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적 100년 자료실

 

제목 : 제국주의 침략사 담긴 日帝 등기부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0-07-24 조회수 : 1060


 



 


대법원이 등기 전산화 과정에서 찾아낸 재경성 일본영사관의 건물ㆍ토지 등기부는 구한말 이후 계속된 일제의 제국주의적 침략 양상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1904년(명치 37년)부터 10년 간 건물 매매 기록이 적힌 `잡지방 건물등기부 제4편'을 보면 일제는 경술국치(1910년)는 물론 을사늑약(1905년)에 따라 통감부를 설치하기 전부터 조차 지역이라는 명목으로 소유권까지 빼앗아 대한제국을 자기네 땅처럼 관리했다.


 






일제는 1906년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5년 동안 외교권과 군사 통치권, 사법권, 경찰권을 차례로 강탈했다. 이번에 찾아내지 못한 1~3편 등기부는 4편보다 앞서 작성됐을 가능성이 커서, 등기부를 통해 일제가 국토의 소유권을 빼앗기 시작한 시점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등기제도


 


= 근대적 등기 제도는 1906년 12월 시행된 '토지가옥증명규칙'에서 시작된다. 그 전까지는 조선 초 만들어진 입안(立安)이라는 제도가 시행되다 구한말에 도입된 가계(家契)와 지계(地契) 제도가 가옥과 토지의 공적 소유 관계를 나타냈다. 지계는 개항 후 국내에 거주하게 된 외국인의 거류지에 관한 조약에 의해 처음 발급됐는데, 외국인은 거류지의 10리 이내에서만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다. 이 제도는 결과적으로 일제의 토지 침탈을 막는 역할도 했다.



이에따라 일제는 대한제국의 토지 관리 제도가 미미해 부동산의 소유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사례가 많다는 명목으로 지계를 대신할 '토지가옥증명규칙'을 만들었다. 이 규칙은 토지나 가옥을 거래한 뒤 당사자는 계약서 2통을 만들어 통장 또는 동장에게 제출해 인증을 받은 뒤 군수 또는 부윤(府尹)의 증명을 받도록 했고, 외국인의 토지소유권 취득을 넓게 인정했다.



일제는 경술국치 후인 1912년 조선민사령과 조선부동산등기령을 잇따라 공포해 일본의 민법과 부동산등기법을 조선에서 사용하도록 했다.






경성 '노른자위' 일본인 차지


 


= 건물등기부에 나타난 장동(長洞)은 지금의 중구 회현동 일부다. 일제는 구한말 이후 이 일대를 조차받아 일본인들의 거주지로 사용하면서 조선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고 한다. 등기부를 보면 일본인 시데하라는 장동의 대지 638평에 건평 19평의 조선식 건물 1개 동을 지어 1904년 등기한 후 2년 뒤에 모토노부에게 판 것으로 돼 있다. 모토노부는 다시 1907년 대한권농주식회사에 건물을 넘기는데, 이 건물은 1909년 9월 허물어지고 등기부는 폐쇄된다.



장동의 일부는 지금의 충무로 일대인 진고개(泥峴)가 중심이 된 이른바 본정통(本町通)에 속한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일본인들이 이곳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본정통이라는 이름은 광복 후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를 따서 충정로로 바뀐다. 일본 상인들은 1885년 이후 진고개에서 조선인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이들은 1894년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긴 뒤 청나라 상인들을 몰아내고 상당수가 거상으로 세력을 확대했다.



주동(鑄洞)에서 일본인 마케시마(負島)가 1905년 소유한 명동의 땅 117평을 등기한 뒤 393평으로 늘리는 과정이 적힌 토지등기부는 표제도 재경성 제국영사관(제3책)으로 바뀌어 제국주의화하는 일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명동 근처인 중구 주자동의 옛 명칭인 주동 역시 본정통이 시작되는 곳으로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다.



이 토지등기부는 법원이 등기부를 관리하게 된 1917년(대정 6년)에 경성지방법원 토지등기부 8책에 옮겨 적히게 된다.






"71㎡ 조차지 세금은 연간 1원14전"


 


=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청을 승계한 중국에 인천 지역을 조차하면서 세금을 거뒀던 중화민국조차지 등기부는 지금의 인천 차이나타운이 형성돼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있다. 1914년(대정 3년) 경성지법원장이 발행한 총 60장짜리 등기부에는 중국인 황화팡(黃華芳)이 1910년 8월부터 매년 1원14전을 세금으로 내기로 하고 71.03㎡의 1등지를 조차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중국인 안성둥(原生東)도 같은 시기에 매년 2원39전을 세금으로 내기로 하고 1등지 149.18㎡를 조차한다.



원래 150장 분량인 영대차지(永代借地)등기부의 일부도 발견됐다.



연합뉴스  심규석 이광철 기자 =   ks@yna.co.kr   minor@yna.co.kr  2007년 2월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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