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적 100년 자료실

 

제목 : 대마연락망 기행기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5-04-14 조회수 : 480

 

부산을 잘 아시는 분의 안내로 

영도(절영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봉래산(395m)"에 올랐다.

"봉래산(蓬山)"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잘 모르지만,

"봉래"는 도교(道教)의 이상향(utopia)을 의미하는 말이다.

일본에도 봉래산은 여기저기 있습니다.



(부산 수정동에서 바라본 영도와 봉래산 ↓)





산 정상에는 "봉래산"이라는 표석과

바로 앞에  "+(plus)" 표시의 돌이 묻혀지고 있었다(↓).

지도를 작성하는 기준이 될 "삼각점(三角點)"이라고 한다.





다음과 같은 설명판이 설치되고 있었다.


”이 삼각점은 1910년 6월 한국의 대삼각 본점(本點)

'절영도(봉래산)와 거제도(옥녀봉)를 구점(求點)으로 

대마도 1등 삼각점 "유명산(有明山)과 어악(御嶽)"을 여점(與點)으로 

삼각망을 구성하여 관측・계산하였다.

이 두 삼각점은 모체로 전국에 대삼각본점 400점을 설치하여 

토치조사를 시행한 역사적 학술적으로 중요한 삼각점이며…  


2002년 10월23일 영도구장  "



삼각형의 밑변의 길이를  알고 있는 경우,

정점으로 향하는 두 내각(角)이 밝혀지면

정점까지의 두 변의 길이등을 알 수 있다.


정점(구점 求點)의 위치가 밝혀지면 

다음에 그 곳을 여점(與點)으로서 해서

새로운 구점을 구할 수 있다.

그런 삼각측량을 반복하면서 정확한 지도를 작성할 수 있다.


일본 구(𦾔)육군이 진행시킨 사각층량은 

1882년에 사가미하라(相模原,神奈川県)를 기선(基線)으로 시작되어

1907년에는 쓰시마(대마도)까지 도달되었다.



일본 삼각망도(三角網図 ↓)







그리고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는 직전,

1910년 6월에 이 삼각망은 바다를 넘어

한국의 지도 작성작업과 연결되었다.

영도와 거제도의 삼각점은 한국 지도를 만들기 위한

최초의 "밑변의 2점", 즉 기선(基線)이 되었다.


과학의 힘은 정치적인 지배의 힘이기도 한다.

그 작은 돌에는 큰 정치적인 의사(意思)가 담아져 있었던 것이다.



근데 일본 에도시대(江戸時代)에 이노 타다타카(伊能忠敬)라는 측량가(測量家)가 있고

정확한 전국 해안선 지도를 1820년경 완성시켰다.

그 지도에 대마도에서 바라본 한국의 산이 그려 지고 있다(↓).






대마도 지도 위에 한국의 산이 그려지고 있다.

바로 앞의 오른 쪽에 영도("牧嶋(마키노시마)"라고 쓰여진다)와 

본래산이 보인다.

왼 쪽에는 거제도와 옥녀봉("玉浦山(옥포산)"라고 쓰여진다)이 그려지고 있다.


육군이 근대적인 지도를 만들었을 때,

"이노도(伊能図)"를 참조했다고 한다.

한국 토치조사국(총독부 임시토치조사국의 전신)이 

봉래산과 옥녀봉을 최초의 구점으로서 고르는 것에는

이노도가 관계되었던 것이 아닐까?

이노 자신에는 한국을 침략하려고 한 의도는 없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부산을 방문할 때마다 영도를 landmark로서 보고 있었는데

산의 이름도 모르고,

또 삼각점의 존재도 몰랐다.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항상 많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




 참고문헌

1 本元博『伊能にみる朝鮮の山」(2006년)

2 海野福寿「朝鮮測事業と朝鮮民衆」(1997년)



출처 : http://blog.daum.net/t_arirang/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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