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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병현박사 북한 땅 이야기 ② 북한 땅은 죽은 땅, 북한 땅에 새 생명을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7-10-11 조회수 : 18

 북한 땅은 죽은 땅, 북한 땅에 새
생명을(2)


 
[특별기획] 조병현
박사의 북한 땅 이야기


현재 북한 행정구역체계의 특징을 해방 당시와 비교하면 여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도의 신설 및 개편이다. 북한은 국가 관리 활동의 민활성을 보장하고 정치, 경제, 교통 및 문화활동을 더욱 촉진시키기 위하여
기존의 6개 도를 9개 도로 개편하였다. 이의 가장 큰 목적은 행정체제의 중앙집중화 강화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 외에 다양한 성격을 지닌
지역들로 구성된 도를 비교적 동질적이고 유사한 규모의 지역단위로 편성하려는 의도와 행정구역의 수를 늘림으로써 남북한 총선거가 이루어질 경우의
지역대표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둘째, 면의 폐지 및 리의 규모 확대이다. 현행 북한 행정구역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도→군→면→리의 4계층으로 구분된 행정체제를 도→군→리의 3단계로 축소, 조정하고 면을 폐지하였다는 점이다. 면의 폐지는 종래 불합리한
4계층의 행정단위를 3계층으로 단축함으로써 중앙집권적 행정체제를 강화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리는 말단 행정단위로서 농업생산과 농민생활의
기본단위가 된다. 리는 1만 120개소에서 3342개로 통합, 조정되었다.

셋째, 지역 거점으로서 군의 위상 정립이다. 북한의
행정구역의 4단계에서 3단계로의 축소는 군의 역할 제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리는 그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지방의 경제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데 부적절하며, 도는 그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 이에 비해 군은 그 규모와 지역 내의 자연적, 문화적, 경제적 공통점과 지도역량의
측면에서 볼 때 지역거점으로서 가장 적합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군이 지역거점으로서 적합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존 군의 규모를
하향조정하고 리의 규모가 확장됨으로 읍의 위상에 큰 변화가 발생하여 규모면에서 대폭 축소되었다.

넷째, 노동자구의 신설이다. 해방
이후 북한이 실시한 행정개편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으로는 노동자구의 신설이다. 노동자구의 신설은 면의 폐지와 동시에 1952년에 이루어졌다.
노동자구는 군의 직속 행정기관으로 군의 리나 시의 동과 동격으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구는 지역의 성격상 농업지역보다 도시지역으로
간주되며, 광업과 임업, 수산업, 공업의 합리적인 배치를 위한 한 방안으로 이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북한에는 267개의 노동자구가
설치되어 있다.

다섯째, 대도시 행정체제의 개편이다. 북한도 남한과 같이 특별시와 직할시 제도를 두고 있으며, 북한의 대도시
행정체계 또한 남한과 유사하여 대도시는 경계 안에 군을 포함하고 있다. 평양시의 경우 한국의 구에 해당하는 18개의 구역과 강남, 중화, 상원,
강동군의 4개 군을 포함하고 있다. 남포직할시의 경우 5개 구역과 용강군의 1개 군을 지니고 있다. 개성시의 경우는 구역이 없이 개성시와
판문군, 개풍군, 장풍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섯째, 지명의 변화이다. 북한의 지명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징은 기존 한자 지명의
상당 부분을 한글로 풀어 사용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보다 큰 특징은 김일성 가계 및 혁명 관련 지명의 등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1981년 8월 량강도 신파군을 김정숙군(김정일의 생모 이름)으로 개편한 것과 1988년 8월 량강도 후창군을 김형직군(김일성의 부),
1990년 8월 량강도 풍산군을 김형권군(김일성의 숙부)으로 개칭하였으며, 황남 재령군 김제원리, 함북 김책시와 은덕군 안길리, 강원도 평강군
이수덕리 등 현재 북한에서는 해방 당시에 비해 행정단위 지명의 변화 외에 약 1000개의 지명이 변경되었다.

이와 같이 북한 땅은
행정구역과 명칭, 지명, 주소체계 등 소프트웨어가 망가졌다. 이제 실향민이 고향을 찾아가려고 해도 행정구역과 지명의 변화로 찾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특히, 북한 땅에는 지번이 없기 때문에 종전의 주소로는 토지의 위치를 확인하기 어렵다. 현재 북한의 주소는 도시지역의 아파트는 ‘평양시
락량구역 장벽2동 제73인민반 10층 1호’, 농촌지역의 주택은 ‘함경남도 금야군 금야읍 금야리 제11작업반’ 등으로 표시하고 있어 우리와는
주소체계가 다르다.
 
끊어진 동맥, 철도와 도로
북한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망은 철도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도로와 해운은 철도와 연계하여 보조적인 기능을 맡고 있다. 남북한을 통틀어 한반도에 최초로 철도가 건설된 것은 1900년 7월
5일 한강철교가 준공되면서 한성과 인천을 잇는 경인선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광물 등 자원이 많은 북한 지역에도 철도 시설이 다수 건설되었다.


1920년대에는 만주와 연해주를 연결하는 철도 노선이 건설되어 선양(봉천)에서 북경이나 모스크바로 환승할 수 있게 되었다. 해방
이후 북한은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던 철도망의 구조를 평양 중심으로 바꾸면서 동서간 연결성의 확대, 대륜환 교통망의 확보와 중국 및 소련과의
연결에 중점을 두고 개편하였다.

2014년 기준 철도 총연장은 5302km로 남한의 1.5배 수준이다. 북한의 부문별 수송분담률은
철도가 전체의 86%를 차지하고 있다. 화물수송의 경우 철도가 90%, 도로는 7%, 해운은 3% 정도에 거쳐 철도부문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여객수송도 철도 62%, 도로는 37%, 해운수송은 1% 미만에 거치고 있다.
이와 같이 북한에서 철도의 활용도가 높은 것은 산지가 많은
지형적인 특징에 기인한다. 이에 따라 북한은 타 교통수단에 비해 철도에 대해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해왔다. 1958년 평원선 전철화 이후
본격적으로 전철화를 추진하기 시작하여 2008년 현재 북한 철도 총연장의 80.6%에 달하는 5242km 구간이 전철화 되었다.


북한이 전철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첫째, 전기기관차가 마력이 높아 경사가 심한 북한의 산악지대에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노후되어 가는 증기기관차의 대체가 불가피한 실정이며, 셋째, 수입석유에 의해 움직이는 디젤기관차보다 전기기관차 운행으로 동력의 자급화를
기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북한의 철도체계는 높은 전철화율에도 불구하고 전체노선의 약 98%가 단선이기 때문에 열차운행 빈도가
높아질수록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져 전체 열차운행의 효율성이 낮은 상태이고, 수송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철도의 운행 횟수보다는 화차량을 늘리는
방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속도 또한 낮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심각한 전력난으로 더 많은 어려움을 격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도로수송은 주요 철도역이나 항구 등과의 근거리를 잇는 연결수송으로서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거나 철도나 수운이 없는 지역에서만
장거리 수송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의 도로원표(道路元標)에 해당하는 북한의 나라길시작점은 김일성광장 주석단 중심 아래에 있다.
원래 북한의 도로기준점은 평양시 중구역의 평양성 출입문중의 하나였던 함구문자리에 있었다. 대동교로부터 창광산 쪽으로 난 도로와 평양제2백화점에서
인민대학습당으로 난 도로가 교차되는 지점이다. 나라길 시작점 변경 이유에 대해 “나라길 시작점을 수령님의 혁명활동 역사와 결부시켜 올바로 정하는
것은 시대와 인민의 한결같은 요구였다”고 주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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