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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늘의 세상] 日, 120년 전부터 무인도에 '말뚝'… 中보다 EEZ 넓어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2-05-01 조회수 :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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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해양영토 확장 골몰, 엄청난 자원 확보]

1895년 센카쿠 열도 - 청일전쟁 이기자 영토편입

수산물공장 지어 실효지배… 중국과 영토분쟁 맞받아쳐

1896년 미나미토리시마 - 1.51㎢ 무인도 하나로

국토보다 넓은 EEZ 확보… 활주로 건설, 자위대 주둔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은 447만㎢로, 영토면적이 25배 더 큰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387만㎢)보다 오히려 더 넓다. 100여 년 전부터 벌여온 해양영토 확보전략 덕분에 일본은 석유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메탄하이드레이트와 희토류, 망간 등 엄청난 해저자원을 확보했다. 일본이 해양영토를 대폭 늘릴 수 있었던 비밀은 다른 나라보다 일찍 무인도의 군사적·경제적 가치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한국이 쇄국이냐 개국이냐로 논쟁을 벌일 때 일본은 필사적으로 무인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시켰다.



대표적인 곳이 일본 최동단(最東端) 영토라는 미나미토리시마(南鳥島)로, 일본에서 1800㎞ 떨어진 남태평양의 절해고도이다.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함대에 의해 1853년 강제 개항한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을 거치면서 무인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쟁탈전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1896년에 미나미토리시마에 개척단을 파견하고 1898년에 자국 영토라고 선언했다. 표고 9m, 면적 1.51㎢(46만평)에 불과한 섬이지만, 이를 보유함으로써 국토면적(38만㎢)보다 넓은 43만㎢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보했다.






일본은 미나미토리시마에 활주로를 건설해 자위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영유권 논쟁을 차단하기 위해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이 최남단 섬이라고 주장하는 산호초 오키노토리시마(沖ノ鳥島)의 경우, 1922년 측량선을 보냈으며 1931년 자국 영토 편입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영유권 강화를 목적으로 1939년에 이미 관측시설 공사에 들어갔다. 이곳은 만조 시 거의 물에 잠기지만 일본은 자기 영토라며 주변 42만㎢에 대해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했고 그 외부해역도 자국 대륙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쿄에서 1000㎞ 떨어진 오가사와라(小笠原)제도도 1876년 비슷한 경위를 거쳐 일본 영토에 편입됐다. 이 지역은 미국 포경선 등 선박들의 식량조달기지 역할을 했으며 하와이 주민들이 이주해 살았다. 이 때문에 오가사와라 제도는 영어가 뒤섞인 독특한 일본어를 사용한다.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는 센카쿠(尖閣)열도의 경우, 청·일 전쟁에서 이기자 1895년에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 영토 편입을 전후해 역시 개척단을 보내 수산물 가공 공장을 짓는 등 실효지배를 강화했다.



일본은 이에 앞서 1879년 오키나와에 있던 류큐(琉球)국을 강제 병합했다. 류큐국은 1429년에 건국된 독립국이었다. 센카쿠는 오키나와에서 410km 떨어져 있고, 중국에서는 330km 거리에 있다. 대만과 일본의 이시가키섬에서는 동일하게 170㎞ 떨어져 있다. 중국은 센카쿠가 댜오위다오(釣魚島)이며 명나라 시대인 1403년부터 각종 문헌에 등장하는 등 자국령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료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이나 한국이 해양영토라는 개념이 없던 19세기 말부터 일본은 무인도를 속속 자국령으로 편입시켜 엄청난 해양자원을 확보했다"면서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여전히 해양영토 확장에 골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차학봉 특파원 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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