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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병현박사의 북한 땅 이야기⑦ 사회주의 토지제도의 승리, 토지정리사업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8-02-04 조회수 : 361

사회주의 토지제도의 승리, 토지정리사업


[특별기획] 조병현박사의 북한 땅 이야기

사회주의 토지제도의 승리 토지정리사업
토지정리는 올망졸망한 논밭을 규격화해 바둑판처럼 펼쳐 정리하는 경지정리의 북한식 표현이다. 북한의 토지정리사업은 김일성의 자연개조 5대방침(1976.10)과 4대 자연개조방침(1981.10)을 이어 받은 김정일의 대자연개조구상에 따른 것이다.

김정일은 1998년부터 5년간 토지정리 사업을 위해 강원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남도 등 농촌 27개 단위를 현지지도 하면서 토지정리총계획도 및 설계도면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등 100여 차례 이상 사업의 구체적인 목표와 방향에 대한 강령을 하달하였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장군님은 뙈기논밭에서 봉건적 토지 소유의 잔재를 발견하고 낡은 사회의 유물을 완전히 청산하기 위한 하나의 혁명으로 토지정리사업을 내세웠다”고 강조하면서 “토지개혁으로 봉건적 토지 소유관계가 무너지고 농업협동화로 사회주의적 토지소유 관계가 수립됐으나 낡은 토지소유 면모를 그대로 두고서는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도 살릴 수 없으며 농민들의 머리속에서 소유자(所有者)적 근성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없었다”고 토지정리사업에 대한 추진 배경을 설명하고 “토지정리를 통해 경지면적을 늘려 곡물생산을 증대시키고, 농촌4화과업의 하나인 농촌기계화를 서둘러 실현하자”고 독려하였다.

북한은 뙈기논밭이 많고 농업생산조건이 불리한 강원도를 첫 시범단위로 내세우고 여기서부터 토지정리의 경험을 창조함으로써 전국적인 토지정리사업의 돌파구를 열어나갔다. 1998년 9월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북한 전역의 지원을 받아 강원도에서 시범적으로 추진된 토지정리 사업은 1999년 평안북도, 2000년 황해남도로 확대되면서 사업을 각각 1년 단위로 마무리 하였다.

2002년에는 평양시, 남포시(2004년 1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안남도에 편입됨), 평안남도 등지에서 토지정리사업에 착수하여 2004년 7월에 토지정리 사업을 끝냈다. 평안남도와 평양시에 이어 황해북도와 함경남도로 토지정리사업이 확대되었다.

김정일의 2000년 1월 24일 평안북도 토지정리사업 현장을 찾아 현지지도하면서 일꾼들과 한 담화내용을 ‘토지정리로작’으로 발표하였다. 발표문에서 “토지정리는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한 대자연개조사업이며 만년대계의 애국위업으로 규정하고 이제는 옛날 지주가 토지문서를 가지고 한드레벌에 와서 자기 땅을 찾자고 하여도 찾지 못하게 되었다”고 선전하였다.

북한의 이러한 선전은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규모가 급격히 감소하여 자체적인 곡물증산 없이는 향후 심각한 식량난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토지정리로 인한 경지증대 규모 및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지도 실적을 부각·선전함으로써 각 지역의 토지정리 일꾼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현재 진행 중인 평양·남포·평안남도의 토지정리사업을 조속히 마무리 짓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월간 화보지 <조선> 2011년 5월호는 ‘한드레벌의 지평선’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을 보면 “함경북도 태천군에 끝간 데 없이 펼쳐진 한드레벌, 해방 전 용드레질로 올망졸망한 뙈기논들에 웅뎅이의 물을 한드레씩 퍼서 고달프게 농사를 짓던 곳이어서 그 이름에도 눈물겨운 사연이 담겨져 있다. 조선로동당의 웅대한 대자연개조구상에 따라 지난날 락후와 빈궁의 대명사로 불리우던 이곳 한드레벌은 사회주의 땅답게 전변되었다.

뙈기논들이 없어지고 10리나 되는 직선포전도로를 중심으로 바둑판처럼 쭉쭉 그어놓은 규격포전들이 펼쳐졌다. 아침해살이 안개 속에 잠긴 벌판으로 퍼져나가 마치 하늘과 땅이 맞붙은 것과 같은 풍경…, 저녁이면 또 무연한 벌판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로 하여 한드레벌의 지평선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주체89(2000)년 1월 토지정리된 한드레벌을 찾으신 김정일 령도자께서는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시며 정말 멋있다고, 천지개벽이 되였다고 하시면서 벌의 이름을 고치지 말고 그대로 두어 전변의 력사를 후대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고 뜻깊게 말씀하시였다. 오늘 한드레벌 그 어디나 사람들의 기쁨과 행복의 노래가 끝없는 메아리되여 울려 퍼지고 있다”면서 토지정리사업을 ‘사회주의 토지제도의 승리’라고 자랑하였다.

또한 양춘식은 주체94(2005)년 <아동문학>제3호에 선군8경(先軍八景) 중의 하나인 ‘한드레벌의 지평선’를 소재로 한 시를 실었다.
1998년 강원도부터 시작한 토지정리 사업은 2008년 2월까지 10년간 28만 2000 정보의 토지를 정리하고 강원도(1760정보), 평안북도(2000정보), 황해남도(2310정보), 함경북도(70정보) 등지에서 모두 7670정보의 새 땅을 확보하였다. 2015년에는 미루벌 개간사업을 완료하여 경지 6100여 정보의 토지를 정리해 5만 8700여 개의 뙈기논이 3만 5200여개의 규격포전으로 정리됐고, 70여 정보의 새 땅을 확보하였다.
토지정리사업은 ‘선군시대’에 맞게 인민군대가 앞장서고 전국의 민간돌격대와 각종 장비들을 총동원하는 ‘선군정치’ 방식으로 추진하였으며, 컴퓨터산업의 산실인 조선컴퓨터센터가 개발한 건설계획 작성 컴퓨터 프로그램(S/W) ‘천지개벽’이 도입되어 토지정리 공사에서 많은 재원과 자재, 인력을 절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북한이 2015년 완료한 미루벌 개간사업의 미루벌은 황해북도 곡산군에 위치해 있는데 ‘꽤 넓고 평평한 벌판’이란 뜻으로 토양이 산성이고, 소나무만 주로 자라는 고지대이다 보니 사람들이 농사짓기를 미루고 떠났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미루벌 개간사업은 김일성이 이곳을 여러 차례 찾아 개간사업을 지시한데 이어 김정일의 ‘미루벌을 잘 정리할 데’ 대한 당의 방침이 2007년도에 내려져 각 도에서 지원자들을 선발해 투입하고, 독려해 준공하였다. 이 사업이 주목받은 이유는 북한이 강조해 온 영농의 수리화, 고지대 개발, 물의 종합적 이용, 새 땅 찾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경지정리에 앞서 2009년도에 미루벌 물길공사를 완공하였는데 우리 표현으로는 관개수로 공사로 황해북도 곡산군에서 신계군에 이르는 220km 수로를 만들어 임진강 상류의 물을 아호비령 산맥을 굴로 뚫어 리상저수지로 물을 흐르게 한 것이다.
북한은 1964년 2월 당4기8차 전원회의에서 ‘농촌4化운동’이 제기되면서 수리화 사업은 농촌개발의 최우선 사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90년대 초까지 압록강 관개‧평남관개‧기양관개‧어지돈관개‧청단관개 등 12개 지역 관개망과 1700여 개의 저수지, 2만 5000개 양수장, 그리고 총연장 4만㎞의 관개수로를 갖추게 되었다.

이 같은 관개수로 및 저수지 등은 북한 총 농경지 214만 정보의 65%인 140만 정보의 농경지에 외형상으로는 수리혜택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40% 수준인 100만 정보의 농경지에도 제대로 수리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길 공사도 처음에는 김일성이 양수기를 이용한 관수시스템을 구축하여 옥토로 만들고자 했으나 90년대 들어 전력난으로 양수기 가동이 어렵게 되자 김정일이 2005년 자연흐름식 즉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는 물길 공사를 발기하여 3년만에 완공하였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220km나 되는 긴 물길을 중장비나 기술 없이 동원된 군인, 주민들의 순수한 노동력에 의해 완공했다.

그러나 노동신문은 경제적 효과에 대해 자연흐름식 물길이기 때문에 수백대의 양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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