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지역 영유권

 

제목 : [특집1]간도: 갈등인가 평화인가?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0-10-16 조회수 : 625


 






















 



 









































무엇이 간도문제인가?








뉴스일자: 2007-12-27















어느 한 측면만 바라보고 어떤 사물이나 사건의 통합성과 진실성을 파악하기 어렵듯이 한중간에 미해결된 영토문제이자 국경문제로 남겨진 간도문제 또한 그럴 것이다. 갈등의 측면을 부각시키면 갈등의 문제로, 평화의 문제를 부각시키면 평화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간도문제가 과연 갈등이냐 평화이냐 하는 것은 간도문제 그 자체에 달려 있기 보다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의 정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정세의 변화로 동북지역의 위상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간도문제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 올랐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 이래 동북 변경에서 러시아, 북한, 한국, 몽고, 일본, 미국과 중국사이의 쌍방관계나 다자간의 관계에 큰 변화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근 10년 이래 동북아의 정치적, 경제적 지위가 지속적으로 상승됨에 따라 동북아는 세계가 주목하는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되었고 동북지역은 동북아의 중심으로써 중요한 전략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동북 지역의 전략적 위상은 동북아 전체의 전략적 위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동북아 전략은 또 세계 전략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동북의 변화는 21세기 세계 전체 전략적 판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동북의 변화상은 동북 그 자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통일적 다민족 국가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중국의 전체상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세계정세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동북지역의 위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1990년대에 집중적으로 간도문제를 연구하였고, 한중수교에 즈음하여 길림성 변강지역 민족의 안정과 발전의 주요 문제와 대책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또한 1997년에는 한반도 정세 변화가 동북지역 안정에 미치는 충격을 조사하기도 하였다. 이는 과거 역사로서의 간도연구와 현재와 미래의 문제로서의 간도문제에 대해 동시적으로 관심 갖고 있는 것이다.



과연 간도문제의 진실성은 무엇인가? 갈등인가 평화인가? 간도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아시아의 평화스러운 미래를 조성해 나갈 수 있을까? 이는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








 





















[특집2]간도: 갈등인가 평화인가?



갈등으로서의 간도문제








뉴스일자: 2007-12-27


 













<고지도상의 간도 모습: 좌 - 프랑스 지도제작자,장 밥티스트가 그린 18세기 지도, 우 - 일본정부에서 그린 19세기 지도>



21세기에 간도문제라는 한중간의 영토분쟁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간도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없을 정도의 갈등과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1) 간도문제의 시발점



간도문제가 한중 양국간의 문제로 내재화되기 시작한 것은 청조가 흥기하고 압록강과 두만강 대안(對岸)을 무인지대화(봉금정책) 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청조는 변경 조사라는 명목으로 백두산을 답사한 후 1712년 백두산정계비를 설정하였고 19세기 후반에 들어가서는 봉금정책을 전반적으로 해제하면서 이 지역을 선점하여 개간하던 조선인을 귀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백두산정계비문에 명시된 ‘서로는 압록, 동으로는 토문'이라는 문구에 대해 조선은 토문강과 두만강을 서로 다른 강으로, 중국은 같은 강으로 간주하여 논란이 일었다.



양국은 국경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1885년과 1887년에 걸쳐 두 차례의 국경담판을 하였고 당시 그렸던 지도에 의하면 백두산정계비로부터 국경을 표시하는 토퇴와 석퇴는 토문강으로 이어지고 토문강은 다시 송화강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토문과 두만이 명백하게 다른 강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양국은 두 차례의 담판을 통해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해 최종적인 결론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05년 일본이 불법적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후 1909년 일본이 동북의 철도권과 채광권 등을 얻는 만주협약과 교환조건으로 체결한 간도협약으로 간도를 중국에 귀속시키게 되었다.



1909년의 간도협약은 1945년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 의해서도 국제법적으로 무효화되어야 했다. 또한 1952년 중일 평화조약에서도 1941년 이전에 일본이 체결한 모든 조약, 협약, 협정을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패전한 후 무효화된 만주협약과 달리 그 교환조건으로 체결된 간도협약은 여전히 유효한 채 중국이 실질적인 지배를 계속 하였다. 그 후 중국과 국경을 대면한 북한은 국경지대에서 마찰을 겪다가 1962년 비밀 변경 조약을 체결하고, 1964년 국경의정서를 교환함으로써 압록강-백두산천지 양분-두만강으로 국경을 획정하였다.



간도문제의 복잡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간도문제를 협상했고 또 협상해야 하는 주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조선과 청조간의 백두산정계비 설정과 2차례 국경담판, 대한제국과 일본사이의 불법적인 을사조약 문제, 일본과 청조사이의 만주협약과 간도협약문제, 북한과 중국사이의 비밀국경조약문제, 한국과 중국 심지어 통일한국과 중국 사이에 간도문제의 재론 등 협상주체와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간도문제는 한국과 북한 등 어느 일부분과 관계된 문제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아우르는 국체(國體)(통일한국 포함)와 중국과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한국(혹은 통일한국)과 중국 사이에 상호 우호적이고 명확한 국경담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 갈등의 구체적인 내용



간도문제의 복잡성은 구체적인 사안에서도 한중간 견해 차이가 매우 심하다. 심지어 간도가 어디이고 무엇이 문제라고 하는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명은 원래 인류 사회 활동의 산물로서 그것이 형성되어 통용되고 변화되며 정착되는 과정에는 시대배경, 자연조건, 정치추세 등 역사발전 법칙이 존재하고 있다. 즉 간도라는 명칭은 그냥 날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간도 명칭의 유래에 대해 중국은 원래 간도라는 명칭은 없는데 조선인이 창작하거나, 날조한 것, 더 나아가 하나의 전설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한국은 전통적 역사적으로 한국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 곧 한국의 영토라고 강조한다.



간도의 범주에 대해서 중국은 두만강 북안 일대로 한정 하던가 연변지역 정도로 보는 반면, 한국에서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반도와 접해 있는 중국 동북지역으로 본다. 이는 간도 명칭의 유래에서 한국은 전통적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적어도 조선인이 거주했던 압록강, 두만강 대안을 광범위하게 포괄하지만, 중국은 연변 일대 지역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소위 간도협약 등으로 문제가 되는 간도문제는 압록강 대안의 서간도를 제외한 북간도 즉 현재의 연변조선족자치주 일대 정도로 보고 있다.



간도지역에 조선인 거주 시기에 대해 중국은 1870년 이후 조선의 기근과 생활 곤란, 과중한 세금 등으로 조선인이 대량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개간한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조선인 간도 거주 시기에 대해서는 중국 자체의 연구에서도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고대(고구려) 시대까지 소급하는 경우와 원말 명초 시기에 이주했다는 설 그리고 명말 청초 시기에 이주했다는 설 등이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국은 정책적으로 조선인의 이주를 19세기 중엽 이후로 규정하고 있다.



간도문제가 발생하게 된 요인에 대해서도 중국은 조선인이 마음대로 한중간의 국경을 위조하여 간도라는 영토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이 조선인에게 관대하게 대우하고 간도지역에 거주하도록 방임했던 정책이 결국 간도문제를 발생케 하였다고 보았다.



그러나 영토의 주권문제를 논의할 때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선점 했느냐와 국가적 통치 행위가 미쳤던 증거, 그리고 그 지역에 거주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문화 및 언어 등이다. 이는 영토의 구속력을 결정하는데 국제법적으로도 중요한 평가기준이 되는 것들이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사료에 의하면 조선인이 먼저 간도를 선점하였고 또 행정력이 미쳤으며 조선인이 압도적으로 많이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조선인이 자의적으로 국경을 위조했다고 볼 수 없는 명백한 근거들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간도문제는 간도의 명칭에서부터 시작하여 간도의 범주 등 소위 간도 문제 전반에 대해 한중간에 많은 이견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간도문제는 다른 어떠한 문제보다도 민감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갈등의 문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동아시아 제국가의 동북지역에 대한 정책도 갈등의 요소이다.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달아 동아시아를 침략하면서 내세웠던 구호가 ‘동아시아 평화'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선전포고, 한일병탄 조약문, 중국에 대한 21개조 요구, 1937년 노구교사건에 대한 일본 정부 성명 그리고 1941년 영미에 대한 선전조서 등에 일률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것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였다. 일본이 동아시아 평화를 주창하면서도 이익선, 생명선을 확보하기 위해 동아시아로 세력을 확대하였는데, 이에 대한 관심은 한반도와 동북지역을 둘러싸고 구체화되었다. 1910년 이미 한반도를 장악한 일본은 1921년 만몽(동북지역)에서 일본의 특수지위와 일본 존망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간파하고 만몽정책이 제정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방향은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동북지역의 장악은 대륙 침략을 위한 매우 중요한 발판이었다.



국은 동북지역을 중국의 전진적인 국방선일 뿐 아니라 후퇴할 수 있는 최후의 국방선, 즉 천연적인 국방선으로 이해하고 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동북지역이 비록 전진과 후퇴의 중요한 국방선이긴 하지만 국방선만으로는 중국의 장래 생존을 보장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중국의 생존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생명선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였다. 동북지역은 “전체 지리형세로 보았을 때 중국 북쪽의 천연적인 국방선이면서 중국의 생명선”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동북을 지키지 못하면 반드시 북방도 지킬 수 없다. 역사적으로 혹은 정치지리학적 관점으로 보더라도 동북은 중국의 생명선이라는 것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즉, 동북이 없으면 중국은 없다”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이익선과 생명선은 동북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동북아 국가들이 세력을 확대하면서 만났던 장소는 “아시아의 발칸 반도이자 동북아 싸움의 중심”인 동북지역이었던 것이다. 동북아 국가들 중 어느 한쪽으로 힘이 쏠리면 평화는 깨어지게 된다. 동북지역(간도 포함)에 대한 동북아 국가들의 관심은 과연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가?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






[특집3]간도: 갈등인가 평화인가?





평화로서의 간도문제








뉴스일자: 2007-12-27




 










간도문제는 갈등을 넘어서서 평화의 문제로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1) 간도의 지정학적 중요성



간도문제는 기본적으로는 한중간의 국경 문제이자 영토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19세기 20세기를 걸치면서 러시아를 포함한 일본, 중국, 조선이 모두 관계된 동북아의 문제였다. 러시아가 동북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해 오면서 간도문제에 관심을 갖고 조선과 러시아가 공조를 시도 하였지만 이러한 러시아의 노력을 중단시킨 것은 일본이었다.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남만주에서 러시아 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이 여세를 몰아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늑탈한 후 1909년 자의적으로 청조와 간도협약을 체결하여 조선과 청조간 외교 난제인 간도를 중국에 귀속시켰다.



이와 같은 간도는 그 자체로 전략적 중요성이 있는 지역이다. 간도는 한국, 중국, 러시아 삼국의 목구멍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육지로 철도의 연결통로이고 해로로 항구를 개설할 수 있으며, 땅이 넓고 물산이 풍부한 중요한 지역으로 한가하게 방치하는 것이 불가한 곳으로 동아시아를 제압할 수 있는 권원(權源)으로서 전략적인 요새이다.



간도는 중국이 세력을 동쪽으로 확대하려고 할 때 장악해야만 하는 필수지역일 뿐만 아니라 중국본토를 지키는 요새로 인식된 곳이다. 간도는 강을 끼고 산으로 둘러 쌓여 전투시 요새지이며 동방 패국의 옛터이기도 하다. 간도는 전진하면 점령할 수 있고 후퇴해도 고수할 수 있어서 길림 동남쪽의 천연적인 요새이다.



러시아가 간도를 얻으면 일본과 중국을 제압하고, 일본이 이를 얻으면 러시아와 중국을 제압할 수 있게 되며, 중국이 이를 잘 이용하면 러시아와 일본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한국도 간도를 얻으면 북쪽으로 뻗어 나가는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중국은 간도를 수호하지 못하면 동북지역이 위태롭게 되고 더 나아가 중국이 불안에 빠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간도는 일본으로 진출할 수 있는 지름길이고 동으로 블라디보스톡과 인접하고 북으로 길림에 가까워 북쪽으로 진출하는데 중요한 곳이다. 따라서 변란 때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평화시에 동북의 경영정책을 운용 할 때도 각종 파급효과가 있는 곳이다.



간도는 생명선과 연결되는 경제적인 보고이다. 두만강 남쪽은 산세가 험준하고 토지도 척박하지만 간도는 토지가 비옥하고 지세가 순탄하여 옛부터 영웅호걸들의 거점이 되어 왔다. 이 지역은 금 뿐만 아니라 은, 석탄, 구리 및 철광 등의 광석이 풍부하고 삼림이 울창하여 수렵도 흥성할 수 있고 물줄기가 종횡으로 뻗어 있어 어업이나 농업에도 적당한 지역이어서 러일전쟁 때 러시아군의 물자 공급지이기도 하였다.



간도는 육지와 바다가 인접해 있어서 광업, 임업, 농업, 수렵, 어업이 모두 성한 지역이고 물산이 풍부하며 조선의 함경북도 및 러시아 우수리 지역까지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무역의 세력권은 북으로는 송화강까지, 남으로는 조선 연안까지, 동으로는 블라디보스톡까지 미치고 있어 산업경제의 보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무한한 보고를 개발한다면 비용과 노력은 적게 들지만 이윤은 많이 창출할 수 있는 곳이다.



간도는 중요한 교통로이다. 간도는 한중러 삼국의 세력이 접촉하는 완충지대이자 동서를 장악하고 남북을 제어할 수 있는 잠재력을 구비한 요지다. 중국이 길림 남방에서부터 도로를 개통하고 개간사업을 일으켜 두만강을 중요 방어지역으로 장악하면서 길림성 동남 변경이 안전하게 되었다. 중국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러시아 연해주 접경까지 연결되는 동부(동쪽) 변경 철도를 건설하여 이미 건설된 중국 동북 지역의 철도와 연결시킴으로써 교통의 중심지로 만들려고 한다.



이와 같은 간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역사적인 경험으로 보았을 때 분쟁의 요람이 될 수도 있지만 또 평화를 창출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간도는 군사적 요새, 경제적 보고,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동북지역 장악과 더불어 아시아 장악에 기초가 된다고 하는 것을 동아시아 제국이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동북안전의 보장은 세계 평화의 안전을 보장하는 기점”이라고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동북을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장악한다”고 하였다. 



2) 간도의 현재적 의미



2004년 9월 28일 미국 상원이 만장일치로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탈북자를 돕는 외부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고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과 미국 망명 및 난민 신청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압력을 제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북한인권법을 계기로 미국이 실질적으로 탈북자 문제 등 동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태에 깊이 관여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은 북한 군인들의 집단 탈북을 막기 위해 1만명의 병력을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인 두만강 부근 3개 지역에 배치했으며, 압록강 일대 접경지역에도 중국군 3만여명이 배치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병력 이동은 중국 접경지역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집단 탈북을 막는다는 목적도 있지만 김정일 정권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분석되기도 하였다.



미국의 ‘북한인권법'과 중국의 압록강, 두만강 병력 배치 등은 모두 동북에서 벌어질 사태와 무관할 수 없다. 중국은 미국이 한국을 등에 업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세력범위를 확장하고, 원기를 회복한 러시아가 미국의 세력팽창을 견제한다는 구실로 개입하며, 동북 지배에 대한 향수를 가진 일본이 엔 차관과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구실로 동북 접근을 강화하는 상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인식하에 21세기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에 걸 맞는 동북의 역사적 위상을 되찾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 전략적으로 동북의 위상이 부각되면서 이를 둘러싼 동아시아 다자간의 국제관계도 심상치 않게 맞물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간도 문제는 동아시아 정세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21세기에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분쟁이 아니라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평화로운 환경 조성이다. 따라서 간도문제는 역사적으로 더 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한중간의 상호 우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20세기에는 러시아, 일본이 간도 자치나 협치의 문제를 들고 나왔지만, 21세기에는 미국과 일본이 탈북자 인권의 문제로 직간접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작금의 간도문제는 북한과 중국만의 국경이나 영토 문제도 아니다. 탈북자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간도지역은 세계가 관심을 갖는 지역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국가들의 세력이 확대되고 또 동북아의 평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 북한의 움직임과 더불어 또 다시 지역으로서의 간도(광의의 동북)가 중요하게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간도는 한반도가 지리학적 전략적 중요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지역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 중의 하나로 반드시 병가지쟁(兵家之爭)의 땅”이라고 단언하였다.



따라서 간도는 21세기적 상황과 발맞추어 동북아 국가들의 새로운 평화와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실천장으로서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그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간도문제에 대한 관심과 문제제기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이 지역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뿐만 아니라 세계 제 2차 대전의 시발점으로서도 역할을 했던 곳이다. 동북아 균형의 파열은 세계 3차 대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충분히 안고 있다. 동북아 국가가 상호 협력하여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핵전쟁의 소용돌이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따라서 동아시아 국가가 참여하면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장소로서의 간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는 인권의 가치를 제대로 보호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동아시아 네트워크가 활발하게 교류될 수 있는 장으로서의 간도(동북)는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어져야 한다. 동북아 평화를 유지하고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안정과 더불어 간도문제에 대한 인식 제고와 미래지향적인 방향 설계가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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