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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특별기획] 조병현 박사의 북한 땅 이야기 ⑩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8-04-21 조회수 : 192

 북한땅 이야기 : 신분에 따른 주택 배정

 
[특별기획] 조병현 박사의 북한 땅 이야기 ⑩
 
농업토지 관리 제도
북한의 농업토지 관리는 ‘적지적작, 적기적작’의 원칙에 입각하여 소위 “주체농법을 실현시킨다”는 노동당의 정책노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한의 농업관리 조직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형태에 따라 두 가지로 대별된다. 국가적 소유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국영 농·목장, 국영 농기계작업소, 국영 관개관리소 등이며, 협동적 소유로는 협동농장을 들 수 있다.

북한의 농업관리체계를 보면, 처음에는 군인민위원회 농촌경리부에서 군내의 농업전반을 장악하여 행정방식으로 지도·관리하였다. 그 결과 관료주의, 독단주의 등이 팽배하였으며, 군인민위원회 위원의 지도역량과 자질 부족으로 계획 수립, 기술·자재 공급, 노동행정, 재정활동 등에 대한 올바른 지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61년 12월 김일성의 평남 숙천군 현지지도에 따라 종래의 군인민위원회에서 농촌경리부를 분리시켜 군협동농장 경영위원회를 신설하고, 1962년 말부터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를 농촌경리의 말단 단위로 하여 이를 도농촌경리위원회와 중앙의 농업위원회와 일원적으로 연결시켰다.

북한은 1998년 9월 내각개편을 통해 농업위원회를 농업성으로 개편하였다. 현재 농업성은 국영농목장과 협동농장부문을 관장하고 있다. 농업성은 농업부문을 종합적으로 지휘·감독하며 농업에 대한 투자 우선순위 결정, 농장에서 올라오는 연간생산계획에 대한 조정·관리, 농업부문에 대한 정부지원의 조정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최근에는 각 지역  농촌을  대상으로 우량 과일나무 심기 운동과 종자혁명, 큰물 피해 및 가뭄 대책, 비료확보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도농촌경리위원회는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와 국영 농목장을 직접 지도·감독하며 농업생산계획을 세우고 그 집행을 감독하며 농업생산에 대한 기술적 지도를 수행한다.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를 기업적 방법으로 지도 관리하는 전문적인 농업지도기관으로 규정하고 지금까지 이를 중심으로 하여 농업생산의 계획화 및 기술적 지도는 물론, 농업생산의 ‘다각화·전문화·지역화’를 도모하고 있다.

북한 농업생산과 경지면적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협동농장은 농업생산의 기본단위이다. 협동농장의 관리운영은 농장관리위원회가 담당하며 농장관리위원회의 구성원은 매년 농장원 총회(또는 대표자회의)에서 선출한다. 협동농장에서의 생산조직 기본단위는 작업반이다. 협동농장의 작업반은 일정한 경지, 노동력 및 작업도구를 가지고 부과된 연간 생산과제를 수행한다. 작업반은 몇 개의 분조로 다시 나누고 분조단위로 작업을 한다.

작업반은 협동농장의 생산규모와 자연부락, 지형적 조건에 따라 농산작업반, 축산작업반 및 농기구수리반 등으로 조직된다. 기타 생산부문은 소규모의 경우는 작업반내의 분조로 소속시키고 규모가 큰 경우는 전문작업반을 조직하기도 한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분조관리제와 함께 작업반 우대제가 실시되었다. 이는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높이기 위해 일정한 우대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것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작업반의 구성원들이 나누어 갖는 제도이다. 90년대 들어 북한은 부분적이나마 농업에 대한 제도적 변화를 시도하였다. 그 하나는 일부 협동농장을 전인민적 소유(국유)형태로 전환한 것이다. 김일성은 1994년 2월 ‘사회주의 농촌테제발표 30주년 기념서한’에서 협동농장들을 전인민적 소유형태인 ‘농업연합기업소’(또는 국영농장)로 점차 전환시켜 농업의 공업화를 실현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지시에 따라 북한은 동년 12월 평양시 만경대구역내 협동농장들과 평남 숙천군 내 협동농장들과 농업관련 기업소들을 각각 통합하여 전인민적 소유 형태의 ‘만경대구역 국영농장’ 및 ‘숙천군 농업연합기업소’로 농업체제를 개편하였다.
 


이러한 농업체제 개편은 농업관리체계를 간소화시키고 생산계획 및 관리에 자율성을 일부 부여하여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회주의경제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국가들의 농업개혁 추세와는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농업체제의 전환을 위해 지리적 조건, 협동농장들의 규모, 관리운영 수준 등을 고려하고 생산실적이 좋은 지역만을 선정해 오랜 기간동안 시범적으로 준비하여 왔다. 이점에서 볼 때 모든 협동농장들이 협동적 소유에서 전인민적 소유로 전면적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농업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변화는 분조관리제에 대한 새로운 조치이다. 1996년부터 농업생산성 저하로 인한 현실적 요구에 따라 개인의 근로의욕을 높이기 위해 ①분조의 규모를 10∼25명으로부터 7∼8명으로 줄이고 ②과거 3개년(1993∼95년) 평균수확고와 1993년 이전 과거 10년간의 평균수확고를 합하여 나눈 평균치를 1996년도의 생산목표로 설정하고 ③할당생산목표의 초과생산량에 대한 처분권을 분조에게 넘겨주어 초과생산량을 분조원들이 직접 나누거나 팔거나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새로운 분조관리제는 분조의 규모를 축소하고 초과생산분의 직접적인 처분을 허용해 분조원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였다.

2002년 협동농장 및 기업소의 자율성 확대 등을 담은 이른바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시행한 뒤 2004년 초 황해북도 수안, 함경북도 회령 등지에서 포전(圃田, 일정한 면적의 논밭)담당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하였다.

시범적으로 실시한 포전담당책임제는 협동농장 말단 단위인 분조(15~20여 명)내에 포전을 담당하는 최종 노동단위를 3~5명으로 구성하고 1인당 약 1정보씩 토지를 분배해 생산량의 일정 비율만 당국에 바치고 나머지는 개인들이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김정은 시대 핵심적인 농업개혁 조치이다.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북한은 2012년부터 분조관리제 강화와 포전담당책임제를 정착시켰다. 2014년 역사상 처음으로 ‘농업 분조장대회’를 개최하여 포전담당제를 확대 실시하는 계기로 삼았다. 작업반장의 지시에 따라 집중적으로 진행했던 종전의 가을걷이 방법 대신 포전별 특성을 고려한 자체 계획에 따라 포전담당자별로 가을걷이와 탈곡을 하도록 함으로써 포전담당책임제가 실제로 성과를 내도록 당국에서 강한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에 따라 경영위원회는 영농작업에 대한 일정계획 수행을 작업반이 아닌 포전담당자 별로 실시하여 전국 협동농장들의 30% 정도에 달하는 농장들에서 포전담당책임제를 실시하고 있다. 농장원들이 농장포전을 자기 포전처럼 생각하면서 주인답게 일해 나가도록 하였다. 개인 텃밭(30∼40평)에는 정성을 기울이지만 공동경작지에는 소홀히 하는 경향을 없애 농민들의 실질적 수입을 늘려 생산의욕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15∼20명으로 구성된 분조를 다시 3∼5명 단위로 나눠 일정한 규모의 포전을 맡아 농사를 짓게 하였다.

이에 따라 3∼5명으로 구성된 농장원들이 포전마다 씨뿌리기부터 수확에 이르는 모든 농사과정을 책임지고 진행하게 됐고, 연말에 이뤄지는 결산분배도 이 단위의 성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이루어져 농민들의 실질적 수입이 많이 향상되었다.

2017년에는 포전담당자별로 예상 수확고 판정을 정확히 한 것을 기초로 수매계획을 수행한 농장원들에 대해서는 시범적으로 탈곡현장에서 즉시 분배했다. 앞으로 가족분조에게 장기간의 토지경작권을 부여할 경우 포전담당책임제는 개인농 형태로 발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분에 따른 주택 배정
북한 민법 제50조에 의하면 “국가는 살림집을 지어 그 리용권을 로동자, 농민, 사무원에게 넘겨주며 그것을 법적으로 보호한다”고 명시함으로써 주택배정은 중앙에서 일정한 기준에 따라 일괄적으로 이루어지며, 일반주민에게는 이용권만 부여하고 개인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주민들은 계층과 직위에 따라 정해져 있는 각 등급의 독립가옥이나 아파트 등을 임대형식으로 할당 받아 생활한다. 그러나 북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택난이 심각하다. 신혼 부부의 경우 4∼5년 정도 기다려야 주택을 배정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워 1주택에 2가구가 같이 사는 ‘동거살이’ 경우도 적지 않다.

북한은 한국전쟁으로 60만호의 주택이 완전 파괴되어 극심한 주택난에 직면하였다. 휴전직후부터 주택건설에 주력하면서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집단화하고 밀집화하기 위해 ‘설계의 표준화 및 규격화’ 방침에 따라 도시에서는 고층아파트를, 농촌에서는 이른바 ‘문화주택’으로 불리는 연립주택을 주로 건설하는 등 주택의 획일화 정책을 실시했다.

이러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주택난이 개선되지 않자 북한은 제2차 7개년계획(1978~1984년)과 제3차 7개년계획(1987~1993)을 세워 주택난 해소에 주력했다. 이 기간 중 북한은 특히 평양 등 대도시에 대규모의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는 등 괄목할 만한 주택 건설성과를 보였다.

1980년 10월 평양 창광거리에 고층아파트를 건설한데 이어 문수거리에 1만여 세대의 고층아파트를 건설한 것과 1989년 이후 평양시신도시건설계획에 의거해 통일거리와 광복거리, 2015년 미래과학자거리 등에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건물을 잇따라 건설한 것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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