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 녹둔도 영유권

 

제목 : 김대중정부 연해주 벼 1만t 대북비밀지원설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09-02-07 조회수 : 1107


글번호 1169 작성일 2008-09-02 (10:24)

글쓴이 이병화 조회 57


[추적] – 월간조선

9. 金大中 정부, 연해주 벼 1만t 對北 비밀 지원說

“5년간 28차례, 1만t의 벼를 러시아에서 구입, 철도로 對北 지원”



李秉華 국제농업개발원장
“벼 구입 비용은 金大中 대통령 측근 이름으로 내 계좌에 송금됐다”



朴智元 前 대통령 비서실장
“金大中 대통령이나 측근들이 벼 구매자금을 지원한 적 없다”



金演光 편집위원 (yeonkwang@chosun.com)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1998년 1월부터 임기 말까지 러시아 연해주에서 생산한 벼 1만 t을 김대중 대통령 개인의 ‘통치자금’ 성격의 돈으로 구입, 북한에 지원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벼 지원은 남북화해·남북정상회담 분위기 조성 등을 위해 비밀리에 추진됐고,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후에도 계속됐다고 한다.
러시아 연해주 현지에서 對北(대북) 벼 지원사업을 담당했던 국제농업개발원 李秉華(이병화·64) 원장은 月刊朝鮮(월간조선)에 이 사업의 全貌(전모)를 최초로 털어놓았다. 이 원장은 “이 사업에 소요된 비용은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이나 국가정보원의 공작자금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 개인의 ‘통치자금’ 성격의 돈에서 조달됐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朴智元(박지원) 의원은 이 원장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자체적으로 확인해 보니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모셨던 어떤 사람도 이병화 원장에게 비공식적으로 돈을 보낸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사업을 측근에서 지원한 농업 전문가다. 1991년 러시아 연해주의 우수리스크 농업아카데미에 유학, 농업경영학 준박사, 경영학 박사학위(1996년)를 취득했다. 러시아 하원의원이었던 고 유리 텐(한국명 정홍식), 李明博(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시베리아 학회의 고문을 지낸 러시아통이다. 다음은 이병화 원장과의 일문일답.

― 러시아 연해주에서 벼를 구입하여 북한에 지원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연해주에서 일하면서 북한 주민들이 식량난으로 ‘떼죽음’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는 ‘고난의 행군’이 1994년부터 시작해서 1996년에 끝난 것으로 아는데 그렇지 않다. 250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은 1998년까지 계속됐다. 뭔가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출발은 인도적인 긴급지원이었던 셈이다.”

― 처음 지원한 식량은 어느 정도 규모였나.
“화차 세 량 분량으로 총 185t이었다. 연해주 지역에서 모은 벼를 내 명의로 북한적십자사에 보냈다.”

李鍾贊 前 국정원장 “기억나지 않는다”


― 첫 지원 때부터 김대중 대통령 쪽에서 자금 지원을 했나.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과는 일면식이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열린 농민단체 신년하례회 때 처음 만났다. 첫 벼 지원 후 정보계통을 통해 지원사실을 김대중 대통령 쪽에 알렸다. 그리고 자금지원이 계속 이어졌다.”

― 식량 구입에 필요한 돈을 목돈으로 한꺼번에 받았나.
“내가 식량을 북에 들여보내고 送狀(송장)을 보내면, 돈을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러시아의 공식서류로 식량지원이 확인됐기 때문에 서로 신뢰하면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 이 원장이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자금은 어떤 성격의 돈이었나.
“일종의 통치자금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 측근 명의로 내 계좌에 돈이 송금됐다.”

이 원장이 공개적으로 북한에 지원한 벼는 6800t, 비공개로 지원한 것이 3000t으로 총 9800여 t이었으며, 벼 구입 자금으로 40억 원이 들었는데, 국제 곡물시세의 5분의 1 에 불과한 저렴한 가격으로 벼를 사들였기 때문에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국정원장을 지냈던 李鍾贊(이종찬) 前(전) 국정원장에게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전용해서 쓸 수 있는 국가정보원 자금이 있는가’를 물었다. 이 원장은 “국민의 정부 이전에는 ‘대통령 정보비’가 국정원(옛 안기부, 중앙정보부) 예산에 포함돼 있었지만, 국민의 정부에서 사라졌다”고 밝혔다.
“1998년 국가정보원장에 취임해서 인수인계를 받는 과정에서 안기부 예산 항목에 ‘대통령 정보비’가 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당한 액수의 돈이었다. 이 내용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찾아가서 보고했다. 김 대통령이 ‘이게 무슨 예산이냐’고 묻기에 ‘대통령도 통치에 따르는 정보를 입수해야 하고, 그걸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예산’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통령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알겠다’고만 대답했다. 사흘 후에 김 대통령이 나를 부르더니 ‘이런 돈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이 말썽이 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재임 중 정보비를 안 쓰겠다’고 했다. 사실 깜짝 놀랐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그 정보비에 손대지 않았고, 나도 ‘국정원장 정보비’를 한 푼도 안 쓰고, 국정원장 판공비만 집행을 했다.”
이종찬 전 원장은 ‘연해주를 통해 북한에 벼 지원을 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병화 원장은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자료를 한 묶음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다. 벼의 대북 지원 시 러시아 세관 통과 때 제출했던 송장, 해마다 북한에 곡물을 보낸 실적이 적힌 서류들이었다. 와이셔츠 박스로 한 통 가득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끝나면서 정보기관 쪽에서 관련 서류를 다 회수해 갔다. 여기 남은 서류들은 ‘언젠가 필요하지 않겠나’ 싶어 따로 보관해둔 것들이다.”
‘연해주 생산 2001년산 벼 북한 반출 최종 보고서’(문서-2)에 따르면 2001년의 경우 다섯 차례에 걸쳐 31개 화차에 1600t의 벼를 실어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보냈다. 벼는 연해주 호롤郡(군) 지역에 진출한 한국 영농기업 아그로상생, 여주군 영농후계자 모임 등이 생산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원장은 “러시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5년간 총 28차례 북한에 지원했다”고 기억했다.
2001년 4월 28일 우수리스크 세관을 통과한 증명서(문서-1)를 보면, 화차 한 량당 50t 안팎의 벼가 실렸다. 이날 러시아의 하산역을 통과해 두만강의 강구역으로 넘어간 벼는 화차 7량에 총 360t 분량이었다.

“아나톨리 리라는 러시아 이름으로 활동”

이병화 원장은 그 무렵 아그로상생 등이 연해주 정부로부터 농지를 임차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이 원장은 “하바로프스크주에서 일하는 2만여 명의 북한 벌목공을 한국 영농기업에서 일하게 하고, 연해주에서 생산한 쌀을 북한 지역에 공급하는 ‘큰 그림’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북한으로 벼가 넘어갈 때마다 내가 북한 지역에 들어가서 벼가 분배되는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고 했다. 이병화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이 원장은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북한에 드나드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아나톨리 리라는 러시아 이름으로 오갔다. 내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극동지역 농업경제 자문관을 지냈고, 연해주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기 때문에 북쪽에서 거부감이 적었다. 식량 분배 현장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은 나를 고려인으로 알았다. 실정법을 따지자면 북한에 잠입 탈출한 셈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이지만 국정원의 묵인하에 방북했다.”

― 식량을 보낼 때 철도만 이용한 이유는 뭔가.
“舊(구)소련 시절 사회주의 형제국에 쌀을 무상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에 의해 연해주에서 재배한 쌀을 철로를 이용해 북한으로 보냈는데, 그 철로가 지금 그대로 살아 있어 이용 가능했다. 러시아 화차를 타고 평양 아래 지역까지 들어가기도 했다.”

이 원장은 “1962년 소련과 북한이 체결한 ‘朝ㆍ蘇(조ㆍ소) 철도협약’에 따라 지금도 러시아 열차가 북한을 경유해 남한지역으로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 협약에 따라 지금도 러시아를 거쳐 체코와 몽골 등 11개 이웃나라에 갈 수 있다. 러시아가 북한을 경유해 갈 수 있는 나라는 한국 한 곳뿐이다. 러시아 쪽의 철로는 광궤이고 북한 지역은 표준궤다. 러시아의 하산에서 북한 나진·선봉으로 들어가려면 국경에서 기관차의 바퀴 폭을 7.4cm 줄여야 한다. 국제법상으로는 러시아 기관차가 화물을 싣고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올 수 있는 길이 확보돼 있는 셈이다.”

“북한 농민들 맷돌로 벼를 갈아 먹어”


― 왜 쌀이 아니고 벼를 지원했나.
“金泳三(김영삼) 정부 때 15만 t의 쌀을 지원한 이후 대북 지원 쌀의 군사적 전용이 늘 시비가 됐다. 쌀을 보내면 군부대에서 곧바로 실어 갈 수 있지만, 벼를 보내면 도정을 해야 한다. 도정 시설은 대부분 농촌지역에 있다. 그래서 벼를 보내겠다고 고집한 것이다.”

― 벼가 주민들에게 분배되는 것을 확인했나.
“전부라고는 자신할 수 없지만 대부분 확인했다. 농민들이 맷돌로 벼를 갈아서 쌀밥을 지어 먹었다. 쌀겨와 왕겨는 개와 닭에게 먹였다. 1990년대 후반의 북한 아사자들은 대부분 농촌지역에서 발생했다. 우리가 지원한 벼는 아사 직전의 농민들에게 갔다.”

북한의 최근 식량 사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이 원장은 “올해 들어 북한에서 이미 수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의 주장이다.

“중국이 곡물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쓰촨성 대지진으로 북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북한의 유일한 보급선이 끊겨 북한 주민들의 식량사정은 ‘고난의 행군’ 시절보다 더 나빠졌다. 다행히 그때만큼 굶어 죽는 사람은 나오지 않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배급을 준다’는 이야기를 믿고 기다리다가 굶어 죽었다. 북한 주민들이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비록 한 끼를 먹을 정도지만 먹을거리를 숨겨 놓았고, 장마당에 나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더구나 올해 감자 작황이 좋아서 6월 하순쯤이면 식량난이 다소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압록강·두만강의 국경을 봉쇄하고, 밀무역을 차단하고 나섰다. 지금은 도시 근교, 군수업체에 연결된 사람들 사이에서 아사자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농촌지역에서는 소금만 있으면 풀죽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으니까 아직 버티고 있다. 이대로 가면 최소한 10만 명 이상의 아사자가 나올 걸로 보인다.”

― 북한에 벼를 보낼 때 누구 명의로 보냈나.
“남양알로에, 아그로상생, 새마을지도자 등의 이름으로 보냈다. 이들 민간단체가 무상으로 보내준 쌀까지 합치면 지원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명의는 다양한 민간단체 이름으로 했지만, 북한의 상층부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보내준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 받는 쪽은 어디였나.
“북한적십자사, 조선원예공사,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등이 받았다.”

― 보낸 벼가 1만 t 정도다.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관계가 호전됐는데 지원 규모가 왜 커지지 않았나.
“북한 농촌지역에 직접 벼를 가져다 주는 방식의 지원에 북한 군부가 불만이 컸기 때문에 적은 양을 조심조심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김대중 자금지원은 사실무근”

― 연해주 루트를 통한 비밀 대북 식량지원이 왜 盧武鉉(노무현) 정부로 이어지지 않았나.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권을 이어받은 것 아닌가? 당연히 사업이 승계될 줄 알았다. 지원규모가 더 커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노무현 당선자의 인수위 쪽에 사업을 타진했더니, ‘우리는 모르겠다’면서 반응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사업을 계속할 줄 알고 1억5000만 원 상당의 벼를 미리 보냈다가 그 비용을 내가 안게 됐다.”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朴智元(박지원)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병화 원장에게 러시아산 벼의 대북 지원을 위한 자금지원을 한 적이 있느냐’는 사실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다.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 김대중 대통령 쪽의 자금지원으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벼를 사서 북한에 지원했다고 하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
“전혀 처음 듣는 소리다.”

― 이병화 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통치자금’ 성격의 돈 40억 원을 지원받았다는데.
“그런 돈이 어디 있나.”

― 자금지원을 한 사실이 없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시절 개별적인 대북지원이나 대북접촉을 단연코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40억 원이나 되는 돈을 비공식적으로 지출하면서 식량 지원을 해야 할 이유가 있겠나.”


―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사람은 확실하게 있는데, 준 사람은 없는 상황이다.
“그분의 이야기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대통령이 소규모 쌀 지원이 이뤄질 때마다 영수증을 확인하고 측근을 통해 돈을 보내줬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 정말 자금을 지원한 적이 없나.
“없다. 그런 형태의 대북지원이 있었나 없었나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돈을 준 일이 없다는 얘기다. 돈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하니 은행 계좌가 있을 것 아닌가. 계좌 추적을 해 보면 금방 드러날 일이다.” 월간조선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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