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국경분쟁

 

제목 : 조선시대 백두산 기행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6-05-23 조회수 : 480

 

유레카

백두산 관광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사전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평양을 거쳐 육로로 가면 3박4일, 백두산 기슭의 삼지연 공항으로 직행하면 1박2일로도 다녀오리란다.

한데 비행기도, 기차도 없던 조선시대에 백두산을 관광했다면 얼마나 걸렸을까?

박권(1658~1715)이 쓴 <북정일기>는 북방 4군 폐지로 출입이 금지된 뒤 최초로 공식적으로 백두산을 여행한 기록이다. 숙종 38년(1712년) 3월24일 한양을 출발하여 7월13일 돌아오기까지, 자그마치 석달스무날이 걸렸다. 청나라에서 조선과 청의 경계를 정하기 위해 사신을 파견하자, 접반사로 임명된 박권이 두만강변까지 가 그와 함께 백두산을 답사한 것이다. 한성우윤으로 있던 박권의 여행기는 조선 양반의 행차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때로는 말을, 때로는 가마를 타고 가는데 하인 수십명이 나무를 베어 산길을 내고 다리를 놓기도 한다. 철원·함흥·북청·삼수 등 그가 지나는 고을마다 수령들이 인사를 오고 저녁에는 기생이 낀 잔치가 열린다.

그런데 정작 백두산을 눈앞에 두고 ‘연로한 조선 양반이 험한 산길을 가겠느냐’는 청나라 사신의 만류에, 접반사 박권과 함경감사 이선부는 산에 오르기를 포기했다. 역관과 하인들만 청나라 사신 일행과 동행한다. 이때 국경 획정을 잘못함으로써 우리 땅을 빼앗기고 국경분쟁의 실마리를 남긴 여행이기도 하다.

이후 조선 선비들의 백두산 기행문이 몇 편 더 있지만, 함경도 경성의 유학자 박종의 <백두산유록>은 특히 눈길을 끈다. 1764년 경성부사 신상권 일행과 백두산을 등산했는데, 위험하다는 여러 만류를 뿌리치고 산정에 올라 감격하는 그의 열정은 오늘날의 알피니스트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5월14일 경성을 출발해 돌아온 6월2일까지 “가고 온 거리가 1322리요, 걸린 날짜는 18일이었다”고 한다.

지영선 논설위원 ysji@hani.co.kr

기사등록 : 2005-07-20 오후 08:31:50기사수정 : 2005-07-20 오후 08: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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