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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베트남 연수3(측량의 흔적을 찾아서)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1-11-29 조회수 : 846


 



  베트남의 전 국토 면적은 33,104,218ha이며 인구는 약 7,800만명으로 인구 과밀 국가중의 하나이다. 국토면적에 있어서 세계 160개 국가 중 60위이며 10개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4위이다. 인구는 세계 13위이며 동남아시아 중에서는 2위이다. 가구수는 약 1,300만이며, 이중 1,050만 가구는 지방에 250만 가구는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땅 값이 비싼 곳은 1평에 약 1억4천만원정도에 거래된다. 



1857년 이전에는 봉건제도로서 왕은 영주에게 특권을 부여하였다. 토지의 대부분은 왕과 영주, 사원의 승려 등 지배층들만이 소유하였다. 통민의 토지는 Red River Delta지역 전체에 걸쳐 있는 수많은 마을에 위치한 토지가 대부분이었으며, 종교단체에 대한 토지는 불교사원과 천주교 등의 활동자금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서 토지의 소유권이 주어졌다.



토지관리제도는 주로 관세 목적으로 이용하였고, 등기의 방법은 증서등록제도(Deed Registration System)이였고 도면은 작성되지 않았다. 증서등록제도의 특징은 토지를 구입한 경우 다른 사람이 증인을 선 가운데 증서가 만들어졌고 이것이 합법적인 증명서가 되었다.



베트남 영토를 남부, 중부, 북부로 나누어 남부는 France의 식민지로서 France가 통치했기 때문에 지적제도는 France의 지적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부는 베트남 자치제로, 북부에서는 식민지와 자치제의 혼합형태로서 보호제를 실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지역별로 지적제도가 다르나 일반적으로 FranceNapoleon제도의 원칙을 실시했다. 그러나 지적조사를 많이 실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도면자료는 거의 없다. 또 지적제도가 주로 식민지의 과세를 목적으로 하였고 지적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전문가가 아니였기 때문에 데이터의 정확성은 낮았다. 특히 북부의 농촌 지방에서는 봉건제도가 여전히 실시되고 있었다.



  북쪽(월맹)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토지는 개인 재산이 아니고 국가나 사회의 재산(토지소유권은 없고 이용권만 있었다.)이었고 국가에 토지관리기관을 설립했다. 법률적으로 토지에 대한 법은 없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지적제도는 없었고 국가토지관리부터가 토지 이용권과 토지계획업무를 관장하였다.



  통일 후에는 남쪽(월남)에서도 사회주의 방식으로 토지를 관리했다. 정부는 국가토지관리기관을 직접 운영히ㅏㄴ다. 베트남의 행정체계는 4개의 지역정부(Unit Government)와 시(Province and City), (District and Provincial City), (Commune)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지관리시스템은 각 행정기관마다 존재하였으며, 특히 모든 동에는 동의 인민위원회에서 정한 담당자가 있어 그 동의 토지를 관리하게 하였다.



 



  ►호치민 시내와 미토, 붕따우에 있는 측량관련 교육기관과 측량장면, 기준점 등을 지나가면서 찰영하였다. 측량장비가 보인다.





















 



 ► 도로명, 건물명을 정리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금년부터 시행하는데 베트남은 오래전 부터 시행한것 같다. 모양과 기법이 다양하다. 골목 안에 있는 건물까지 거리를 나타내 표시하고 있다. 나중에 지어진 것, 연접해 있는 것들의 표시 방법은 우리가 배울만 하다.































 



 ► 측량의 흔적들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심어 100년이 넘은 가로수는 관리자 주소를 부착하였다.























 



► 마을 단위 공동묘지이다. 종교에 신분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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