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토지정책

 

제목 : 통일 후 북한 국공유재산의 처리와 관련한 법적 문제와 해결방안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3-02-02 조회수 : 1236


통일 후 북한 국공유재산의 처리와관련한 법적 문제와 해결방안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제1장 서 론



제2장 북한 국공유재산 중에서 과거 몰수재산의 처리방향



제3장 북한 국공유재산 처리의 고려요소와 해결방향



제4장 결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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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론



전혀 상이한 규범질서에 의해서 장기간 동안 분단되었던 남⋅북한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서 사회적 통합을 달성할 가능성도 있지만, 특단의 사정으로 사회적



통합이 급박하게 단행될 여지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남⋅북한이 상이한 정치



및 경제규범 질서를 장기간 동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장래 사회제도의 통합에



장애사유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이 통일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였던 장래의



사실이라는 점에서 통일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정확하게 예단



하여 대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보여 진다. 따라서 그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본고는 통일이후에 북한에 소재하는 국공유재산을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처리



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를 검토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물론 종래에도 북한에 소재



하는 국공유재산의 처리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는 있었다.1) 그리고 그러한



논의는 동⋅서독이 통일국가를 형성한 이후에는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종래의 논의는 북한을 불법단체로 전제하고 통일이후의 재산법



문제를 검토하였거나 또는 비교법적 고찰의 방법으로 독일식의 재산권 해결



방식을 소개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점에서 본고는 북한에 소재하는 다양한



국공유재산을 토지와 주택, 기업 등으로 유형화하면서, 과거 몰수된 재산에 대한



처리문제를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해결하여야 되는지 등을 중심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1) 정형곤, “통일과정에서의 북한지역 토지사유화 방안”, 경제논집 제48권 제1호,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2009;



김만복, “통일 후 북한토지의 관리방안에 관한 연구”, 국민대학교 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08; 김경호, “북한의



토지법제와 통일 후의 과제에 관한 연구”, 󰡔토지법학󰡕제23-1호, 한국토지법학회, 2007. 6; 김기환, “통일



후 토지 정책”, 󰡔법학연구󰡕제11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2006; 김성욱, “한국의 통일과 토지소유제도의 재편”,



고려대학교 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06; 이부하, “통일 후 북한의 토지소유권 문제”, 󰡔토지공법연구󰡕제21집,



한국토지공법학회, 2004: 채종암, “통일후 북한 토지소유권에 관한 연구”, 조선대학교 대학원(박사학위논문),



2003; 정영화, “통일후 북한의 재산권 문제에 관한 헌법적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박사학위논문), 1995;



박동삼, “북한의 토지개혁정책에 관한 연구”, 국민대학교 대학원(박사학위논문),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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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북한 국공유재산 중에서 과거 몰수재산의



처리방향



1. 접근방법



종래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입장2)에 의한다면 북한은 불법단체가 되고, 이에



따라서 북한정권이 과거에 재산권을 몰수한 행위는 무효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종래의 시점에서는 휴전협정하에서 전쟁발발의 위험성이 항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을 불법단체로 평가하여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남북한의 통일과정에서는 더 이상 이러한 입장을 견지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남북한의 정부수립과정을 살펴보아도 반드시 북한을 불법단체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일제의 항복에 의해서 우리민족은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런데 연합국에 대한 항복으로 인하여 일제의 실력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해 졌다면, 그 상태를 어떻게 평가하여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상태를 독립이전의 대한제국으로 복귀된 것으로 평가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국가정립을 위한 과도적인 무정부상태로 평가할 것인지는 간단하지가



않다.3)



논리적으로 본다면, 한일합병조약은 조약체결권자 및 비준절차 그리고 국가



대표자에 대한 강박 등의 사유로 체결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따라서 해방



으로 인하여 대한제국이라는 전제군주국가로 복귀되어야 한다. 만약 식민지 기간이



단기간이었던 국가가 그러한 실력적 지배 상태에서 해방되었다면 신속하게 과거의



정부조직을 완비하여 본래의 상태로 복귀하였을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경우에는 일제 강점의 기간이 35년이나 경과하였기 때문에 국권침탈



이전의 대한제국으로 복귀하기 위한 제반조건은 이미 상실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자칭 정부조직을 자처하는 정치세력들은 이미 정치권력이 군주가 아닌 국민



2) 대법원 1987. 7. 21. 선고 87도1081 판결; 대법원 1993. 10. 8. 선고 93도1951 판결; 대법원 2003. 5. 13.



선고 2003도604 판결;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1993. 7. 29. 92헌바48 결정.



3) 나인균, “한국헌법의 영토조항과 국적문제”, 󰡔헌법논총󰡕제5집, 헌법재판소, 1994, 47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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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 인민으로부터 창출되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ideology)를 강조하고 있었던



상태이었고, 이러한 정치이념은 당시의 국민들에게 용이하게 받아들여졌을 가능



성이 있다. 이러한 국민의 사상적 변화를 극복하기에는 사실상의 실력이 존재



하여야 한다. 그러나 해방 당시는 이미 군주의 권위는 상실되었을 뿐만 아니라



왕실의 정치적⋅물적 기반 또한 형해화 된 상태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본다면 해방 당시에 대한제국은 과거로 복귀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해방



당시의 상황은 새로운 국가정립을 위한 잠정적인 무정부상태이었다고 보여 진다.



또한 해방이후에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미⋅소군정의 기본입장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미⋅소군정은 설령 우리 국민이 과거로의 복귀 즉 전제군주



국가로의 복귀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점령의 목적이 국민 내지 인민으로부터



권리가 창출되는 민주주의 내지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의 건설 및 확대를 예정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과거로의 복귀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개인의 권리가 절대적으로 보호되고 국가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가 자유롭지 못한 근대법 사상이 이미 이식(移植)화 되고 있었던 상태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전제군주국가이었던 대한제국으로 회귀는 ‘부당한 신분적 역차



별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려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해방이후에 분할된



한반도의 남⋅북한 지역에서 새로운 정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정치세력이 각각의



지역을 법규범에 의해서 통치하였다고 한다면, 그 새로운 정치조직은 양자가



정당성과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정부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남북한



지역에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정립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는 모두 유효한



행위로 평가할 수도 있다고 보여 진다. 이러한 전제에 의한다면 남 북한 정부는



정부수립을 공포한 1948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정치조직과



사회질서 및 국제관계 등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특히



통일과정에서는 양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통일방식이 선택되어야 할 것이다.4)



그런데 과거 북한지역에서 해방 직후에 이루어진 토지몰수행위와 관련하여,



북한을 불법단체로 평가하지 않고 대등한 관계에서 합의통일을 할 경우에도 원



소유자에 대하여 특별한 보상방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즉 합의통일의



경우에는 원소유권의 목적물은 국유로 귀속되지만, 몰수시점을 기준으로 원소유권



4) 물론 북한지역에서 발생한 국가적 인권침해 및 범죄행위 등의 불법행위의 청산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본고는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필연적 조치로서 토지사유재산의 몰수행위에 한정하여 논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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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특별한 공법상 보상청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독일의



소련점령군 몰수조치에 대한 보상법안과 동구국가의 몰수재산의 보상청구권을



참고할 수 있다고 한다.5) 그런데 몰수재산권의 원상회복은 물론이고 보상방법과



관련해서도 일정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2. 몰수재산의 원소유자에 대한 구제방법



(1) 원상회복은 부정되지만, 보상청구는 고려될 수 있는 경우



북한의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제3조6)는 농지분배를 위한 몰수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령 제3조에 규정되어 있는 몰수대상의 범위는 남한에서 시행된



「농지개혁법」(1949. 6. 21.)’7)과 공통점이 있다. 즉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직후에



토지에 대한 적정한 사적 소유를 위하여 「농지개혁법」을 제정하였고, 이 법률에



근거하여 일정범위에 해당하는 토지를 유상매수 및 유상분배하는 농지개혁을



단행하였다. 「농지개혁법」의 주요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경하지 않는 토지, 비농가의 토지, 3정보(町步) 이상을 초과하는 지주의 토지를



국가에서 유상으로 매수하였고, 국가에서 매수한 농지는 영세농에게 3정보를



한도로 유상으로 분배하였다. 분배받은 농지에 대한 상환방법은 생산량의 150%를



5년 균분년부(均分年賦)하여 매년 정부에 납부하도록 하였다. 정부는 몰수한 소유



자에게 지가증권(地價證券)을 발급하여 주었는데, 증권액면은 보상액(생산량의



150%)을 환산한 당해 연도 당해 농지 주산물수량으로 표시하는데, 증권의 보상은



5년 균분년부(均分年賦)로 하여 매년 액면농산물의 결정가격으로 산출한 원화를



지급하도록 하여 상환액과 보상액을 동액으로 하였다. 그런데 월남자의 농지가



북한에 소재한다고 하여도, 만일 분단이 되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의 농지개혁



법이 적용되어 국가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매수되었을 범위에 속하는 농지의 경우



5) 정영화, “통일후 북한의 재산권 문제에 관한 헌법적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박사학위논문), 1995, 264면.



6) ‘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제3조는 몰수하여 무상으로 농민의 소유로 분여하는 토지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이에는 한 농호에서 5정보이상 가지고 있는 조선인지주의 소유지, 자기가 경작하지 않고 모두 소작 주는 소유



자의 토지, 면적에 관계없이 계속적으로 소작 주는 모든 토지, 5정보이상을 가지고 있는 성당, 승원 기타 종교



단체의 소유지가 해당된다.



7) 이와 관련한 내용은 다음의 문헌들을 참조할 것. 정범석, “농지개혁법소고”, 󰡔사법행정󰡕제85호, 한국사법행



정학회, 1968, 25면; 신성택, “농지개혁법 제19조 제2항에 관련한 몇 가지 문제점”, 󰡔사법연구자료󰡕제8집,



법원행정처, 1981, 211면; 조종식, “농지개혁법연구”, 󰡔재산법연구󰡕제9권 제1호, 법문사, 1992, 7면; 윤철홍,



“농지개혁의 법사적 고찰", 󢰠���한국법사학논총󰡕: 박병호교수환갑기념(II), 박영사, 1991, 48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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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월남자가 소유권의 원상회복을 주장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8) 물론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토지에 대하여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더라도, 소유권의 강제매수에



갈음한 보상청구는 고려될 수 있다.9)



(2) 원상회복은 물론이고 보상청구도 모두 부정되는 경우



몰수된 토지소유자가 통일이후에 소유권 회복에 갈음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몰수토지가 보상청구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왜냐하면 1946년부터 1947년의 기간 동안



북한에서 몰수된 토지 중에는, 만일 당해 토지가 대한민국에 소재하고 있었다면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서 국가로 몰수되었을 토지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10)



즉 북한의 경우에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에 근거하여 1946년 3월 5일부터



1946년 3월 31일까지 무상몰수와 무상분배가 이루어졌다.11) 그리고 농업용 외의



토지에 대해서는 1946년부터 1947년까지 별도로 국유화가 진행된 이후에 현재에



이르고 있다.12) 특히 북한의 1946년의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제2조와 제3조는



몰수대상인 토지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제2조13)에서 규정하고 있는 몰수대상의 범위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에서



시행되었거나 또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과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는 「반민족행위처벌법」(1948. 9. 22.), 「귀속재산처리법」(1949. 12. 19.),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2005. 12. 29.)이 해당된다.



대한민국의 「반민족행위처벌법」은 일제강점기에 반민족적 행위를 한 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과 재산몰수를 규정하고 있었다. 이 법률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법 제1조는 “일본 정부와 통모하여 한일합병에 적극 협력한 자, 한국의 주권을



8) 명순구, “통일 후 토지소유권의 재편방향”, 󰡔통일논총󰡕제21호, 숙명여대통일문제연구소, 2003, 15면.



9) 물론 대한민국의 농지개혁법에 포섭되지 않는 북한농지의 경우에는 원상회복 또는 소유권매수에 갈음하는



보상청구의 양자가 모두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10) 명순구, “통일 후 토지소유권의 재편방향”, 10면.



11) 이 법령 제17조는 토지개혁 실행은 1946년 3월말일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단시간 내에



토지개혁이 진행될 수 있었던 배경과 원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할 것. 법원행정처 편, 󰡔북한의 부동산



제도󰡕, 법원행정처, 1997, 89면.



12) 법원행정처, 󰡔북한의 부동산제도󰡕, 324면.



13) 몰수대상 토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국가 일본인 및 일본인 단체의 소유지. 둘째, 조선민족의 반역자와



조선민중의 이익에 손해를 주며 일본 제국주의자의 정권기관에 적극 협력한 자의 소유지 그리고 일제의 압박



밑에서 조선이 해방될 때에 자기 지방에서 도주한 자들의 소유지 등은 몰수되어 농민의 소유가 된다고 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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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 자 및 모의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제2조는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 또는 일본 제국의회의 의원이



되었던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고 규정하였으며, 제3조는 “일본 치하 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대한



민국의 「귀속재산처리법」은 ‘귀속재산’의 개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즉 1948년 9월 11일에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 정부간에 체결된「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협정」제5조의 규정에 의하여 대한민국정부에 이양된 일체의



재산을 귀속재산이라고 하였다(제2조). 이와 같이 미국정부로부터 한국 정부에



이양된 재산은 미군정당국이 일본국 및 일본인들로부터 몰수한 재산이었다.



귀속재산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의 국민 또는 법인에게 매각하는



것이 원칙이다(제3조). 그리고 대한민국의 「귀속재산처리에관한특별조치법」은 그



부칙 제5조 제1항에서 “1964년 12월 말일까지 매매계약이 체결되지 아니한



귀속재산은 무상으로 국유로 한다. 1964년 12월 말일까지 매매계약이 체결된



귀속재산으로서 1965년 1월 1일 이후 그 매매계약이 해제된 귀속재산도 또한



같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1964년 12월 31일까지 매매계약이 체결되어



있는 것 외의 모든 귀속재산은 1965년 1월 1일자로 국유재산이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제2조는 “친일



반민족행위자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제2조 제6호



내지 제9호의 행위를 한 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하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제2조의 규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 중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독립운동 또는 항일운동에



참여한 자 및 그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 또는 명령한



자 등 친일의 정도가 지극히 중대하다고 인정된 자도 포함된다고 한다. 특히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이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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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하며, 이러한



친일재산은 그 취득⋅증여 등 원인행위 시에 이를 국가의 소유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조).



전술한 대한민국의 법률에서 규정한 몰수 및 귀속대상이 되는 토지는 북한의



「토지개혁법에 대한 법령」제2조에 의해서도 공통적으로 몰수될 수 있는 토지



이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토지에 대하여는 원상회복은 물론이고 소유



권에 갈음한 보상청구도 허용될 수 없다.



3. 월남인이 진정한 소유권자인지의 문제



(1) 접근방법



부동산등기란 부동산의 표시 및 부동산의 권리에 관하여 등기공무원이라고



하는 국가기관이 법정의 절차에 따라서 등기부라고 하는 공적 장부에 일정한



사항(등기사항)을 기재하는 것 또는 그러한 기재 그 자체를 말한다.14) 북한에 현재



부동산등기부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리고 과거 재산권몰수의 상황이 정확하게



반영되고 있다면 이것은 통일이후에 재산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공부로서 사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등기는 권리의 추정력이 있기 때문에 몰수



당시의 등기부를 근거로 하여 원소유자임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15)



(2) 북한의 부동산등기제도와 등록제도



1) 북한의 부동산등기제도



해방 이전 일제는 1912년 3월 18일 제령 제7호로 ‘조선민사령’을 공포하여 일본의



민법 기타 법률을 依用하도록 하였고, 같은 날 제령 제9호로 ‘조선부동산등기령’을



공포하여 “부동산에 관한 권리의 등기에 대하여는 본령 기타의 법령에 특별한



14) 곽윤직, 󰡔물권법󰡕, 박영사, 1994, 102면; 김상용, 󰡔물권법󰡕, 박영사, 1994, 126면.



15) 등기의 추정력이란 부동산물권변동을 공시하는 등기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그 등기에 의하여 공시되는 권리가



그 등기명의인에게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효력을 말한다(구재군, 「등기의 추정력에 관한 약간의 문제」, 󰡔판례월보󰡕제359호, 판례월보사, 2000, 33면; 물론 원소유자를 인정한다고 하여도 통일방식에 따라서 권리의



구제수단은 상이하게 발생한다. 즉 흡수통일의 경우에는 불법단체에 의한 사유재산권의 몰수이므로 원소유



권은 회복되겠지만, 합의통일의 경우에는 원소유권의 원상회복은 인정될 수 없고, 단지 보상청구권이 고려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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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본의 부동산 등기법에 의한다.”16)라고 하여



한반도에 부동산 등기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해방 당시까지도 부동산 등기



제도는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토지등기부 및 건물등기부는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북한정권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국가를 수립할



목적으로 1946년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에 기초하여 토지의 무상몰수조치를



시행한 이후에도 일정기간은 북한에 부동산 등기제도가 존재하고 있었을 가능



성이 많다. 왜냐하면 1946년 ‘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은 무상으로 몰수한 농지를



무상으로 분배하여 무산농민의 사적 소유로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1947년



2월 27일 제정된 ‘등록세법’(인민위원회 법령 제4호) 제3조는 등록세의 과세



종목과 세율의 구분기준으로 각종 부동산등기를 명시하고 있었다.17) 그리고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헌법’에서도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인정18)하고



있었고, 1950년 민법초안19) 제2편 물권편은 소유권⋅지상권⋅저당권 등을 규정하고



있었는데 48년 헌법과 마찬가지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고 있었다.20)



그러나 현재 북한에는 토지와 건물을 불문하고 부동산등기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21) 이와 같이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50년과



58년 북한민법초안은 부동산을 포함하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전면적으로



16) 1912년 제령 제9호 조선부동산등기령 제1조.



17) 법원행정처, 󰡔북한의 토지소유 및 토지등록제도󰡕, 법원행정처, 1994, 9면; 1947년 등록세법에는 상속 증여



유증 기타 원인에 의한 소유권취득등기, 소유권보존등기, 공유물분할등기 등 각종 부동산등기에 기초하여



세금을 부과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토지몰수이후에도 일정기간은 부동산등기제도가 유지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법원행정처, 󰡔북한의 부동산제도󰡕, 187면).



18)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헌법’제5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생산수단은 국가 협동단체 또는



개인자연인이나 개인법인의 소유다. 광산, 기타지하부원, 산림, 하해, 주요기업은행, 철도, 수운, 항공, 체신



기관, 수도, 자연력 및 전 일본국가 일본인 또는 친일분자의 일체 소유는 국가의 소유다. 대외무역은 국가



또는 국가의 감독밑에서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 1945년 11월 16일 북조선사법국 포고 제2호 ‘북조선에 시행할 법령에 대한 건’에 의하여 일제의 식민지 지배



법제가 폐지됨에 따라 민법인 ‘조선민사령’도 폐지되었다. 정부수립이전까지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등의



정권기관에 의해서 개별적인 법령이 공포되고, 정부수립이후에는 1948년 헌법에 의해 기본법전을 편찬하는



작업이 이루어짐에 따라 1950년 일반법인 ‘민법초안’이 작성되었다(신영호, 「북한민법 40년과 그 동향」, 󰡔북한법률행정논총󰡕제8집,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소, 1990, 130면); 이 초안은 총칙, 물권, 채권, 상속의 4개



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내용은 1922년의 러시아공화국민법전과 유사하다(최달곤, 「북한민법의 회고와



전망」, 󰡔북한법률행정논총󰡕제10집,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소, 1995, 92면).



20) 이후 1958년 민법초안에서는 부동산을 포함하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전면적으로 금지하였다. 1950년과



1958년 민법초안은 비록 法典化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민법전이 없는 북한에서 잠정적으로 재판의 기준으로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양초안은 실질적으로 민법의 중요한 法源이라고 할 수 있다.(大內憲昭.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の民法(Ⅰ)」, 󰡔關東學院大學文學部紀要󰡕第45號, 1985, 93-96면; 최달곤, 󰡔북한민법의



연구󰡕, 세창출판사, 1998, 23면).



21) 오종근, 「북한민법의 소유형태」, 󰡔북한연구󰡕제3권 제4호, 1992, 181면; 법원행정처, 󰡔북한의 토지소유 및 토지



등록제도󰡕, 9면; 김상용, 「구동독과 북한의 토지제도의 비교」, 󰡔토지연구󰡕제5권 제5호, 1994, 46면 등.



통일 후 북한 국공유재산의 처리와 관련한 법적 문제와 해결방안 61



금지하고 있었고,22) 또한 1958년 8월 말에 북한지역에 농업협동화가 완성됨



으로써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불가능한 사회주의적 토지소유권이 확립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사회주의 토지소유권을 법규범에 명시적으로 규정하기 위하여



제정된 1972년의 ‘사회주의헌법’과 1977년 ‘토지법’을 살펴보면 살림집을 제외한



모든 부동산에 대한 사적소유와 매매가 금지되었고, 민법상 저당권 등의 담보물권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부동산물권변동을 공시할 필요성이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북한의 현행 부동산 관련 법률을 살펴보면 부동산 등기제도와 관련한 규정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23)



2) 북한의 부동산등록제도



북한에서는 부동산 등기제도를 폐지한 대신에 국토관리의 일환으로 부동산



등록제도를 두고 있다. 국토관리는 국토의 조사와 등록을 통해서 시작되는데,



여기서 국토의 조사와 등록이란 국토를 철저히 보호하고 합리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국토의 자연·경제적 상태와 그에 대한 소유·관리·이용관계를 조사·장악하는



국가기관의 활동을 말한다.24) 북한의 부동산 등록제도는 토지법과 도시경영법



등에서 토지등록과 건물등록에 관한 원칙적인 조문만을 일부 두고 있다는 점에서,



남한의 지적법⋅건축법 등과 같은 단행법률에 의해서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규율되는 것은 아니다. 토지등록이란 행위적 측면에서는 토지의 소유와 이용상태를



문건에 표시하는 국가의 중요한 토지관리활동을 의미하고, 형식적 측면에서는



국토관리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토지조사의 국가적인 기록을 의미한다.25) 행위적



측면에서의 토지등록에는 토지등록대장이 전혀 없거나 그것이 없어진 경우에



실시하는 시초등록과 지목변경, 소유자 또는 이용자의 변동, 면적변동 등의 사유가



생긴 경우에 실시하는 경상등록이 있다.26) 그리고 토지등록에 기초하여 토지등록



대장, 토지이용허가정리부, 지적도, 토양도 및 토지정리설계도 등의 토지대장이



작성된다.



북한에서는 1958년 농업협동화가 완성되어 사회주의 소유권이 확립된 이후에



22) 1950년과 58년 민법초안은 비록 법전화로 연결되지는 못하였지만 민법전이 없는 북한에서 잠정적으로 재판의



기준으로 작용되었을 것으로 추단된다(최달곤, 󰡔북한민법의 연구󰡕, 23면)



23) 법원행정처, 󰡔북한의 부동산제도󰡕, 188면.



24) 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법학사전󰡕, 90면.



25)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경제사전 2󰡕, 673면.



26)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경제사전 2󰡕, 673면.



62 2011 남북법제연구보고서



1960년 김일성의 지시로 평안남도와 평양시에 대한 국토조사를 시범적으로 실시



하였다. 이에는 대학교수와 학생들, 과학자, 기술자 및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대가



1개 군에 20명씩 배치되고, 군에서는 5명씩 4개 그룹으로 나뉘어 한 그룹이 5개리



정도씩을 3개월간에 걸쳐 조사하였고, 등록양식도 작성하였다. 그리고 이 시범



조사의 경험을 토대로 1962년부터 2년동안에 걸쳐 북한 전체에 대한 국토조사가



실시되었고, 이에 기초하여 1965년 국토건설총계획이 수립되었으며, 그 이후



지역별, 대상별로 국토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그 변동상황을 보고하도록



하였다고 한다.27) 이러한 국토관리의 목적과 내용에 비추어 토지관리는 국토



관리의 가장 중요한 부문이므로 북한에서는 국토관리의 일환으로 토지의 조사와



등록이 정기적 또는 수시로 실시되어 오고 있다. 따라서 1965년 전국적인 국토



조사를 완료하고 이에 근거하여 토지등록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1946



년의 몰수당시의 소유관계를 표시하는 토지대장은 존재하지 않으며, 농업협동화



완성이후에 새로운 국토관리의 차원에서 새로운 이용관계를 나타내는 토지등록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현재 북한에는 1946년의 몰수상황을 표시



해주는 부동산등기부와 토지대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3) 국가공부 부존재의 해결방법



통일 이후에 몰수재산권의 원소유자 인정문제와 관련하여 독일의 경우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원소유자의 원상회복과 관련하여 보상원칙을 포기하고



소유권을 반환해 주는 원칙을 채택하였다. 그런데 보상원칙이든 반환원칙이든 한



가지 유념하여야 할 사실이 있다. 바로 구동독의 경우에는 권리공시관계를



표시하는 부동산등기부가 분단 이후부터 통일이 될 때까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통일 이후 원소유자의 토지소유권은 구동독이 관리하고 있었던



부동산등기부에 기초하여 반환되었던 것이다. 부동산등기부는 원소유자가 가지고



있는 토지관련문건의 진정성 여부를 대조하여 가장 용이하게 판단해 주는 공적



자료가 된다. 따라서 부동산등기부가 不存在하기 때문에 원소유자의 토지관련



문건(예: 등기필증)의 진정성이 확보될 수 없는 북한과 부동산등기부가 존재한



상태에서 통일을 한 독일은 그 전제사실부터 相異한 것이다. 따라서 토지관련



27) 최운숙, 󰡔사회주의하에서 국토관리사업과 민족경제건설󰡕, 사회과학출판사, 1992, 50면; 법원행정처, 󰡔북한의



부동산제도󰡕, 191면.



통일 후 북한 국공유재산의 처리와 관련한 법적 문제와 해결방안 63



문건의 진정성의 확보와 관련하여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부동산



등기부 이외에도 토지관련문건의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만약



그러한 방법이 있다면 어느 정도의 사회적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는지 등이



다각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부동산등기부이외에 몰수당시의



재산권이전상황을 나타내 주는 토지대장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1920년대 작성된 토지조사부, 지적원도 등에 근거하여 북한지역에서



몰수된 전체 원소유자를 인정하는 방법이 고려될 수 있다. 그런데 1920년부터



1946년의 토지소유권 몰수시점까지 승계취득을 하였지만 토지관련서류를 구비



하지 못한 자들은 어떻게 보호하여야 하는지가 문제이다. 이러한 점들은 통일



한국의 재산권문제를 해결하는데 장애사유가 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거래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증인이 있다면 증거자료로서 인정 될 수 있겠지만, 이미 50년



이상의 분단 상황이 지속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러한 증인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원소유자가 가지고 있는 토지관련문건의 진정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문건이 없는 진실한 권리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통일이후에 전체 몰수토지를 토지조사부



또는 지적원도를 기준으로 하여 원소유자를 인정시킨다는 것은 그 사회적 비용과



전체국가의 균형발전이라는 통일의 목적을 고려해 볼 경우에 실익이 없다고



생각된다.



북한이 부동산등기부를 보관하고 있었다고 가정하여도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동독의 경우에는 과거 소련점령시의 몰수 및 분배과정이 기재된 토지



등기부가 통일시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28) 구동독은 농업집단화 이후에도



형식적으로는 토지의 사적 소유를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권리공시를 위한



부동산등기제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통일이후 토지반환운동을 유발



시킨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구동독은 실제에



있어서는 소유권의 행사를 근본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형해화시키는 정책을 견지하였다. 따라서 私人의 사적소유권은 사실상 보호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동서독의 분단이후에 장기간동안 통일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었다. 그 결과 일부의 토지등기부는 분실 또는 폐기되는



등 사실상 관리가 되지 않은 결과 통일 이후 토지소유권 분쟁의 중요한 원인으로



28) 蓧塚昭次, 「구동독의 토지문제」, 󰡔토지법학󰡕제10호, 1994, 30면.



64 2011 남북법제연구보고서



작용하였다고 한다. 29) 따라서 북한이 당시의 부동산등기부를 보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구동독처럼 부동산등기부가 부실하게 관리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사실들은 통일 이후 제기될 수 있는 토지소유권소송에서 사회적 비용과



국민적 불신을 조장할 가능성이 많다.



(3) 현행 대법원의 입장에 근거한 해결방안



부동산등기부와 같은 국가공부가 북한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해방 직후에



북한지역에서 재산권이 몰수된 원소유자는 무엇을 근거로 인정할 수 있는지



문제가 된다. 이 논의에 앞서서 대한민국의 판례를 먼저 검토해 보는 것은 북한



지역의 재산권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경우에 1950년의 무력충돌로 상당수의 부동산등기부와 토지대장이



멸실된 경험이 있고, 이후에 원소유자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법적 분쟁이 적지



않게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의 공적 장부가 전쟁 등으로 멸실된 상황과



북한정권에 의해서 부동산 등기제도가 폐지된 상황은 매우 이질적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외형적인 면에서는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대한



민국의 경우에 무엇을 근거로 하여 원소유자를 인정하였는지를 선행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1) 토지조사부의 경우



대한민국의 판례는 구 토지조사령(1912. 8. 13. 제령 제2호)에 의한 토지의 사정



명의인은 당해 토지를 원시취득30)하므로, 적어도 구 토지조사령에 따라 토지



조사부가 작성되어 누군가에게 사정되었다면 그 사정명의인 또는 그의 상속인이



토지의 소유자가 된다고 한다.31) 따라서 원칙적으로 토지조사부 명의인에게



법률상의 소유권이 인정되므로, 이를 다투려면 토지대장의 명의인이 그 상이함을



증명하여야 한다. 특히 판례는 토지조사부의 효력을 원칙적으로 소유권보존등기의



권리추정력보다도 우월하게 인정하고 있다. 즉 토지에 관한 소유권보존등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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