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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상태의 역사속 다문화인 8> 이슬람계 귀화인 장순용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1-02-07 조회수 : 1153


 



  지면발행일 2011.01.31  43면 



장순용(張舜龍)은 회회인(回回人:이슬람계)으로 본명은 삼가(三哥)이며, 그의 아버지 경(卿)은 원나라 세조 때에 지방 행정관인 필도치(必 赤)였다. 그는 충렬왕의 왕비인 원나라 제국공주의 수행원으로 고려에 왔다가 귀화하였다. 이때 낭장에 임명되고 여러 번 진급을 거듭하여 장군이 되면서 이름을 장순용으로 고쳤다. 장순용은 원나라와의 대외관계에서 사신으로 활동하며 외교에 많은 공을 세웠다. 1277년(충렬왕 3)에 원나라 주둔군의 군량미 부담을 줄였으며, 또 같은 해에 인삼 공물을 중지시켰다. 고려는 매년 인삼을 공물로 원나라에 보냈는데, 이때 인삼이 조금이라도 썩고 상한 것이 있거나 그 지방에서 나지 않아 제때에 바치지 못하면, 은이나 화폐로 대신 징수하여 민폐를 많이 끼쳤으므로 원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승진하여 벼슬이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고, 덕수현(德水縣)을 채지(采地)로 받았기 때문에 그 자손들은 덕수현을 관향으로 삼았다. 덕수현(德水縣)은 황해도 개풍군(開豊郡)에 속해 있던 옛 지명이다. 고려와 이슬람 세계 간의 교류품 가운데 명물은 소주다. 소주는 이슬람 지역에서 개발되었는데, 몽골 원정군이 1258년 이슬람 측을 공략할 때 ‘아라크’의 양조법을 배웠다. 몽골군은 일본 원정을 위해 고려에 주둔하고 있을 때 개성과 안동 등지에서 이 술을 제조하였다. 개성에서는 지금도 소주를 ‘아락주’라고 부른다. 1970년대 석유파동이 났을 때 우리나라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절박한 때였는데, 중동의 사자가 왔을 때, 그들을 덕수 장씨 집성촌인 경기도 평택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그들은 덕수 장씨 집성촌에서 이슬람 문화의 흔적을 찾을 수 없자 실망하여 돌아간 적이 있다.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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