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지적제도

 

제목 : 통일대박이 ‘토지대박’으로 연결될 수 없는 이유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4-06-13 조회수 : 991


 










조성찬 / 토지+자유연구소 통일북한센터장





북측 지적원도를 둘러싼 논란, 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연초에 “통일대박”을 외치자 뜻밖에도 “북한 지적(원)도” 이슈가 튀어나왔다. 필자는 국토교통부가 3월 19일 홈페이지에 올린 “북한 지적도 30만장 디지털화 착수 보도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국토교통부가 디지털화를 검토하고 있는 도면은 북한지역 지적도가 아니라 지적도를 작성하기 위한 기초자료인 측량도면(지적원도)이며, 지적원도는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자료 하단에 “통일 대비해··· 북 지적도 30만장 디지털화 착수”라는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 있는 것을 보니, 이 기사의 내용 일부를 정정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조선일보> 기사를 확인해 보았다. 기사는, 정부는 분단 69년 동안 종이 형태로 보관중인 북측 지적도 30만장을 디지털화하여 영구 보관한다는 내용과, 현재 부산의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에 보관되어 있는 지적도는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하나의 ‘사실(fact)’로 보도하고 있었다.



국토교통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조선일보> 기사에서 말한 지적도는 정확히 말하면 ‘지적원도’라는 것, 그리고 지적원도가 일반인에게도 공개되고 있다는 것 두 가지 ‘정정된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 그런데 정정한 내용만 놓고 보면 국토교통부가 기사가 나온 당일 보도자료를 내야 했던 긴박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북한 지적(원)도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적도 디지털화 작업은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된 일



지적(원)도를 디지털화 하는 작업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2004년 8월에 취임한 대한지적공사 공민배 사장은 인터뷰에서, 앞으로 지적공사는 9대 중점 추진방향 중 하나로 전 국토 지적재조사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제 강점기에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후 아직까지 쓰이고 있는 지적도가 실제 땅의 위치와 모양이 다른 경우가 전체 필지의 30%에 이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여, 새로 지적조사 사업을 실시하여 디지털화하겠다는 것이었다. 대한지적공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 사업을 준비해 왔으며, 2006년부터는 전국 3,600만 필지에 대해 지목과 면적, 경계 등을 새로 조사·측량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지금 추진 중에 있는 지적재조사 사업은 당시 100년이 걸리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여겨졌다(시사포커스, “인터뷰-대한지적공사 공민배 사장, '대한민국을 다시 그린다'”, 2005.1.3.).



그리고 대한지적공사는 지적재조사 사업의 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2005년 12월 1일에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이 때 통일 관련 기대효과가 강조되었다. 통일 후 북측의 1,242만 필지(지적도 28만매 추정)에 대한 지적조사를 실시하고 현대적인 지적측량 기술 및 토지관리시스템을 수출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한지적공사는 이미 남측의 지적재조사는 물론 통일 후 북측의 지적조사까지 수행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단계로 북측의 지적원도에 대한 디지털화 작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정부가 “통일대박”을 외치자, 북측 지적원도 디지털화 작업을 서둘러 추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관성은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서 확인된다. 기사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북한 출신 실향민들이 갖고 있는 토지대장은 땅 주인이 누구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으나, 지적도는 그 땅이 어디에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주는 자료인 만큼 통일 후 토지 소유권 분쟁 해결에 결정적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 국토교통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을 ‘흡수통일’로 이해하고 실향민들에게 ‘토지대박’을 꿈꾸게 하려던 것인가? 그리고 그게 정말로 가능할까?



지적원도로 토지 소재 파악 가능성 커짐



기사에서 언급한 북한 지적원도는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제 강점기 때 제작된 것(임야는 1924년 완료)으로, 가로 70㎝, 세로 90㎝ 크기 종이에 1200분의 1의 축적으로 되어 있다. 모두 30만장이다. 대한제국 시기에 전국의 3분의 2 정도 지적조사 사업이 완료되었으나,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조선총독부 주도 하에 완성된 것이다.














 


 

▲ 토지조사사업 시기 작성된 평안남도 평양부 관후동 지적원도. [출처 : 조병현 외, 『북한토지론』, 일일사, 2004, 77쪽. 조병현, “통일한국의 국유재산 처리 문제: 북한지역 국유지 실태조사를 중심으로”, 법무부 발제자료(2014.3.)에서 재인용함.]




북측 정부는 토지개혁을 단행하면서 1946년에 지적공부를 무효화시키고 등기부를 불태워, 과거의 지적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연구자들은 통일이 되더라도 땅을 두고 토지문서만 가지고 남하한 이들이 실제로 자기 땅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그런데 북측 지적원도가 있으면 자기 땅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의 선봉에 조선일보가 나선 것이다. 그러면 땅을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지적원도-지적도-토지대장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지적도와 지적원도의 관계를 알아보자. 지적도란 토지를 세분하여 필지별로 구분하고 땅의 경계를 그어놓은 것이다. 지적도에는 토지의 소재, 지번, 지목, 경계, 도면의 색인도·제명 및 축척, 도곽선 및 도곽선수치, 좌표에 의하여 계산된 경계점간 거리 등이 등록되어 있다(지적법 10조, 지적법시행규칙 10조 1항). 반면, 지적원도는 지적도를 작성하기 위한 기초자료인 측량도면이다. 지적원도에는 지번이 표시되어 있다. 대한지적공사 담당자에 따르면, 지적원도를 통해 지적도를 복원할 수 있다. 당연한 논리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담당자는 북한 지적원도에 토지소유자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고 했는데, 조병현(2014)은 그의 논문에서 지적원도에 토지소유자의 이름이 연필로 기재되어 있다고 했다. 아마도 측량자에 따라서 작성 방법에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지적도와 토지대장의 관계를 알아보자. 토지대장은 토지의 현황을 명백하게 하기 위하여 토지의 소재, 지번, 지목, 소유자의 주소·성명 및 권리관계의 변동을 등록하는 공부(公簿)이다. 따라서 토지대장에 나와 있는 지번을 통해 지적도상의 실재 위치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북측의 지적원도가 지적도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면 이러한 일들이 가능해진다.



토지문서 진위 여부 확인 불가가 가장 큰 문제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토지문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있는 공식 장부가 없다는 점이다. 법원행정처가 1997년에 발행한 <북한의 부동산제도>에 의하면 북측은 1946년 농지개혁을 하면서 부동산 등기부를 소각시켰다. 뿐만 아니라, 해방 이전의 등기부 등본이나 등기필증 등을 소지하고 있는 것이 발각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특수수용소 수용 등 중형에 처해졌다. 이를 두려워 한 주민들은 관련 자료들을 거의 소각했다. 이처럼 월남자가 현재 소지하고 있는 토지소유 문서를 등기부 원부와 대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법원행정처는 토지문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서희석, 2006). 따라서 지적원도를 통해 토지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 많은 입증자료를 가졌던 통독도 ‘원소유자 반환원칙’에서 선회



지금까지 북한 토지문서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의 관점과 기술적인 확인 가능성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제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토지를 원소유자에게 돌려준다는 ‘원소유자 반환원칙’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에 관해 우리와 비교할 때 더 많은 입증자료를 가지고 있었던 통독의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통일 전에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등기부를 계속 유지해 왔고 일정한 사적 소유가 존재했으며 토지의 거래와 저당권 설정이 가능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통독은 동독의 국유 토지와 협동단체의 소유 토지를 원소유자에게 되돌려준다는 ‘원소유자 반환원칙’을 채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통일과정 초기에 이러한 원칙은 그대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통독은 동독의 사회주의적 소유제도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방법을 모색했다. 하나는 당시까지의 사회주의적 소유제도를 인정하는 전제에서 국유재산을 국민에게 매각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적 소유제를 인정하지 않고 분단 이전의 소유제도와 소유권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독일은 후자를 택했는데 바로 구소유자의 손을 들어주는 법적 해결이었다. 이러한 선택은 동독을 불법단체로 규정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소유권 반환원칙은 구동독 지역의 경제 재건과 경제 지체의 최대 요인이 되었다. 재산권의 재사유화 문제는 분단 이전의 역사적 상황, 등기부재 문제, 유대인 문제와 관련된 데다가, 자위단을 통한 ‘주택 사수 투쟁’까지 이어졌다. 결국 반환원칙은 투자 우선과 보상우선 정책으로 전환되었다(서희석, 2006).



따라서 남북한이 통독식의 흡수통일로 가더라도, ‘원소유자 반환원칙’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러한 원칙이 갖는 가장 큰 문제는 북측 정부를 불법단체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북측 정부를 불법단체로 보려는 태도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민감한 주제다.



가능한 북측 토지소유권 처리 방안



통독 사례에서 알 수 있었듯이, 토지소유권 회복 및 분배는 각종 토지문서를 통해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경제적 관점이라는 보다 큰 논의의 차원에서 결정될 사항이다.



북측 토지소유권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변수는 통일방안이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 등을 통해 남북이 합의한 국가연합으로 가게 되면 북측의 토지소유권 문제는 북측 정부가 자체적으로 처리하게 된다. 따라서 원소유자 반환은 실현 가능성이 없게 된다. 이러한 통일방안으로 가게 되면 북측은 중국 및 베트남의 토지개혁 경험을 토대로 공공토지임대제로 갈 가능성이 크다. 공공토지임대제는 토지를 국유 및 협동농장 소유로 유지하면서 기업과 개인에게 사용권과 경작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UN에 동시에 가입한 북측 정부를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가연합이 아닌 흡수통일로 가게 된다면 토지소유권 처리 방식이 복잡해진다. 그런데 앞에서 논의한 대로 원소유자 반환원칙을 따르기가 쉽지 않고, 따를 수 있다 하더라도 오히려 북측 경제재건을 가로막고 남측의 통일비용을 높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학계는 ‘보상원칙’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데 합의하였다. 그런데 보상원칙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보상의 증거가 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어, 보상 대상자는 극소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학계는 보상원칙을 수용하면서, 토지소유권 처리방식으로 크게 네 가지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급진적인 토지사유화, 둘째, 토지사유화와 공공토지임대제 병존, 셋째, 공공토지임대제에서 점진적인 토지사유화로 진행, 넷째, 영구 공공토지임대제 실시 방식이다. 세 번째 ‘공공토지임대제에서 점진적인 사유화로 진행’ 방식은 남측의 여러 학자들과 정책 담당자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고 있다(조성찬, 2013). 그런데 토지사유제가 초래한 심각한 빈부격차를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측 토지소유권도 결국 사유화로 가야 한다는 주장은 대단한 자기모순이다.



어느 통일방안에서도 선택 가능한 공공토지임대제 방식이 최선



통일방안이 국가연합으로 가건 아니면 흡수통일로 가건 공통적인 토지소유권 처리방식으로 공공토지임대제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즉, 어느 통일방안에서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식은 단순히 교집합의 의미를 넘어선다. 북측 주민들에게 토지공유권을 인정하는 공공토지임대제 방식은 왈라스(Leon Walras, 1834-1910)가 제시한 경제이론 차원에서뿐만 아니라(Studies in Social Economics, 2010), 핀란드나 싱가폴, 중국이 보여준 실제적인 정책차원에서도 설득력을 얻는다(Steven C. Bourassa ets., 2003). 이러한 맥락에서 <통일대비 북한 토지제도 개편방향>을 연구한 한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따라서 통일은 합의통일이 되어야 하며, 흡수통일이라 하더라도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통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토지제도는 남한의 토지사유제가 아니라 공공토지임대제로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허문영·전강수·남기업, 2009)”



정부가 디지털화 하려는 지적도는 정확히는 지적원도이며, 일반인들도 열람할 수 있다고 정정한 국토교통부의 보도자료는 지엽적인 문제에 과민 반응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휘 하나하나가 북측에 땅을 두고 온 이들에게는 민감한 사안이기에 국토교통부가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토지대박’을 꿈꾸게 한 조선일보 기사의 접근방식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측 토지에 대한 ‘원소유자 반환 원칙’ 및 더 나아가 ‘토지사유화 원칙’은 행정적인 차원이나 구동독 사례의 시사점은 물론이고 정치경제학적인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조성찬 (토지+자유 연구소 통일북한센터장) 
















 


 

 [한반도 현안 톺아보기 2] 조성찬 ‘토지+자유연구소’ 통일북한센터장

조성찬  |  landjustice@hotmail.com


중국인민대학교 공공관리학원 토지관리학과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공저인「중국의 토지개혁 경험(부제: 북한 토지개혁의 거울)」(한울, 2011.6.),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평사리, 2012.1.)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중국 토지연조제 실험이 북한 경제특구 공공토지임대제에 주는 시사점”, 『한중사회과학연구』(KCI, 2012년 1월, 통권 22호)와 “Introducing Property Tax in China as an Alternative Financing Source”, Land Use Planning(SSCI) 38(2014) 등이 있다.



현재 토지+자유연구소 통일북한센터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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