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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동북아 외교 전환점…美·中 균형잡기 관건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5-09-13 조회수 : 314

 

[TOPIC] 새로운 한중 관계 ‘정열경열(政熱經熱)’ 시동 | 동북아 외교 전환점…美·中 균형잡기 관건
기사입력 2015.09.07 12:17:13 | 최종수정 2015.09.07 14:02:39 싸이월드 공감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지난 9월 3일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오른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박근혜 대통령이 9월 3일, 중국 베이징의 중심 톈안먼 광장 성루에 올랐다. 광장에는 1만2000명의 중국군이 사열했고 중국의 첨단 무기들이 선을 보였다.

30년 전, 아니 어쩌면 10년 전만 해도 우리 대통령이 중국 군대의 열병식에 참석하게 될 것이란 사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제 현실이 됐다. 65년 전 6.25전쟁에서 피리를 불고 꽹과리를 울리며 인해전술로 한반도를 뒤덮었던 중국 의용군을 여전히 기억하는 70대 이상 국민에게는 정치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일이다.

그래서 외교가에선 박 대통령의 이번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과 열병식 참관을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중 외교의 최대 사건으로 평가한다. 새로운 한중 관계로 돌입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이번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박 대통령의 참석을 성사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전승절 행사를 기획했던 초기부터 박 대통령을 초청 1순위로 정하고,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로 한 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앞서 호명할 정도로 최고의 예우를 다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물론 특별 단독 오찬 자리를 마련했고, 권력 2인자인 리커창 중국 총리와의 별도 회담도 준비하는 정성을 보였다.

열병식 관람 자리 배치를 두고 푸틴 대통령 옆자리로 배치한 건, 박 대통령에 대해 중국이 얼마나 큰 의미를 뒀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이 섰던 그 자리는 중국과 혈맹을 자랑했던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과 환하게 웃으며 열병식을 참관했던 바로 그 자리다. 실제 청와대 외교라인 관계자는 “중국 고위 관료들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박 대통령이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당부를 하고 돌아갔다”며 중국이 박 대통령 초청에 보인 성의에 대해 귀띔한다.

▶열병식 참석으로 이어진 ‘외교 저금론’

‘정냉경열’에서 ‘정열경열’의 시대로

한미일 vs 북중러 패러다임 탈피 시동

우리나라 대통령의 외국 방문 일정을 두고 이번 중국 전승절 참석만큼 방문 여부가 국민적 관심이 된 때가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를 두고 “중국의 전승절 참석 요청이 있을 때부터 박 대통령은 참석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분명 쉬운 결정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언론의 ‘오보’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미국이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반기지 않는다는 정서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게 사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과 열병식 참석은 주권적 결정 사항”이라며 한국을 두둔했다. 하지만 미국 의회를 중심으로 한 조야에서 한국의 ‘중국 경사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건 엄연한 ‘팩트’다.

때문에 청와대는 전승절 참석 발표 시기를 가능한 늦췄다. 청와대가 중국 전승절 참석을 공식 발표한 날은 지난 8월 20일. 발표 전부터 출입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지만 즉답을 피했고, 결국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과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10월 16일로 확정되고 나서야 참석 결정을 발표했다. 이미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참석 쪽으로 방향을 정했지만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발표 시기를 조정했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군사적 굴기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열병식 참석을 두고는 더 깊은 고민에 빠진 모양새가 연출됐다. 열병식 참관이 미국과 일본, 국내 보수층을 고려해야 하는 고차원 방정식이었기 때문에 열병식 참관이 국익을 고려한 고민의 산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다. 열병식 참관 결정이 전승절 행사 참석 결정이 있은 지 엿새가 지난 8월 26일에야 나온 이유다.

이 같은 결정을 두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 저금론’을 얘기한다. 한미 동맹이 누구도 의심치 않을 만큼 굳건한 바탕에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 다소 치우치는 모습이 있더라도 미국의 이해를 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반대로 한중 관계가 현 수준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방공식별구역(KADIZ, 잠깐용어 참조) 확장 발표 때도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외교적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외교 저금론’은 최근 박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는 ‘새우등 외교론’과 연장선상에 있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고래 싸움에 끼여서 등이 터지는 새우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외교에도 고정 관념에서 벗어난 ‘창조적 외교’가 필요하다는 게 박 대통령의 외교 지론. 그만큼 지금 박 대통령은 나름의 자신을 갖고 ‘균형 외교’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한국 외교의 ‘위험한 줄타기’라는 우려가 나오지만 적어도 청와대는 현재의 한미, 한중 관계를 고려할 때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관을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최대 정치 이벤트로 평가하는 중국 전문가들은 열병식 참관이 그동안의 한중 관계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과거 한중 관계는 ‘정치는 차갑고, 경제 교류는 뜨겁다’는 뜻의 ‘정냉경열(政冷經熱)’ 네 글자로 정의됐다. 실제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1992년 수교 이후 경제 교류를 중심으로 꾸준히 관계를 발전시켜왔지만, 정치 부문 교류는 경제 교류 확대에 미치지 못했다.

수교와 함께 ‘항구적인 선린우호 협력 관계’에서 시작해 2003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2008년에는 ‘성숙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기는 했지만 정치, 군사적 교류는 경제 교류에 미치지 못했던 게 사실. 역대 우리 정부의 대중국 외교 전략 역시 정치·안보 분야에선 다소 느슨한 협력을 유지하고 경제 협력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으로, 한중 무역 규모가 전체 무역액의 25%를 넘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정치적인 공감대는 적었다.

정냉경열의 배경에는 북한이 있다. 1961년 체결한 조중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잠깐용어 참조)에 따라 여전히 중국은 북한의 군사적 동맹 관계에 있고 누가 뭐래도 북한의 최대 정치·경제적인 후원 국가다. 남북 군사 대치 관계에 있는 중국이, 한국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 중국은 2011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이 있었을 때도 북한을 두둔하는 듯한 입장 표명으로 우리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 이는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공도동망(넘어져도 같이 넘어지고 망(亡)해도 같이 망한다는 뜻)’의 관계가 됐지만, 여전히 정치·군사적으로는 잠재적 적성국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북한 핵실험과 비핵화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중국에 기대했던 역할에 미치지 못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최근 보여준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북한을 비롯한 동북아 정세의 급변과 중국 내부의 권력 변화, 중국 내 여론의 형성 등 대내외적인 여건은 한국과 중국의 밀월 관계를 촉진했다. 반대로 중국과 북한은 점점 더 멀어지는 운명에 놓이게 됐다. 이런 변화가 정치도 뜨겁고, 경제도 뜨거운 ‘정열경열(政熱經熱)’의 시대를 개막하게 했다는 해석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행동 변화는 지난 8월 있었던 남북한 군사적 긴장 고조 사태와 남북 고위급 접촉의 극적 합의에서도 읽을 수 있다. 중국이 이 과정에서 남북 군사 대치 문제에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외교가의 관측이 계속 제기됐다. ‘중국 고위급 외교 당국자가 청와대를 방문해 북한 문제를 논의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을 정도다. 청와대가 이 같은 보도를 공식 부인하기까지 했지만, 중국이 북한에 어떤 식으로든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신호’를 줬다는 관측은 외교가에선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 같은 ‘중국 역할론’을 확인하는 박 대통령의 발언도 있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번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해소하는 데 중국 측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또 “한반도 통일이 동북아 평화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줬다”며 “한반도 정세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누고 싶다”고도 했다. 한반도 정세와 군사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중국의 ‘균형자’ 역할을 인정하고 앞으로도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한 셈이다.

이를 통해 박 대통령은 ‘한미일 vs 북중러’로 대표되는 동북아 정세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꿈꾸고 있다. 이미 굳건했던 북중러 3국 군사 블록의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상황. 특히 박 대통령의 이번 중국 열병식 참관은, 북중 관계의 균열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정냉경열의 시대에서 정열경열의 시대로 접어든 한중 관계. 한반도의 미래를 바꿔놓을 수도 있는 패러다임 전환의 관건은 박 대통령이 꿈에서도 고민하고 있을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이다.

잠깐용어 *카디즈(KADIZ)

한국방공식별구역. 우리나라의 영공방위를 위해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동·서·남해 상공에 설정된 일정한 공역. 1951년 최초 설정된 이후, 무려 62년 만의 조정을 통해 확대됐다.

잠깐용어 *조중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

1961년 7월 11일 중국과 북한이 베이징에서 맺은 조약으로, 당시 저우언라이 중국 수상과 김일성 북한 주석이 서명했다. 제2조에 ‘체결국에 대한 특정 국가의 침략을 방지한다. 체결국 가운데 한쪽이 몇몇 동맹국의 침략을 받을 경우 전쟁 상태로 바뀌는 즉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정광재 MBN 정치부 기자 jkj@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23호 (2015.09.09~09.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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