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지역 영유권

 

제목 : "松花江 .黑龍江 이남이 한국영토"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09-11-20 조회수 : 733

<단독> "松花江 .黑龍江 이남이 한국영토"
간도(間島)연구 최고권위 盧啓鉉 교수 고문서 최초공개


여영무 뉴스앤피플 대표
기사입력 2009/11/15 20:03


1903년 11월 대한제국 고위관리가 송화강․흑용강 이남이 한국영토라고 이도재(李道宰)대한외무대신에게 보고한 고문서가 최근 최초로 발견되었다. 1712년 한․청간에 합의한 백두산 정계비에서 송화강과 흑용강까지의 북쪽을 향한 八자영역은 오늘날 만주(滿洲)전체의 절반에 해당되는 광활한 지역으로 안중근 의사가 이또 히로부미를 처단한 장소인 하르빈까지 포괄하고 있다.

전 창원대 총장 노계현 교수 송화강까지 우리땅이라는 고문서 최초공개

이 고문서를 우리나라 최초로 공개한 사람은 전 昌原大총장을 지낸 노계현 교수. 50여년간 간도분쟁사를 연구한 노 교수가 지난 11월 9일 뉴스앤피플에 단독공개한 이문서 제목은 "慶興監理 黃祐永이 間島問題에 관해 外部大臣 李道宰에게 內呈(보고)한 意見書"로 돼 있다.

1903년 서울주재 일본공사관예하 성진(城津)분관에 주재하던 분관주임 가와가미 다쓰이치로(川上立一郞)가 이 의견서를 입수하자말자 자기상사인 서울주재 공사를 배재하고 비밀리에 일본본국 외무대신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郞)에게 직접 이 의견서를 긴급 보고했다. 그만큼 일본 입장에서는 급박한 전략적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계현 교수는 "백두산 정계비는 1712년 5월 15일 淸나라 강희제(康熙帝) 51년, 우리나라 숙종38년 때 세워진것으로서 한국과 청나라사이 합법적으로 합의한 국경이다. 두나라 관리들이 왕명을 받들어 세밀하게 현장답사 끝에 합의한 정계비인 것이라"고 말했다. 비석위에는 대청(大淸)이란 두글자가 정자로 새겨져 있다.

1712년 한․청간 백두산 정계비는 국제조약과 동일효력

경흥감리(慶興監理-국경부두 관리자) 황우영(黃祐永)은 이번 최초로 공개된 이 의견서에서 "이미 경계를 확정한(정계비 기준) 내지(內地)는 척토(尺土-한치의 땅)나 일민(一民-한사람의 국민)이라도 오히려 방기하여 적을 돕게 하고 또 서로 다투는데 까지는 이르지 않게 할것인데 하물며 넓은 땅, 많은 백성을 가지고서 병졸(청나라)의 칼날에 피묻히게 할 수 있으리오"라면서 우리정부가 송화강․흑룡강 이남의 간도영역을 사수할 것(군대라도 파견해서)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고려와 몽고외교사의 권위이기도한 노계현 교수에 따르면 백두산 정계비는 국제조약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고 했다. 그렇다면 백두산부터 송화강과 흑룡강까지 八자형으로 북쪽으로 확산되는 만주땅은 한국영역임이 틀림없다고 봐야 할것이다.



문제는 일제가 을사보호조약을 빙자, 만주를 대륙침략거점으로 삼고자 만주철도부설권및 광산채굴권을 획득하기 위해 간도를 중국과 맞바꿔 먹은 불법행위(청-일간 간도협약-1909년 9월 4일)를 어떻게 해결하는냐 하는 것이다. 노계현 교수는 그 해결방법으로 당시 청국과 대한제국사이 간도분쟁을 둘러싸고 진행하던 2차국경회담에 이어 지금의 중국과 한국이 제3차회담을 열어 간도에 관한 영유권과 국경문제를 새로이 해결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노계현 교수는 을사보호조약(1905년)은 어디까지나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보호한다는 취지이지 주권국가의 영토를 당사국인 대한제국을 배제하고 타국에 비밀리에 양여하라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따라서 1909년 일본이 한국을 배제하고 청나라와 맺은 간도협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노계현 교수는 11월 14일 뉴스앤피플과의 통화에서 일본의 함북 성진(城津)주재관리는 황우영 경흥감리가 이도재 외무대신에게 올린 의견서를 도중에 입수하고 상사인 서울주재일본공사를 배제하고 외무대신에게 직보한 이유는 당시 만주를 둘러싸고 관계국간 헤게머니 쟁탈전이 치열하고 긴박한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그 이유로 1889년 대한제국이 한․청수호통상조약으로 완전독립을 선언했고 1900년 러시아가 만주전역을 점령했으며 1902년 6월 25일 대한제국이 이범윤(李範允)을 간도시찰사로 임명, 그로 하여금 현지에서 간도호구조사를 통해 한국거주자들을 보호한점등을 들었다.

한때 이범윤 간도관리사가 한인 호구조사와 세금징수업무 처리

대한제국은 1903년 이범윤을 다시 간도관리사로 승격, 거주한인들에 대한 호적부정리와 세금징수업무를 하도록 했다. 당시 청국도 이에 맞서 자체호구조사를 했다. 당시 거주한국인과 청국인사이 마찰로 인해 9건의 무력충돌도 발생했으며 그 가운데는 200명이란 비교적 큰 규모의 교전도 있었다고 노교수는 밝혔다. 일본은 이런 상황을 감안, 만주침략거점으로서 간도를 선점하려는 전략아래 간도협약을 서둘러야 할 급박한 시기로 보았다.

황우영은 이도재(李道宰)외무대신에게 올린 의견서에서 송화강과 흑룡강까지가 우리영역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다음과 같은 역사적 법적사실을 적시했다.

"백두산 정계비 비석의 동서에 물이 흐르는 계곡이 완연히 八자모양같아서 방위를 자세히 살펴본즉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압록강이 되는 계곡이며 동으로 흐르는 물은 토문강(土門江-송화강의 상류지류)이 되는 수원임이 확실하여 의심할것이 없고 또 조금도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비석자리로 부터 동으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 30~40보가량 내려오면 드문드문 돌을 쌓은 무더기가 20여리밖에 있는 대각봉(大角峯)까지 연해 있고 이로 부터는 흙을 쌓은 무더기가 산을 따라 둘러 있는데 동으로 멀리 70여리에 이른다. (중략) 돌무덤과 흙무덤이 없는 곳에는 깊은 계곡에 잔잔히 흐르는 냇물은 큰 강을 이루어 5~6백리를 흘러서 송화강과 합류하고 또 흑룡강으로 들어가 합류하여 바다(동해)로 들어간다. 이것은 만고에 바꾸지 못할 계한선(界限線-경계선)이 된다고 한다. 이말이 적확(的確)할 것 같으면 어찌 이 토문강의 수원을 버리고 내지(內地)에 있는 두만강을 취하여 수백년된 계한선이라고 할 수 있으리오"

황우영, 송화․흑룡강이남 간도영역 해결방안 조정에 긴급 건의

황우영 경흥감리사는 긴급 건의 의견서에서 다음과 같은 간도영역 해결방법을 조정에 건의했다.
"(전략)국외자를 동원, 지도를 작성하면 저들(청국)은 반드시 완강하지 못하고 또한 스스로 물러설것이다. 천여리 옛 강토와 수십만의 생령(백성들)을 일거에 다 우리판도에 예속케하면 간민(墾民-간도개척 거주민)은 안도하고 강토는 이로써 공고할것이다. 다만 국계(國計)와 민생에 크게 이익이 있을뿐 아니라 장차 대한의 명성이 만국에 떨칠것이다" 황우영은 의견서 끝부분에서 이런 해결책이 현지민심의 반영임을 강조했다.



2004년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도 간도협약은 무효라고 밝혀



2004년 10월 22일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도 간도협약 문제와 관련해 “간도협약은 법리적인 측면에서 무효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 장관은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의 외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간도협약은 국제법적으로 무효라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한나라당 이성권(李成權)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동아일보 2004년 10월 23일자 1면) 다만 반 장관은 “법리적으로 무효라고 해서 간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간도협약과 간도 영유권 문제는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는 “국제 정세의 현실 때문에 우리가 간도 문제를 외교적으로 제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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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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