에 대해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까? '태조실록' 태조 4년 (1395) 12월 14일자 기록을 보면 태조 이성계 때 이미 압록강~두만강 연안에 읍(邑)과 진(鎭)을 두어 다스렸다고 나온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조선의 북방 경계가 압록강~두만강도 아니라는 점이다.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서 정종ㆍ태종ㆍ세종 등은 모두 고려의 북방 강역이 현재 요령성 심양 남쪽 철령(鐵嶺)과 흑룡강성 공험진(公險鎭. 두만강 북쪽 700리)까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태종은 이 국경선을 명나라 영락제로부터 다시 확인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위 4년(1404) 5월 19일 명나라 수도 남경에 사신을 보내 두 나라 사이의 공식적인 국경선 확정을 다시 요구했다.

국서와 지도를 가지고 명나라에 갔던 사신은 다섯 달 정도 후인 태종 4년(1404) 10월 1일 영락제의 칙서를 갖고 돌아왔다. 이로써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선도 철령과 공험진이라는 사실이 영락제에 의해 재차 확인되었다.

세종도 마찬가지였다. 세종은 재위 8년(1426) 4월 근정전에서 회시(會試)에 응시하는 유생들에게 내린 책문(策問.논술형 과거)에서 "공험진 이남은 나라의 강역이니 마땅히 군민을 두어 강역을 지켜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서술하라고 명령했다.

최윤덕, 김종서 등은 조선 강역 내에 일부 신도시를 세운 것이지 강역을 확정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이케우치 히로시가 조작한 고려, 조선의 북방강역을 교과서로 가르치는 나라, 역사학자가 아니라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도 크게 부끄러워하고 분노해야 할 일이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부 등 당국자들의 책임은 말 할 것도 없다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이성계 때 고려 강역도 계승…‘철령~공험진’까지 엄연한 조선 땅 - http://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2002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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