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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비판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6-09-12 조회수 : 234

 

[우리역사70]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비판 종합 - 제22부
조선반도 남부에 존재할 수 없었던 《임나일본부》- 마지막 회
이용섭 역사연구가
기사입력: 2015/09/17 [11: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광개토대왕비, 일제는 이 비석의 비문을 조작까지 해가며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를 만들려고 악랄하게 책동했다. 


우리역사 이야기 70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에 대한 비판(批判) 종합 - 22
 
 
들어가며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은 1868년 일본이 명치유신(明治維新)은 단행한 후 일본내부의 모순을 해소하고자 하는 목적에 의해서 탄생이 되었다. 즉 일본은 1868년에 있었던 일본의 명치유신(明治維新)18세기 중후반 일본의 서구지향세력이자 근대화를 지향했던 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던 사쓰마(薩摩)와 죠수(長州)의 호족겸 군벌들이 일본의 서구화와 근대화가 곧 강자가 될 수 있는 문명의 개화라는 믿음 속에 일으킨 군사반란이다. 그들은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일본열도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군사반란은 명분이 약했으며 갑작스럽게 쟁취한 권력은 또 다른 열도의 불안정을 야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왕정복고를 꾀하면서 천황제를 등장시키게 된다. 군사반란 세력들은 아무런 힘도 없었던 젊은 메이지(明治)를 동경으로 데려와 하루아침에 최대의 권력의 자리에 앉히고 천황이라는 최상의 부여하였던 것이다.
 
천황제라는 걸맞지 않은 제도를 내오는 등 합리화, 신비주의에 대한 야욕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사에 대한 집착을 가져오게 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과거사에 대한 집착은 경제적 궁핍을 해소하고, 정치적 갈등을 극복하려는 목적도 뚜렷하게 있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제국주의의 골격인 천황사(天皇史)를 급조하였으며, 갑작스러운 군사반란으로 발생한 실업자군(해체된 무사집단)들의 불만을 해소시켜줌과 동시에 경제를 발전시키고 생산된 상품의 소비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생산된 상품의 소비처가 필요하다는 것은 결국 정치적으로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다른 민족들에 대한 식민지지배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은 18세기 중후반 일본의 현실은 일본열도에서 가장 가까운 조선반도에 대한 식민지지배야욕을 실현하려는 정한론(征韓論)을 만들어내었으며, 이와 같은 정치적 목적 실현을 위해 그들은 무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또한 일본의 정치적 목적 실현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역사에 대한 왜곡 · 조작에 집중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이론이 기원후 4세기말에 조선반도 남단을 왜가 점령을 하고 근 200여 년간 지배를 했다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인 것이다.
 
일본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 고구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열제릉비문, 칠지도, 일본서기 신공황후기사(神功皇后紀事)등이다.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의 위 세 가지 근거 중에 가장 유력한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고구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열제릉비문이다. 우리가 그 동안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에 대한 비판의 주 대상 역시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열제릉비에 대한 일본인 학자들의 릉비석문(陵碑釋文)에 있었다.
 
릉비석문(陵碑釋文)에 대한 비판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사료 비판이었다.
첫째, 릉비문에 대한 위변조를 통한 석문의 기본근거부정.
둘째, 릉비문 위변조를 위한 릉비에 석회 칠 작전.
셋째, 릉비에 새겨진 문자변조 론증.
넷째, 릉비에 새겨진 릉비문 문장의 해석.
다섯째,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 왜에 대한 강역의 논증을 통한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의 허구성 논증 등이었다.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의 허구성 논증은 위 다섯까지의 항목 중에서 다섯 번째만 논증을 하면 앞의 네 가지의 항목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의 허구성 논증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즉 일본이 주장을 하는 기원후 4세기 후반 일본열도의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신라, 가라를 파하고 조선반도남부지방에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설치하고 약 200여 년간 조선반도남부지방을 다스렸다는 설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 왜가 고대에 조선반도나 일본열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논증하면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은 인본이 꾸며낸 허구의 역사라는 것이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도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간 오늘에 와서도 일본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가지고 있었던 제국주의적 야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황한 망상을 가지고 무력증강을 하고 있으며, 2차대전의 패전국임에도 조금도 반성함이 없이 미국과 ·일방위협력지침이라는 21세기형 신카쓰라·테프트밀약을 체결하고, 소위 평화헌법 제 9조를 버리고 보통국가(실제 타국침략목적)로 거듭나기 위해 안보관련법안을 개정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동시에 이미 그 허황성이 명백히 밝혀진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일본의 언론을 통해서 대대적으로 여론화하고 있다. 이는 또 다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감행한 제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내는 것이며, 동시에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벌이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이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미 앞선 장들에서 상세히 분석을 하였지만 이번 장에서는 이를 종합정리 하도록 한다.
 
 
2.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태동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이라고도 한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나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은 그 명칭에서부터 목적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특히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은 일본이 조선반도 남쪽을 식민지경영을 했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1905을사늑약1907정미7조약을 조작하고 이를 근거로 마침내 조선의 조정을 강압하여 강제로 맺은 1910년의 한일병합조약에 따라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 바로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자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이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은 다음의 세 가지 조작된 증거를 토대로 세운 이론이다. 국강상광개토경호태열제릉비문의 비문 칠지도 일본서기 신공황후기이다.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선봉대 돌격대들인 일본인 역사학자들은 조선이 고대부터 일본에 의해 식민지지배를 당했다는 것을 논증하고 고증을 하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은 학자라는 양심을 버리고 침략의 돌격대가 되어 식민지지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타민족의 역사와 자신들의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 조작을 하였다.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 일본의 국학자들은 고사기 · 일본서기의 연구를 통해 태고 적부터 일본이 조선을 지배했다고 주장하였다. 메이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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