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자: 최 은상



 



 



 



Ⅰ. 독일 통일 과정에서의 토지 문제:



한국개발원(KDI)의 연구에 따르면, 구(舊)서독과 남한의 경제력의 차이와 구(舊)동독과 북한의 경제력 차이 등을 감안할 때, 한반도가 독일식으로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여 통일할 경우에, 남한이 부담해야 하는 통일비용은 약 5,000억 달러(600조원)로 추정된다고 한다(배진영 1996, 221). 비록 예상치 이지만,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은 우리의 통일에 대한 건강한 기대를 조절시킨다. 따라서 우리의 통일 논의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지속적인 경제 발전과 사회 통합 그리고 공동체성의 증진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방향에서 통일문제에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구동독에서의 토지개혁은 1945년 소련점령군에 의해 실시되었으며, 토지개혁 후 동독 정권은 농업의 집단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동독은 북한과 달리 토지개혁 이전의 등기부를 그대로 보전한 상태에서, 토지개혁을 통해 소유권을 새로 획득한 사람을 등기부에 첨기(添記)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지금의 등기 변경과 거의 유사한 것이다. 동독에서의 농업 집단화는 국가가 강제로 토지소유권을 박탈하고 이를 집단 농장화 시키는 방법이 아니라 소유권을 유지한 채로 농업생산조합에 토지를 출자하게 한 점에서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상이한 점을 지니고 있다. 서독이나 자유세계로 떠난 사람의 재산도 제3자에게 분배하기보다는 국유재산으로 관리해왔다(최상철․ 이영성 1998,22) 그리고 구동독에서 대부분의 경우 개인적 소유는 극히 제한되었으나, 분단이전에 건설되었던 기존 주택에 대해서는 강제 수용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 직전에도 전체 주택의 50% 정도가 여전히 개인 소유 하에 있었다.(황 병덕, 1993, 2쪽)



 



이런 상황에서 통일 이후 동독지역 토지 및 주택의 사유화방식은 기존의 사용자 및 제3자에게 개별적으로 매각하거나 임대해 주는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구동독 국유 재산의 사유화조치 가운데 미해결 재산권 문제는 많은 논란 끝에 원소유주로의 반환으로 결정되었다. 독일 정부가 구동독 국유재산을 원소유주에게 반환하도록 결정한 배경에는 구서독 기본법 사유재산권 보장 조항의 준수와 더불어 구동독의 기존 재산권 구조의 특수성, 예컨대 부분적으로 인정된 토지 및 주택 사유재산권 구조가 반영된 것이었다.(황병덕, 1993, 6쪽)



1991년 초, 당시 동독지역에는 약 7 백 만 채의 주택이 존재했다. 동독지역 주택 총수의 32%에 달하는 전사회적 소유형태의 공공주택은, 통일 후 소유권이 채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에 이관되었으며, 과거 노동자 조합 주택 역시 소유권이 채무와 함께 조합 재산으로 이관되었다. 협동조합 소유주택과 자치단체 소유주택은 각각 공공주택이 소속된 주택업체가 사유화를 직접 담당한 반면, 기업경영과 무관한 국영기업 소유 공공주택의 경우 신탁관리청 자회사인 신탁관리청 부동산회사(TLG)가 사유화를 담당했다.(황병덕, 1993, 10-11쪽)



 



그러나 자치단체나 협동조합 소유 공공주택의 사유화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공공주택의 사유화 부진요인으로는 미해결재산권 문제를 들 수 있다.(황병덕, 1993, 11쪽) 독일 현장에서의 어느 르포 기사에 의하면, 주택과 토지에 대한 사유화조치는 재산권 분쟁을 야기하여, 통일 독일의 내적 통일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였다.



 



농토와 임야, 주택, 대지, 공장 등 온갖 부동산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독(獨)-독(獨) 재산 전쟁은 통일에 앞서 동·서독이 옛 동독과 나치 시대에 국유화 또는 몰수됐던 동독지역의 재산을 원칙적으로 원소유자나 그 상속인에게 현물 반환하며 예외적으로만 현금 또는 다른 방법으로 보상한다는 ‘선반환 후보상’ 원칙을 세우면서 일게 됐다.



 



이 같은 원칙에 따라 각 주에 설치된 미해결 재산 관리청과 산하 사무소에는 주로 서독에 사는 원소유주 110 만 여 명이 250 만 건의 각종 재산에 대한 심사 청구를 제출, 그 소유권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반환소송은 폭주했지만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행정능력은 1년에 25 만 건에 불과했다. 따라서 1996년 3월까지 소송의 63%만이 처리되었을 뿐이며, 이러한 반환소송처리는 2000년대 초반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이상준 1998, 61-2).



 



더욱이 소유권 반환청구의 절반가량은 동독지역 주민의 주택과 대지를 상대로 한 것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 선반환 원칙과 함께 정당한 취득자나 점유자에 대한 일부 보호장치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수많은 동독 지역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과 땅에서 쫓겨날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수도 베를린과 주변지역 등 통일로 인해 계속적인 주택과 토지 가격의 상승이 예상되는 곳에서는 특히 부동산전쟁이 치열하였다. 베를린과 맞닿은 브란덴부르크 주의 마을 ‘클라인마크노브’는 통일 후 땅값이 무려 200배 이상 상승한 곳인데, 이곳은 가옥 3,200채의 80%가 소위 ‘서쪽 부동산’의 극적인 케이스로 11,000명의 주민 중 8,000명이 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클라인마크노브 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고 있다. 통일과 함께 이곳에는 비디오카메라를 휴대한 서독 사람들의 예고 없는 방문이 줄을 이었고 이어 주택·토지의 명도나 임대료 또는 사용료 지불을 요구하는 변호사의 위협적인 편지들이 날아들었다.



 



부동산 소유권의 미해결 상태는 외부 투자를 시급히 필요로 하는 동독의 경제재건에도 나쁜 영향을 미쳐 왔다. 실제로 동독 제 2의 도시인 라이프치히에 20 개의 주유소를 세우려던 영국석유(BP)는 그 수를 17개로 축소했고 식당·호텔 체인을 건립하려던 스위스의 뫼벤픽 그룹도 구입했던 토지의 새 임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사업계획을 바꿔야 했다.



 



비트기트 브로이엘 미해결 재산관리청장까지도 ‘최대의 투자 저해요인’으로 지목할 만큼 몰수재산반환원칙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연합통신, 1993, 82-85) 이 점에서 동독의 마지막 총리였던 드 메지에르(Lothar De Maiziere)가 ‘통일과정에서 가장 큰 잘못은 토지재산권 문제의 졸속 처리였다’고 고백한 말을 우리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이성희 1998, 49).



 



통일 독일의 구동독 지역 토지·주택 사유화 조치가 초래한 통일의 후유증이 남북한 통일에 대해 주는 시사점은 바로 무분별한 자본주의로의 흡수 통일론, 특별히 북한의 토지·주택에 대한 무분별한 사유화 시도는 심각한 남북 지역간의 사회 심리적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동독에 비해서 훨씬 낙후된 북한의 경제사정을 고려한다면 통일 이후 북한 지역에 대한 조속한 투자유치가 절실하다. 통일독일의 경우, 잘못된 토지정책으로 동독지역의 경제재건이 상당히 지연되었다. 그 결과 수많은 실업자가 양산되고, 각종 사회문제가 야기됨으로써 독일 통일은 경제적 부담 외에도 사회 심리적 비용도 막대하게 야기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통일 후 북한의 토지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토지제도가 정착되느냐에 따라 통일비용의 양과 경제재건의 여부가 결정되며, 이것은 다시 사회통합의 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일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통일 후 북한의 토지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겠는가 생각해 보자.



 



 



 



2. 통일 이후 북한토지정책에 관한 대안들의 비교



 



통일 후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1946년 초 북한당국이 실시한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몰수당한 원(原)소유자들의 소유권 주장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이다.



 



김민배(1995, 12)의 조사에 따르면, 통일 이후 월남자의 35.1%가 소유권 반환을, 19%가 보상을,(즉, 54.1%가 남하 직전의 토지에 대한 권리를 통일 후에 회복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34.2%가 원상회복을 주장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통일 전에 이 문제에 관한 명확하고도 타당한 처리기준을 정해놓지 않으면, 통일 후 많은 어려움과 혼란이 예상된다.



물론, 이러한 논의들은 모두 북한체제의 붕괴를 전제로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였을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남한을 흡수통일하거나, 남북한이 합의에 의해서 통일을 이루어 낸다면, 원소유자들의 소유권처리 문제가 원천적으로 발생하지도 않을 것이다.



 



북한체제의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의 경우에, 원소유권 처리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사적 소유권의 신성함을 근거로 한 반환, 반환의 현실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보상, 그리고 재국유화가 그것이다. 대개 법학자들은 법규범 우선론을 내세워 반환을 원칙으로 하면서 경제적 손실이나 효율성을 고려한 부분적인 보상을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반면, 사회과학자들과 실무자들은 재국유화를 원칙으로 하면서 부분적 보상이나 반환을 제기하는 경향이 있다.



 



1) 반환과 보상방안에 대한 정책적 측면의 검토



 



① 원소유자의 토지소유권 확인이 불가능하다.



 



반환과 보상방안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그 주된 이유는 토지 소유권 확인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동독보다 더 철저한 사회주의를 지향했다. 따라서 북한은 토지개혁 이후 원래의 등기부를 모두 태워 버렸다. 이렇게 되면 통일 이후 북한지역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의 입증 책임은 전적으로 원소유자에게 있게 된다. 김민배(1995, 170)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원소유권자 중 자신의 토지임을 입증할 수 있는 문서를 소지한 사람이 전체의 8.2%에 불과하다고 한다. 따라서 문서를 지니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상 반환받기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우리의 법 관행으로 보아 그들은 온갖 증거나 증언을 동원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그 경우 발생할 혼란과 행정수요의 폭증은 아마 독일 보다 결코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문서를 소유한 사람은 자기 토지임을 입증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겠지만, 그래도 그 사이 토지의 형질변경이 상당히 발생했음을 생각한다면 이 작업 역시 만만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상당한 행정소송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원래의 등기부가 보존되어 있지 않은 북한에서 토지의 원소유자를 확인하여 반환하거나 보상하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② 반환은 북한 주민의 정서와 경제재건에 치명적 손실을 입힐 수 있다.



 



반환원칙은 필연적으로 원소유자와 그 동안의 토지이용자간의 대립과 반목을 가져올 것이다. 과거 토지개혁을 통해 북한 당국이 몰수한 토지는 총 토지면적 1,820,000정보의 55% 가량인 1,008,178정보였다. 만약 통일 후 원소유자가 몰수당한 토지의 소유권을 반환받으려 한다면, 현재 북한 토지의 60% 이상이 소유권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정영화 1999, 19). 이 경우 북한 주민들이 겪게 될 정서적 배신감은 대단할 것이다. 북한 치하에서 생존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주민들이 통일 후 나아지기는커녕 그 동안 사용하던 토지마저 빼앗긴다는 사실을 알면 만만치 않은 저항을 표출할 지도 모른다. 한편 반환의 원칙에 따라 원소유주를 찾아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혼란으로 북한 지역에 대한 투자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



 



 



③ 보상은 조세 저항을 불러온다.



 



반환으로 예상되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은 보상의 원칙을 내세운다. 왜냐하면 보상은 원소유자의 요구를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이용자의 생활도 보장하고 신규투자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은 조세저항에 부딪칠 수 있다는 결정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저항의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엄청난 규모의 보상액이다. 류해웅(1998, 86)에 따르면, 전체 보상액은 미화로 환산했을 때 약 1천 4백 62억 달러(약 17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몰수된 토지의 소유권을 입증할 수 있는 원소유권자의 비율을 전체 보상액 규모의 10-30%로 가정해보더라도 그 규모는 146-439억 달러(17-52조원)가 된다고 한다. 이런 액수를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한다고 했을 경우 정부는 상당한 조세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실제로 동유럽 국가들은 통일독일의 경험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부분적인 보상원칙을 내세웠지만, 이 방안 또한 국민의 조세 저항에 부딪쳤다(양승종 1998, 29).



더 난감한 것은 이러한 저항에 직면했을 때 정부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논거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납세자인 국민들이 ‘왜 과거의 불법행위를 현재의 우리가 보상해야 하는가, 왜 원소유자들의 사유재산권은 보호받아야 하고 현재 납세자들의 사유재산은 침해받아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을 때 정부는 답변할 논리가 없다는 것이다.



 



 



2) 반환과 보상방안에 대한 규범적 측면의 검토



 



반환과 보상은 북한을 통일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1991년 12월 남북한이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와 2000년 6월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 공동선언문」에 따르면 남과 북은 상대방을 적국이 아닌 통일을 향한 공동의 파트너로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독자적인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 후 북한 토지를 반환 및 보상하려는 것은 이러한 합의문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며 북한을 주권국가가 아닌 반란집단 내지는 강도로 규정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헌법의 제3조 영토조항(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에만 근거한다면 북한정권을 반란집단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 허나 헌법은 바로 이어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제4조)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고, 또 1991년 9월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한 이후는 양국 모두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지나치게 헌법 제3조에만 집착하는 것은 미래지향적 태도가 아닌 것 같다.



 



 



3) 북한 토지는 재 국유화하여 영구임대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통일 후 즉시 사유화하는 방법은 대부분의 학자들에 의해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방안이 경제의 효율성과 복지를 증진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토지사유제의 갑작스러운 확장은 남한에서 이미 토지를 통해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땅 투기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된다. 따라서 북한 지역의 대부분의 토지는 막강한 자금력과 투기의 노우하우(knowhow)를 지닌 이들 투기꾼의 소유가 되기 쉽다. 이렇게 되면 결국 개발이익이 토지소유자에게 귀속되어 토지투기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사회간접시설의 확충에도 상당한 장애를 초래하여 통일비용을 늘어나게 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방안은 국유화에 젖어있던 북한 주민들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실행과정에서 상당한 정치․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따라서 설령 남한에 의해 북한이 흡수통일 된다 해도, 통일 후의 북한 토지는 다시 국유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유화된 토지는 그 사용권을 시장원리에 맡겨서, 이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토지 이용의 극대화 및 투기 방지는 영구적 토지 임대제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토지 임대제는 시장원리에 의하여 그 토지를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서, 국가만이 유일한 대지주가 되어 모든 국토에 대하여 그 사용을 원하는 국민에게 임대해 주고 그 임대료를 징수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토지가치에 관한 부분만 환수하고 나머지는 사유화를 보장해주는 제도라는 점과 투자 초기에 많은 비용을 토지구입에 할애할 필요가 없다는 점 때문에 투자자에게 오히려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투자측면에서 이 제도 하에서 토지사유화보다 더 많은 투자 활성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은 다음에서 중국의 토지 임대제 실시 경험을 살펴볼 때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아래의 (표 2)와 같다.



 



(표 1) 통일 후 북한 토지소유권 개편방향에 대한 대안들의 비교



 







































 




효율성,



복지




사회․정치적 안정




토지 투기 방지




현재 북한과의



친화성




통일비용



축소




사유화




X




X




X




X




X




 




 




 




 




 




 




토지 임대제




O




O




O




O




O




 



주: O = 매우 만족, X = 불만족.



 



3. 중국의 토지임대제와 북한에 대한 시사점



 



1) 중국의 토지 임대제



 



중국 헌법 10조는 토지의 사적인 소유는 인정하지 않지만 토지에 대한 사적인 사용은 허용하고 있다. 농촌, 도시 주민의 택지에 대한 토지사용권의 주체는 만 18세 이상의 공민이면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농업용 토지에 대한 토지사용권은 농민에게, 자영산에 대한 토지사용권은 산민에게, 택지에 대한 사용권은 공민에게 인정된 것이다.



 



그러나 토지사용권에 관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국유토지에 대한 토지사용권이다. 국유 토지에 대한 토지사용권의 인정은 개방화 조치에 의해 경제특구를 설정하고 외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하여 국유 토지의 토지사용권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이 토지사용권의 양도, 저당권 설정을 가능케 한 것이다. 1986년 제정된 토지 관리법은 토지의 사회주의적 공유제를 유지하면서 토지 매매는 금지하지만 국유 토지와 집단 소유 토지의 토지 사용권은 법령에 의해 양도가 가능하도록 하고 국유토지의 유상 사용제 실시를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 토지 관리법에 근거하여 1987년에 심천을 시작으로 토지사용권의 유상양도가 행하여졌고, 상해, 심천, 천진, 광주, 해남도를 시범지역으로 하여 토지사용권을 유상 양도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어서 1988년에는 중국헌법을 개정하여 제 10조 제 4항에서 토지사용권은 법률의 규정에 따라 양도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토지사용권의 유상양도를 헌법적으로 보장하였다.(김상용, 237-239쪽)



 



이와 같이 유상으로 취득한 토지사용권은 양도, 임대, 저당권의 설정이 가능하다. 또한, 토지사용권에 대한 상속이 인정되며 토지사용에 따른 납세의무를 진다. 그리고 국유 토지 사용권을 유상으로 판 후에도 그 국유토지의 지하자원 및 매장물은 여전히 국가소유로 하고 있다. 토지사용권의 구체적인 기간은 설정 계약에 의해 결정되지만 최장기간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규정을 두고 각 경제특구 또는 성정부에서 최장기간의 범위 내에서 각 지역 사정에 따라 다시 최장기간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김상용, 241-242쪽)



 



<표2> 중국의 토지사용제도



 























































구 분




중 국




임대대상




중국내의 공사·기업·기타 경제 조직과 개인




임대기관




시·현의 인민정부 토지관리부서




임대기간




40-70년 이내



주거용지:70년



공업용지:50년



상업, 관광, 오락용지:40년




임대방법




협상, 입찰, 경매




토지비용




양도비 및 장지사용비




이행보증금




토지임차자는 계약체결 7일 이내에 토지임대료의 10%를 보증금으로 예치




임대료 납부기한




계약체결일로부터 60일 이내 전액 일시불 납부




토지사용료 감면혜택




각 성·시별로 상이함.




토지이용권 판매시 우선권




판매가격이 현저하게 낮을 경우 시·현 인민정부가 우선 구매권을 가짐




토지가치 증가액




토지이용권 재양도시 양도차액에 대하여 토지증치세 징수




지상건축물 반환




토지임대기간 만료시 지상건축물과 기타 부착물도 무상으로 국가에 반환




 



출처 : ‘북한에서 외국투자기업의 토지임대와 사용’, 북한뉴스레터 1995년 8월호, http://www.kotra.or.kr 자료실.



 



시간이 지나 사회 공동체의 발전에 의해 토지 가격이 상승한 경우에 토지사용권 양도시에 내는 토지 증가비(增價費)가 있다. 천진시의 경우, 토지 증가비 징수비율은 <표2>와 같다. 토지사용권은 사용기간이 만료하면 종료하게 된다. 토지사용권이 종료하면 토지사용권, 토지건축물 및 기타 부착물의 소유권은 국가가 무상으로 취득하게 된다.(김상용, 244-246쪽)



 



<표3> 천진시의 토지증가비 징수비율



 



























토지자연증가총액/이전의 전양가격




토지증가비 징수비율




100/100 미만




토지자연증가총액의 10%




100/100 이상 200/100 미만




100/100 미만의 토지자연증가총액의 10%



+ 100/100을 초과하는 토지자연증가총액의 15%




200/100 이상 300/100 미만




100/100 미만의 토지자연증가총액의 10%



+ 100/100 이상 200/100 미만의 토지자연증가총액의 15%



+ 200/100을 초과하는 토지자연증가총액의 20%




300/100 이상




100/100 미만의 토지자연증가총액의 10%



+ 100/100 이상 200/100 미만의 토지자연증가총액의 15%



+ 200/100 이상 300/100 미만의 토지자연증가총액의 20%



+ 300/100을 초과하는 토지자연증가총액의 30%




 



 



 



 



이와 같이 농민에게 토지 임대제를 시행한 결과, 중국은 엄청난 생산량 증대와 세수의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백승기 2001, 148). 토지 임대제란 공동소유제와 자유 시장경제를 결합시킨 것으로서, 토지소유권은 국가에 있지만 임대자가 그것에 상응하는 이용료만 지불하면 자신이 생산한 것은 모두 개인소유로 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실행으로 1994년 중국 농민의 1인당 소득은 1978년도에 비해 9.13배로 증가될 수 있었다(최상철․이영성 1998, 3).



이러한 농촌에서의 성공적 결과에 힘입어 중국은 1984년부터 이 제도를 도시로까지 확대 적용하였다. 중국이 도시로까지 이 제도를 확대한 가장 큰 이유는 도시건설에 소요되는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Weiain Yang Liu 1993, 59). 원래 도시의 국유지는 무상배정, 무기한 사용 및 양도금지라는 삼무(三無)원칙에 따라 운용되었다. 따라서 도시지역의 토지는 경제적으로 활용될 수 없었고, 그 결과 새로운 도시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전혀 확보할 수 없었다(백승기 1994, 688). 그러나 중국 당국은 각 도시에 토지임대제를 실시함으로써 상당한 액수의 세입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1992년 상해시는 토지로부터 100억원을, 광주시는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210억원의 세입을 올렸다. 1992년 전국의 토지수익은 500여억원에 달했고, 일부 지방은 토지수익이 재정수입의 1/4, 심지어 절반 가까이 되는 곳도 있었다(백승기 1994, 688-92).



 



2) 중국의 토지임대제의 문제점과 통일 후 북한 토지제도에 대한 시사점



 



중국의 토지 임대제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이중시장의 존재이다. 이중시장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첫째는 무상으로 토지를 임대받은 국영기업이 그것을 유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많은 국영기업은 아직도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토지를 분배받고 있으며 그 규모가 상당하다. 실제로 비농업건설 용지 중 시장경제의 원칙에 의해 유상 설정되는 수량은 전체의 1-3%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것은 많은 비농업용 건설 용지와 생산용지 및 영업용지가 여전히 무상방식에 의해 배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이로 인해 매년 3, 4천억 원에 달하는 지대가 유실되고 있다(백승기 2001, 165).



 



이중 시장이 존재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과표가 현실시장을 반영하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국가에 납부하는 토지 임대료 금액이 현실에서 통용되는 양도금액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면 국고로 환수될 많은 지대가 토지 양도자에게 귀착된다. 실제로 중국은 과표액을 2년마다 한번 씩 수정하지만 그 정도로는 개발이익을 환수하기에 충분치 못하다. 따라서 이런 차액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있는 사람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데, 이것은 국민들의 상당한 불만을 사고 있다(백승기 2001, 161). 리우(Weiain Yang Liu 1993, 61)의 주장처럼 이 같은 이중시장, 즉 지하 시장을 막기 위해서는 토지 임대료를 정확하게 평가하여 상승분을 전액 환수해야 한다. “현재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토지문제의 하나는 급속한 지가상승으로서 이미 경제발전과 경제개혁에 영향을 줄 만큼 그 폐해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토지전문가들의 견해이다.”(최수웅, 50쪽) 그리고 설령 전양 시의 토지 증가비를 토지증가의 100/100으로 완전히 징수하더라도, 토지사용권자가 전양하지 않고 계속 낮은 토지사용료를 지불하면서 토지를 사용하게 된다면, 여전히 현실 지대와 납부 지대 사이의 차액을 토지사용권자가 사적으로 전유하는 것이 되는 문제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째, 토지임대기간 만료 시 지상건축물과 기타 부착물도 무상으로 국가에 반환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노동 생산물이 아닌 토지와, 인간의 노동생산물인 건물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한 것으로서, 이로 인해 기업의 생산 활동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벽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생산설비가 임대기간 만료 시 다시 반환되어야 한다면, 만료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생산 활동에 필요한 설비투자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북한에 투명한 토지임대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서 모든 토지의 지대를 정확하고 정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정확한 조사를 통한 지대부과만이 지하시장의 성장을 예방하고 충분한 세수의 확보를 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이것은 그만큼 자본과 노동에 더 많은 감세로 이어져, 결국 북한 지역에 대한 투자활성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4.동유럽 국가들과 지대 조세제



 



에스토니아는 1991년에 처음으로 헨리 조지를 발견하여 그로부터 2년 후 지대조세제를 도입하였고, 지대는 현재 지방자치 단체의 가장 중요한 재원 중의 하나가 되었다. 관공서에서 토지 가치 평가도를 공람토록 하여 이의가 있는 경우 시정토록 하였으나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토지 전문가인 템베트츠에 의하면 1996년에 징수율이 95.5% 였다.



 



지대 조세제는 (에스토니아가)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기 이전의 지주들에게 물리적 자산을 되돌려 주는 '반환법'의 부작용을 부식시켜 주는 데도 도움이 된다. '반환법'을 통해서 실제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지주 계층이 새로 형성되었는데 이들은 토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놀려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대 조세제는 토지 가치의 2%에 해당하는 미미한 세율에서도 토지를 (적정) 개발토록 하거나 (그럴 의사가 없으면) 매각시키도록 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정부가 소유한 공유지의 경우에도 예외 없이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토지를 방치했을 경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다른 동유럽 국가들 역시 에스토니아를 따라 조지주의 정책(Georgist policies)을 채택하고 있다. 슬로베니아는 토지세를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라트비아와 체코 공화국은 계획 중이다. 그러나 만장일치적인 열광으로 조지주의 정책 방침을 따르고 있지는 않다. 다른 모든 세금을 대신하여 토지를 세원으로 도입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거부되어 왔기 때문이다.



 



 



5. 통일 후의 북한의 토지 개혁 방향:



 



1) 해방직후 북한의 토지개혁과 토지공공임대제 도입가능성



 



북한은 해방 직후인 1946년에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북한은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하였다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수확량의 25%를 현물세로 납부하게 하였는데, 이 25%의 현물세를 지대로 간주한다면, 지대 수익권을 사회공동체가 공유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농민의 토지에 대한 매매·소작·저당 등의 처분행위를 금지함으로써, 토지 처분권은 허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해방 직후 북한의 토지 개혁은 토지 소유권의 구성요소인 사용권과 처분권과 수익권 중에서, 사용권만이 사적 주체인 농민에게 귀속되고, 처분권과 수익권은 국가에 귀속된 형태로서, 북한 농촌 토지제도의 올바른 개혁방향인 토지공공임대제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해방직후의 토지개혁에 내재되어 있는 토지공공임대제의 의미를 북한의 당국자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다면, 북한당국이 토지공공임대제를 향후 북한 농촌의 토지제도 개혁의 대안으로 삼을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이것은 토지개혁기(1946-53)에만 해당되고, 그 이후의 역사에서 사회주의적 집단과 국가 소유를 지향한 집단생산방식 확립기(1954-1971)와 사회주의적 토지제도 확립기(1972-1991)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비록 토지개혁기의 역사이지만 북한의 실재한 역사와 접목시켜 토지공공임대제를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은, 토지공공임대제가 향후 북한의 개혁이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에 의해 자본주의화가 진행되는 방식이 아니라 북한 당국자들의 주도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할 때, 기존의 어떤 대안들보다 그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현재 개혁의 대안을 찾아 고민하고 있는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우리식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을 강조하는 북한이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가 아니라 자기 역사 속에서 그 대안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실현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2) 텃밭과 토지공공임대제 도입가능성



 



북한은 농업생산성의 증대를 위해 협동농장의 조합원 각 농가당 단체의 공동소유토지중의 일부를 분배하여 자유로운 경작권을 부여한 ‘텃밭’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여 왔는데, 북한 농민들은 텃밭에 채소 등을 재배하여 자체 소비하거나 농민시장 등에서 판매하여 소득을 올리는데 이용하고 있다. 북한농업과학원의 연구원이었던 이민복은 전체 농업생산 감소분 가운데 60~70%가 협동농장식 생산체제 때문에 감소된 것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시험재배에 의하면 옥수수와 벼의 최고생산가능성은 각각 10~15톤/㏊, 8~12톤/㏊이나, 협동농장의 경우 실제 생산은 각각 2~4톤/㏊, 3~5톤/㏊에 불과한 반면에, 농민들의 개인 텃밭의 생산성은 집단농장의 3~5배라고 한다(월간조선, http://www.chosun.com 기사검색).



 



텃밭제도의 초기에는 텃밭을 30-50평까지 허용하였으나, 최근에는 약 20평 정도로 축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북한 당국은 텃밭을 아직 사회주의적 인간형으로 개조되지 못한 인간 본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승인해야만 하는 자본주의적 필요악으로 규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 북한 당국의 의지는 사회주의적 소유를 지향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북한의 가중되는 식량난의 현실은 자본주의적 텃밭을 용인하게 하였다.



 



토지 사용권의 사적 귀속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은 북한 당국과 농민들이 이미 경험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라고 할 때, 북한의 개혁을 위한 방향으로, 텃밭과 같이 개인의 노력의 대가를 개인의 소유로 보장하는 토지공공임대제의 도입에 대해 북한 당국자들이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표4)토지 소유권 구성요소의 귀속처에 따른 협동농장과 토지공공임대제 및 텃밭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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