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상반년, 세계반파쑈전쟁은 관건적인 단계에 진입했다. 서방전선에서 쏘련홍군은 5월 2일 베를린을 점령, 5월 8일 독일이 무조건적으로 투항했다. 이리하여 동방전선에서 일본제국주의는 완전히 고립되였다.

1945년 8월 8일 쏘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8월 9일 쏘련홍군은 서, 북, 동 세개 전투구역에서 동시에 동북에 있는 일본관동군을 향해 진공을 발동했다.



쏘련원동군은 항일부대의 배합하에 두개 방면으로 연변각지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했다. 훈춘방면에서 쏘련군 제25집단군은 춘화, 장령자, 경신 3개 곳에서 일본군방비선을 돌파하고 10일 훈춘을 점령, 11일 대반령에 있는 일본군방비선을 돌파한후 계속 도문방향으로 진격했다. 왕청 라자구방면에서 쏘련군 제5집단군은 10일 동녕현 삼분구, 수분하 등 변경의 주요진들을 점령하고 라자구방향으로 향했다. 14일 라자구를 점령한후 쏘련군은 두갈래로 나뉘여 연길, 돈화 방면으로 진격했다.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적으로 투항을 선포했다. 하지만 일본관동군의 완고파는 여전히 각지에서 완강히 버텼다. 15일, 쏘련군기계화 제10군 선견지대와 보병 제39군, 땅크 제359려 등은 협동작전하여 왕청현소재지를 점령하고 이어 연길, 왕청 접경지대의 길장령에서 일본군 제127사단과 격전하여 일본군방어선을 돌파하고 18일 연길에 진입했다. 도문방면에서 쏘련군은 안산에서 일본군과 2일간 격전한후 일본군방어선을 돌파하고 17일 도문을 해방했다. 쏘련경내에서 정돈중이던 동북항일련군부대도 쏘련군의 동북진격을 배합했다. 연변에 파견된 항일련군선견대 박락권 등은 훈춘대반령, 왕청현 라자구태평령 등 전투에 참가했다. 이밖에 연변 여러민족 인민군중도 자발적으로 조직되여 쏘련군을 배합했다.



8년간의 중국인민항일전쟁은 승리적으로 결속되고 14년간 분전하던 동북 여러 민족 인민들의 항일전쟁은 최종 승리를 거두었고 38년간 일본제국주의식민통치에 반항하던 연변 여러 민족 인민의 투쟁도 광복을 맞이했다. 기나긴 세월 일본침략을 반대하는 투쟁가운데서, 특히 14년간의 간고한 항일투쟁가운데서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긴밀히 단결하고 영용히 항전하여 일본침략자와 결사적인 투쟁을 진행하여 마침내 해방을 이룩해냈다.



[연변일보 201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