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義(안의) 사람 사는 이야기

 

제목 : 산청에서 소설사 표성흠선생을 만나다.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2-07-19 조회수 : 709

이 글은 박원식 학형이 썼다

그러니카 내 직장 벗 중다문창과 이평식 동서지요







토요일 경남 산청 금호식당에서 선생님을 뵙다

먼옛날 내가주부생활 근무할때 같은 회사 민주일보사에 잠시 근무하셨던

중대문창과의 대부

표선생님을 뵙고

반갑더라

땅햄?

담달에 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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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은 명산(名山)이 즐비한 고장. 그래서 거창, 하면 산꾼들은 흔히 산부터 떠올릴 가망성이 많다. ‘거창 양민학살 사건’을 떠올릴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이것들에 앞서 작가 표성흠(表聖欽·62)을 대뜸 생각하게 된다.



대학 시절 내가 다니던 학과에는 늙다리 만학도가 한 사람 있었다. 이미 처자(妻子)를 거느린 몸이었던 그는 열 살쯤 어린 후배들과 강의실에서, 혹은 주점에서 허물없이 어울리며 든든한 형님 노릇을 해주었다. 그에겐 다소 음울한 분위기가 있었으나 그 나직하고 묵직한 음성만큼이나 미더운 구석이 많았다. 품행은 특히 방정했고, 성정 역시 온유했다. 그래서 배울 것도, 얻을 것도 많은 선배였다. 이 선배가 바로 표성흠이며, 그는 지금 거창의 산중에 살고 있다.



상당히 박복한 팔자인데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취향인 내겐 아는 이가 별로 없다. ‘형님’이라 부를만한 인생 선배 역시 극히 소수가 있을 뿐인데, 표성흠이 내겐 선배이자 ‘형님’ 같은 존재다. 그렇다고 그를 몸살나게 좋아하거나 늘 쫓아다니며 충성을 표한 적은 없다. 끽해야 삼사 년 만에 어쩌다 한 번씩 만나 가볍게 회포를 풀곤 했다.



개털처럼 많은 시간들 속에서 굴러가는 게 지구 위의 삶. 하지만 생활의 틈바구니에 낀 우리의 몸은 물방개처럼 바삐 나대게 되어있을 뿐, 만나고 싶은 이를 늘 만나며 지낼만한 여가란 좀체 주어지지를 않는다. 표성흠 형과 자주 소통하지 못했던 유일한 이유가 이와 같다.



표성흠에게는 따르는 벗이나 후배들이 많을 게다. 나 또한 그를 좋아한다. 그의 무엇을 좋아하나?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매우 부지런히 글을 쓰고 책을 펴낸 그 왕성한 생산성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그마치 106권에 달하는 저서를 출간했다. 작가는 그 무엇에 앞서 작품으로 제 존재를 증명하는 종족. 표성흠은 이런 자신의 책무를 전혀 게을리 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30여 년의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가차없이 귀향(歸鄕)한 박력이랄까 실천력이다. 글 쓰는 일로 밥을 버는 자에게 서울은 매우 괜찮은 시장(市場)이다. 서울을 떠난다함은 어쩌면 만용이거나 자해 행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떠났다. 그리고 도시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안전하고 무난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는 귀거래(歸去來)에 성공한 드문 케이스다.



표성흠의 거처는 거창읍 학리 금귀봉(金貴峰) 기슭에 있다. 풀 향기 진동하는 소로를 따라 올라 집에 도착하자 표성흠이 허연 수염을 바람에 흩날리며 풀밭 위 의자에 앉아 있다. 언뜻 보아 도인(道人)의 풍모다. 그러나 도라는 품목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또 그러나 누군들 도를 멀리하고 살 수 있으랴. 그의 한결 깊어진 눈길에 허심한 여유가 어려있으니 걸어가야 할 도를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의 풍색이라 할 만하다.



표성흠의 곁에선 한 여인이 담뿍 웃음을 머금고 있다. 그녀의 안면 근육이 움직이는 동향이 즐겁다. 수시로 웃다가 어언 언제나 웃게 되어 있는 얼굴을 보유하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이 분은 표성흠의 아내 강민숙(姜敏淑·60)이다. ‘노천명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 동화작가다. 그러니까 내외가 모두 작가다. 두 사람 다 서울에 살며 맹렬한 글쓰기를 했었으며 잘 나갔다. 그러다가 모조리 접고 귀거래의 수레에 올랐다. 왜 그랬나?



“전업작가로 서울에서 살다보니 슬슬 위기감이 느껴지더라고. 출판 시장도 곤두박질치고. 그러다가 직접적인 동기가 왔는데, 어머님이 석 달 시한부 암 판정을 받은 거예요. 그래 어머님을 모시고 고향으로 내려가자, 그 동안 불효 노릇은 충분히 했으니 딱 석 달만이라도 효자 하리라, 하며 내려온 거요. 그런데 이 양반이 3년을 더 살아버리셨어(웃음). 집도 생기고, 살림도 늘고, 그 길로 그냥 주저앉은 게 10년째구만.”



“어머님이 그렇게 오래 사신 건 효성(孝誠) 덕분이었을까요?”



“어머님을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모셨으니까 그게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자연 속에서 편하게 지내신 덕이 아닐까 싶군.”



“흔히 보자면 도시를 버리고 산골로 들어간다는 건 실패할 확률이 높은 모험이더군요. 더구나 고향땅으로 되돌아간다는 건 부담이 더 클 것 같은데 정착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왜 없었을까. 첫 몇 년간은 힘들었어요. 말도 안 통하고, 생각도 안 맞고, 하는 짓도 노는 짓도 다르니 정붙이기 쉽지 않았지. 적응해서 편해지고 무신경해지기까지엔 10년은 걸리는 것 같더라고. 그 전까진 팽팽했어요. 귀농이니 귀향이니 ‘귀’자 붙은 건 참 어려운 일이오.”



“그래도 산골 삶을 동경하고 기어이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건 무모한 희망일까요?”



“현실적으로 어렵지. 서울 아파트 한 평 값이면 시골에선 땅을 충분히 살 수가 있지.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오. 세 가지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마땅한 장소를 찾기의 어려움, 고향에서 마주칠 이목의 두려움, 아내들의 거부감, 이런 걸 극복하기 참 쉽지가 않죠. 도시와 시골의 문화 차이를 견뎌내는 것도 쉬운 일 아니고.”



●●●“채집(採集)생활을 한다”



표성흠의 주둔지는 상당히 널따랗다. 원래 부친이 일군 사과과수원이 있던 자리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텃밭을 만들고, 정원을 가꾸었다. 그가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의탁하고 지낼 뒤편의 금귀봉은 크거나 높은 산이 아니지만 녹음이 칠칠하다. 건너편으로는 백두대간이 달리고, 저 멀리로 지리산이 아련하다.



그는 자신의 거처에 ‘풀과 나무의 집’이라는 당호를 붙였다. 풀이라는 형제, 나무라는 자매와 동거한다는 뜻이겠다. ‘풀 초(艸)’와 ‘나무 목(木)’, ‘사람 인(人)’이 집에 함께 살면 뭐가 되나? ‘차(茶)’가 된다. 그가 보기에 차란 정신을 살리는 향약(香藥)이다. 그러하니 ‘풀과 나무의 집’이라는 당호는 차처럼 맑은 정신으로 살자, 차 마시듯 쉬엄쉬엄 한가하게 살자는 뜻이 실린 메타포다.



그러나 산중에서 한적하게 노니는 삶이란 먹는 일의 가뿐한 해결이 있고나서야 가능한 일. 도시에서건 산 속에서건 정면으로 딱 부닥치는 문제는 늘 호구지책이다. 표성흠이 이 문제로 매우 고전했다는 증거는 그리 여실하지 않다. 하지만 나름의 수고를 면제받긴 어려웠던 것 같다. 서울에서 책을 써서 벌어 모은 돈을 쓰며 3년쯤은 옴팡졌지만 이후엔 팍팍했으며, 그러나 궁즉통(窮卽通)의 이치 그대로 다시 활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채집(採集)생활을 한다”고. 무슨 얘기인가?



“월급이 없는 생활이니 처음엔 농사로 먹을 것을 얻고자 했지. 하지만 농사란 남는 게 없더군. 그저 소쿠리 들고 집 안팎에 자생하는 나물이며 버섯이며 열매들을 채집해서 먹는 걸로 해결하기 시작했어요. 염소젖도 짜서 먹고.”



“그것으로 충분했을 리가 없을 텐데요.”



“당연하지. 빚이 늘기 시작하더군. 그러던 차 거창 읍내의 아이들이 글짓기 공부를 하겠다고 올라오더군요. 나나 집사람이나 잘 하는 것이라곤 글 쓰는 일 뿐 아니겠어?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독서 지도도 하고, 전국 곳곳으로 문화답사도 나가고, 그렇게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것이지.”



“아이들이 쓴 시를 새긴 시비(詩碑)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군요.”



“이 집은 이미 우리 가족만의 살림집이 아니오.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했으니까. 전국에서 유일한 어린이시비공원이 조성되었고, 소규모지만 도서관도 있고, 글쓰기를 배우려는 지역민들을 위한 문예교실도 열고 있지.”



“거창에 문인협회도 만들고 그러셨던데 그런 일들이 귀찮진 않으세요?”



“귀찮긴. 재밌더라고. 적당한 수준에서 일하니까. 방문객도 적당한 숫자를 유지하고.”



“산중살이의 복이랄까, 자연의 혜택이랄까, 그런 건 뭘까요?”



“시달리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점이겠지. 그러다보면 몸도 마음도 편해지는 것이고.”



“하지만 본인은 정작 심근경색으로 위기를 겪으셨죠? 뭔가… 스트레스 탓이었을까요?”



“컴퓨터 때문일 거야. 장편소설 하나 완성하자면 반 년은 내리 방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려야하는데 그놈의 전자파가 문제였던 것 같아. 술이나 돼지고기 탓이기도 하지. 삼겹살을 들고 찾아드는 방문객들이 끊이질 않았으니 아니 먹을 수가 없었어요. 이젠 술을 끊었지만.”



“술이란 나쁜 건가요?”



“술? 참 좋은 거 아니겠어. 더 마시면 죽을 지경에 이르기 전까진 마시는 게 좋을 거요.”



“건강상의 위기를 겪은 뒤엔 뭔가 사고의 변화가 왔을 것 같네요.”



“원래 완벽한 성격이랄까, 불 같고 칼 같은 사람이었는데 많이 너그러워진 것 같아. 나쁘게 살진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글을 안 쓰면 무슨 재미?”



6월의 햇살이 따갑지만 산중의 공기는 샘물처럼 서늘하다. 사방에서 들이치는 수목들의 초록이 싱그럽다. 이 정도 풍광 속에 산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복락(福樂)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엉덩이를 씰룩이며 몸을 비벼댄다. 유난히 사람을 잘 따른다는 이 녀석은 가출 3년만에 임신한 몸으로 되돌아와 새끼들을 낳았다. 무슨 사연일꼬, 궁금해지는데 표성흠이 해설을 붙인다.



“어떤 놈 만나 3년 간 실컷 놀다간 돌아온 거겠지(웃음).”



“(웃음) 희한하군요. 이 집은 가만 보니 동물농장 수준인데요. 자연 속에서 살자면 동물과 공생은 역시 필수겠죠?”



“그렇죠. 재미있는 일들이 참 많아요. 멧돼지하고 맞붙어 죽어라 싸우고 돌아온 개도 있고, 새끼 염소를 비좁은 개집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품고 자는 개도 있고, 어디선가 염소를 몰아다 주는 개도 있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화들이 참 많거든. 이것들을 다 글로 쓰고 싶어.”



“지난 10년간 글은 많이 쓰셨나요?”



“두 권 짜리 소설 ‘오다 쥬리아’ 외에 장편소설 네 편을 썼어요. 대체로 출간이 안 된 채 묵혀두고 있지만.”



“멍청한 질문 할게요. 그 어려운 장편을 써도 출간이 안 되는 것을 무엇 때문에 줄기차게 쓰시죠?”



“(웃음) 배운 짓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지. 그마저 아니면 무슨 재미지? 아무 놀이도 없이 살 수는 없는 일이잖소.”







“작가에게 이런 산골은 창작활동을 하기에 더 유리할까요?”



“전혀 아니지. 작가는 시골에 내려오면 안돼요. 흔히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글 쓰고 싶다하지만 작가는 서울에 살아야 해. 그곳에 매체가 다 있잖아. 시골은 어영부영 살기엔 참 편한 곳일 거요. 하지만 작가는 그래서는 안 되잖아. 도시에서 시달리며 글을 쓰는 게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되지 않나요?”



“나야 어느 정도는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봐야지. 편하게 살자는 쪽으로 마음이 흘렀다 할까. 적당히 물러날 때 잘 물러났다는 생각도 들어요. 작가로서는 끝났어. 늙었지.”



표성흠의 낯빛에 문득 전선에서 물러난 노병 같은 쓸쓸함이 어린다. 그러나 나는 그 석연찮은 표정에 납득을 느낄 수가 없다. 끝나다니? 반어법인가? 글을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할 때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글쓰기란 노동이나 의무가 아니라 춤추고 노래하는 듯한 삶의 일부가 아닐까?



표성흠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는 작가로서 긴긴 터널을 벗어나 이제 하나의 새로운 입구 앞에 선 것인지도 모른다. 순환하는 자연처럼, 사계를 거치며 변화하는 산덩어리처럼, 그도 작가적 변신의 여로를 도모하는 게 아닐까. 당싯당싯 허공을 흐르는 새털구름이 가뿐하다.
 


 


 


나무와해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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