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 녹둔도 영유권

 

제목 : 연해주에 관심을 돌리자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09-01-31 조회수 : 745






"정치 경제학적 측면의 돌파구로 새로운 접근해야"

등록일자 : 2007-08-30 08:46:25




지금으로부터 꼭 70년 전인 1937년 8월은 우리 민족의 해외 이주 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비극의 달이다. 1937년 8월 구(舊)소련의 인민위원회와 공산당은 '극동지방 국경 부근의 한인(韓人)을 이주시키는 문제에 관하여'라는 결의문을 발표하였고 이를 시작으로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집거(集居)하고 있던 우리 교포들의 불행한 강제 이주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스탈린은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에 대한 위협과 함께 늘어가는 연해주 거주 한인 규모에 대해 경계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스탈린 정권은 스탈린이 서명한 '명령번호 1428-326' 문건을 통해 "일본의 간첩 행위가 극동지방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 지체 없이 추방을 시작하여 1938년 1월 1일까지 추방 작업을 종결한다"는 명령에 따라 연해주 거주 한인들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총 3만 6,422가구의 17만 여명에 이르는 한인들이 6,000㎞ 거리 밖의 낯선 지역으로 이주했고 그 과정에서 '간첩 행위자'로 몰린 한인 지식인 2,500여명은 총살을 당하였다.




강제 이주 70년째를 맞는 지금도 15만 명 이상의 한인들은 또 다시 유랑의 역사를 거듭하고 있다. 1991년 구소련의 붕괴에 따라 구소련에 속해 있던 중앙아시아 소재 공화국들이 독립국가로 변신하면서 배타적인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되었고 이로 인해 이 지역에 살던 한인 2, 3세들은 1세대가 갖은 고생 끝에 이룩해 놓은 삶의 터전을 물려받을 기회마저 상실한 채 생계를 위해 재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 일부는 사할린과 연해주로 일부는 러시아 서남부로 이주하였고 낯선 땅에서 떠돌이 품팔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와 연해주는 역사적으로 매우 밀접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연해주에서는 옥저(BC 3세기∼AD 3세기)와 발해(AD 698∼926년)의 주거지 유적이 확인되었고 불과 70년 전까지 이곳에 살았던 한인 이주민의 흔적이 존재하고 있어 2300여 년 동안의 우리 민족과의 인연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근세사에서 공식적으로 우리 민족의 연해주 진출이 시작된 것은 1860년 이후의 일이지만 러시아의 극동 진출 이전인 17세기에도 조선인들의 연해주 진출이 있었으며 그 역사를 입증해줄 자료들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한인들의 본격적인 연해주 진출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르러 한반도의 정치, 경제가 극도로 피폐해져 나라를 잃게 되면서이다. 이에 한인들이 대거 이주해 한인촌(韓人村)을 형성했으며 안중근 의사와 홍범도 의병장이 활동하면서 1910년 무렵에는 해외 항일의병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를 입증해 줄 100만 평(330만㎡) 규모의 한인촌과 항일의병운동 훈련터가 연해주 하산의 추카노보 마을(연추하 마을, 燕雛河里)에서 발견되었다.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분쟁으로 인해 개방되지 않았던 하산은 2003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시로 개방되었다.




이제 연해주가 완전히 개방된 지금 우리가 연해주에 관심을 돌려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연해주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천연자원 매장이 풍부하지만 아직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이다. 러시아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아직 러시아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미치고 있지 않은 지역이다. 따라서 연해주에 우리의 경제적 진출을 확대하는 것은 구소련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한인들에게 새로운 경제 활동 기회를 주게 되어 이들로 하여금 우리나라와 연해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기회의 땅으로 제공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초국가적 경제 시대에는 주권이 미치는 공간적 개념으로서의 국토와 국경은 존재하지만 경제 활동 영역으로서의 배타성은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때문에 경제 활동을 통해 연해주에 보다 많은 사람을 이주시키고 경제적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연해주에 대한 한인의 강렬한 회귀 의식을 유발하게 되어 연해주가 이들의 중요한 생활 영역으로 자리 잡게 만들 것이다. 이는 바로 현대적 의미의 영토 확장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둘째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해주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연해주 경제의 발전과 한인들의 집거도를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북한 경제의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대규모 산업기지 건설과 농업기지 개척은 북한의 노동력을 이용한 남북한 합작 진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북한 경제의 변화뿐 아니라 나아가 통일의 교두보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게다가 농업기지의 경우 탈북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서의 기능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중국의 과도한 지원과 진출을 경계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공통적인 입장에서 볼 때 연해주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두 나라의 협력을 통해 북한에 공동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특히 중국이 전략적으로 북한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함경북도 해안 지역에 대한 공동 진출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는 전략적 측면뿐만 아니라 북한의 중요한 천연자원 매장 지역이자 중공업 지대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 측면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를 러시아에게 넘겨주고 동해 바다로의 출해권을 상실한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전략적 구상은 출해 문제 해결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연해주에 대한 자국민 이주와 경제적 진출을 크게 장려하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중국은 이미 연해주 대외무역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연해주 인구의 10%를 넘는 65만 명의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어 러시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2006년 12월 20일 크렘린궁에서 열린 국가안보회의에서 "극동지역에 외국인은 계속 유입되는데 러시아 인구는 줄고 있다. 갈수록 타 지역과 고립되어 가는 이 지역이 러시아의 최대 위협이다"라고 피력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따라서 연해주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한반도와 연해주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는 중국을 러시아와 공동으로 견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넷째 교통 요충지로서 가치가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연해주는 향후 한반도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한반도를 관통하여 태평양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따라 유럽까지 연결될 대륙횡단철도의 중요한 연결 지역이 될 것이다. 이는 중국횡단철도(TCR)라는 또 다른 대륙횡단철도와 맞물려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로서 한반도의 가치를 더욱 크게 해주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반도와 연해주,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한민족 집거 지역과 연계된 국토개발 전략과 해외투자 전략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동서해안의 주요 도시와 중국 및 일본의 해안 도시를 상호보완적으로 연결하는 국토개발 전략과 연해주와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산업기지와 농업기지의 건설을 통하여 통일된 한반도와 이들 지역을 기능적으로 연결하는 해외투자 전략을 구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해양으로는 아시아와 태평양과 연결되고 대륙으로는 TSR과 TCR을 경유하여 유럽과 연결되어 한반도 번영의 시야를 크게 넓힐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섯째 러시아 거주 교포의 위상을 크게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재외동포재단의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은 53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의 분포를 보면 러시아에 20만(연해주 18,300) 명,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에 32만 명이 산재하고 있다. 연해주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통해 이들 중 일부라도 연해주에 집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연해주에 '고려인자차주'의 설립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연해주 경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나아가 러시아 거주 교포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동북아에는 남북한에 거주하는 7,000만과 일본, 중국, 러시아에 거주하는 400만 명에 육박하는 한민족이 집중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질적인 북한 정권과 한반도에 대해 치열한 국가이익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주변국들로 인해 향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한반도의 분할을 고착화시키는 방향으로 흐르게 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내적인 힘의 축적과 동시에 외적인 탈출구를 찾아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라도 동북아에 집거하고 있는 한민족을 연결하는 공동체를 구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경제의 구조 변화, 국토의 균형적 발전, 한반도 통일, 우리 민족의 미래상 정립을 실현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더욱이 이들 지역은 장차 동북아의 발전을 주도하는 핵심 지역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공동체 구상은 매우 유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서 연해주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제 8월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70년 전인 1937년 8월 고난의 비극을 겪었던 러시아 교포들의 불행했던 삶을 생각하면서 우리 민족의 미래를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김익겸 논설위원/동북아전문가·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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