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 나의 도전

 

제목 : (12) 고성평야와 북한의 식량난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0-03-21 조회수 : 759


 



 



오늘 오전 삼일포와 해금강의 답사로 북한 방문이 모두 끝난다. 지금까지는 내금강 주변서 경치를 관람하였지만 오늘 코스는 장시간 이동하면서 북한의 산야와 주민 생활 등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온정리에서 삼일포까지는 불과 12㎞다. 금강산에 와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금강산은 생각 밖으로 동해바다에 바짝 붙어 있고 휴전선에 가까이 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장전항에서 온정리까지 찻길로 8㎞지만 직선거리로는 바다까지 6㎞고 금강산 남쪽자락의 유점사 (楡岾寺) 터는 민통선에 들어갈 정도로 군사분계선에 가깝게 위치하여 있다.



 



우리를 태운 버스 10대는 좁은 포장길을 따라 달렸다. 온정리를 출발한지 5분만에 장전항과 삼일포가 갈리는 길목에 도착했다. 북한의 산천은 남한의 시골마을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산과 강, 마을과 들판, 산천은 변함 없는데 살아가는 모습은 어쩌면 이렇게 다른지?



우리가 지나가는 도로 왼쪽으로는 문화주택이 산밑에 배치되어 있고, 오른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있는데 둑위로 군인들이 행군을 하고 있었다. 군인들의 대열은 흩어져 엉망이고 인솔자도 보이지 않아 군기가 없어 보였다.



마을 앞을 지나가는데 다 떨어진 흰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어린아이가 아기를 업고 우두커니 서서 지나가는 버스를 물끄러미 처다 보고 있었다. 순간 어린아이의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 때묻은 옷차림, 해쓱하여 핏기없는 얼굴, 꼭 아프리카 난민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우체국, 리발소, 저금소 간판도 보이고, 달구지와 보따리를 짊어진 북한 주민은 윗길을 이용하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인민학교 2곳을 지날 때는 목에 빨간 스카프를 두른 학생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다말고 손을 흔드는 모습이 매우 측은해 보였다. 중등학교 운동장에는 농구하는 학생들의 활동적인 모습은 남한의 학교 풍경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마을 옆에는 흰염소를 풀어놓고 양지바른 담장 밑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군데 군데 눈에 띄었다. 북한에서는 남한과 달리 흰염소가 많은데 이는 흰염소가 흑염소보다 젖이 많이 나기 때문에 흰염소만 사육하기 때문이란다.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의 하나였던 텅빈 고성들판을 끼고 마을 앞을 지날 때는 어김없이 빨간 깃발을 꼽아 놓고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작업장은 짚으로 엮어 바람을 가리거나, 가마니 나뭇가지, 비료포대 같은 비닐을 설치하고 군인이나 농민 대여섯명이 고작이었다. 빨간 깃발을 꼽아 놓은 것은 오늘 작업장의 위치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작업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니 못자리를 만들거나 모종을 옮길 두렁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세명 중에 한명만 일하고 나머지 두명은 물끄러미 처다보고 있거나 삽에 줄을 연결하여 두명을 당기고 한명은 삽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의 능률이나 생산성은 기대할 수 없는 작업방법이다.



북한경제의 어려움이나 식량난은 근본적인 문제도 있지만 주체농법의 실패, 농민 의욕의 감퇴라는 구조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보도가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가지 의문점은 남한과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이렇게 넓은 고성평야에 왜 이모작을 하지 않는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는데 말이다. 사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이렇게 어려운 것은 근본적으로 농지가 부족하기 때문이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1995, 96년에 연이어 나타난 수해 및 이상기온 탓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그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북한당국이 개혁 개방을 강화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며, 다른 하나는 대외적으로 식량난을 호소함으로써 국제적 식량지원을 얻는 방법이다. 그러나 후자는 단기적으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지만 농업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이 전자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따라서 대북 농업지원의 주된 방향은 북한 지역에 알맞은 농업의 개발 및 이를 위한 각종 농업기술, 자금의 제공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남한의 대북 농업지원은 크게 세가지의 효과를 가진다. 즉 한민족 의식의 강화, 북한의 급속한 붕괴를 막음으로써 한반도 혼란의 회피, 장기적인 통일 비용의 절감이다.



 



북한은 해방이후 농업에서 봉건적 토지소유 관계 및 자본주의 요소 청산을 주된 과제로 설정하여 각종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북한이 곡물생산을 최대한 증산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대표적인 정책을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토지개혁 및 농업 협동화의 추진이다. 1946년 3월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 및 '동 개혁 실시에 대한 임시조치법'을 통하여 북한은 전면적인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토지개혁을 통해 북한 총경지 면적(195만 2,000ha)의 51%에 해당하는 100여만 정보를 무상 몰수하여 그 가운데 98여만 ha를 약 72만호의 고용 농민 및 토지가 없는 농민 등에게 무상으로 분배하였다. 또한 농업 협동화는 1953-54년 말까지의 시험단계를 거쳐 1955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1957년 93.7%, 1958년 100% 협동화를 완료하여 급속한 농업 집단화를 추진하였다.



둘째, 1960년 이후 실시된 신농업관리체계의 구축이다. 신체계를 통해 북한은 중앙- 도농업위원회 - 군협동농장 경영위원회 - 협동농장관리위원회 - 협동농장(5-10개의 작업반) - 작업반(5-100명, 3-4개의 분조) - 분조(15-20명)와 같은 수직적 조직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셋째, 1964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8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우리나라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라는 소위 농업강령을 발표하였다. 농업강령에서는 사회주의 북한에서의 농민,농업 문제의 본질을 농업의 낙후성과 도시, 농촌간의 격차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에서의 기술, 문화, 사상 혁명 수행, 농업 농촌에 대한 공업 도시의 지원 강화, 협동적 소유형태의 전인민적 소유(국유화) 형태로의 전환 등을 3대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 강령에서는 기술 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농촌 경리의 수리화, 기계화, 전기화, 화학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후 기술혁명의 일환으로 1976년 10월 노동당 제5기 제12차 전원회의에서 '자연 개조 5대방침', 1981년 10월 노동당 제6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4대 자연 개조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넷째, 북한은 1993년 12월 당중앙위원회에서 제3차 7개년 계획의 실패를 시인하고, 향후 3년간 완충기를 설정하여 농업, 경공업, 무역제일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다. 그와 동시에 김일성은 1994년 2월25일 '사회주의 농촌테제의 기치 높이, 농촌문제의 중국적 해결을 위하여'라는 서한에서 협동농장의 국영농장으로의 전환을 다시 한번 제시하였다.



이후 북한당국은 96년 3월 협동농장의 분조관리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생산량을 증대시키려 했다. 예컨대 분조의 규모를 10~25명에서 7~8명으로 줄이는 한편, 생산 목표량을 현실적으로 책정함으로써 초과 달성이 가능토록 했으며 목표 초과시 분조가 초과 생산물을 비교적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농업 부진으로 인하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농산물의 수입이나 지원에 의존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북한은 대내적 농업개혁을 수행하면서 대외적 지원을 포함한 농업개방을 어느 정도는 실시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체제안정상 농업개혁에 소극적인 김정일 정권하에서는 농업개방을 통한 식량, 각종 농업기술 및 자금의 유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농업개방과 관련한 몇가지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북한의 일본 EM농법에 대한 관심과 미 카터센터의 북한에 대한 영농법 전수 협의를 들 수 있다. EM농법은 농약이나 화학비료에 의존하지 않고 복합 미생물 비료를 사용하는 농법으로서 북한이 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질소비료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토양의 산성화가 주체농법의 실패를 초래했다고 보고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의 카터센터는 1993년 에티오피아에 전파해 성공한 바 있는 영농법을 북한에 전수하기 위해 북한당국과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북한의 농협개혁을 위한 남북한 농업 협력은 한민족이라는 공동분모 속에서 위기에 빠진 북한농업을 구출하는 방법이 바로 남북한 농업 협력이라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남북한 경제통합 대비를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장차 경제통합을 대비하여 커다란 혼란이나 엄청난 통일비용을 줄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농업 협력을 통한 점차적인 남북한 협력모색이기 때문이다.<조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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