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義(안의) 사람 사는 이야기

 

제목 : 지리산 덕천서원에서 신선이 되지 못한 조식선생을 만난다? 첨부파일 : 다운로드[1]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11-11-15 조회수 : 490


[2011-11-10 오후 7:12:00]
 
 
 

지리산 덕천서원을 가면 신선이 되지 못한 조식선생을 만난다

 

<홍살문과 은행나무의 색감이 조화롭다.>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응급조치로 휴대폰으로 사진을 남겼다. 원하는 풍경을 담지는 못하여 아쉽지만 그런대로 기록으로는 볼만하다. 문화유산 해설사 분이 갑자기 찾아온 우리 일행들을 맞이하여 덕천서원과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해 해설을 해 주셔서 알지 못한 것들도 배웠다.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은 덕천서원은 남명선생이 돌아가신 4년 후에 창건 되었으며, 우리나라의 많은 서원들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중수하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는 과정을 거쳤지만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 등록된 건물이다.

 

 

남명 선생께서 합천 외토리의 뇌룡정에서 을묘사직소(1555, 乙卯辭職疏), 일명 단성소(丹城疏)를 지어 당시의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생활을 마치고, 산청 덕산 산천재로 자리를 옮긴 때가 61세라 전하고 있다.
요즘에야 61세는 많은 나이라 볼 수 없지만 당시에는 환갑을 지냈다는 것은 아주 나이가 많은 늙은이로 대접받던 시대였다. 많은 재물을 가진 것도 없는 늙은이가 주거자체를 옮긴다는 것은 자신이 죽을 곳을 찾아가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옛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 선생이 신라 왕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으로 관직을 버리고 천하를 주유하다 은둔의 길을 떠나면서 "靑山盟約(청산맹약)"이란 시를 남겼다.


"중아 산 좋다 말을 마라 이렇게 산이 좋으면 어이하여 떠났느냐
뒷날 내 자취를 보면 알거다 한번 들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려니."


그리고 가야산에 들어가 지금까지 가야산과 지리산을 오가며 유유자적 노닐고 있는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덕천강가의 고사목과 고목>

 

남명 선생께서도 조선 왕실에 실망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고자 하였지만 지금은 덕천서원이 된 하응도(河應圖)가 마련한 작은 집에 거처하자 선생의 학덕을 배우고자 많은 무리들이 제자 되기를 청하여 덕천강가에 산천재(山天齋)를 지어 제자들을 거두다 보니 무덤을 남기게 되어 신선이 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덕천강을 바라보고 있는 세심정 풍경>

 

덕천서원 앞 덕천강변에 세워진 세심정(洗心亭)은 의(義)를 행하지 않는 당시 정치에 실망한 선생이 당신의 마음까지도 씻어내고자 지은 것은 아닐런지.......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덕천서원(德川書院)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9호
산청군 시천면 원리 222-3

 

서원은 조선시대 사설교육기관이자 유학의 발전에 공을 세운 대학자나 나라를 위해 충절을 바친 선현들을 제사하는 곳이다. 이곳 덕천서원은 남명 조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선생이 돌아가신 4년 뒤인 1567년(선조 9)에 창건되었다. 덕천서원은 선생의 제자인 최영경(崔永慶), 하항(河沆), 하응도(河應圖) 등의 주도와 진주 목사 구변(具忭), 경상감사 윤근수(尹根壽)의 후원으로 건립되었다. 서원의 터는 작은 집(茅屋)을 지어놓고 선생을 모시고 놀던 장소를 하응도가 기증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2년(선조 35)에 이정(이정) 진극경(진극경), 진주목사 윤열(윤열) 등이 중건하였으며, 1609년(광해군 원년)에 덕천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870년(고종 7)에 불탄 것을 하재화(하재화) 등이 중건하여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서원의 배치는 전형적인 서원 배치양식인 앞에는 학문을 위한 공간을 두고 뒤에는 제례의 공간을 둔(前學後廟)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교육공간의 중심 건물인 경의당(敬義堂)과 함께 유생의 생활공간인 동. 서재(東. 西齋)가 있다. 경의당은 서원 내의 여러 행사와 학문을 논하는 강당으로 경(敬)과 의(義)를 중요시하였던 선생의 학문 정신을 담고 있는 곳이다. 제례공간인 숭덕사(崇德祠)는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매년 봄.가을 두 차례의 향례를 올리고 있으며 선생의 덕을 추모하는 남명제를 지내고 있다.

 

 

<덕천서원의 현판>

 

 

<경의당 현판>

 

 

<100년이 지난 차나무는 겨울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일부가 죽었다.>

 

 

<숭덕사로 들어가는 내삼문에 새겨진 쌍용 문양>

 

 

<숭덕사 전경>

 

 

<망료대 뚜껑과 숭덕사 벽면의 호랑이 그림>

 

 

<경의당 마루에서 식사 중인 나그네들의 모습>

 

 

<숭덕사 내삼문 좌측 입구에 놓여 있는 신기한 모습의 괴석(石)>

 

 

<서재 마루에서 싸온 도시락을 나누고 있는 일행들>

여성신문(womenis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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