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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병현 박사의 우리 영토이야기⑫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7-05-16 조회수 : 91

 조병현 박사의 우리 영토이야기⑫ 우리 국토(國土), 강역의
변천사

 
대고려국 건국 운동자는
유림(儒林)

대고려 건국 운동자의 주된 이들은 유림이다. 유림의 수는 약 600만이라 하며 각 도와 군 및 촌에 걸쳐 없는
곳이 없다. 함경북도와 평안도에는 옛날부터 양반은 없다고 말해지지만, 그럼에도 유생은 많이 살고 있다. 유생이 조술하는 바는 멀리는 그것을
예기(禮記)에서 구하고, 가까이로는 그것을 주희(朱熹)의 소학(小學) 내외편에 준하고 있다.

그래서 당국은 유생에 의해 백성의
사정을 알고, 민중은 유생에 의해 질고(疾苦)를 호소하였다. 포고문에서 여러 규칙부터 기타 각종 당국의 포달(布達), 고시(告示)는 유생이 모두
민중에게 읽어 주었고 민중의 청원 기타 일체 진술은 모두 유생의 손에 의뢰하였다. 양반(兩班)은 민중을 주구(誅求)하고 겁략(劫掠)하였으므로
민중의 원부(怨府)가 되어 있었지만, 유생은 민중을 선도하고 훈도(薰陶)하여 원조하였으므로 민중은 이들을 사부(師父)로서 존숭하였다.


그런데 한일합병(韓日合倂) 이후 우리 속리(俗吏)가 조선의 옛 풍속과 습관을 무시하고, 함부로 일본 글로 된 법률 규칙을
난포(亂布)하고, 또한 청원 등도 일본풍으로 하였으므로 유생의 설 자리가 없게 되어버렸다. 유생은 그 직책을 빼앗겼으므로 그 세력이 일본에
대하여 반감을 품지 않을 리가 없었다. 마침내 양반과 함께 도도(滔滔)히 서로 인솔하여 배일단(排日團)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심사를 해부하면
대략 다섯 가지의 반일 이유가 발견된다.

첫째는 국모의 참혹한 죽음이고, 둘째는 병합이 강압적이었다는 점이며, 셋째는 양반 계급의
철폐가 급격했다는 것이고, 넷째는 합병 이후 일본인이 변함없이 선인(鮮人)을 경멸한다는 것이며, 다섯째는 일본보다는 유럽, 미국 쪽이 훨씬
강대하고 문명이며 관굉(寬宏)하다고 하는 사대주의이다.

이들 불평계급 일부는 나라를 떠나 지나(支那), 만주, 시베리아, 미국
등으로 이주하여 고국에 남아있는 자와 기맥(氣脈)을 통하여 반일열(反日熱)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 배일당(排日黨)의 분포를 조사해 보면,
성징성(盛京省)과 헤이룽성(黑龍省), 지린성(吉林省), 시베리아가 주된 곳이며, 그 수가 무려 100만이나 된다. 그밖에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미국 등에도 다수의 이주자가 있다. 그들의 주의(主義)는 민주공화로 고국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일본인에 대해서는 증오의
마음이 가득하여 늘 적대 행동을 취한다.

만주에서 일본인이 참살되는 등은 실제는 마적의 짓이 아니고, 대부분은 배일 선인의 손에
의한 것이다. 그들 중에는 학문, 문장 실력이 있는 자가 있다. 일본에서 유학한 자들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에서 유학하여 그 나라 말에 능숙한
자가 있다. 상인도 있고, 농부도 있고, 노동자도 있고, 밀매업자도 있고, 병사였던 자도 있다. 그 안에 재주와 학문이 있는 청년 지사가 있어
민주공화의 주의를 품고 그에 따라 고국을 회복하려고, 이주민을 선동하여 극단적으로 배일 행동을 취함에 이르게 한다.

만주에 있는
배일 선인의 수령을 들면 류허현(柳河縣)에 전 한국 법무국장이었던 경성의 이시영(李始榮)이 있다. 그는 양반이다. 지린(吉林)에는 똑같이
양반으로 경기도 사람인 정안립(鄭安立)이 있다.
 
게다가 그는 지금 대고려국 건국에 열중한 사람으로 배일의 기상은 잦아들고 있다.
류허현에 있는 호걸 중에는 경기도의 양반으로 전 의병대장이었던 이범윤(李範允)과 전 참령(參領)이었던 함경의 이혜휘(李惠輝), 의병대장이었던
경기의 양반 홍범도(洪範道)와 이시영의 참모였던 경성의 양반 이동녕(李東寧)과 이씨의 사령관이었던 경성의 평민 장봉한(張鳳翰)과 경성의 양반,
의병 사령관 조욱(曹煜)과 황해도 주민으로 의병 수령인 조맹선(趙孟善)과 경상도 주민 이상룡(李相龍)과 같은 도의 의병 수령 윤세복(尹世復)과
평안도의 주민으로 의병의 필두(筆頭)인 이탁(李鐸)과 경상남도의 토판(土辦)으로 의병대장인 허혁(許爀)이 있다.

서간도에는
평안도의 양반인 양기탁(梁起鐸)과 함경남도 주민으로 의병 사령관이었던 이홍주(李鴻周)와 출처 불명의 이세영(李世榮)이라는 인물이 활약하고 있다.
북간도에는 충청도의 토변(土辨)으로 공주(公州)의 의병인 이규(李珪)와 충청도의 토변으로 의병인 이종택(李鐘澤)과 경성의 양반으로 학사(學士)인
김교헌(金敎憲)이 있다. 무쑹(撫松)에는 함경남도 사람으로 의병 사령관인 김호익(金虎翼)과 경기도 양반으로 의병인 성호(成浩)가 있다.
지린(吉林)에는 수원의 양반 맹동전(孟東田)과 경기도의 토판으로 의병인 김붕(金鵬)과 경성의 양반생계회(兩班生計會) 회장인 여준(呂準)과 경기도
사람 박순(朴純)이 세력을 떨치고 있다.

露領의 연해주 小王嶺에는 평안도 주민으로 참령이었던 유동열(柳東悅)이 있다.
무위안(木猿)에는 황해도 주민으로 이토 공(伊藤公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가리킨다)을 암살한 안중근(安重根)의 동생 안중칠(安重七)이
있다. 창바이부(長白府)에는 함경도 양반으로 의병이었던 오주환(吳周煥)이 있다.

상하이에는 경기도 토판으로 의병인
신규식(申圭植)과 충청도 토판으로 매일신문(每日新聞)의 주필이었던 신채호(申采浩)와 안조한(安照漢)과 신종홍(申宗洪)과 김복(金復)과
여직지(呂直之)와 현(玄) 아무개와 명(明) 아무개가 활약하고 있다. 시베리아에는 문창범(文昌範)과 보병 참령이었던 이동휘(李東暉)가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최재형(崔在亨)과 김규식(金奎植, 현재 파리에 있음)과 안창호(安昌浩)가 있다. 하와이에는 이승만(李承晩)이 있고,
샌프란시스코에는 안건근(安健根)이 있다. 이밖에 안둥현(安東縣)에는 전 검사(檢事) 김탁(金鐸)과 그 동생 김영(金永)과 박홍(朴洪)이 있다.
김탁의 세력은 요동에 퍼져 있다.

또 지린(吉林)에 있던 손일민(孫一民)은 원래 경성에 있던 사람이었으나 난을 피하여 지린으로 간
것으로 그의 세력은 북지나(北支那) 일대에 미치며, 베이징(北京), 톈진(天津)의 선인(鮮人)은 모두 그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다.


이들 인사들은 모두 극단적인 반일주의로, 온갖 수단을 다하여 일본에 대해 저항, 방해를 시도하고 있으나 스에나가 씨의 대고려국
건설을 듣자 흡연(翕然,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모양)하게 대고려국의 둑(纛 : 군대 행렬 등의 앞에 세우던 대장기) 아래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현재 건국을 위해 가장 열심히 노력, 분주하고 있는 건국위원은 다음과 같다.
 
조선 동화정책의
의문

스에나가 씨는 처음에 동척(東拓)과 흥업은행(興業銀行)에 1000만 엔을 지출해 이들 선인에게 대부하여 토지를 사서
개간에 종사시키고 또 회사가 직접 미개간지를 매수하여 선인 중 실업자를 여기에 수용한다면, 적어도 30~50만의 선인을 수용, 구조할 수 있어서
그들로 하여금 우리 제국의 은혜에 열복(悅服)하게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리라. 그리고 이들 이민은 지린에 있는 수령 30여 명에게 통솔되고
있으므로 그 중 우두머리 4, 5인을 회유하여 귀순시킨다면, 나머지는 수고하지 않고 우리 순종하는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안을 세워서 당국에
건백(建白)하였으나 눈앞이 깜깜히 어두운 관료들은 이 건의에 귀를 빌려주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불령선인의 폭동을 커지게 만든 상황이다.


당시 스에나가 씨의 의견이라는 것을 보면 조선은 일본의 점령지가 아니다. 또한 식민지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를 가라후토(樺太 :
지금의 사할린 섬)나 대만(臺灣)과 동일시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조선 민족은 40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문명의 독립 민족이므로
통치자는 냉정하고 공평하게 이를 고려하고 인식하여 일체 시정(施政)은 모두 이에 따라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러지 않고
함부로 조선을 피정복자로 보고 또 이를 예속시하는 것 같은 일은 □□(입수한 신문 자료에서는 뭉개져 있어 판독 불가)에 있어서 잘못되어 있다.
국가의 금도(襟度)는 관대하고 그 위신은 삼엄해야 한다.조선 통치의 요도(要道)는 이 법칙에 따라 그 민족의 성정을 숙지하고, 그 자신을
훼손하지 않고 능히 이들을 계도하여 자치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에 있다. 만약 동화정책과 같은 것을 시행하여 통치의 실적을 기하려 하는 것과 같은
일은 백년하청(百年河淸, 100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黃河)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랫동안 기다려도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 : 필자주)을 믿는 것과 같은 잘못된 생각이다.

또한 반대로 선인의 주장을 보면, 그들은 메이지(明治)
27~28년의 일청전역(日淸戰役 : 청일전쟁을 가리킨다)에서도 37~38년의 일러의 전역(러일전쟁을 가리킨다)에서도 우리의 선전(宣戰) 조칙을
읽고 우리나라가 조선의 독립을 확보할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일한의 병합(倂合)도 병합이 아니고 합방(合邦)이라고 굳게 믿어 조야의
유식자들은 정부와 국민을 움직여 민족자결의 주의에 따라 일본 천황 폐하의 통치하에 완전한 국민적 자격을 얻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병탄의 형태가 되어 국토 민인(民人)이 일본에 예속하게 된 것처럼 보이므로 -물론 이는 우리 당국의 시정의 악영향도 있음에 틀림없으나-
그들은 매우 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림이 조선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미 서술한 대로이다. 그러므로 유림을
이해시키고 이들을 대동단결시켜 우리의 통치를 구가하게 하는 것은 최대 급무이다. 원래 조선에는 언문(諺文)이라고 하는 우리 신대문자 같은 문자가
있어 우리 가나(假名)문자와 같이 한자(漢字)와 섞어서 일반에서 사용하고 있다. 옛날부터 조정의 법령 등도 모두 언문과 한자를 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반 민중은 언문은 알아도 한자는 모른다. 한자를 알고 있는 것은 유림인 사람들뿐이다.

그러므로 시, 부, 군, 촌에는
유생이 필요하다. 위의 뜻을 하달하고 아래의 뜻을 상소하는 것은 전술한 대로 유생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유생의 직무는 독서, 산술(算術),
습자(習字), 예의, 대서(代書), 병 진단, 투약, 길흉 점치기, 제사, 대변(代辨), 사건의 중재 등으로 딱 우리나라의 옛날의
수습사장(手習師匠, 습자 등을 가르치는 사람) 같은 자였다. 지방관의 포폄출척(褒貶黜陟, 조선시대 관리의 근무성적을 평가하여 그 성적에 따라
관리의 승진과 강등, 파직을 결정하는 일)을 아뢰거나 인민의 죄과를 짐작하는 청원을 하거나 한다.

그러므로 인민은 유생을 중시하고
이를 신뢰하는 일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조정에서도 이를 우대하여 바로 천궐(天闕)에 엎드려 아뢰는 특권을 부여했다. 그러므로 유생은 자중하여
그 체면을 유지하고 위의를 바르게 하였다. 그리고 유생은 거의 모든 지방 각 촌락에 분포하여 그 수가 약 600만이라고 한다.


양반은 조정이 발탁한 자들로 반드시 유림 출신이 아니라도 좋다. 그러나 유림은 양반이 되는 자격을 갖고 있다. 유림은 십수 개
파로 나뉘어 당쟁을 일삼았으나 인의충효의 큰 근본에 의해 기절(氣節)을 쉬려(淬勵, 분기(奮起)하여 일에 정진함)하고 동양 윤리 도덕의 교화를
장려하는 바는 똑 같았다. 그러므로 우리 통치의 요결(要訣)은 이 유림을 통합하여 대동단결을 하고, 그리고 우리 통치에 기꺼이 승복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우리 관헌은 이들 양반, 유림의 직책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용하는 길을 강구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
실직한 양반과 실업한 유생을 보고 일정한 직업이 없는 부랑자로서 취급하여 오히려 그들의 반감을 부추겼다. 소위 부랑하는 실업 양반 및 유림은
다수가 30세 이상의 자들로 조선에 있어서 활동의 중심 세력으로, 구학(舊學)의 수습(修習)으로 양성되었고 신학(新學) 지식이 있는 자는 열에
두어 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관헌이 발포하는 신법령과 신규칙을 이해하는 일이 어렵다. 이런 것들이 일반 민중에게는
가혹폭려(苛酷暴戾)한 정치라고 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말았다. 게다가 조선에 있는 일인(日人)은 자국의 문자를 독해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선인과의
교섭에 있어서 법률규칙을 남용하여 가차없이 선인을 대하고 또한 선민(鮮民) 중에 일본어에 능통한 자와 선인 관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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