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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병현박사 우리영토이야기 ④ 간도(間島)는 우리가 개간한, 우리 국토이다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6-09-05 조회수 : 525

간도(間島)는 우리가 개간한, 우리 국토이다


특별기획 우리 영토이야기 ④

우리 국토(國土), 강역의 변천사 - 조병현 공학박사

간도와 간도협약
9월 4일은 일본과 중국의 간도협약 체결로 우리 땅 간도의 영유권이 중국으로 넘어간 날이다. 간도는 함경북도 종성(鍾城)과 은성(隱城) 사이의 두만강이 갈라져 그 중간에 자연히 ‘사잇섬’이 생겼는데 조선인 사이에서 이 섬을 ‘간도’로 부르다가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어 만주지역을 북간도, 백두산 동쪽을 동간도, 서쪽을 서간도라 부르게 되었으며, 지역적으로는 두만강을 기준으로 종성 너머는 종성간도, 은성 너머는 은성간도, 갑산 너머는 갑산간도라 하였다.

이 지역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옛 땅으로 우리가 개간하여 대한제국 시기까지 관리한 우리의 국토이다. 현재도 지리적 동질성과 함께 우리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고 있으며, 약 200만명의 우리 동포가 사는 이웃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간도는 1627년 조선과 淸國(당시 後金)이 강도회맹(江都會盟)을 체결하여 서로의 국경을 침범하지 않기로 봉금지역(封禁地域)을 설치한 지역으로 우리가 먼저 선점하여 개척하였다. 1869년과 1870년 함경도에 대흉년이 들자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가 농경지를 개간하는 조선인들이 급증했다. 조선의 지방관이 주민들의 집단이주를 조장하기도 하고, 회령부사는 주민들이 개간청원서를 내면 이를 허용해주는 방식으로 이주를 지원했다. 강계군수는 서간도 일대의 땅을 28개 면(面)으로 나눠 7개 면은 강계군, 8개 면은 초산군, 9개 면은 자성군, 4개 면은 후창군에 분속시켰다.

조선 정부도 1901년 이범윤(李範允)을 간도시찰사(間島視察使)로 임명하여 淸國 관헌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호구와 부동산을 세밀하게 조사하였다. 1902년 서간도에 주민을 직접 관장하기 위해 향약(鄕約)을 설치하여 의정부 참찬 이용태(李容泰)를 향약장에 임명하고, 1903년에는 토지측량을 실시하여 조세를 받으려고 하였으나 시급히 실행하기 어려워 이범윤을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로 승진시켜 사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이범윤은 간도의 지적(地籍)을 정리하고 세금을 징수하도록 하여 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였다. 사포대(私砲隊)를 편성하고, 자율적인 행정을 위하여 10호를 1통, 10통을 1촌으로 하여 통장, 촌장을 두어 경영하였다. 이로 인해 淸國과는 작은 충돌이 계속되었으나 이범윤은 소신 있게 토지대장과 호구조사를 실시하는 등 간도의 소유권 확보를 위한 행정사무를 계속 수행해 나갔다. 1903년 5월까지 호적부 52책을 편제하고, 한인 부동산 364만 7천 496원 34전을 등록시켰다.

1903년 조사된 변계호적안(邊界戶籍案)을 보면 실제 중앙 정부의 힘이 서간도에 미치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변계호적안이 작성된 지역은 모아산면, 간도면, 신별면 등 8개 면으로 당시 이 지역에 정착한 이주민의 본래 고향과 연령분포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변계호적안은 1897년 서변계관리사(西邊界管理使)로 임명돼 호적안을 조사한 서상무(徐相懋)가 작성하였다. 변계호적안이 궁내부의 관할로 작성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정부가 간도 소유권 확보에 적극 개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간도지역의 토지개간 자료는 무산군각사대안간도거민호수간토결수성책(茂山郡各社對岸間島居民戶數墾土結數成冊), 함경북도종성군대안고간도전금춘입종민명성책(咸鏡北道鐘城郡對岸古間島田今春入種民名成冊), 회령군대안고간도전결총수성책(會寧郡對岸古間島田結摠數成冊) 등이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1903년 5월 시찰단으로 압록강 대안지역을 조사한 양지달과 김상흡이 남긴 호적조사 기록을 보면, 서간도 일대의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서간도 지역에는 모두 32개의 면이 편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가운데 집안현 일대에는 대황면․구룡면․신상면 등 모두 7개의 면이 자리하고 있다.


< 그림> 을사늑약 한국어본

반면, 淸國도 봉금을 해제하고 이주와 농경을 장려하였다. 1882년 조선인의 월경을 엄금하도록 조선 정부에 요구했고, 1883년에는 간도의 조선인을 소환하라는 요청을 해 왔다. 이때 우리는 간도지방은 조선 영토임을 주장하면서 1712년에 설치한 백두산정계비와 토문강 발원지에 대한 공동조사를 통해 국경을 확정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淸國은 1885년에 간도 지역의 조선인을 강제로 추방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조선 정부는 다시 토문감계(土門勘界)를 요청함으로써 간도의 귀속 문제는 양국간에 새로운 외교 현안으로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과 淸國은 1885년과 1887년에 공식적으로 두 차례 국경회담을 개최하였다. 1885년의 을유감계(乙酉鑑戒)회담과 1887년의 정해감계(丁亥鑑戒)회담은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을 두고, 우리는 송화강(松花江)의 지류로서 실제 존재하는 강이므로 연해주를 포함한 간도지역이 우리 영토라고 주장하였고, 중국은 토문강이 두만강이라 억지를 부려 회담은 결렬되었다.

1888년 청국교섭공사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조선외무독판 조병직(趙秉稷)에게 공문을 보내 “1887년의 감계는 협정에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경계는 후일의 감계에서 다시 할 것”을 통보하였다.
그 이후 1904년 7월 13일 양국 변계관리들 간에 ‘한청변계선후장정(韓淸邊界善後章程)’을 체결하자, 조선정부는 淸國에 감계논의를 다시 요구하였지만 일본이 청에 러․일전쟁 후에 양국의 감계문제를 논의하도록 권고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간섭을 강화하고는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乙巳條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일본은 1906년 10월에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 통감에게 공문을 보내어 간도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의 보호를 의뢰하도록 하였고, 이를 핑계로 1907년 8월에 조선통감부 간도파출소를 설치하고, 간도는 대한제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간도 거주 한국인은 淸國 정부에 납세의무가 없음을 천명하는 한편, 북경주재 일본 공사를 통하여 淸國 정부에 간도영유권문제가 오랫동안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으나 이 지역의 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관리를 파견한다고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렇게 하여 일본이 우리를 대신하여 간도영유권문제를 놓고 淸國과 회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 그림>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린 국서

일본과 淸國 간의 회담은 1907년 8월부터 간도협약이 체결된 1909년 9월까지 2년 동안 열렸다. 일본은 간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적극 주장하였다. 그런데 간도영유권문제를 두고 청․일 간에 진행된 회담이 대립만 거듭할 뿐 성과를 보이지 못하자 일본은 간도영유권문제만을 가지고 淸國과 논의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대륙침략정책 차원에서 간도문제보다 더 중요한 만주전역에 관한 다른 현안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1909년 2월 6일 동삼성육안(東三省六案)을 제안하였다.

동삼성육안은 중국의 동부에 위치한 3개 성, 즉 흑룡강성(黑龍江城), 길림성(吉林省), 봉천성(菶天城)에 관한 6개 안으로 만주철도의 병행선인 신법철도 부지권 문제, 대석교(大石橋)-영구(營口)간의 지선 문제, 경봉철도를 봉천선 밑까지 연장하는 문제, 무순(撫順) 및 연대(煙柋) 탄광의 채굴권 문제, 안봉선(安奉線) 연안의 광산 문제, 간도귀속 문제를 말한다. 앞의 5안은 일본이 淸國에게 받을 5가지 이권이고, 뒤의 1안은 그 대가로 淸國에게 간도영유권을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5가지 이권을 가지게 되면 대륙침략에 필요한 장비와 병력을 투입하여 합법적으로 군사적 거점을 확보하면 후방이 되어버리는 간도를 일시적으로 淸國에 귀속시켜도 장기적으로 훨씬 유익하다고 판단해 간도를 넘겨주기로 태도를 바꾼 것이다.

1909년 2월 10일 일본공사 이집원언길(伊集院彦吉)과 청국의 외부시낭 양돈언(梁敦彦)은 동삼성육안을 놓고 회담을 시작하였다. 淸國은 동삼성육안을 제안한 일본의 저의를 인식하고 처음에는 거부하였으나 결국 일본의 안대로 받아들여 1909년 9월 4일 북경에서 <도문강중한계무조관(圖們江韓中界務條款)> 즉, ‘청․일 간도협약’과 ‘청․일 만주협약’을 체결하였다. 청․일 간도협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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