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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홀로나선 두루봉 답사길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09-12-03 조회수 : 1254


 



 


리    함


 




어제 룡정시 팔도 쌍봉촌 동북쪽구간 고구려 옛장성을 답사한후 연우산악회의 주말산행만을 기대할수 없었다. 그래서 이튿날 홀로나선것이 두루봉 북쪽가 옛장성 답사이다.



이날은 2006년 1월 25일, 날씨는 많이 누그러든편이였다. 오전 8시반에 연길시 서시장에서 팔도행 중형뻐스에 오르니 덜커덩소리만 내는 뻐스는 속도가 나지 않아 좋이 한시간이 걸려서야 팔도갈림길에 이룰수 있었다. 삼도만행뻐스가 나타나지 않아 4~5리길을 걸었더니 열기가 확확 내뿜기였다.



쌍봉촌 가까이에서 논밭을 가로 지르고 구수하를 건너니 두루봉 동북쪽기슭. 이 구간에 이르기까지 옛장성은 흔적조차 찾을수 없었으나 산기슭에서부터는 달랐다. 외홀로 떨어진 낮다란 산이 산비탈 첫장성발단으로 나섰다.



외진산 왼쪽가로 뻗은 수레길을 따라 산비탈에 접근하니 산비탈 첫구간은 그닥 크지가 않은 사과배나무밭이다. 수레길은 인차 오른쪽으로 굽어들었는데 첫구간 외진산우에서는 아무것도 보아낼수 없었다. 흥미로운것은 이곳에서부터 산비탈을 주름잡은 고구려장성이라 하겠다. 력사상 거룩한 창조물은 무어든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 아닌가.



옛장성은 나지막한 외진산 북쪽기슭으로부터 산등성이로 뻗은 곬을 따라 수축되여 있었다. 첫 구간 옛장성은 곬의 동쪽가에 수축되여 그 높이나 너비가 제격이였다. 옛장성 오른쪽에 또 왼곬보다 얕은 홈이 생겨나 장성을 쌓기 위해 인위적으로 파낸 자리임을 알리고있었다. 이 구간 장성은 100여메터나 뻗어 장성다운 맛을 다분히 풍기였다. 그러나 100여메터 웃쪽은 곬이 끝나면서 평지로 되여 장성도 조금 도드라진 흙담에 불과했다.



흙담—옛장성은 곧추 두루봉북쪽가 산등성이로 치달았고 바로 그 왼쪽가에 발구길이 평행으로 뻗어있었다. 그런 옛장성 따라 숫눈길을 헤치는데 얼마 걷지 않아 다리맥이 풀리며 가쁜숨을 몰아쉬여야 했다. 조금 걷고는 쉬고 쉬고는 또 걷는 내가 똑마치 무엇에 홀리우기라도 한 기분이였다. 산등성이로 올리 뻗어간 옛장성은 내처 나를 부르기만 했다.



그렇게 한 500~600메터는 조였을가, 옛장성흔적은 산등성이에 이르러 동강났다. 산등성이 아래는 팔도촌 웃구간으로부터 남북으로 근 10리나 뻗은 소팔도구 골안인데 산등성이 서쪽아래를 살피여도 옛장성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이는 필자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옛장성흔적이 끝나는 산등성이 남쪽은 두루봉 정상에로 치달은 가파른 산비탈인데 옛장성이 이 비탈로 정상에 오르지 않았을가, 호기심에 끌린 필자는 내친김에 두루봉정상을 돌파하기로 했다.



헌데 솔직한 얘기지만 겁이 더럭 남을 어찌할수 없었다. 쌍봉촌이나 구수하쪽에서 볼 때는 그닥 높아보이지 않는 두루봉이고 산등성이나 정작 숲속 산등성이에 서고보니 내실을 모르는 생소한 야산이라 심산이 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것은 산중의 메돼지였다. 최근년래 사냥이 법으로 일체 금지된 상태여서 메돼지가 야산마다 무리를 이루어 이런 메돼지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였다.



필자는 한참 숨을 조절하며 숲속 산등성이를 주의깊게 살피다가 두루봉을 오르기로 작심하였다. 두루봉 서북쪽 높은 산무리를 이루는 넉가래령쪽은 메돼지가 출몰할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인적이 미치는 두루봉과 그 주위는 깊은 야산과 퍼그나 떨어진 지대여서 괜찮을것 같았다. 자연의 섭리를 따를판이였다.



그래도 긴장감이 떠나질 않았다. 숲이 우거진 적막한 산지대여서 그럴수 있겠다고 자신을 위안할 때 느닷없이 골안아래쪽에서 개짖는 소리가 웡웡 들려왔다. 그때에야 산비탈릉선 오른쪽을 굽어보니 두루봉 서쪽면은 전부가 벼랑바위인데 먼발치서 나의 인기척을 알아챈 개 몇마리가 왕왕 짖어대고있었다. 원경지 같아보이는 인가 한채가 골안저쪽에 그림처럼 댕그라니 앉아있었다. 급기야 겁기가 사라지고 숨이 활 놓이였다.

(그럼 그렇겠지, 어르신님이 가는길에 웬 위험이 뒤따를고?!)



필자는 일순 긴장감이 돌았던 자신의 소행을 웃었다. 인생이 때로는 우스울 때가 있다는것이 이런 경우를 두고하는 말이렸다. 숲과 실랑이질하면서 한발자국 두발자국 두루봉정상을 톺는데 목에서는 겨불내가 나며 숨이 차올랐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내처 오르기만 하였다.



드디여 정상에 올랐다. 남북으로 앉은 두루봉은 서쪽면이 모두가 벼랑바위이고 남쪽면이 경사도가 급한 가파른 내리막일 때 북쪽은 가파롭기는 해도 남쪽에 비해 완만히 길다랗게 올리뻗어있었다. 정상은 동서너비가 좁은반면 남북은 꽤나 길게 평지를 이룬 고느적한 지대인데 그 복판에 돌들이 섞인, 크지 않은 봉긋한 흙무덤이 솟아있었다. 아마도 봉화대같았다. 복판은 누군가 심하게 파헤쳐 볼성사나왔다. 어제 쌍봉촌에 갔을 때 그곳분들이 팔도의 아무개가 언제인가 두루봉 옛 무엇을 파헤쳐 단단히 혼났다더니만 과연 그러했다.



한심한 인간들이지, 옛무덤으로 알고 보물들이 묻혀있다고 여긴 모양이였다.  그때에야 필자는 지난해 10월 15일 성자산 북쪽 자매산인 욕지산 산행시 그곳 봉화대 복판 깊숙한 구덩이는 두루봉 봉화대와 마찬가지로 도굴현상이였다는것을 깨달았다. 아니면 그 어떤 수요로 력사유적을 마음대로 파헤칠리가 만무했다.



두루봉 흙무덤은 옛봉화대가 틀림없었다. 봉화대를 여러번 돌며 살피다가 사진 몇장을 찍은후 필자는 정상의 남쪽가에 다가갔다.



홀연 필자의 두눈은 광채로 빛났다. 두루봉 서쪽가로 뻗어내린 소팔도구 골안어구 건너에는 남쪽으로 뻗어간 넓다란 골안이 자리잡고있었으니 말이다. 어제 팔도촌 황상박선생 숙모댁에서 황선생과 그집 어른들이 팔도촌 웃구간에 남쪽으로 뻗은 골안이 있고 그 골안을 양베톨(扬白头)골이라고 하더니 남쪽에 보이는 골안이 양베톨골임을 말해주고있었다.

(양베톨너머가 포지동이라고 했지, 양베톨과 포지동은 옛장성이 지나간 지대이고!)



필자는 어제 대화를 떠올리며 벌쭉 웃었다. 두루봉에서 뻗어간 옛장성이 남으로 팔도촌 북쪽 산릉선을 타다가 팔도촌 웃구간 호조골을 건너 양베톨(민간에서 부르는 구두어.) 골을 넘어 남쪽 저멀리 길성저수지쪽으로 빠지였다는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이때의 필자 느낌에는 안내자가 없어도 얼마든지 옛장성을 찾아 나갈수가 있을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필자의 시야에는 소팔도구어구너머 등성이로 뻗어오른 옛장성흔적이 뚜렷이 안겨들었다. 등성이 밭가운데는 도드라진 흙담이 그대로 보이였다.



했으나 착각이였다는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가파른 남쪽구간 두루봉을 내리고 4~5리는 잘 돼보이는 산릉선을 끝내도 이 구간 산지대에서는 옛장성흔적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그래도 팔도촌 수북천 뒤산 정상에 이르러 남쪽 건너편 중턱 밭가운데를 바라보며 옛장성발견에 흐뭇해하다가 쌍안경을 꺼내드니 밭가운데 도드라져 보이는것은 흙담이 아니였다. 동서로 뻗은 호조골에 연길~장춘행 고속도로를 빼느라고 몇메터로 밭을 깍아내린 자국이 눈으로 볼 때는 밭가운데 솟아오른 옛장성흔적으로 보이였었다.



오리무중에 빠진 필자는 일순 혼란속에서 헤매다가 배낭에 넣은 보온콩물을 꺼내 마이며  남쪽너머와 소팔도구 골안 동서 산릉선을 이윽토록 주의깊게 살피였다. 가령 두루봉에서 남으로 꺽어든 동쪽 산릉선이 옛장성구간이 아니라면 소팔도구따라 서쪽으로 뻗어내린 산릉선이 옛장성구간일것이였다. 둘중 하나가 옛장성 릉선이겠으니 어느것이든 양베톨골로 빠져나간것만은 드팀없는 력사사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때는 오전 11시를 넘어서는 시점이였다. 양베톨골로 해서 포지동을 지나자면 몇 시간은 잘 허비해야 함으로 겨울의 오후시간이 허락할것 같지 않았다. 결국 오후 계속행을 포기하기로 하니 마음이 홀가분해났다.

팔도촌 뒤산을 내린후 필자는 산아래 수북천을 에돌아 눈밭으로 뻗어간 북쪽행 수레길 따라 두루봉 동북쪽기슭 옛장성구간을 다시 찾았다. 아까는 첫구간을 다시 찾기로 하고 자세히 살피지 않았던것이다.



다시 찾은 100여메터 첫구간은 감수가 판판 달랐다. 이 구간 옛장성은 원골과 인공홈 사이에 솟아오르고 낫나무가 촘촘한데서 세월속, 인위적 파괴도가 심하지 않았다. 첫 구간 아래쪽은 기본상 옛 모습을 갖고있었고 높이도 일정한 높이를 유지하고있었다. 옛장성북쪽가 산기슭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은 단연 새로운 시각이였다. 유감스러운것은 남쪽비탈을 타고 오르다가 북쪽으로 향한 산간수레길이 두군데나 옛장성을 파헤치며 북쪽 산기슭에 대인데서 심하게 파괴되여있는것이엿다. 대신 인공축조로 된 옛장성단면을 살필수가 있어 관찰에 리로움도 없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발견은 제일 아래쪽 구간에서였다. 이곳은 처음에 밝히다시피 낮다란 외진산이 어구를 막고 있었는데 산릉선에서 뻗어내린 옛장성은 면바로 외진산 북쪽기슭으로 평지를 내려야 했다. 한데서 옛사람들은 이 구간에서 장성을 북쪽으로 사리느라고 인공홈을 따라내린 산기슭에 두어메터의 너비에 몇메터 깊이의 《ㄴ》자형 홈을 원골쪽으로 낸 실태였다. 크고작은 수풀이 꽈악 서린데서 얼핏보면 보아내기 어려운 장성구비였다. 원골에서 가랑잎이 가득 깔린 홈을 따라 답사하노라니 옛사람들의 지혜에 탄복이 절로 났다.



어언 오후 2시가 지났다. 산속에서 단신으로 몇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두루봉구간 답사를 끝내며 여러가지 발견을 했다는 기분은 말할수없이 좋았다. 자기가 하고싶은일을 하는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가, 이미 이틀에 다시 이틀품을 들이면 원 팔도진구간 고구려 옛장성답사를 끝낼것 같다는 예감도 좋았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였다.



하루의 산행답사를 끝내고 산을 내리니 구수하벌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구수하가 반겨맞는다. 력사탐방에 수석탐석으로 수없이 오르내리던 구수하가 그리도 좋을리가 없다. 이때의 구수하는 얼음세계차림으로 필자앞에 나타났지만 두만강도 아니고 가야하도 아닌 이곳 여름의 구수하물에서 어디내놓아도 엄지를 내드는 필자의 1호수석—물형석오리(혹은 원앙새) 한점을 탐석했으니 산수가 삐여난 구간에 흔히 명석이 산출된다지만 자연과 력사문화가 유구한 고장에도 명석이 산출되는 모양이였다.



이제 저앞은 필자의1호수석탐석지이다. 그래서인지 이 구간 구수하는 연길~장춘행 고속도로 길닦이로 강바닥을 휘딱 번져놓은데서 새로운 모래무지, 돌무지가 가득 생겨낫다. 그런속에서 한시간나마 겨울탐석을 즐기노라니 그 멋이 별멋이였다.



산행에, 답사에, 탐석으로 보낸 기꺼운 하루, 홀로 나선 나만의 두루봉 답사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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