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지역 영유권

 

제목 : 한국, 만주 그리고 요동 반도를 따라서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0-02-25 조회수 : 1276


 










보는 시각에 따라...녹둔도와 간도 문제로 본 가린-미하일롭스끼의 『한국, 만주 그리고 요동 반도를 따라서』















 




2010-02-25 00:13:32  


 






















 




 



 

 

 

 

보는 시각에 따라...녹둔도와 간도 문제로 본 가린-미하일롭스끼의 『한국, 만주 그리고 요동 반도를 따라서』

한권의 책을 보는 생각의 차이:



동북아역사재단:

가린-미하일롭스키의 여행기『러시아인이 바라본 1898년의 한국, 만주 , 랴오둥반도』를 재단에서 번역, 출판하였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러시아 문학가의 눈에 비친 구한말 국경지대의 한국인}



잊혀진간도:



[녹둔도와 간도 문제로 본 가린-미하일롭스끼의 『한국, 만주 그리고 요동 반도를 따라서]



{잊혀진간도"목록 영토에 관련된 책들 본문 중 66번의 글}



 

동북아역사재단의 번역 .출판한 내용:



러시아 문학가의 눈에 비친 구한말 국경지대의 한국인

가린-미하일롭스키의 여행기『러시아인이 바라본 1898년의 한국, 만주 , 랴오둥반도』를 재단에서 번역, 출판하였다.

이 책은 1898년 러시아 작가 가린이 페테르부르그를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토크, 그곳에서 다시 두만강, 백두산, 압록강을 거쳐 뤼순, 요코하마에 도착하기까지 총 4개월 10일 동안의 대장정을 일지 형식으로 기록한 여행기이다. 가린은 이 여행기의 대부분을 구한말 한・중 국경지역의 상황과 그곳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생활을 아름답고 유려한 필치로 그려냈다.



러시아는 1890년대 중반부터 각종 탐사단을 파견하여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방의 지리정보와 자연환경, 나아가 경제, 사회, 풍속 등의 사회문제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친 조사를 진행하였다. 가린이 참여한 1898년의 이 탐사단은 러시아지리협회 사상 최대 규모의 것이었다.



가린의 여행은 압록강 유역의 산림채벌권 확보와 블라디보스토크와 뤼순을 연결하는 철도부설 등 실질적인 문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 여행기의 상당 부분에서 한반도 북부 국경지대의 정치적 상황과 거주민의 생활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린은 문학가답게 한국인들의 신화와 민담 등에도 깊은 관심을 표명하여, 우리 민족 기층의 정서 또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가린의 여행기는 구한말 국경지역과 그곳에 살았던 한국인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잊혀진간도"목록 영토에 관련된 책들 본문 중 66번의 글



 

녹둔도와 간도 문제로 본 가린-미하일롭스끼의 『한국, 만주 그리고 요동 반도를 따라서』 - 고(故) 김학수 교수가 한글로 번역한『조선, 1898년 - N. G. 가린의 조선풍물여행기』(서울: 단대출판사, 1981)가 가진 문제점들









19세기말에 유명했던 러시아 작가 가린-미하일롭스끼가 남긴 『한국, 만주 그리고 요동 반도를 따라서』는 1898년에 이 사람이 직접 두만강에서 여순항까지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로 보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두만강, 백두산 그리고 압록강을 직접 발로 여행한 가린(앞으로는 가린이라고 쓴다)은 이 책 많은 곳에서 국경 지역 자연 환경과 한국인들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가 그려낸 한국에 대한 그림은 아주 자세하고 때로는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까지도 짚어내고 있다. 게다가 더러는 체홉을 떠올리는 짤막짤막하면서도 정확한 문체 덕분에 책은 더욱 빛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얼핏 보면 이 책은 다른 나라에 대한 뛰어난 탐험기나 여행기 정도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가린의 여행기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이 사람이 국경 지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한국을 여행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두만강 하구에 건설할 수도 있었던 수로, 가쉬께비치만에 있던 이순신 장군 승전비, 간도에서 문제가 됐던 “중립지대 50킬로미터,” 국경 지역에서 중국 마적과 조선 백성들 사이에서 벌어지던 생존 투쟁, 압록강 중상류 지역까지 철도를 놓을 때 고려해야 할 지역과 사회 조건들... 가린은 이런 이야기를 책 속에서 지나가는 길에 슬쩍슬쩍 흘리듯이 써 놓았다. 자기가 한국을 여행한 분명한 목적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우리 국경선을 따라 펼쳐진 자연 환경과 거기에 살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자세하게 그려냈다는 데 있다. 더러는 그 사람들이 쓰던 사투리도 그대로 인용했다: “아신창도.” 그곳 사투리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으나 평안도 출신인 김학수 교수는 “아심챰도”하고 번역했다. 그리고는 “함경도 사투리로 감사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아무튼 가린이 그린 이 여행기는 100년 전쯤에 우리 조상들이 국경 지역에서 살아가던 모습을 되살려볼 수 있는 민속학 자료로서도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번역은 정확해야 한다.









이 글은 김학수 선생이 1981년에 번역한 『조선, 1898년』이 가진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새롭게 번역되어야 하는 이유를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조선, 1898년』은 두 가지 커다란 흠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김학수 선생이 가린을 정보 수집원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번역본 전체에 걸쳐서 가린은 작가이자 민속학자로만 그려진다. 그렇게 바라볼 경우 가린 여행기는 많은 가치를 잃게 된다.



또 하나는 번역의 정확성이다. 우리 옛 모습을 그대로 되살리기 위해서 번역이 정확해야 함은 필수 조건인데, 이따금 애매하거나 부정확하게 번역된 곳이 보인다. 여기에서 나는 김학수 선생이 보인 문학 재능을 깍아 내리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영양실조에 걸린 초라한 곡식들(번역본 상권, 16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선생이 보인 문장력은 대단히 뛰어나다. 다만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선생이 살던 시대 조건이다. 『조선, 1898년』 많은 곳에서는 사전(지금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노한사전』(서울: 주류 출판사)이 나오기 전인 1981년에 번역된 것이지만 같은 표현을 쓴 곳을 찾을 수 있는데 아마도 일본 사전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에만 의지하여 번역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러시아 사람들과 자주 만나 얘기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곳인데, 냉전기를 살아가던 우리 사회 조건이 그랬다. 이 글에서는 이 두 가지 문제점, 곧 국경 지역에 대한 정보 수집이라는 면과 번역에서 보이는 알쏭달쏭한 표현들이 지적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린은 스스로 한국 국경 지역을 여행한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는 다만 “출발직전에 블라디보스또끄와 여순항 사이의 입지 조건을 조사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나와 우리 동료들은 한국과 만주를 방문하고 관찰해 달라는 이 부수적인 제안을 커다란 만족과 더불어 받아들였다(번역본 상권, 19페이지)”고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가린이 책에서 밝힌 여행 동기 모두인데, 이 문장에서 누가 어떤 조건으로 부탁을 했는가 또 “블라디보스또끄와 여순항 사이의 입지조건”과 “한국과 만주를 방문하고 관찰해 달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김학수 선생이 번역한 『조선, 1898년』이 가진 문제는 바로 이 여행 목적에 있다. 문학을 전공한 김학수 선생은 가린-미하일롭스끼의 책을 단순한 여행기로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이유로 『조선, 1898년』에서는 국경 지대 자연 묘사나 조선 사람들 생활 모습을 그린 곳에만 많은 관심을 두고 번역했다. 이런 면에서 아마도 『N. G. 가린의 조선풍물여행기』 하고 부제를 달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린-미하일롭스끼는 한국 국경을 여행한 목적을 여기저기에서 내비친 바 있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가린이 두만강에서 백두산에 오른 다음 압록강으로 내려온 1898년에 러시아는 한국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또 러일전쟁에 대한 장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가린은 “블라디보스또끄와 여순항 사이의 입지조건”을 조사하고 “한국과 만주”를 관찰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에서 파견된 사람이다. 그의 책 여기저기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파견된 사람’이라는 뜻인데, 가린과 함께 여행한 러시아 사람들 구성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가린 탐험대는 천문학 전문가 2명, 지리학자 1명, 한반도 북쪽 지역을 잘 아는 몇몇 사람들 그리고 병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확한 사람 수는 알 수 없지만 대강 10명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번역본에서는 ‘대원들의 조선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제목으로 95-98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다). 이것은 분명히 러시아 정부의 협조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가린이 단순한 여행가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가린 탐험대가 첫 번째로 한 일은 두만강 하구 물길을 조사한 것이다. “물줄기를 바꾸는 사업은 큰 장애가 없을 것 같다. 그 때 운하의 길이는 약 4.5킬로미터가 될 것이다. 지형은 아주 평탄하고 토양도 부드럽다(번역본 상권, 109-110).” 이 구절은 러시아 극동 지역 물자공급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시베리아나 극동에서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호주에서 수입했다. 수입한 식량을 내륙으로 운반하기 편한 길을 찾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가린은 단순한 여행가가 아니었다.



백두산에서 압록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가린은 철도건설에 대해서 얘기했다: “여기에 철도를 건설한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준비하는 데에만 1년. 그 해에 물자를 미리 사들이고 겨울에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운반하는 동안에 말이나 다른 가축들을 먹일 곡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그들을 먹일 풀이 없기 때문이다. 식량을 사들이는 일은 조금씩 진행될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한꺼번에 많이 팔지 않기 때문이다.



숙련 노동자로서 러시아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한국인들은 물자를 운송하는데 겨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노동력은 당연히 중국인들 사이에서 찾아야 한다(가린, 러시아 원본 217페이지).”



이 구절에서 러시아는 압록강 중류 지역까지 철도를 건설할 것인가 하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순항에서 철로를 끌어올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당시 압록강 남과 북쪽에 있던 나무를 비롯한 자연자원을 러시아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고종한테서 허락을 받은 압록강 조차권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업을 추진했던 러시아인 베조브라조프는 당시에 만주와 한반도에 몇몇 연구자들을 파견하여 수익성을 조사했고 러시아 지리학회 또한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김학수 선생이 번역한 『조선, 1898년』에는 철도와 관련된 이 두 문단이 빠져 있다(번역본 하권, 141-146).



 



운하와 철도 건설을 얘기한 곳에서 가린이 한국 국경 지역을 여행한 목적은 어느 정도 분명하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작가로서 그저 한국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정책 방향을 정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파견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는 철도 전문가였기 때문에 이런 일에 안성맞춤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그는 한국과 중국의 국경 상황에 대해서도 지나가는 길에 슬쩍 얘기했다: ““아닙니다. 이건 우리 땅입니다. 여기서 백 오십 리까지 우리 땅인데, 우리가 미처 경계표시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비적들이 우리의 좋은 경작지들을 강탈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중국인들이 마음대로 강탈해 간 약 50킬로미터의 중립지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번역본 상권, 207).”



 



지금 한국인들 관심을 끌고 있는 “간도 문제”를 얘기한 구절이다.



 



가린은 두만강을 따라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한국인들이 “여기서 백 오십 리까지 우리 땅”이라고 한 얘기를 그대로 옮기고 “50킬로미터의 중립지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자기 생각을 달았다. 이 구절은 가린이 한국에 오기 전부터 이 “간도 문제”를 알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김학수 선생이 옮긴 『조선, 1898년』의 주해 48)에서는 백두산 정계비만을 얘기하고 있을 뿐 “중립지대 50킬로미터”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설이 없다.



 



사실 간도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백두산 정계비만이 아니라 “중립지대 50킬로미터”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인데, 김학수 선생은 이 점을 놓치고 있다.



 



이 “중립지대 50킬로미터” 문제에 대해서는 최근 간도 문제 전문가인 박선영 선생이 「한중 국경획정의 과거와 현재」라는 논문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간도 문제는 지금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북쪽으로 50킬로미터 들어간 넓은 지역이 우리 땅이었음을 주장하는 것인데, 김학수 교수가 번역을 했던 1981년에는 이 문제가 그다지 깊이 있게 연구되지 않았다.



 



 따라서 “중립지대 50킬로미터”라는 문구가 가진 뉘앙스를 『조선, 1898년』이 번역된 1981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이런 사정은 『조선, 1898년』에서 이순신 장군 승전비를 번역한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린은 이순신 장군 승전비와 그곳에 살던 한국인들에 대해서 얘기했다. 가린은 그 승전비가 있던 곳이 가쉬께비치 만이라고 썼는데, 문제는 그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가쉬께비치 만은 두만강 바로 북쪽에 있는 러시아 땅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녹둔도가 바로 이 가쉬께비치 만이다. 녹둔도 문제와 관련하여 가린이 얘기한 이순신 장군 승전비가 있던 곳은 지도라든가 또는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 추정해 볼 수 있다(나는 1931년에 소련에서 발행된 “뽀시에뜨 지역 지도”라는 자료를 가지고 있고 이 지도를 통하여 가린이 얘기한 지역을 대강 짐작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김학수 선생은 이 승전비를 번역한 곳에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녹둔도 문제” 전공자들조차 이 책에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번역본 상권, 119-120).



 



가린은 승전비를 얘기하면서 이순신 장군 승전 이후 400년 동안 그 땅을 지키며 살아온 조선인들에 대해 전했다.



 



살기 힘들어도 승전비 관리에는 온갖 정성을 다 들인다고. 문제는 그때 거기에 살던 조선인들은 국적으로 볼 때 러시아인이었다.



 



1860년에 북경조약이 체결된 다음 녹둔도가 러시아 영토로 편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60년에 있었던 러시아 인구 센서스에서는 조선인이 한 사람도 살고 있지 않았다고 러시아 기록은 전하고 있다.



 



이것은 곧 1860년에만 해도 러시아가 녹둔도를 자기들 영토로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당시 러시아인들이 가지고 있던 영토 관념에 따르면 어떤 지역에 자기 나라 사람들은 살지 않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으면 자기들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인구 센서스 기록과 가린 여행기는 서로 모순된 점을 전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 “녹둔도 문제”를 해석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가린이 국경지역을 여행하던 1898년에 러시아는 “녹둔도 문제”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조선 정부는 1883년에 어윤중을 통하여 이 영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청나라에 요청했다. 하지만 청나라는 이를 무시했고 조선은 곧장 러시아에 이 문제를 제기했다. 경흥 부사를 통해서 이 문제를 러시아 전달했다. 당시 러시아 국경수비대장 마쮸닌은 녹둔도가 “논쟁의 여지없이 러시아에 속하는 지역”이라고 뻬쩨르부르그에 보고했고 러시아는 그 후에도 자료 조사를 계속하며 혹시 있을 지도 모를 영토 협상에 대비했다(심헌용, 「러시아의 극동진출 전략과 국경을 둘러싼 조․러 양국의 대응 - 녹둔도를 중심으로」『군사』84-87 페이지). 1860년과 1883년 사이에 러시아 정부가 녹둔도를 바라보던 관점이 바뀐 것이다.



가린은 이순신 장군 승전비에 대해 얘기하면서 조선과 러시아 사이에 벌어지던 영토 문제를 슬쩍 전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앞뒤 맥락으로 볼 때 그는 분명히 우리 땅을 밟기 전에 이 “녹둔도 문제”를 알고 있었고 여기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얘기한 것이다. 400년 전부터 조선 사람들이 거기에 살고 있었다고. 하지만 한국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조차 대개 이 녹둔도에 조선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60년 이후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1860년에 북경조약이 체결된 다음부터 조선인들이 연해주로 많이 넘어가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 전에도 녹둔도에 조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가린이 전한 이순신 장군 승전비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번역본 『조선, 1898년』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흠은 이렇게 가린이 한국 국경 지역을 여행한 목적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데 있다. 그가 한국을 여행한 것은 작가다운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러시아 극동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정보 수집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한국과 중국 국경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녹둔도에 들러서는 러시아 정부의 영토 정책을 은근히 비판하는 얘기를 전했다.



더 나아가 가린은 이 국경 지역에 대한 중요하고도 많은 정보를 러시아 정부에 넘겨주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것은 지금도 러시아 문서보관소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린의 책이 제대로 번역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또 하나 있는 것이다. 다만 가린의 책을 주의 깊게 읽고 또 200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그가 남긴 다른 출판 자료를 찾던 나는 김학수 선생 번역본에서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선생은 “주해”에서 가린이 다른 곳에서 발표한 몇몇 자료들을 소개한 바 있다. 이 출판된 자료들은 모두 수집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선생은 주해 69)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898년 가을의 탐사성과> (SPS, 1901년, 312-313페이지) 하는 식으로만 밝혀두었기 때문에 이 자료들을 찾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1898년』이 가지고 있는 번역 문제는 대체로 사전과 연관되어 있다. 이 책이 번역된 1981년에는 『노한사전』이 출판되기 전이지만 『조선, 1898년』에서는 『노한사전』이 남긴 흔적이 그때에도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 1898년 (上)』 158-163페이지에는 추석을 맞이하던 조선 사람들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날짜는 정확하게 9월 18일이다.



김학수 교수는 163페이지에서 사람들이 ‘고인을 추도하기 위해 무덤에 음식과 술을 가져다 바친다’ 하고 번역했는데 쉽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고 번역하면 될 일이다. 『노한사전』에는 가린이 쓴 ‘뽀민끼’라는 러시아어를 ‘①〔宗〕추도식, 추도 ② 공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제사 지내는 모습을 ‘고인을 추도하기 위해’ 하고 번역하여 뭐가 뭔지 알쏭달쏭하게 돼버렸다.



같은 163페이지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변두리 언덕마다 무리를 짓고 있다. 그곳은 모두가 묘지며, 모두가 복받은 산들인 것이다’하고 번역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변두리 언덕’이다. 변두리란 ‘어떤 지역의 가장자리’를 뜻한다고 국어사전에는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는 대개 도시 변두리라는 뜻으로 쓴다. 가린은 이 책에서 산골 마을 둘레에 있는 언덕이라는 뜻으로 이 표현을 썼기 때문에 ‘마을 둘레 언덕’이라고 번역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추석 날 아침 풍경을 그린 159페이지에서는 ‘여섯 시 경에 마을의 어린애들이 왔다. 그들은 오늘 흰색, 남색, 분홍색, 초록색 등 깨끗한 명절 옷들을 입고 있다’고 번역했다. 명백한 오역이다. 가린이 쓴 원문에서는 ‘깨끗한 명절 옷’이 아니라 아이들 몸이 깨끗했다는 뜻으로 씌어져 있다. 평소에 지저분했던 아이들이 명절을 맞이하여 몸을 깨끗이 씻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김학수 교수는 ‘깨끗한 명절 옷들을 입고 있다’고 번역했다. 김학수 교수는 아이들이 더러워서 ‘창피하다’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번역했는지 모르겠지만 번역은 정확해야 한다. 또 당시 러시아 농민이나 노동자들도 더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가린은 100페이지 정도에 걸쳐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에서 널리 얘기되던 민담이나 우화 같은 이야기들 64개를 소개했다. 러시아로 돌아가는 길에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남은 것만을 책에 실었다고 그는 밝혔다. 이중에서 “토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토끼의 간”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다만 국경에서 중국 사람들한테 시달리던 우리 조상들 고단한 삶을 잘 보여준다. 토끼는 용왕을 속이고 도망친 다음 간을 빼주느니 마적이 되겠다며 뛰어간다. 고(故) 김학수 교수는 가린이 전한 이 얘기들도 번역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 이야기를 번역하는 것은 우리 세대 몫이다.









글ㆍ박명용.



참고논문.



박명용, 「연해주를 둘러싼 한국과 러시아 영토문제 -1650년에서 1900년까지」『북방사논총』 4호(2005.4).



박선영. 「한중 국경획정의 과거와 현재 - 유조변, 간도협약, 북중비밀국경조약 분석을 중심으로 -」 『북방사논총』 4호(2005.4).



심헌용. 「러시아의 극동진출 전략과 국경을 둘러싼 조․러 양국의 대응 - 녹둔도를 중심으로 -」 『군사』 56호(2005.8).



목록  
총 방문자수 : 5,728,914 명
오늘 방문자수 : 671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