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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일제는 20만권의 사서를 태웠나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6-10-10 조회수 : 396

 일제는 20만권의 사서를 태웠나 (97/08/20) 만들어진 한국사







일제가 태워버렸다는 사서 20만 권의 설은 사실인가?

이문영

1. 전제권력이 책을 독점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의 역사서들은 그 이름만 전하는 것들이 제법 된다. 그래서 전해지지 않는 사서들은 모두 외국의 침략으로 없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것은 진실인가? 거짓인가? 그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령 고려의 7대실록은 거란의 침입으로 없어진 것이다. 그러면 고구려의 사서는 정말 당의 침략 때 소멸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삼국사기]에는 중국의 사서들이 다루지 않는 많은 기록이 남아있는데 고구려의 사서가 모두 불태워졌다면 어떻게 이런 기록이 남아있게 되겠는가? 반대로 그 기록들이 신라의 것보다 소략하다고 주장하며 이것은 당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신라의 영향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대개 금석문을 통해서 4-5세기 경 신라가 고구려의 속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통해서 그런 분위기를 알아차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신라인들이 기술적으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실을 왜곡, 은폐했을 가능성을 전해준다.

당이 고구려의 사적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는 조선 후기 실학자를 통해서 처음 나온 이야기이다. 천년 후에 야기된 이 이야기를 진실로 믿어야 하는가?

일제가 사서 20만권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흔히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도 다 파악되지 않았다는 규장각의 도서들은 무엇일까? 왜 일제는 그 도서들을 다 태우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가져본 사람은 없을지... 설마 그 많은 책을 다 읽어보고 판단해서 걸러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인력은 21세기를 내다보는 오늘날에도 없고, 그 당시에도 없었다. 에라, 내것도 아닌데 태워버리자라고 그들이 맘먹었다면 잘타는 종이에 불과한 그 많은 서적들이 다 타는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절대 독재권력을 행사한 저 유명한 진시황제는 유가의 책을 모조리 없애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책을 숨기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서슬푸른 5공 초기에도 구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페다고지>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등의 책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고, 심지어 <자본론>을 읽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게 국가권력이 전 인민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규원사화>등이 살아남은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런 책은 은밀하게 감춰진 것도 아니고, 양주동 박사와 같은 유명인물이 소지하고 있었고,
<천부경> 같은 것은 단재가 언급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책이었다. 그런데 왜 일제가 이런 책이 살아남게 해 놓은 상태에서 다른 책은 없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실제 당시에 어떻게 금서조치가 내려지고 책들이 수거되었는지를 이제부터 살펴본다.

2. 일제가 금한 책은 51종

서희건 저 <잃어버린 역사> 1권 11쪽에는 <제헌국회사>와 <군국일본조선강점 36년>이라는 책을 인용해 일제가 핀매금지하고 수거한 책은 총 51종 20여만 권이라고 밝히고 있다. <군국일본조선강점36년>을 쓴 사람은 일제시대 군수를 지낸 골수 친일파 문정창이라는 유사역사학자인데, 이 유사역사학자는 이외에도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많이 지어낸 인물이다. 바로 이런 사람이 주장한 내용이 일제가 20여만 권의 사서를 불태웠다고 주장한 것이다.

조선일보(1985년 10월 4일)

하지만 여기에는 혼동하기 쉬운 함정이 있다. 일제가 금한 책은 51종이다. 그러므로 20여만권은 이 51종의 책의 누적합계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51종의 책에는 <미국의 독립사>, <대한신지지>, <애국정신>, <을지문덕> 등의 당시에 발간된 책들과 위인전기가 상당수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 책들은 일제의 그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남아있다.
(이 글 하단에 총독부 관보, 책 목록 및 저자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첨부해 놓았다.)

서희건의 책은 일제가 사서를 불태웠다고 감정적으로 글을 써나가지만, 사실상 전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의 나열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다음은 그 책의 12쪽에서 인용하는 것이다.

일제는 당초 3년 동안 수색을 하면 그들이 없애고 싶은 서적은 모두 씨를 말릴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서적의 압수, 분서 소식을 알게된 소장자들이 깊이 감추게 되는 바람에 생각했던만큼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3
년은 고사하고 6년 동안이나 강압적인 서적 수색을 강행했으나 정보를 갖고 찾아가면 또 다른 사서류가 나왔다.

이때문에 일제는 방향을 바꿔 새로운 사서를 만들기로 한다. 그것이 바로 조선사편수회 사업인 것이다. 조선사 편수회 사업개요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서들의 절멸을 기함은 오히려 그것의 전파를 조성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공명, 적확한 새로운 사서를 읽히는 것이 조선인에 대한 동화의 목적을 달성하는 첩경이며 또한 그 효과도 현저할
것이다.(잃어버린 역사 13쪽에서 재인용)

3. 그럼 <사서>들은 어디에?

그럼 일제강점기에는 있었을 것 같은 책들이 지금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점에 대해서는 추측을 할 수 밖에 없지만 다음의 세가지 추리가 가능하다.

1. 한국전쟁 시에 유실되었다 - 실제로 한국전쟁 시 폐허가 된 곳이 너무나 많고 없어진 것들도 너무 많다. 급한 피난 와중에 헌책들까지 챙길 사람들은 많지 않았던 탓이다.
2. 일제가 가지고 갔다 - 일제가 한국의 귀중한 책들을 상당수 가지고 간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분서>와는 다른 문제다.
3. 발견되지 않았다 - 많은 서적들이 아직 어디서 잠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일제의 만행을 증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없는 죄를 만들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일제의 죄는 하늘을 덮고 남음이 있다. 마치 일제가 우리의 사료를 모두 없애서 우리가 역사의 진실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자기 위안을 삼기위한 제물로 일제를 내세울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 역사의 진실은 우리의 손으로 하나씩 밝혀 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 길
이 우리의 조상과 후손에게 떳떳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마포에서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우리나라 사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궁금한 분은 살펴보기 바란다. 재야의 망상사학 2 - 우리나라의 사서 [클릭]

유사역사학자 문정창의 이력을 추가해 놓는다. 이것은 네이버 백과사전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료다.

1899∼1980. 역사학자. 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백당(柏堂). 부산 출생. 동래 동명중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23년 동래군 서기를 거쳐 경상남도 도청, 조선총독부에 근무한 뒤 1940년 충청북도 사회과주사, 1942년 황해도 은율군수, 1944년 황해도 사회과장 등을 역임하였다. 관직 생활을 하면서 조선총독부가 간행하는 조선 조사 자료 총서의 하나인 ≪조선의 시장 朝鮮の市場≫(1941)과 ≪조선농촌단체사 朝鮮農村團體史≫(1942) 등을 저술하였다.

보다시피 조선총독부의 조사 자료 총서까지 발간하신 분이시다. 이병도나 신석호의 저 윗길에서 노니시는 분이라는 말씀.
조선총독부 관보 제69호 (1910년 11월 19일)


최근에 인터넷을 보니 한문을 잘 못읽는 이들이 많은 관계로 위 책들이 무슨 고서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또한 책 목록을 적어놓은 곳도 많았는데, 종수도 맞지 않고 글자가 틀린 경우도 많았다. 이에 가능한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 책들 중에는 고서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도록 하겠다.

01. 初等大韓歷史(國文,漢文) (초등 대한역사(국문,한문)) / 정인호 편집 장세기 교열 / 1908년 발간 / 단군에서 조선까지 간략하게 기술한 개설서. 배일, 애국사상 고취

02. 普通敎科東國歷史 (보통교과 동국역사) / 현채(玄采) 지음 / 대한제국 학부에서 1899년에 펴낸 중학교 교과서로 8권 3책으로 되어있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부터 기술하고 있다.

03. 新訂東國歷史 (신정 동국역사) / 유근(柳瑾:1861∼1921) & 원영의(元泳義) 1906년에 지은 역사책

04. 大東歷史略 (대동역사략) /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1907년 흥사단에 병합됨) / 대한제국의 교과서. 1906년 간행. 7권 1책. / 단군조선, 기자조선, 마한, 신라 등의 역사를 소략하게 기술.

05. 大韓新地誌 (대한신지지) / 장지연(시일야방성대곡의 그 장지연) / 1906년 지리교과서로 만듦 / 우리나라의 자연지리와 풍속, 물산 등 인문지리를 다룸

06. 大韓地誌 (대한지지) / 현채(玄采) / 1899년 교과서로 편찬 / 총론과 13도편으로 대한전도와 각도의 지도를 붙인 뒤 각 지역을 설명함

07. 最新高等大韓地誌 (최신 고등 대한지지) / 정인호(鄭寅琥) / 1909년 교과서로 편 /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고 있음

08. 問答大韓新地誌 (문답 대한신지지) / 노익형(박문서관 주인, 국채보상운동 등을 한 사람)

09. 最新初等大韓地誌 (최신 대한 초등지지) / 정인호

10. 最新初等小學 (최신 초등소학) / 정인호

11. 高等小學讀本 (고등 소학독본) / 장지연

12. 국문과본 / 원영의

13. 初等小學 (초등 소학) /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 / 1906년 교과서로 편찬

14. 國民小學讀本 (국민 소학독본) / 대한제국 학부에서 1895년 교과서로 편찬 / 자연현상과 이치, 세계 주요 도시 문명화 파악, 중상주의 등 기술

15. 小學漢文讀本 (소학 한문독본) / 원영의

16. 녀자독본 (자는 아래아) / 장지연 / 1908년 / 여성용 교과서

17. 婦幼讀習 (부유독습-조선총독부 관보에는 婦女讀習이라고 잘못 나와있다) / 강화석(姜華錫) / 1908년 교과서로 편찬

18. 高等小學修身書 (고등 소학 수신서) / 휘문의숙 편집부 / 1907년 교과서로 편찬

19. 初等倫理學敎科書 (초등 윤리학 교과서) / 안종화(安鍾和) / 1907년 교과서로 편찬

20. 中等修身敎科書 (중등 수신 교과서) / 휘문의숙편집부 / 1908년 교과서로 편찬

21. 初等小學修身書 (초등 소학 수신서) / 유근(柳瑾:언론인)

22. 獨習日語正則 (독습 일어 정칙) / 정운하(鄭雲复:독립운동가) / 1907년

23. 精選日語大海 (정선 일어 대해) / 박중화(朴重華:교육가, 보성중학교 교장) / 1909년

24. 實地應用作文法 (실지 응용 작문법) / 최재학(崔在學:평양 유생, 애국지사) / 1909년

25. 飮氷室文集 (음빙실문집) / 양계초(청나라 사상가. 1873-1929) / 1899년 독립신문과 황성신문에서 [애국론]을 소개한 후 1905년부터 양계초 붐이 일어날 정도로 유명했음.

26. 國家思想學 (국가사상학) / 정인호(鄭寅琥:최초 발명특허권자, 최초 저작권 분쟁을 일으킨 사람이기도 하다)

27. 民族競爭論 (민족경쟁론) / 양계초(청나라 사상가) 지음 유호식(劉鎬植) 번역

28. 國家學綱領 (국가학강령) / Johannes Bluntschli(독일)의 학설을 안종화(安鍾和)가 번역 / 1907년

29. 飮氷室自由書 (음빙실자유서) / 양계초(청나라 사상가)

30. 準備時代 (준비시대) / 천도교 중앙총부 / 1905년 / 천도교 해설서

31. 國民須知 (국민수지) / 김우식(金宇植) / 1906년 / 대한제국 시절 가장 널리 퍼진 국민계몽서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32. 國民自由進步論 (국민자유진보론) / 유호식(劉鎬植) 번역

33. 世界三怪物 (세계삼괴물) / 사밀가덕(斯密哥德) 지음([사밀가덕]이라는 이름은 일본 이름이 아니다. 중국에서 유럽어를 가차한 것인데 [사밀]은 스미스, [가덕]은 골드의 가차다. 해당되는 이름의 사상가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변영만(수주 변영로의 형) 번역 / 1908년 / 변영만이 19세에 번역한 얇은 소책자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다룬 유럽저자의 글로 추정하고 있다. 3괴물이란 금권정치, 군국주의, 제국주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세마리 괴물이 세계를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책자다. 책의 서문은 변영만의 절친한 친구였던 신채호가 썼다. 변영만은 1924년 최남선이 사장으로 설립한 [시대일보]에 논설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34. 二十世紀大慘劇帝國主義 (20세기 대참극 제국주의) / 변영만 / 1908년

35. 强者의 權利競爭 (강자의 권리경쟁) / 유문상(劉文相:국채보상운동의 주역) 번역 / 일본책 『強者の権利の競争(1893)』을 번역한 것인데 이 책은 진화론을 통해 천부인권설, 이상주의 관념존 종교적 세계관 등을 소개하고 있음

36. 大家論集 (대가론집) / 유문상(劉文相) 번역

37. 靑年立志編 (청년입지편) / 유문상(劉文相) 번역

38. 男女平權論 (남녀평권론) / 최학조(崔鶴詔) / 1908년 / 남녀평등 사상을 다룬 책

39. 片片奇談警世歌 (편편기담 경세가) / 홍종온(洪鍾穩) /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되었던 것으로 아전에게 골탕먹는 지방 수령 이야기 등등이 들어있었다.

40. 쇼아교육 (아의 ㅏ는 아래아) / 임경재(林景宰 : 휘문고 교장, 조선어학회 창설멤버)

41. 愛國精神 (애국정신) / 이채병(李採丙) / 아래 책의 한문본.

42. 애국졍신담 (애의 ㅏ는 아래아) / 이채병(李採丙) / 1908년 / 애국단체 서우학회(西友學會)의 기관지 서우(西友 : 1906.12-1908.1 박은식이 주필이었음)에 연재되었던 글모음

43. 夢見諸葛亮 (몽견제갈량) / 유원표(劉元杓 : 해직군인) / 1908년 / 꿈에 제갈량을 만났다는 뜻으로 사회비판과 계몽주의를 논하고 있다.

44. 乙支文德 (을지문덕-漢文) / 신채호 / 1908년

45. 을지문덕 (국문) / 신채호 / 1908년

46. 伊太利建國三傑傳 (이태리 건국 삼걸전) / 양계초 지음 신채호 번역 / 1902 / 이탈리아 건국의 세 주역에 대한 이야기. 양계초는 이무렵 가장 인기있는 사상가여서 이 책은 무려 4종의 번역물이 있었다.

47. 噶蘇士傳 (갈소사전) / 양계초 지음 이보상(李輔相) 번역 / 원제는 [흉가리 애국자 갈소사 전]이다. 헝가리의 애국자 헤수스에 대한 이야기.

48. 華盛頓傳 (화성돈전) / 이해조(李海朝) 번역 / 1908년 /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전기다.

49. 波蘭末年戰史 (파란 말년 전사) / 작자불명 / 폴란드 왕국 말년의 독립전쟁을 다룬 것으로 1905년에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되었다.

50. 美國獨立史 (미국독립사) / 현은(玄隱) / 1899년

51. 埃及近世史 (애급 근세사) / 장지연 번역 / 1905년 / 이집트의 근세사를 기술함. 서문을 박은식이 썼다.

이제는 부디 헛소리 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길 바란다. 이 책들은 없어진 것도 아니다. 일부는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본으로 발간한 적도 있고, 지금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도 있고, 박물관에 가서 찾을 수 있는 책도 있다.

[추가]
이 글이 나가자 반박할 논리를 잃은 사람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일제가 불태운 책은 20만 권 맞다! 그 사람들이 순진하게 자기들이 무엇을 불태웠는지 말하겠느냐?"
문제는 일제가 20만 권을 불태웠다고 근거 사료로 제시한 것이 위의 글이라는 점이다. 그럼 이제 무엇에 근거해서 일제가 책을 불태웠다고 이야기하는 건가? 그냥 짐작으로? 그냥 자기 생각에 자기라면 그렇게 할 것 같으니까? 그건 그대 마음 속에 파시즘이 자리잡고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간단한 우스개로 만든 다음 이야기를 읽어보라.
환비의 습격 [클릭]
[속] 환비의 습격 [클릭]
[3탄] 환비의 습격 [클릭]

[추가2]
혹자는 조선사편수회 사업개요에 "사적의 절멸을 강구한다"는 구절이 있으므로 일제가 사적의 절멸을 시행했다는 주장을 한다. 이건 사실일까? 앞뒤 구절을 잘라먹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편집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파렴치한 행위에 불과하다. 앞뒤 전문을 살펴본다. (이 문장의 일부는 이미 위에 언급했는데도 자신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능력을 가진 유사역사학자들의 초능력에는 도무지 당할 재주가 없다.)

조선인은 다른 식민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야만 미개의 민족과 달리 독서 속문屬文에 있어서 결코 문명인에 뒤떨어지지 않으면 고래로부터 사서가 많고 또한 새로이 저작한 것도 적지 않다. 그런데 전자의 것은 독립시대의 저술로 현대와의 관계를 결하고 함부로 독립국의 옛꿈을 추상케 하는 폐가 있으며, 후자의 것은 근대 조선에 있어서의 일청, 일로의 세력 경쟁을 서술하여 조선이 취할 향배를 오도하고, 혹은 [한국통사]라고 칭하는 재외 조선인의 저서와 같이 사실의 진상을 구명하지 않고 막연히 망설을 멋대로 늘어놓고 있다.
이와 같은 사적들이 인심을 고혹케 하는 해독은 참으로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와 같은 사적들의 절멸을 강구한다는 것도 도로徒勞일 뿐 아무런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와 같은 사적의 전파를 격려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차라리 구사舊史를 금압하는 대신 공명, 적확한 사서를 만드는 것이 첩경이며 또한 그 효과가 새롭게 현저할 것이다.


우리말을 제대로 읽을 줄 안다면, 저 붉은 곳의 글이 "사서 절멸이란 효과가 없는 일이니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그런 일이 실시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사서가 더 널리 전파될지도 모른다"는 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해봤는데 그런 일이 생겼다면, "사서가 더 널리 전파되어버리고 말았다"라고 썼어야 하는 것이다. 단장취의하여 왜곡해석하는 것이 유사역사학의 특기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눈가리고 아웅도 정도껏 해야 할 것이다.

[추가3]
최근에는 바보들이 일제가 가져간 책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이 포스팅에 대한 반박이라고 열을 내고 있다. 이미 이 포스팅에 일제가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_-;;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일제가 20만 권을 분서했다는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라는 것도 이미 적어놓았다. 하여간 이 바보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글만 보이는 신비한 눈을 가지고 있다. 누가 말리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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